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90화 (19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90화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멤버들이 인사를 했다.

"서드, 세컨, 퍼스트! 안녕하세요, 퍼스트라이트입니다!"

그 순간 팬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큰 규모의 팬미팅 장소를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신기해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 명씩 인사하고 나서, 황새벽이 공치사를 했다.

"아, 스테이 진짜 너무 명곡이야."

그걸 듣자마자 박선재가 팬들 쪽을 보며 말했다.

"이거 처음에 듣고 주원이 형 울었다?"

"하, 여기서 밝힐 줄은 몰랐네……."

안주원이 민망함에 한숨을 쉬며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말을 이었다.

"그냥 눈물이 주룩 나더라고요……. 해원이 귀 빨갛다."

시선을 돌리려고 안주원이 말하자 정해원이 뒤늦게 손으로 귀를 감쌌다. 멤버들이 양옆에서 손과 귀의 색깔 차이를 비교하며 낄낄거렸다. 신지운이 말했다.

"이 형이 자기 칭찬하는 거 진짜 부끄러워하는데, 또 속으론 좋아해."

그 말에 정해원이 대답했다.

"아니야, 난 겉으로도 좋아해."

그러자 민지호가 말했다.

"다 같이 칭찬 한번 해줄까? 정해원, 짝, 정해원, 짝."

팬들은 바로 민지호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정해원은 더 뜨거워진 귀를 손으로 식혔다. 민지호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 칭찬해 주니까 좋지!"

"응, 부끄럽고 좋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고 나서, 민지호가 팬들에게 말했다.

"오늘 진짜 준비한 거 많아요! 우리 오늘도 재미있게 놀아요!"

* * *

정해원 사생, @d00m_fls는 VMC가 연결해 준 기자들 사이에 숨어 들어갔다.

아직 신생 회사인 보이드 엔터는 프레스석으로 들어가는 기자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기자들에게 보낸 초대장을 보여주면 바로 들여보냈기 때문에, @d00m_fls는 어려움 없이 프레스석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형인 VMC, 짬이 긴 TRV와 사이가 좋지 않은 퍼스트라이트에게 일단 욕을 박고 시작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이 새끼들 X나 의리 없어. 지들 키워준 회사도 안 가, 전 소속사 나와."

"이거 다 업보로 돌려받는다. 이런 새끼들 절대 오래 못 가."

@d00m_fls와 함께 들어온, 케이팝 팬들에게 악질로 유명한 기자가 말했다.

"근데 너 재능 있다. 사생 출신인 애들이 좋은 사진 잘 가져와. 기자 정신이 있어."

"이제 작업실을 사옥으로 옮겨서 뭘 찍을 수도 없어요."

"하여튼 지금이나 아이돌들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예전엔 다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본가 담장 넘어 들어가고 그랬어. 야씨, 가수가 음원이 잘 나와야지, 음판이 뭔 의미냐. 심지어 퍼라는 음판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잖아. 요즘 개나소나 백만 장 넘는데. 그렇다고 뭐, 음원이 10위 안에 든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도 저러고 지들이 무슨 대스타인 줄 알고 시큐리티 X나게 끼고 거들먹거리고 다닌다니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좌석이 가득 찼다.

@d00m_fls는 버킷햇을 눌러쓰고 가방에서 옷들을 꺼내 팔에 걸고 스타일리스트인 척하며 복도를 지나갔다. 현장이 워낙 바쁘고, 콘서트 연출팀과 보이드 엔터 직원들이 뒤섞여 있어 서로 상대 직원이려니, 생각하며 지나갔다.

정신없는 지하 동선 쪽을 지나는데, 멤버들이 그 앞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정해원이 앞으로 지나갔다.

순간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향수 냄새가 이미지에 덧입혀졌다. 몇 초 만에 앞을 지나갔는데, 이십 년 뒤에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을 것 같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선보이는 커버곡인 데다, 대선배의 곡이기도 해서 멤버들 모두 평소보다 훨씬 긴장한 상태였다.

정해원은 다른 멤버들과 함께, 직후에 있을 무대에 집중하며 연출 감독과 안무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정해원은 평소 본인이 싫어하던 날이 바짝 선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국선아 이후에는 TV에서도 공연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기 서린 눈빛이었다.

"무대가 좌우로 기니까, 연습실에서보다 스텝 추가된 거 꼭 기억하자? 디디디디 따, 디디디디, 따."

"네엡."

안무가가 박수로 맞춰주는 박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퍼스트라이트는 콘서트에서도, 팬미팅에서도 커버곡을 하나씩은 넣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룹, 클라루스의 곡을 선택했다.

공연장에 빵빵하게 채워진 음악은 클라루스의 두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 'Everlasting'의 커버였다.

오늘 팬미팅은 실시간 스트리밍 중이었기 때문에, @d00m_fls는 경기장 내 조리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리대 뒤에 숨어 핸드폰으로 팬미팅을 확인했다.

이 곡은 신인이던 클라루스를 스타로 만들었던 곡으로, 치기 어린 첫사랑을 강렬한 힙합 사운드로 표현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게 만들었다.

현재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6억 뷰를 넘어선, 초기 앨범 중에서 특히 사랑받는 곡 중 하나였지만 소년의 첫사랑에 관한 노래라 클라루스가 더 이상 공연에서 부르지 않는 곡이기도 했다.

정해원은 이 곡을 좋아해서, 국선아 시절 미션곡으로 나왔을 때도 꼭 이 곡을 부르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국선아가 끝나고, 안주원이 정해원이 이 곡의 안무를 전부 알고 있어 다른 팀이었는데도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의 한을 지금 푸는 듯했고, 이 사연을 전부 알고 있는 팬들은 환호했다.

[네가 뭔데 영원하다던데 사랑이 원래 그렇다던데]

[아무것도 모르고 그 말을 믿던 내 시간이 멈추네]

[Everlasting, 나의 이런 맘, 별것 아니라고 하지 마]

[나에게는 영원할 첫사랑]

멤버들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고, 퍼스트라이트 팬들도 그 노래를 함께 불렀다. 공연장이 뜨겁게 타올랐다.

실시간 반응도 난리였다. 퍼스트라이트 팬들뿐 아니라, 다른 팬들까지 실시간 스트리밍을 보고 있었다.

[심장 뛴다 개좋아]

[퍼라는 무슨 팬미팅에서도 독기가 느껴지냐ㄷㄷㄷ]

[↳얘넨 진짜 열심히 안 하는 멤버가 없더라 항상 데뷔 첫날 같음]

[해원이가 춤멤이긴 하구나ㅋㅋㅋ 맛깔나게 추네]

[↳나도 새삼 느낌 작곡멤이라 춤이 가려지는듯]

[↳↳퍼라 해원이 진짜 직캠 맛집인데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클라루스한테 업혀 가려고 하네]

[↳그러게 잘 업혔으면 좋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퍼라팬들 국선아를 거쳐왔는데 이런 걸로 긁히겠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d00m_fls는 신나는 곡에 맞춰 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멤버들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정해원은 즐거워하는 팬들과 눈이 마주치고 행복한 표정으로 손도 흔들고 애교를 부렸다. 팬들이 이 선곡에 만족했다는 것이 느껴진 듯했다.

방금 무대 아래서 보았던,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날카롭던 사람이, 무대에 올라가서는 팬들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고도 아까워하지 않을 사람처럼 구는 것이 @d00m_fls에게 순간 기만으로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도 검색하면 욕 밖에 나오지 않았던, 심지어는 욕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기까지 하던 정해원이 이제는 시큐리티들에게 겹겹이 쌓여서 닿지 못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열등감, 질투와 집착이 끓어오르고, 그 끝에 역겨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곧 억누를 수 없는 분노로 치밀어 올랐다.

그때 조리실로 에버래스팅을 흥얼거리며 스태프 하나가 들어왔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막내 매니저였다.

"나에게는 영원할 처어엇사랑."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조리실 냉동고를 열어 무언가를 넣어놓은 후 매니저가 떠났다.

@d00m_fls가 냉동고를 열어보니 아이스크림이 일곱 개가 들어 있었다. 아이스크림 두 종류에 멤버 이름이 적혀 있고, 나머지 다섯 개는 초콜릿이었다.

녹차에 한효석, 바닐라에 정해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d00m_fls는 자기도 모르게 정해원의 아이스크림을 꺼내고, 주머니 속에서 언박싱을 위해 늘 들고 다니는 커터칼의 칼심을 부러뜨려 모서리에 끼워 넣었다.

악플을 달 때와 심리도, 논리도 거의 비슷하게 작동했다. 존재감을 남기고 싶었다.

아까 기자가 한 말처럼 스타병을 좀 고쳐야 한다고, 생각은 점점 더 정당화되었다.

* * *

팬미팅 마지막 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곡을 부르기 전, 민지호가 울컥해서 말했다.

"내가 말하고 올게, 우리 집에 안 간다고! 여기서 밤새자!"

"이것도 팬미팅 연례행사네."

한효석이 핀잔하고, 황새벽이 의무감으로 말해줬다.

"민조는 여기 살아, 멤버들은 갈 거야."

"힝……."

신지운이 박선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애초에 얘 아직 미성년자라 밤샘 못 해."

"나 빼고 밤샘하지 마!"

박선재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팬들은 웃고, 멤버들도 웃었다. 팬미팅에서 '민지호를 달래서 숙소로 데려가는 부분'도 한효석의 말처럼 팬미팅의 일부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 팀의 스포 담당, 햇살이들 피셜, 마음이 약해서 찌르면 스포가 나온다는 안주원이 계획된 스포를 했다.

"아, 맞다. 선재가 솔로 음원 준비하잖아."

그 말에 공연장이 뜨거워졌다. 박선재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해원이 형이 좋은 곡을 또. 뭐 언젠 안 좋은 곡이었냐마는, 이번에도 역시나 좋은 곡을 줬거든요."

그러자 민지호가 밤샘 공연하자고 우기던 것을 잊고 말했다.

"불러줘, 짝, 불러줘, 짝."

팬들도 손뼉을 치며 따라 하자, 박선재가 한 파트를 불러줬다.

[봄이니까 봄이니까]

[오늘 나를 보러와 카페에서 기다릴게]

그렇게 부른 후에 민망한지 나에게 재촉했다.

"곡 소개는 형이 해조."

"응. 음……. 4월 2일에, 음원이 공개 되구요, 벚꽃 피는 시기에, 카페 앉아있을 때 우리 막냉이 노래가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녹음할 때 너무 좋았어요. 햇살이들한테도 좋으면 좋겠네요."

그러자 한효석이 툴툴거렸다.

"당연히 좋았겠죠, 형 최애니까."

"야, 네 이름에도 하트 붙여줬잖아."

그러자 민지호가 말했다.

"내가 붙여달라고 안 했으면 안 붙여줬을 거잖아!"

"난 진짜 동생들은 다 똑같이 이뻐."

내 말에 신지운이 귀여운 척 하려고 해서 안주원이 붙잡았다.

"너 말고."

"야, 나도 이뻐."

"아니야……."

안주원이 안타깝게 부정하자 멤버들은 웃음이 터졌다.

점점 각자 자기 동갑내기의 드립에 서로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에, 팬들이 즐거워했다. 얼떨결에 나도 황새벽을 챙겨줬다. 참 챙길 게 많은 친구다.

첫째 날에는 첫째 날의 설렘이, 마지막 날에는 마지막이니까 불태우자는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날의 공연이 다른 느낌으로 좋았다. 언제까지고 다시 무대에 오르고 싶었다.

마지막 무대와 앵콜까지 끝내고, 우리는 팬미팅을 마쳤다.

공연이 끝나고도 멤버들은 열기가 내려가지 않은 상태였고, 배가 고파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멤버들은 일단 여기저기서 셀카를 남겨놓고 바로 당분부터 보충했다.

"형."

"땡큐."

신지운이 내 이름이 적힌 아이스크림을 건네줘서, 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올해 들어 거의 쉰 적이 없었어서, 잠깐만 여유가 생겨도 졸음이 쏟아졌다.

단체 사진도 찍고, 비하인드 카메라에 소감도 말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을 쫓았다.

"아."

그러다 내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니까 멤버들이 돌아봤다. 제일 먼저 이상을 눈치챈 황새벽이 물었다.

"왜?"

"……."

"야, 야. 피."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차가웠던 입안이 이미 피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피를 발견한 황새벽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나는 입에서 손을 떼고, 혀에 박힌 작은 금속 조각을 빼냈다. 와씨, 기절하게 아팠다. 아니다. 진짜로 기절하겠는데, 이거…….

나는 바로 차키를 들고 달려오는 강효준에게 물었다.

"……저 노래 할 수 있겠죠?"

다행이다. 말은 잘 나왔다. 혀를 심하게 다친 건 아닌가 보다.

누가 나에게 특별히 보컬을 기대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아이돌이 노래는 해야지…….

나는 일단 안심한 후 현기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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