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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95화 (19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95화

나는 대표실로 가던 도중에, 주차장으로 나오는 강효준과 마주쳤다. 내가 강효준에게 말했다.

"형, 본부장 받고 서바이벌 한다고 해요."

"헛소리할 거면 가서 잠이나 자."

"아뇨, 진짜 서바이벌 나간단 소리가 아니라. 일단 언플 쫙 깔고, 저 포함한 상태로 진행 다 할 때쯤에. VMC랑 사생 연결된 거 터뜨리고 발 빼자구요."

내 말에 강효준이 잠깐 멈춰 섰다.

'VMC 직원이 사생을 출입시켰다.'

이게 확정되면, 방송 직전에 내가 발을 빼도 도의적인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발을 안 빼는 게 이상해 보이겠지.

지금 보이드 엔터에서 내가 그 서바이벌을 안 나가겠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최윤솔과 라이벌 관계를 만들며 언플하는데, 나가겠다고 하면 아예 그걸 전면에 내세워 홍보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나를 빼고는 절대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이 된 후에, 사생 건을 들어 서바이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할 예정이었다.

강효준이 날 힐끔 보았다.

"서바이벌 안 나가도 돼? 너 거기 나가고 싶어서 또 진상 부리는 거였잖아."

"아니, 내가 또 언제 진상을 부렸다고 그래요……. 엎어지면 좋죠. 이춘형이…… 그니까 형네 사촌 형이 엄청 공들이는 거잖아요."

강효준은 날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스파이가 혹시라도, 사생이랑 VMC 직원 연관 짓는 증거 확실하게 가져오면 그렇게 하자. 근데."

"……여기서 왜 '근데'가 나와요?"

"복수고 뭐고, 네 멘탈이 버텨야 되니까. 너 밥부터 먹고 와. 먹을 수 있게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아, 지금 밥 먹기 싫은데…….

나는 생각했지만, 밥을 중요하게 여기는 강효준이니 걱정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실제로도 평생 셰이크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 뭘 먹긴 해야겠다.

* * *

나는 한차례, 감정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어쨌든 내가 환자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걱정부터 끼칠 테니까.

일단은 식사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피자 한 판을 시켰다.

내가 피자를 앞에 두고 비장한 표정으로 보고 있으니까 막내즈가 응원을 왔다. 그러다 한효석이 박선재에게 말했다.

"네가 가서 응원해 드려. 형 최애잖아."

"내가 보기에 네가 해원이 형 운동시킬 때처럼 닦달하는 게 제일 잘 먹힐 것 같아."

두 사람이 대화를 하거나 말거나 민지호가 달려와 옆에 앉으며 말했다.

"형! 내가 옆에서 맛있게 먹으면 형도 먹고 싶어질 거야!"

"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한효석과 박선재가 민지호의 한쪽 팔씩 붙잡으며 말했다.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아주."

"민조, 일어나.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건데 안 데려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지호가 다 뿌리치며 말했다.

"나랑 도윤이랑 엄청 먹잖아? 근데 혼자 먹으면 덜 먹어. 같이 먹어야 많이 먹는다니까?"

우리 팀 멤버들이 이상할 정도로 막내가 많아 동생이 있는 멤버는 남동생과 늦둥이 여동생이 있는 안주원, 그리고 나와 동갑인 누나와 고 2인 남동생이 있는 민지호뿐이었다.

민지호의 부모님이 두 분 다 초등학교 교사이신 것과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민지호네 삼 남매는 다들 뭔가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무지하게 먹는다.

민지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는지 둘이 다 민지호를 놔줬다.

내가 피자를 들고 보고만 있는 사이에 민지호가 한 조각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또 한 조각을 집더니 핸드폰으로 자기 누나인 민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영상통화를 받자마자 민지호가 일렀다.

"누나! 해원이 형이 밥 안 먹어! 욕해줘!"

그러니까 동생 형제는 별로 안 작은데, 혼자 키가 확 작은 민서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 이제 욕 안 해. 어른이 됐어.

그 말에 내가 어이가 없어 웃는 소리가 들렸는지 민서연이 말했다.

-지금 정해원이 비웃었지? 핸드폰 돌려봐.

"미안해, 네가 어른이 됐다니까 어이가 없어 가지고."

-야!

"뭐, 왜에."

-밥투정이나 하는 주제에, 어? 날 비웃어? 네가 애야? 밥 먹어!

"먹을게, 먹을게."

나는 대답했지만 손이 입까지 당겨지질 않았다.

"아, 미치겠네."

내가 중얼거리며 결국 못 먹으니까 민서연이 민지호에게 말했다.

-야, 그거 해줘. 비행기.

"그래야겠다."

"아냐, 하지 마. 진짜 괜찮아."

내가 말했지만 민지호는 이미 피자를 들고 '부웅'하고 비행기 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웃기 시작하고, 민 씨 남매도 낄낄거렸다.

아무래도 남이 보고 있으니까 계속 약하게 굴기도 민망해서, 민지호가 가지고 장난치던 피자를 받아서 눈 딱 감고 한입 물었다.

씹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있는데 계속 보던 한효석이 말했다.

"형, 그래도 진짜 한 입 먹은 거 대단한 거예요. 제가 이래서 형을 존경해요. 건강하지 않은 육체에 건강한 정신력이 깃들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자 입에 음식을 넣고 있는 내 대신, 박선재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다.

"그거 칭찬 아니잖아?"

"왜 아니야. 약한 육체를 초월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칭찬이지."

아닌데……? 기분이 안 좋은데……? '약한'을 왜 붙이는데……? 네가 인간 병기인 거지, 내가 약한 거냐, 이놈아?

아무튼 나는 피자를 한참 동안 우물거리다가 삼켰다. 그 사이 박선재가 물었다.

"서여니 누나, 우리 누나 요즘 어때 보여요?"

-잘 있지. 엄청 잘 있어.

박선재의 누나도 음대 유학 중인데,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지며 유학비 때문에 어려운 모양이었다.

박선재는 지금 누나 모르게 학비를 대신 내주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도 엄청 돈을 아끼며 사는 편이었다. 나에게 잔소리도 많이 했다.

나도 우리 누나가 라면 한 개로 하루를 버티면서 괜찮은 척하는 걸 봐왔기 때문에, 비밀로 하고 누나 친구에게 누나의 근황을 듣는 박선재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우리 누나도 내가 학비 대신 내준다고 하면 당장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아무튼 간단하게 근황 이야기를 한 후에 전화를 끊고, 나는 피자를 꽤 먹었다.

막내즈는 먹은 양이 성에 안 차는 것 같았지만 먹었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 * *

피자를 먹고, 증거 사진도 찍어서 걱정하는 햇살이들이 있는 X버스에 올린 후에 보이드 엔터 직원들에게도 보여주니 이제야 내 작업실을 열어줬다.

작업실에 앉아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있는데, 강효준이 들어오더니 핸드폰을 건네줬다.

지금 음식 테러를 한 사생 관련된 건을 처리 중인 고문변호사로부터 온 전화였다.

-어떻게 하실래요, 해원 씨?

요약하자면 나에게 음식 테러를 한 사생이 내가 오면 자기가 보이드 엔터에 유리한 진술을 해주겠다, 는 내용인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되죠."

-대표님도 해원 씨가 그렇게 말할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강효준은 나에게, 그리고 멤버들에게 숨기는 게 없었다. 알려주지 않으면 직진할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람에 빙빙 길이 꼬여도 다 알려줬다.

아마 내가 없는 단톡방 때문에 내가 영국으로 도망쳤던 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나의 약한 멘탈이 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주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 강효준이 작업 중인 화면을 보며 말했다.

"카일룸 다음 앨범은 신경 안 써도 돼. 너 나랑 약속했던 거 이미 다 했어. 좀 쉬어."

"그래도…… 데뷔부터 봤던 애들인데 아예 손 놓기도 그래서요. 한 곡 정도씩은 들려줘도 괜찮죠?"

"너 솔직히, 그냥 널 혹사 시키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지?"

강효준의 덤덤한 말에, 내가 황당해서 표정을 구기고 있으니까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너 계속 이런 식이면 나도 네 편 못 든다. 나는 내가 연예인이 되어 본 적도 없고, 꿈꿔본 적도 없어서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 내 입장에서 보면 대중이 널 잊어버릴까 봐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이네, 이제."

"형이 할 말은 아니죠. 형도 일 좋아하잖아요."

"나는 일을 좋아하는 거지, 너처럼 불길 속에 달려드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야. 욕이든 칭찬이든, 그냥 화제 되는 거에 중독된 거잖아, 넌."

"악플 때문에 2년 쉰 사람한테 할 말이에요, 그게?"

"내가 할 말이지. 악플 때문에 2년 쉰 사람이 VMC에서 하는 서바이벌을 또 나가겠다고 하니까."

"……."

생각이 많아져서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까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안 해도 퍼스트라이트는 계속 올라갈 거야. 무조건 잘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형 말이 맞아요. 우린 무조건 잘될 거예요."

내가 그렇게 확신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스파이로부터 온 문자였다.

VVV엔터 1본부, 매니지먼트팀 조직도의 사진이었다. 두 명 정도가 체크되어 있고, 사생과 그 매니지먼트 직원이 컨택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들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퍼스트라이트 홈마들의 계정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스파이1 : 이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스파이1 : 여기 홈마분들한테 이 날 찍은 사진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 주실 거고]

[스파이1 : 이 안에 사생이랑 매니지먼트 직원이 컨택하는 장면이 찍혀 있을지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어때 보여?]

내가 그 문자를 보여주자, 강효준이 바로 그걸 매니지먼트팀으로 넘긴 후 나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스파이 4본부 소속이잖아. 1본부 매니저들이 어딜 돌아다녔는지 어떻게 아는 거야?"

"모르는 게 약이에요."

나는 그렇게 말했고, 강효준은 황당해하면서도 직원들과 함께 사진을 찾기 위해 이동했다.

* * *

다행히 사생 사진을 찾는다는 말에 모든 홈마가 호의적으로 사진과 영상들을 보내줬다.

[저도 개인적으로 찾아보겠습니다. 꼭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한국 홈마들은 물론, 해외 홈마들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른 날짜도 찾아보겠다며 열정적으로 보이드 엔터에게 손을 보탰다.

일반인들을 블러 처리하지 않은 원본 영상은 워낙 좋은 카메라들로 찍었다 보니, 개개인의 식별이 상당히 수월했다.

다만 너무 많은 자료와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원하는 장면을, 그것도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지않은 증거를 찾는 것이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보이드 엔터 직원들은 소속 아티스트이자, 대표 프로듀서에게 테러한 범인을 철저하게 발본하는 것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직원들 모두 시간이 날 때마다, 홈마들이 촬영한 어마어마한 사진과 영상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다 직원 하나가 말했다.

"어우, X발 소름 끼쳐. 못 들어가게 해도, 안 따라간 데가 없네."

블랙리스트로 출입을 제한했음에도 많은 공간에 정해원 사생, @d00m_fls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어떻게든 범인을 잡겠다고 열정적으로 데이터를 뒤지고 있을 때. 직원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어!"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강효준, 그리고 음식을 본인이 건네줬다는 이유로 유난히 죄책감에 시달리려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증거를 찾던 신지운이 같이 달려왔다.

"있다."

"찾았다고? 실제 상황이야, 이게?"

"와, 이거 뭐야. 미친 새끼, 사생이랑 진짜로 컨택을 했었네?"

쇼케이스 당일, 멤버 퇴근길 사진이었다.

차에 타서도 아쉬움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는 멤버들의 영상 뒤로, 사생과 접촉하는 VMC 직원이 찍혀 있었다.

중요한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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