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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93화 (19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93화

"스파이가 누군데?"

안 그래도 궁금해하던 강효준이 바로 되물으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되물었다.

"형 다시 나가려던 거 아니었어요?"

"이걸 못 듣고 나갈 순 없지. 내가 얼마나 궁금해했는데."

강효준이 말하더니 시계를 확인하고 물었다.

"밥 먹으면서 얘기할까?"

"저 먹었어요. 그렇게 긴 얘기도 아니고."

"안 먹었다던데, 애들이."

"……애들 누구요?"

그건 말을 안 해줬다. 하여튼 이 드럽게 낯가리던 놈들이, 갑자기 강효준 대표랑은 잘만 지낸다.

하기야, TRV를 겪고 온 놈들이 강효준처럼 '우리 아티스트'만 생각하는 대표를 만났으니 좋기도 하겠지. 어휴, 눈 낮은 놈들…….

그러다가, 나는 이게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아서 한심해하던 걸 그만두고 강효준에게 말했다.

"형, 근데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긴 얘기 아니라며 뜸 들이네."

강효준이 말하더니 서랍을 열었다. 간식이 꽉 차 있었다. 거기서 큼지막한 과자통을 꺼내 커피테이블에 올려놔서, 일단 하나를 꺼냈다. 강효준이 한 주먹씩 과자를 꺼내 먹는 걸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형 절대, 저 빼고 스파이랑 손잡으면 안 돼요."

"날 아직도 못 믿어?"

"아뇨. 스파이를 못 믿는 거죠."

"스파이는 또 왜 못 믿어. 지금까지 해다 준 게 얼만데."

"약속해요, 안 해요."

"해야지."

나는 강효준의 약속을 받아내고, 과자를 반으로 쪼개며 말해다.

"저, 빅 블루 형들 타이틀 쓸 때 한 번 유출된 적 있잖아요."

"어."

"그때 유출한 사람이에요."

"……박중운 매니저? 브삼에서 일하는 그 새끼?"

유출범이라는 이유로, 강효준은 박중운 매니저를 극도로 싫어했다. 당연한 일이다.

강효준은 재벌이라 그렇지, 본업은 A&R이다. 누구보다 데모 관리에 민감할 직업인데, 유출범을 대하는 마음이 남들보다도 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강효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놈을 어딜 뭘 믿고?"

"능력이요?"

"……."

내 말에 강효준이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스파이의 업적을 생각하면 '능력'이 있다는 걸 부정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형. 제가 스파이 소개해주면요."

"어."

"저랑 VMC 치러 가요."

내 말에 강효준이 과자를 한 주먹 더 집으며 웃었다.

"넌 진짜 겁이 없다."

"없긴요. 세상에 나처럼 겁 많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건 겁이 많아서 그러는 게 아니야."

"뭐가요?"

"과자 못 먹는 거."

강효준이 내 손에 과자를 가리켰다. 나는 과자를 부수고 또 부숴서 가루를 만들고, 휴지로 슬쩍 치우고 있었다. 확실하게 증거를 인멸한 줄 알았는데 실패였다.

아직은 그냥, 음식을 입에 넣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다칠 때 너무 아프긴 했다.

눈앞에서 번개가 친 것처럼 세상에 번쩍 밝아졌다가, 정전된 것처럼 아득해졌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노래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원래도 살려고 먹는 거지, 맛있는 걸 찾아 먹고 그런 타입도 못 된다. 귀찮아서 안 먹어도 죽지 않는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가끔 있다.

그러니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쉽게 생긴 것 같다.

"금방 괜찮아지겠죠, 뭐."

나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바로 박중운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보이드 엔터로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퇴근했다고 바로 온다고 했다. 은근 한가한 사람이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스파이를 기다리고 있는 도중에 강효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춘형 이사로부터 온 전화였다.

VMC 얘기 중이라, 귀가 간질간질했나 보다.

전화를 받기 전에, 강효준이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받아야죠."

강효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녹음을 누르고 스피커폰으로 이춘형 이사의 전화를 받았다.

"왜, 형."

-너 아티스트 관리 좀 잘해라. 애 혀 잘릴 뻔했다며? 가수 생활 못 하게 되면 네가 책임질 거냐?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 웃었고, 웃음소리가 들어갔는지 이춘형 이사가 물었다.

-누구야.

"어, 그 혀 잘릴 뻔한 애. 신경 쓰지 마."

'나를 왜 신경 안 써?'

라고 내가 입 모양과 과장된 동작으로 하니까 강효준이 비키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그 사이 이춘형 이사가 말했다.

-사고 치지 말고, 그냥 무난하게 A&R팀 하면서, 신인들 잘 케어하고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브삼 사장 시켜줄 걸 왜 그렇게 들이박고 다니냐.

"왜 형이 생색을 내? 시켜줘도 외삼촌이 시켜주는 건데."

음,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춘형 이사가 말했다

-어차피 내가 VMC 물려받을 건데, 그게 생색이냐. 현실이지. 근데 네가 엔터 운영을 그렇게 하면 내가 널 어떻게 믿냐고. 넌 내가 보기에 사업이 안 맞아. 보안은 사업의 생명 아니냐? 그걸 못해?

아…….

X나 킹 받는 새끼였네, 이춘형…….

나는 표정이 백 번쯤 바뀌는데, 원래 무던, 덤덤한 강효준은 표정 하나 안 바뀐다.

이춘형 이사는 강효준 대표가 사업이 안 맞는다고 했지만, 저런 성격을 보면 오히려 지나치게 잘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왜 저렇게 계속 들어주고 있나, 싶을 즈음.

그렇게 강효준에게 엔터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돌려 말하는 것도 없이 쏘아대던 이춘형 이사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니까 너 혼자는 안 되고, 형이 다 도와줄게.

"형이 날 도와줘? 뭘 어떻게?"

-일단, 너네 프로듀서.

"해원이."

-어, 걔 '그레이존' 나가라고 해. 그러면 내가 그때부터 너희 회사 진짜 영혼까지 끌어다가 밀어줄게. 보이드 엔터에 대한 여론 지금 안 좋잖아. 그것도 형이 다 좋게 바꿔줄 수 있어.

"……."

'그레이존'.

내가 나가겠다고 말도 못 꺼낼 정도로 멤버들과 회사가 강력히 반대 중인 그 신인 프로듀서 서바이벌이다.

나는 그걸 듣다가 핸드폰에 썼다. 한동안 혀를 다쳤더니 필담에 익숙해졌다.

[저분이 아무래도 저 사랑하나 봐요]

[집착…….]

[하 부담스러]

그렇게 쓰긴 했지만 그래도 뭐,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지금도 저 신인 프로듀서 서바이벌에 내가 참여한다, 안 한다, 로 언플 중인 걸 보면, 내가 화제성에 도움이 되긴 하는 것 같다.

VMC의 주요 글로벌 사업, 매년 VMC 주최로 미국에서 열리는 'V페스티벌' 카드까지 꺼낸 걸 보면 아주 작정하고 큰 판을 벌여 볼 생각인 것 같다.

강효준이 말했다.

"싫어."

-왜, 쫄리냐?

"내가 왜? 정해원 안 나가면 형이 쫄리는 거지."

-…….

강효준의 말에 잠깐 욕을 할듯하던 이춘형 이사가 바로 노선을 바꿨다.

-그래, 그거 맞다. 그러니까 형 한번 시원하게 도와줘라. 걔 '그레이존' 내보내면, 형이 네가 퍼스트라이트 빼돌린 거 용서하고, 바로 4본부 본부장으로 올려줄게.

"싫다고."

[형 더 얻어내요]

[본부장 이상!]

[더더]

내가 그렇게 쓰고 있으니까 강효준이 내 핸드폰을 뺏어갔다. 표정을 보니, 나한테 테러한 사람 들여보낸 회사 서바이벌을 나갈 생각이 드냐는 그런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원래부터 이 페스티벌이 우리 팀의 해외 인지도를 위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참가하고 싶었지만, 우리 팀 멤버들과 보이드 엔터 직원들, 심지어 나조차도 예상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국선아 이후 악편 논란이 끌어올려지며, 조작 논란 이상으로 VMC 이미지에 타격을 준 모양이니까. 다시 한번 서바이벌을 통해, 사실 내가 원래 비호감인 놈이라는 걸 보여주려 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 사생 문제와 VMC의 연관 관계를 찾고, 약점 삼아서, 악편을 방지할 수 있도록 방어망을 마련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춘형 이사가 말을 이었다.

-그 친구 악플 때문에 2년 쉬었다며. 나도 미안한 마음이 있어. 그러니까 이번에 잘해주려고 하는 거지. 솔직히, 정해원이 당분간 무대에 설 수 있겠냐? 팬한테 테러당한 건데 팬들을 믿을 수 있겠냐고. 멘탈 괜찮대? 너 관리도 제대로 안 되면서 그건 파악이 돼?

강효준은 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그리고 내가 조져 놓은 쿠키를 힐끔 봤다.

물론 내가 지금 당장 음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아마 그래서 강효준도 지금 저렇게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인데…….

내 입장은 또 전혀 다르다. 나는 스피커폰으로 된 핸드폰 쪽으로 몸을 숙이고 말했다.

"사생이 왜 팬이에요. 팬 아니에요. 그냥 스토커지. 엔터 업계에서 그건 구분해야죠."

-……뭐야?

"아, 저 혀 잘릴 뻔한 애요."

내 말에 이춘형 이사가 대답이 없어서, 나는 말을 이었다.

"혹시 제가 이번 일로, 우리 팬들을 무서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면 그건 진짜 큰 착각이에요. 전 우리 팬들 안 무서워요. 못 믿다뇨, 그게 제일 어이없고."

-아니 그쪽은 상황이 특수하잖아요.

"뭐가 특수해요?"

강효준은 내가 말하는 걸 막지 않고 놔뒀다. 계속 말해도 되는 모양이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제 저는 제 팬들이 저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다는 확신이 생긴 지 오래예요. 그런 팬을 만들 자신이 없었으면 아이돌 될 생각 안 했죠."

팬들이 왜 날 좋아해 주는지는 모른다. 그냥 신기하고, 고마워는 하지만.

왜 하필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아이돌, 심지어는 재미있는 볼거리, 놀거리들이 있는데도 나를 보러 와주는지. 나는 그런 팬 개인, 개인의 사정도 모르고, 속마음도 모른다.

그래도 그 팬들의 지지가 얼마나 강렬한지는 충분히 안다. 알만큼 사랑받고 있으니까. 그건 무대 위에서 실컷 느낄 수 있고, 그 사실이 나를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게 한다.

나는 여전히,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심호흡이 필요하고, 가끔 약을 먹지 않으면 공황 상태에 빠질 때가 있지만 그건 무대가 두려워서도, 팬들을 의심해서도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 무대가 마지막이 될까 봐. 이 뒤에 무대가 없을까 봐. 자고 일어나면 깨버리는 꿈일까 봐. 그게 무서운 것뿐.

처음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했을 때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뭐, 금방 질릴 사람이라는 두려움은 여전히 있지만 그건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지, 팬들에 대한 생각이 아니다.

지금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팬들의 마음을 부정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미안해할 일이다.

* * *

강효준은 정해원이 이춘형 이사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동안 화가 쌓여 있었으니 화내고 싸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좀 달랐다. 그래도 이야기를 시작한 후부터는 정해원다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효준은 이춘형 이사가 슬슬 욕을 뱉을 타이밍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에 전화를 받아서 말했다.

"끊어. 다시 전화할…… 벌써 끊었네."

그러자 정해원이 핀잔했다.

"형은 너무 덤덤한데, 저분은 또 반대로 너무 다혈질이에요."

"외가가 그래. 우리 어머니도 다혈질이셔."

"아."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박중운 매니저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스파이 왔다."

"……진짜 믿어도 되나."

강효준은 여전히 의심했지만, 정해원은 의심 한 점 없이 스파이를 믿는 표정이라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어쩌느니 저쩌느니 해도, 그 인간 불신 걸릴 상황들을 지나온 사람이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는 건 신기한 일이다. 보이는 것, 주변인이 우려하는 것에 비해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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