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89화 (18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89화

대기실로 돌아온 멤버들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악플 질문 때문에 잠깐 분위기가 싸해졌던 것 때문인 듯했다.

내가 괜히 미안해서 슬쩍 눈치를 보는데 황새벽이 내 등을 퍽 쳤다.

"야이씨, 넌 뭘 잘못했다고 표정이 그래."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네 표정에 다 쓰여 있어."

어휴,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 다 알아서 뭘 숨길 수가 없다.

그때 현지 매니저가 우리에게 말했다.

"멤버분들! 반응 진짜 좋아요! 무대 반응도 좋고, 해원 씨 대답에 대한 반응도 좋아요."

후자는 내가 걱정할까 봐 덧붙인 모양이다.

생방송이라는 것에 부담을 느끼던 멤버들은 그제야 표정이 밝아져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현지 매니저에게 퍼스트라이트를 검색하는 법을 배워서, 그대로 복사해 X위터 검색창에 붙여넣었다.

"우와, 글 엄청 많아. 1초 전도 있네?"

박선재의 말에 현지 매니저가 크게 웃었다.

"거기서부터 신기해하시는 거예요? 당연히 많죠. 퍼라 인기 많다니까요?"

아무래도 해외 댓글은 우리에게 정말 호의적인 사람들이 주로 달다 보니, 나도 해외 댓글은 잘 읽을 수 있었다.

노트북으로 번역을 눌러 보니 정말로 다 좋은 내용이었다. 아까 철렁한 질문을 했던 MC 욕을 제외하고.

반응을 보니 다행히 내가 한 대답에 문제가 없었나 보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 * *

최윤솔은 퍼스트라이트의 정규 앨범 중 'STAY'를 다시 한번 반복해서 들었다.

좋았다. 솔직히, 너무 좋았다.

같은 팀에 락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락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정해원과의 라이벌 구도는 최윤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언플만으로는 부족했다. 실제로 이기고 싶었다.

최윤솔은 국선아 이후 한동안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살던 미국에서 지냈는데, 그사이에 ADHD 치료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창작 활동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하지만, 사실 작곡의 과정 자체가 창작은 짧고, 노가다는 길었다.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원하는 약을 구하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금지된 약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윤솔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약을 복용했고, 엄청난 작업 속도와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약을 복용하고 나면 잠시나마 이 짜증 나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잘해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가 오든 다 싸워 이길 수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걸 가사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때마침 앨범을 준비하던 아이돌팀, IMX의 컨셉과 딱 맞아떨어지며 백만 장이 팔려 나갔다.

다시 인터넷을 확인하니, VMC가 새롭게 준비 중인 두 가지 서바이벌에 대해 언플 중이었다.

하나는 사실상 국선아 시즌3인 아이돌 서바이벌. 시즌2 격이었던 '더 써틴'의 시청률이 저조해 또다시 이름을 바꿔 시작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5년 차 이하, '신인 프로듀서'들이 참여하는 서바이벌이었다.

* * *

한동안 일본에서의 스케줄을 했다. 동시에 팬미팅 준비도 하고 있었으므로 나도 멤버들도 체력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우리 멤버들이 체력 분배를 신경 쓰지 않고, 정말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다.

팬사인회도 그 외의 모든 스케줄에도,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을 알리기 위해 열정적으로 달려들었다.

우리가 일본에 있는 사이, 인터넷에는 내가 VMC가 준비하는 프로듀서 서바이벌에 나간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정해원, 새 프로듀서 서바이벌 '그레이존' 참가 장고 중…….]

이미 안 한다고 우리 회사에서 강경하게 나갔는데도 언플을 멈추지 않았다.

보이드 엔터 임직원들은 물론, 우리 멤버들까지도 '절대 안 된다'라는 생각이라 나도 일단은 수긍하기로 했다.

내가 우리 엔터가 그래도 신생인데, VMC에게 밉보이면 안 좋은 거 아니냐, 라고 했더니 강효준이 딱 잘라서 '믿는 구석이 있다'라고 했다. 내가 추궁하니까 '외할아버지……'라며 본인은 수치스러워했지만, 나는 마음이 아주 확 놓였다. 진짜 확실한 믿는 구석이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런데도 내가 이 서바이벌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건, 이 서바이벌의 무대가 VMC가 미국에서 해마다 주최하는 'V 페스티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와 멤버들의 입장이 워낙 강경해서 말도 못 꺼내 봤다.

그나저나 또 번호를 바꿀 때가 됐는지, 모르는 번호에서 톡이 왔다. 도대체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아내는지 모르겠다.

[핸드폰 번호도 알아내는데 차단한다고 팬미 못 들어가겠니ㅋㅋㅋ]

나는 그 톡을 차단했다.

아무튼 이런 복잡한 머릿속을 단번에 정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 조카.

[누나 : (사진)]

[엄마♥ : 아이구 우리 노을이 벌써 앉았어?]

[아빠♥ : 장하다 우리 손주]

[다 컸다 다 컸어]

[누나 : ㅇ]

자리에 앉아서 이번 정규 앨범 굿즈인 머플러를 잡아 흔드는 노을이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나가 보내준, 노을이가 태어나서 처음 '자기 힘으로 앉는' 기적적인 사진을 보며 힘을 얻은 후, 나는 내 호텔 방을 돌아봤다.

내 룸메이트이자 침대에 앉은 민지호를 중심으로 나머지 멤버들도 모여서 팬미팅 세트리스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이렇게 맨날 한 방에 모여 있는데, 방을 여러 개 잡은 의미가 있냐?"

그러자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황새벽이 말했다.

"난 방 있어야 돼. 불 꺼야 되니까."

"응, 넌 인정하지, 내가."

내 말에 황새벽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멤버들과 회의를 이어갔다. 회의 때는 깨어 있어줘서 참 고맙다, 진짜로.

그때 단톡방이 동시에 울렸다. 강영호 매니저였다.

[오리콘 위클리 나왔어요]

우리는 바로 보내준 링크를 눌렀고, 신지운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십만 장 넘었다."

[100,821장]

멤버들은 숫자를 확인한 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좋아했다. 민지호만 침착하게 계속 핸드폰으로 뭔가 보내고 있어서, 내가 확인하니 강효준 대표에게 톡을 보내는 중이었다.

[콘서트]

[콘서트]

[콘서트]

[형 콘서트]

[일콘]

[대표님 일.콘.]

[대표 효준이 형 : 지호야 형이 지금 좀 바빠서]

[대표 효준이 형 : 부대표님한테 얘기해 주겠니]

[아 넴]

그리고 부대표에게 다시 보내기 시작했다.

[콘서트]

[콘서트]

[부대표님 일콘! 하고! 싶어! 요!]

[부대표님 : 그래~ 콘서트 가즈아!]

[돔!]

[부대표님 : 울 지호가 가고 싶으면 돔 까잇거!]

[꺄!]

[부대표! 부대표!]

[부대표님 : 스타디움!]

[스타디움!!!!!!!!!!!!!!!!!!!]

나는 그걸 보다가 강효준에게 톡을 보냈다.

[형 고생이 많아요ㅋㅋㅋㅋ]

[강 대표 : 내가 사업하면서 어려움이 많을 걸 예상은 했는데]

[강 대표 : 이런 어려움을 예상 못 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 대표 : 대신 다른 어려움은 너무 없어서 이게 맞나 싶다]

[강 대표 :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소속 아티스트 일본 데뷔 초동이 십만 장이 넘지?]

[강 대표 : 원래 엔터 회사 운영 이렇게 날먹이냐?]

[저 있는 방향으로 절하세요]

[강 대표 : 이미 했어]

[강 대표 : 하루에 세 번씩 해]

[강 대표 : 거의 네가 내 종교야]

나는 강효준의 농담에 낄낄거리다가 다시 회의에 합류했다.

스케줄과 팬미팅 연습으로 체력이 바닥나 있던 멤버들이 판매량에 긴장이 풀려 노곤해하자, 민지호가 기운을 끌어올리려고 말했다.

"우리 이번 팬미팅은 5,000석이다? 심지어 양일이야. 다 찼어! 일만 명의 햇살이들이 우리 보러 오는 거야!"

맞는 말이다.

민지호의 말에 멤버들 모두 정신을 차리고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일만 명.

아직 팬들에게 공개하지 않았지만, 4월 말에 있는 콘서트를 위해 체조경기장을 예약해 놨으니, 보이드 엔터의 예측대로 정말 매진이 된다면 하루에도 일만 명이 들어가게 된다.

너무 큰 숫자였다. 일만 명의 햇살이들도 상상이 안 가는데 돔이면 그 다섯 배.

그런 날이 올까. 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으로 온몸의 세포가 다 살아나는 기분이다.

달려야겠다.

* * *

퍼스트라이트의 일본 팬이자 황새벽의 팬, @04nn0312는 열심히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정해원의 팬인 친구와 한국에 입국했다.

친구는 팬사인회에서 만나 친해졌는데, 처음 만났을 땐 정해원과 대면한 뒤 넋이 나간 상태였다.

2025년 퍼스트라이트 팬미팅 '파일럿'은 핸드볼 경기장에서 열렸다.

양일을 가고 싶었지만, 첫날에는 티켓을 구하지 못해 결국 마지막 날 가게 되었다. 그것도 정말 어렵게 얻었던지라, 오늘이라도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팬미팅 당일 아침부터 긴장감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04nn0312가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너무 일본 팬인가……."

지하철에 퍼스트라이트 팬들이 많았는데, 우치와와 이미지 피켓을 사서 들고 있는 사람이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핸드볼 경기장에 도착하자 이미지 피켓을 든 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해외 팬이었다.

공연장에 입장한 후, 공연이 시작하는 정확한 시간에 공연장이 어두워졌다.

이어서 공연장에, 이번 정규 앨범에서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록곡으로 뽑힌 STAY가 흘러나왔다.

전혀 울 생각이 아니었지만 @04nn0312는 STAY의 인트로, 일렉트릭 베이스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마냥 맑던 박선재의 목소리가 STAY에서는 좀 더 '어른이 되어가는 소년'의 느낌으로 들렸다.

@04nn0312는 이 곡에 대해 정해원이 인터뷰했던 것을 떠올렸다.

-수록곡 STAY는 저희 멤버들이 참 좋아해 준 곡이었는데요. 햇살이들도 봐서 알겠지만 제 작업실이 진짜 좋거든요. 거기 의자에 이렇게 앉아서 뭘 만들까, 오늘따라 뭐가 안 떠오르네, 갑자기 영감이 벼락처럼 떨어졌으면 좋겠다, 라는 꿈을 꾸고 있는 그 짧은 사이에, 멤버들이 정말 쉴 틈 없이 작업실을 드나들더라구요.

그러자 신지운이 말했다.

-해원이 형 작업실이 구석에 있어서 너무 마음이 편해요.

-그니까, 우리 다 내성적이어서 구석 좋아해.

옆에서 황새벽도 맞장구치자 정해원이 웃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멤버들을 보고 있으니까. 그냥 퍼스트라이트의 노래를 만들고, 어떻게 햇살이들이 좋아할 무대를 만들까 멤버들이랑 고민하면서 싸우고, 화해하고, 또 고민하고, 웃고. 그런 시간 속에 계속 머물기만 하고 싶어지더라구요.

옆에서 민지호가 말했다.

-해원이 형은 언제까지나 한결같이 간절한 사람일 거 같아.

그 말에 멤버들이 모두 놀라 민지호를 봤다.

-지호도 올해 어른이긴 하네.

-와, 민지호가 지금까지 한 말 중에 제일 어른스러워.

안주원과 박선재가 번갈아 하는 말에 정해원이 중얼거렸다.

-민조가 어른 같아지면 진짜 기분 이상하겠다. 뿌듯하면서 섭섭하면서.

그 말에 한효석이 말했다.

-쟤 안 커요. 저러고 조금 있다가 연습실 가서 신난다고 노래 부르면서 뛰어다닐 거예요.

그 말에 멤버들이 공감하며 웃었다.

[아픔이 없는 공간은 없겠지만]

[우리의 웃음이 그보다 강할 거야]

[절망이 울게 하는 시간 동안]

[작은 불빛에 의지해 아침을 기다리는]

[그 순간마저 우리는 함께하겠지]

[Stay, 영원히 소년 같기를]

[Stay, 잊지 않고 사랑하기를]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가 만날 땐]

[언제까지나 오늘 같기를 약속하자]

감정을 고조시키는 락 음악과 함께 멤버들이 하나씩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멤버들과 팬들은 이 노래 가사 그대로, 이 순간에 완전히 머물러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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