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91화
대기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바닥에도 정해원의 옷 소매에도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강효준은 부대표에게 정리를 맡기고, 출혈이 심해서인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린 정해원을 차에 태우고 바로 병원을 떠났다.
부대표는 직원들과 상의한 후, 일단은 숙소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멤버들을 돌려보냈다. 멤버들은 숙소에 도착해서도 한쪽 숙소 거실에 모여, 옷도 갈아입지 않고 늘어져 있었다.
서로 한마디도 안 하고 응급실 쪽 상황을 기다리던 중에, 민지호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햇살이들한테 팬미팅 고맙다고 인사해야 해."
멤버들 모두 아이돌이란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민지호만큼 타고난 아이돌도 없다고, 멤버들은 이 순간 더욱 실감했다.
민지호를 시작으로 멤버들도 하나둘 핸드폰을 꺼냈다. 동생이 먼저 정신을 차리자, 황새벽도 충격에서 억지로 벗어나 박선재에게 물었다.
"선재야, 너 솔로 괜찮겠어?"
박선재의 솔로는 봄 분위기의 밝은 노래인데, 사생 때문에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나가면 활동에 영향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팬미팅 장소에 워낙 기자들이 많이 왔었던지라, 기사를 틀어막는 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박선재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에이, 당연하지. 나 프로야. 더 열심히 할 거야, 오히려. 해원이 형이 만들어준 곡이니까."
정해원을 걱정하느라 솔로 활동을 망치면, 정해원이 몇 배로 괴로워할 것임을 박선재도 알고 있었다.
동생들의 씩씩한 모습에 안주원 역시 애써 웃으며 말했다.
"멋있다, 우리 막내. 다 컸네."
이틀 동안 팬미팅 장소를 가득 채워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필사적으로 충격을 떨쳐내고 억지로 밝은 기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황새벽이 그런 노력할 정신도 없이,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있는 신지운의 등을 툭 쳤다.
"야."
"……."
"정신 차려, 뭐 네가 알고 줬냐?"
"……뭔가 반짝거린 거 같았는데."
정해원의 이름이 적힌 아이스크림을 건네줬던 신지운이 중얼거렸다.
"내가 분명히 봤는데, 피곤해서 잘못 본 줄 알았어."
"야이씨, 네 탓하지 마."
"그걸 왜 보고 그냥 줬지……."
황새벽이 말했지만, 이 상황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신지운은 쉽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는 듯하자, 민지호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나 X이앱 할래!"
"됐어, 내가 할게."
한효석이 말하자 박선재가 동의했다.
"효식이가 하는 게 낫겠어, 내 생각에도."
민지호는 감정에 비교적 솔직한 사람인데, 정해원이 다치고 나서 지나친 의무감으로 기운을 끌어 올리고 있다는 것을 멤버들도 알고 있었다. 민지호가 고집을 부렸다.
"에이, 나 할 수 있어! 지금도 내가 제일 기운 넘치잖아!"
그 말에 한효석이 핀잔했다.
"그게 이상한 거야. 평소에 이런 일 있으면 너 어디 구석에 누워 있었을 사람이잖아."
한효석이 정곡을 찌르자 민지호가 멈칫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물었다.
"해원이 형 괜찮겠지?"
"응, 괜찮을 거야."
안주원이 등을 두들겨주며 말했다.
멤버들이 마음을 알아주자 그제야 감정이 북받친 민지호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물었다.
"피가 엄청 많이 났어. 해원이 형 노래 못하게 되면 어떡해? 해원이 형 아이돌 못하면 못 살잖아……."
억지로 참고 있던 말들을 터트리자, 멤버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때 리더인 황새벽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황새벽이 말했다.
"아, 끝났어요? 아…… 하…… 네."
황새벽이 뱉는 한숨이 떨렸다. 전화를 끊고, 황새벽이 말했다.
"치료 잘 끝났고, 한동안 노래는 못할 것 같은데 다 회복하면 이상 없을 거래."
그 말에 멤버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이 보고도 아이스크림을 넘겨줬다는 생각에 꼼짝도 못 하고 얼어있던 신지운은 그제야 좀 녹아서 그때부터 덜덜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 *
보통 팬미팅이 끝나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무조건 X버스에 우르르 글을 올렸기 때문에 자정이 넘도록 아무 글이 없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 워낙 햇살이들 잘 챙기는 애들이라 안 오니까 괜히 불안하고 그러네 과민반응이지?]
[↳나도 이해해……. 그래도 좀 더 기다려보자!]
그때 다행히 좀 늦은 시간이지만 황새벽을 필두로 멤버들이 X버스에 팬미팅 소감과 고맙다는 인사, 그리고 셀카들을 주르륵 올렸다.
그리고 X이앱 역시 켜졌다. 한효석과 박선재의 야식 X이앱이었다. 두 사람은 피자를 시켜놓고 먹으며, 오늘 팬미팅 후기를 먼저 이야기했다.
그렇게 먹던 도중에 박선재가 말했다.
"맞다, 햇살이들이 해원이 형 말랑버터라고 부르잖아요. 형이 그거 되게 좋아한다?"
박선재가 피자를 한 입 더 크게 물어 먹고 나서 말을 이었다.
"해원이 형이 원래 단 거랑, 느끼한 거 잘 못 먹잖아요? 근데 며칠 전에 크로플을 해준대. 왜 그러냐고 했더니 햇살이들이 버터 얘기 하니까, 버터가 많이 들어간 게 먹고 싶다구. 되게 좋았나 봐요."
[해원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랑버터 마음에 들었엌ㅋㅋㅋㅋㅋㅋㅋㅋ]
"형이 귀엽단 말 엄청 좋아해."
한효석의 말에 박선재가 맞장구쳤다.
"진짜 좋아해. 솔직히 맨날 지운이 형이 자기 귀엽다고 그러면 뭐라 그러잖아? 그거 부러워서 그래. 그러니까 햇살이들도 해원이 형한테 귀엽단 말 많이 해주세요."
"그리고 소 닮았다는 것도 은근 좋아하고."
"아, 그치. 흰 소 관련된 거 보이면 꼭 사요."
[흰소 마음에 들었냐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막냉이가 만들어준 컨셉이니까…….]
[↳아 그래서…….]
[↳말랑버터랑 흰소 둘 다 최애가 만들어준 컨셉이라 좋아하는 거네]
[↳↳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치 햇살이들이 해원이 최애지ㅠㅠㅠ]
[근데 오늘 해원이 몸 안 좋았나 봐 원래 공연 끝나면 X버스 무조건 오는 앤데]
[↳안 올 수도 있지 추측글 올리지 말자]
[↳↳그건 아는데 평소랑 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서ㅠㅠㅠ]
그렇게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때, 기사가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퍼스트라이트 정해원, 팬미팅 이후 병원행…….]
* * *
정해원 사생, @d00m_fls는 다른 사생으로부터 정해원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euni111 혐이 병원 갔다는데?]
@d00m_fls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칼심이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니, 중간에 발견하거나 할 줄 알았지, 입에 들어갔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작업실에 몰래 들어갔을 때는 TRV가 그런 일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는 면도 있고, 이래저래 돈 드는 것도 싫어해서 아무 일 없이 넘어갔었다.
한 번 넘어가 보니 더 과감해졌던 건데, 이번에는 병원까지 실려 갔으니 진짜로 그냥 안 넘어가지 않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d00m_fls의 핸드폰이 울렸다. 관할 경찰서였다.
"아, X발, 미치겠네."
일단 전화를 받지 않고, 바로 연락처를 줬던 VMC 직원에게 연락했다. 상황을 듣고 난 VMC 직원이 물었다.
-그거 뭐, 내가 어떻게 하라고 전화한 거예요?
황당해하며 묻는 질문에 @d00m_fls가 말했다.
"어떻게 하냐구요."
-그걸 내가 뭘 어떻게 해요. 지가 남 다치게 한 거를.
"애초에 저 들여보낼 때 예상 다 하셨잖아요, 이런 일 있을 거."
-와, 뇌에 구멍 났나. 제정신이 아니네. 그걸 내가 어떻게 예상을 해? 알아서 해요, 알아서.
"저 경찰서 가면 VMC에서 시켰다고 할 거예요."
그 말에 상대방이 욕을 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d00m_fls가 말을 이었다.
"저 프레스 초대장 주고 들여보내셨잖아요. 그때 VMC에서 시켰다고 할 거예요."
전화 너머에서 욕을 하거나 말거나, @d00m_fls는 말을 이었다.
"VMC 그 정도 힘 있잖아요. 변호사를 불러주시든지, 보이드 엔터 입막음을 시키시든지. 알아서 안 하시면 저도 혼자 안 죽어요."
그렇게 @d00m_fls는 전화를 끊었다.
* * *
"죄송합니다."
강효준은 늦은 시간,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응급실로 달려온 정해원의 부모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정해원의 어머니가 정신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아휴."
어지러워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듯했다. 정해원의 아버지 역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 강효준은 지금까지 파악된 상황에 대해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수술이 잘 끝나서 회복에만 주의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부분, 그리고 CCTV를 통해 대충 사생이라는 건 알았는데, 프레스 초대장을 들고 들어와서 내부 식별이 불가능해 경찰이 파악 중이라는 부분을 먼저 전달했다.
그리고 회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치른 첫 공연이라, 다들 익숙하지 않아서 보안을 철저하게 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재차 말했다.
다행히 정해원은 금방 일어났고, 부모님을 발견하자마자 왜 왔냐고 성화였다. 일주일 정도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해서 가져다준 키보드로 계속해서 모니터에 글을 띄웠다.
[가게는!!!!!!!!!!]
[자영업자가 이렇게 맨날 가게 닫으면 손님들이 실망한다니까???]
[애초에 그냥 좀 벤 거 가지고 병원을 오는 것도 이상한데]
[원래 강대표가 아티스트 과잉보호를 하는 경향이 이써…….]
[근데 나 치킨 먹고 싶은데 언제 먹을 수 있지ㅜㅜㅜ]
멤버들과 있을 때는 지나치게 어른처럼 굴더니, 부모님이 있을 때는 또 지나치게 애처럼 굴었다.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신나게 칭얼칭얼거리고 나서, 정해원의 부모가 조용히 병실을 나와 강효준을 불렀다. 그리고 정해원의 아버지가 말했다.
"다시 가볼게요. 얼굴 봤으니까."
"아, 병원 근처에 숙소 잡아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정해원의 아버지가 손사래를 쳤다.
"아들이, 우리 있으면 오히려 못 쉬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강효준도 더 붙잡지 않았다.
배웅 후 병실로 강효준이 들어오자, 침대에 멍한 상태로 누워 있던 정해원이 일어나 키보드를 가져왔다.
[형 근데 진짜로]
[노래하는 데 지장 없죠?]
[제가 막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하긴 해야 되거든요]
그 질문에 강효준이 바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 정도로 큰 부상은 아니야. 잘 회복만 하면 아무 문제 없대."
그렇게 말하자 정해원이 안심했는지 씩 웃었다.
정해원의 멘탈을 위해 일단 그렇게 말하기는 했어도, 사실 아찔할 정도로 큰일이었다. 지금도 안전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한 달 이상 노래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권유했다.
이걸 본인이 어떻게 뺏는지 의사가 황당해할 정도로 칼날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있었다는 모양이었다.
그걸 어떻게 뺏는지, 이유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정해원의 입에서 답이 나왔다.
'저 노래 할 수 있겠죠?'
어렵게 얻은 무대를 뺏기지 않는 게 최우선. 그게 정해원을 독종으로 만들었다. 낫기만 하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안심하던 정해원이 키보드를 보며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실수예요?]
그 질문에 강효준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정해원이 힐끔 표정을 확인하더니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누가 일부러 그런 건가…….]
[속상하네…….]
[아무래도 뼛속까지 아이돌이라 그런가 봐요ㅋㅋㅋ]
[원래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러더니 다시 표정을 확인하고 이어서 적었다.
[원래 다 대표가 이런 얘기 들어주고 하는 거예요ㅋㅋㅋ]
"어, 안 그래도 이제 육아에 익숙해졌어."
강효준이 과장되게 지친 투로 대답하자 정해원이 웃었다. 이 상황에 웃는 게 맞나. 강효준이 한숨을 쉬었다.
정해원이 다시 물었다.
[혹시 벌써 기사 나갔어요?]
[햇살이들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