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94화
VVV엔터 4본부, 박중운 매니저는 얼마 전 정해원이 사생에게 음식 테러를 당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심각한 사건이었다. 정해원의 인지도가 워낙 높아진 덕에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엔터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마터면 노래를 부르지 못할 뻔했다는 의사 소견이 큰 한 방을 때렸다. 그렇게 아이돌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노래를 못하게 될 뻔했다는게 팬들을 넘어 많은 사람을 충격받게 했다.
[경찰 브리핑 보면 이것도 결국 국선아가 원인임. 국선아 때 안티가 팬(편의로 표기하는 거지, 사생은 팬 아닌 거 앎)이 되면서 지가 아는 '국혐<->잘 나가는 아이돌'이 인지부조화 오니까 생긴 일이란 거]
[↳X발 소름끼쳐ㄷㄷㄷ]
[↳역시 쓰레기는 하나만 하지 않는구나]
[↳저 아이돌 멘탈 어떡하냐ㅠㅠㅠㅠ]
[↳↳나 같으면 아이돌 못함 X나 인간 불신 걸려서]
[↳↳진짜 개불쌍하다…….]
그런 여론이 커지자, 팬들도 같이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해원이 푹 쉬고 오길 바라는 건 맞는데 그래도 돌아는 오겠지……? 나 갑자기 너무 불안해ㅠㅠ]
[↳당연히 돌아올 거야 우리 해원이 말대로 잘 먹고, 일상 생활 잘 하면서 기다리자!]
[↳↳이거 맞다]
[↳↳해원이 무대 좋아하는 애라 안 돌아올 수가 없어ㅋㅋㅋ 진짜 걱정 안 해도 돼]
인터넷을 확인하며 회사 복도를 지나다 보니 카일룸의 멤버 차우석 역시 계속해서 고민하는 게 보였다.
"해원이 형한테 연락해 볼까요……. 아, 눈치 없이 연락했다고 할 것 같은데. 나 눈치 안 없는데 왜 자꾸 해원이 형은 저한테 눈치가 없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눈치가 없으니까 그렇겠지…….
라는 말을 박중운 매니저는 힘겹게 참았다.
박중운 매니저는 슬슬, 매니저보다 스파이 쪽을 본업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일에서 오는 만족감이 차원이 달랐다.
박중운 매니저는 당연히, VMC와 정해원을 테러한 사생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며칠 뒤, 분위기가 가라앉은 VVV엔터와는 VMC 분위기가 묘하게 다른 것을 알았다.
"딱 봐도 다이아몬드 수저가 멋모르고 저지른 거지."
"야이씨, 지 외삼촌이 꽂아준 건데 엔터계에 대해서 뭘 아냐. 무슨 자신감으로 대표를 해서 지네 회사 대표 프로듀서가 테러를 당하게 만들어?"
강효준이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지 아는 VVV엔터 사람들과 달리, VMC에서 강효준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사고친 다이아몬드 수저'가 되어 있었다.
그 상황을 보고 있으니, 이 사생 테러에서 명백히 득을 본 사람이 하나는 있었다.
보이드 엔터의 초기 이미지는 좋았다.
박중운 매니저는 여전히 정해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 꾸준히 퍼스트라이트 팬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는데, TRV에게 워낙 기대치가 낮아지긴 했지만 그런 것치고도 팬들이 새 소속사를 마음에 들어 했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테러 한 방으로 팬들의 호의가 전부 무너지고, 오히려 등을 돌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이 오니, 강효준 4본부 A&R 팀장이 VMC를 배신하고 퍼스트라이트를 본인의 개인 성취를 위해 빼돌렸을 때, 이춘형 이사 라인이 아니라, 강효준 팀장 라인을 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 역시 싹 사라져버렸다.
박중운 매니저는 많은 추리 소설을 봐온 결과, '이득이 있는 곳에 범인이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어부지리일 수도 있지만, 살펴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박중운 매니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당장 보이드 엔터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 * *
잠시 후 박중운 매니저는 보이드 엔터에 도착했다. 퍼스트라이트의 X이앱이나, 자체컨텐츠에서 많이 봐서 처음 왔는데도 이미 좀 익숙했다.
1층에서 강효준을 만나서 얼떨결에 같이 대표실로 올라가 보니 정해원이 있었다.
"어, 형 오랜만."
"몸 괜찮아?"
"응. 완전. 멀쩡해졌어."
……멀쩡?
박중운 매니저가 힐끔 강효준 쪽을 보니 그냥 놔두라는 표정이었다.
멀쩡하다고 말하는 정해원의 얼굴은 누가 봐도 환자였다. 얼굴에 핏기가 싹 빠져 있었고, 아직 발음도 부정확했다.
발음이 부정확한 걸 보니, 음이라고 제대로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박중운 매니저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하지만 본인이 어느 정도 상태인지는 절대음감인 정해원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거기에 대해 말을 얹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근데 왜 이렇게 말랐어? 아직 밥 먹으면 안 돼?"
"차차 먹어야지."
원래도 마른 편인데, 그것보다도 더 말라 있었다. 섭식장애가 생긴 건지,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을 때 정해원이 말했다.
"형 스파이인 거, 효준 형한테 말했어."
"……벌써 그래도 돼?"
"응, 이번에 형이 도와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 얘기를 들으며 박중운 매니저가 힐끔 강효준 쪽을 보았다. 혀를 차는 강효준을 보니 여전히, 자신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해원이 말했다.
"우리가 찾아봤는데 사생이 프레스 초대장을 들고 들어왔어."
"아…… 어디 기자야?"
"응, 뉴스세븐. 아시아경제신문 자회사."
"거기 기자면…… 천준용 기자?"
"응. 그 사람."
박중운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근데 효준이 형이, 아경 신문이 VMC랑 친화적이라고 하더라구."
"아, 거기 사장님이랑 VMC 고문님이 동창이시니까."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아?"
"원래 그런 거에 관심이 많아……."
그렇게 이야기하자 정해원이 약간 어이없어하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혹시 사생한테 초대장이 들어간 거에 VMC가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있는지 알고 싶어. 연관이 되어 있으면, 그걸로 트집 좀 잡아보려고."
"응. 찾아보자. 내가 심심해서, 웬만하면 누가 누구랑 친한지 다 귀 열고 듣고 있거든……."
기운 없는 박중운 매니저의 말에 정해원이 흠칫했다. 왠지 다시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이제 드디어 좀 다시 경계를 푸는 것 같았는데 왜지…… 역시 스파이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인가? 좀 더 스파이로서의 능력치를 선보여야 하는 건가…….
* * *
이제 놀랄 때가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잠시 후 박중운 매니저는 강효준이 가져다 준 종이에 간략하게 관계도를 그려나갔다.
이춘형 이사가 아버지를 위시해 다소 급하게, 이사회를 장악할 준비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스파이가 강효준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대표님이 카일룸 잘 데뷔시키고, 보이드 엔터 만들어서 퍼스트라이트 데뷔시킨 게 눈에 확 보이는 실적이잖아요. 이춘형 이사가 급해진 것 같더라구요."
내내 한 마디도 안 할 것 같던 강효준이 팔짱을 풀고 종이의 이름을 가리켰다.
"근데 이렇게 둘이 친하다고?"
"입사 동기잖아요."
"……X발, 어쩐지."
강효준도 저 정치판에서 보통 피곤했던 게 아닌 것 같다. 뭐, 저 일중독자가 일만 하기도 바쁜데 정치까지 신경 쓰지 못했겠지.
내가 투덜거렸다.
"형이 그렇게 정치를 모르니까 4본부에 새 본부장이 온 거 아니에요."
"너네랑 계약하느라 그런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말이 돼요? 재벌 3세가 쎄빠지게 일하면서 다 만들어 4본부에 낙하산이 본부장으로 꽂히는 게."
강효준이 날 한 번 슥 보더니, 혀를 차고 눈썹 한 번 슥슥 문지르더니 다시 관계도를 봤다. 환자라서 봐주나 보다. 히히. 종종 아파야겠다.
나도 고개를 숙여 관계도를 보았다.
스파이는 정말로, 스파이 그 자체였다. 심심할 때마다 누구랑 누가 친한지, 파악해온 것 같았다.
아시아경제, 그러니까 아경 신문 자회사 뉴스세븐의 대표가 이춘형 이사와 유학시절 같이 찍은 사진을 스파이가 찾아서 보여줬고 강효준는 기가 차 했다.
"이런 사진을 왜 찾아놨어요?"
"아, 해원이가 이춘형 이사 라인 쭉 확인해달라고 해서요……."
그치, 내가 그랬었지.
나는 이미 스파이에게 익숙해져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시 이춘형과 뉴스세븐 대표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아예 이춘형 이사가 지시한 걸 수도 있겠네요. 보이드 엔터 흠집 내라고. 그런 거면 처음부터 사고치라고 사생 들여보낸 게 맞잖아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좀 억울해하자 강효준이 말했다.
"뭔 소리냐. 새우가 아니지."
그리고 박중운 매니저가 말했다.
"반대로 고래 심장인 거지, 네가."
"어, 저게 맞다."
강효준이 동의해서 내가 손으로 둘을 갈라놓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둘이 잘 맞지 말아봐요."
내가 칭찬은 좋아하지만, 너무 띄워주는 건 또 부담스럽다. 그런 내 생각과 상관없이, 강효준이 말했다.
"너한테 문제 생기면, 보이드 엔터에 직격인 건 부정할 수 없지."
"그거야 뭐."
"애초에 네 사생에게 컨택해서 들여보낸 거 보면, 그쪽도 똑같이 생각하는 거지."
나는 복잡한 관계도의 중심에 있는 이춘형 이사의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잊으려 해도 도무지 이름을 잊을 수 없는 국선아 관계자들, 그리고 내 첫 번째 소속사, 퍼펙트 엔터와도 얽혀 있다.
나는 이춘형 이사가 그냥 엔터계에서 손을 떼야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복수심을 완전히 떼놓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나 아니어도 이춘형 이사에게 아이돌은 그냥 딱 돈벌이 수단에서 그쳤다. 아무리 사업하는 사람이라도, 그 아이돌 개인개인이 사람이라는 건 고려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니까, 나를 쥐어 짜서 국선아 시청률을 뽑아내는 것도 당연했던 거겠지.
내가 말했다.
"어쨌든. 확실하게 VMC랑 기자 연계를 찾으려면 저 사생한테 물어보긴 해야겠네요."
내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날 봤다. 그리고 강효준이 물었다.
"직접 물어본단 소린 하지 말고."
"그건 당연히 안 되죠. 회유, 이런 얘기도 아니었어요."
나는 대꾸했고, 강효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법대로 하자. 그리고……."
강효준이 영 못미더운 표정으로 스파이를 돌아봤다. 여전히 찝찝한 모양이라 내가 스파이에게 말했다.
"형도 찾아봐주라. 저 사생한테 누가 컨택했는지."
"응, 대충 짐작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 위주로 찾아볼게."
그 말에 강효준이 되물었다.
"……이미 짐작 가는 사람들이 있어?"
"네……."
강효준이 한숨 쉬더니 날 봤다. 내가 항상 어떻게 알아내는지 '깊이 묻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한 모양이다.
박중운 매니저가 강효준에게 인사하고, 나는 주차장까지 배웅을 나가며 박중운 매니저에게 말했다.
"뭐 하고 싶은 말 있지?"
눈빛을 보고 대충 짐작을 해서 물었더니 박중운 매니저가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 그래서 일단 조수석에 앉았더니 박중운 매니저가 운전석에 앉아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줬다.
"혹시 알고 싶을까 해서. 네 이름 많이 거론됐잖아."
"……와, 형은 진짜. 진짜다."
'그레이존' 서바이벌에 관한 회의 내용들이었다.
제작진, 출연진, 제작비 이런 자료들이 거의 최종 단계까지 적혀 있었다.
모든 게 화려했고, 제작비도 어마어마했다. 예상대로 주요 예상 출연진 목록에 내가 있었다. 아니, 주요 출연진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내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내 쪽에서 좀 더 세게 나가도 될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진들을 넘기다가 박중운 매니저에게 말했다.
"형 있잖아. 만약에 VMC에서 사생을 들여온 게 터지면. 내가 이 서바이벌에 참여하지 않는 게 당연해지잖아."
"그렇지…… 무슨 생각 해?"
박중운 매니저는 물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히히 웃었다. 나는 사진을 저장하고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형 고마워, 사생이랑 컨택한 VMC 직원 찾으면 내가 진짜 크게 살게."
"아냐. 내 취미생활인데 뭐……."
"……."
이 형은 어쩌다 이런 취미가 생겼지…… 내 탓인가. 설마 내 탓이야? 나는 살짝 올라오려는 죄책감을 뿌리치고, 대표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