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97화
스피커폰으로 멤버들이 듣는 곳에서, 사생을 들여보낸 매니저와 윗선의 연결 증거를 찾았음을 알려준 후, 전화를 끊자마자 강효준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 대표 : 도대체 스파이 정체가 뭐야?]
[강 대표 : 회사에 모르는 게 없어 내가 더 오래 다녔는데…….]
[강 대표 : 심지어 인스타 팔로우용으로 광고처럼 보이는 계정도 여러 개 만들어놨더라 이 사람 안전한 거냐]
반면 스파이는 이렇게 연락했다.
[스파이1 : 확실히 강 대표님이랑 일하니까 수월하네. 너무 편했어. 골프장 같이 다녀오면서 많이 친해진 것 같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참 많이 드시더라…… 아무튼 좋은 분이 계시는 회사에 가게 돼서 다행이네]
스파이의 설명을 들어보니, 강효준과 둘이 이춘형 라인에서부터 차근차근 살펴봤다는 모양이다.
스파이는 내가 예전부터, 국선아의 원흉이며 자기 실적을 위해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이춘형 이사의 조사를 부탁해 놔서, 비교적 빨리 1본부 매니저와의 연관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 스파이가 관계도를 그려주며 추측한 건 골프로 인맥을 다졌으리란 거였기 때문에, 강효준과 함께 골프장도 다녀왔다. 그리고 이춘형 이사와 1본부 매니저가 아예 직접적으로 만난 CCTV를 구해왔다.
그건 거의 확실히 불법으로 구해왔을 테니, 쓰진 못할 거라 다른 공개된 자료를 찾았다.
그 1본부 매니저의 결혼식에 이춘형 이사가 보낸 화환 사진이었다. 관계를 확정까진 못해도, 여론에 파장 정도는 일으킬 수 있어 보였다.
* * *
강효준은 보조경기장의 야외무대를 바라보았다.
콘서트 장소 하나 가지고, 멤버들과 직원들은 일주일 정도를 매일 싸웠다.
"매진을 시키자고요!"
"아니, 못 오는 햇살이들 생기면 어떡해요!"
"아오, 나 진짜 미치겠네!"
"나도요!"
7~8천 석을 매진시키자는 직원들과 1만 석을 남기자는 멤버들의 싸움이 일주일간 이어졌다.
심지어 시기상 1만 석은 야외 콘서트를 해야 했는데, 멤버들이 자신 있게 말했다.
"저희가 비 안 오게 할게요."
"오늘부터 매일 기청제 할게요!"
그렇게 우기고 우겨, 결국 야외공연장에 1만 석을 푸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멤버들 말이 맞았다.
해외팬이 대거 유입되며, 양일 1만 석의 좌석이 거의 대부분 나갔다. 현장 판매까지 하면, 정말로 매진시킬지도 모르겠다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콘서트 하루 전, 강효준이 부대표 마진석에게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 봤을 때도, 멤버들 말이 맞았네요."
"뭐 언젠 안 그랬습니까? 우리 애들 말대로, 특히 해원이 말대로 해주면 그냥 이 회사는 탄탄대로예요!"
"……아무리 그래도 검토를 좀 하고."
"아니, 검토는 어리고 체력 좋은 대표님이 하면 되고. 나는 그냥, 무조건! 힘닿는 데까지 우리 애들 밀어줄 겁니다!"
처음에도 강효준이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열혈이라 데려오긴 했는데, 민지호와 손발이 잘 맞는다, 싶더니 부대표는 예전보다도 더 열정적이어지고 있었다.
어쨌든 툭하면 찾아와서 말썽부리는 여덟 살짜리처럼 대표실을 뒤집어 놓던 민지호는 떠맡겼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강효준이 1만 석을 열어 놓은 보조경기장을 보았다.
콘서트가 정확히 24시간이 남은 오후 여섯 시에 시작했던 런스루 리허설이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리허설이라고 해서 즐기며 놀고 있는 멤버들이 아무도 없었다. 일곱 명 모두 핏을 신경 쓴 사복에, 본 무대와 달리 뭐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때 쉬는 시간을 틈타 정해원이 강효준 쪽으로 달려왔다.
"형, 우리 진짜 보조경기장 거의 다 찼어요?"
"내일이면 너희 눈으로 볼 텐데 거짓말이 되겠냐."
"그런가."
정해원이 말하며 흐흐 웃었다. 이번엔 강효준이 물었다.
"너 지금 진짜로, 무대 할 수 있는 상태야?"
정해원은 회복을 위해, 한 달 내내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말을 안 했고,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 전부터 다시 보컬 연습에 들어갔다.
강효준은 정해원이 무대에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정해원이 가진 대부분의 트라우마가 '아이돌'을 꿈꾸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당연하죠."
그렇게 확신에 찬 대답을 하는 정해원의 눈빛이 빛났다. 정말로, 빛난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정해원이 물었다.
"오늘 기사 올라가죠?"
"그래야지……."
콘서트 직후에 '그레이존' 첫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정이 급했다. 이것 역시 직원들과 의견이 갈렸는데.
직원들은 팬들을 위해 콘서트가 끝난 후에 기사를 띄우자고 했고, 멤버들은 팬들이 여운을 즐길 수 있게, 콘서트 전에 올리자고 했다.
민지호가 한마디로 정리했다.
'콘서트 끝나고 올리면 햇살이들 더 걱정해요! 콘서트 전에 올리면, 우리가 잊어버리게 해줄 거예요!'
팬들을 몰입시키겠다는,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결국 직원들은 이번에도, 멤버들에게 설득당했다.
그러니까 그 회의 결과대로라면 바로 오늘, 기사가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마음먹었는데도 평생 몸담아왔고, 앞으로도 담아야 할 대기업에게 한 방을 날리려니 평소 대담하던 강효준마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일로 사촌 형과는 완전히 척지는 일이 될 테니까.
그 생각을 알았는지 정해원이 말했다.
"형, 사생 들여보낸 거. 저 노린 것보다, 형 노린 게 크잖아요."
그 말에 강효준이 정해원 쪽을 보았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물론 저도 악편 물고 늘어져서 짜증이 났겠죠. 근데, 엔터업이랑 잘 맞고, 열심히 하고, 추진력도 있는 경쟁자만큼 이춘형을 짜증 나게 하진 않았을 거라구요."
"……."
"형, 이거 형한테 싸움 거는 거예요. 이럴 때 가만히 있는 사람을 뭐라고 해요?"
"호구?"
"잘 아시면서 그러네."
정해원이 그렇게 말하더니 히히 웃으며 무대로 돌아갔다.
저럴 때마다, 쟤가 진짜 04년생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그렇게 생각할 때, TRV 출신, 보이드 엔터의 A&R팀 팀장 박선혜가 강효준에게 말했다.
"대표님, 진짜로, 진짜로 퍼스트라이트가 1만 석 콘서트까지. 왔어요."
"팀장님은 특히 더 감회가 새로우시겠네요."
"그럼요."
정해원이 처음 가져다준 곡, '불을 켜'를 듣고, 그걸 그대로 발매까지 끌고 갔던 박선혜 팀장이 말을 이었다.
"처음에 해원 씨가 '불을 켜'를 가져왔는데. 솔직히, 서툴긴 했잖아요, 그건."
"네."
"근데. 그런 곡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보통."
"……그렇죠."
"악플에 온 마음을 다쳐 자신의 작은 공간으로 숨었다가, 겨우 밖으로 나온 스무 살짜리가. 뜨거운 곡을 만들어 왔다는 게. 세상에 대한 분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음악을 만들었다는 게. 무대를 뜨겁게 불태우자는 곡을 써왔다는 게 그때는 그냥 좀 놀라웠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박선혜 팀장은 무대 위로 돌아간 정해원을 보며 울컥해서 말을 이었다.
"저 친구가 목숨을 걸고 무대에 올라가겠다는 출사표를, 인생 첫 번째 곡으로 쓴 거구나. 진짜로, 곧 죽어도 무대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그런 박선혜 팀장의 말을 듣던 강효준이 실소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잠시만요. 이거 적어서 나중에 보도자료로 써도 되죠?"
"어휴, 대표님 진짜 어지간히 일 중독이에요."
"멋진 말은 남겨야죠."
그렇게 말하며 박선혜 팀장이 한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핸드폰 메모로 적은 강효준은 곧 빈 곳을 찾았다.
그리고 기사를 올리기 전에 우선, 강효준은 사촌 형, 이춘형 이사로부터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춘형이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형, VMC 직원이 우리 아티스트 테러한 사생 들여보낸 거, 다 확인했어."
이춘형이 어이없는지 욕을 퍼부은 후 물었다.
-어쩌라고.
"근데 그 매니저 결혼할 때, 형이 화환 보냈더라?"
-……그걸 나랑 엮는다고? 돌았냐?
"어, 그러려고."
-야, 너 이러면 진짜 나랑 끝이다. 나랑 끝나면, VMC랑 끝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이춘형 말대로, 이걸 뿌린 순간 이춘형과는 끝. 진짜로 싸움을 시작하는 일이었다
"알아."
그 대답에 다급해진 이춘형이 달래듯이 말했다.
-효준아, 너네 그 X만 한 엔터로 뭐 어떻게 하려고? VMC랑 척져서 뭐가 될 것 같냐?
"나야 되지. 할아버지가 나 어지간히 이뻐하잖아?"
-장남의 후계자랑 잘 지낼 때 얘기지.
"형이 먼저 우리 회사 아티스트 건드렸잖아."
-뭐 어쩌라고.
"형이 먼저, 나랑 잘 못 지냈잖아. 형이 선빵 때렸다고. 할아버지 선후 관계 잘 따지는 사람이다? 아, 형은 딱히 이뻐하는 손자가 아니라 모르나?"
-야, 이 X발 새끼야!
"차차 보자. VMC 이미지 우습게 만든 친손주랑 자기 사업 키우는 외손주 중에 누구 편을 드실지."
강효준은 그렇게 말하고 대답도 듣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가장 친한 기자에게 연락했다.
"형, 그거 지금 올려도 되겠다."
-진짜? 너 후회 안 해?
"후회야 하겠지."
-그래도 가?
"어. 어쩔 수 없어, 가야 돼."
정해원 말대로였다.
이건 밀려나면 안 되는 싸움이었다.
* * *
콘서트 하루 전.
공연장의 팬들도 일정을 내지 못한 팬들도 콘서트를 기다리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제 스물두 시간밖에 안 남았어 긴장돼서 토할 거 같아 아니 콘서트는 애들이 하는데 내가 왜 난리]
[↳ㅋㅋㅋㅋㅋㅋㅋ]
[↳손 잡아줄게(꼬옥)]
[↳↳고마워 진짜로 긴장이 풀렸어]
[↳↳↳이 햇살이들 왜 이렇게 따수워ㅋㅋㅋㅋㅋㅋ]
[신입햇살이 애들 쌩눈으로 볼 생각하니까 미치겠다]
[↳후기 줘야 돼! 꼭이야!]
[↳↳응 후기 바리바리 싸들고 올게]
[햇살이들 다들 설레는 거 느껴져ㅋㅋㅋㅋ물론 나도 설레…….]
[↳그동안 해원이 걱정 많이 했었는데 오늘 설렘복닥하니까 좋다ㅠㅠ]
[↳↳해원이 오늘 무대하는 거 괜찮을까 무리 아닌가ㅠㅠㅠ]
[보이드에서 사생 관련 잘 처리하고 있겠지?]
[↳원래 송사 이런 거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ㅠㅠ]
[↳TRV에서 이런 일 있었으면 진짜…… 생각만 해도 끔찍함]
[↳↳해원이 케어 전혀 안 해주고 사생질 또 하고 있을듯ㅎㅎ]
[↳↳진짜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내일 세트리스트 어떨 거 같아?]
[↳양일에 멤버들 솔로곡 백퍼 있을 듯]
[↳+지운이 믹스테이프 공개할듯]
[↳↳이거 제발ㅠㅠㅠㅠㅠ]
[퍼라 1만석 양일 거의 다 찼대]
[↳퍼라가ㅋㅋㅋㅋ?]
[↳퍼라 그 급 아님ㅎㅎ 좌석 다 안 풀었을듯 소속사 언플을 믿어?]
[↳좌석 차는 건 무조건 공연장 가서 체감해야 알아]
[↳애초에 퍼라급에서 1만석 양일 시도하는 거 자체가 숙연…….]
[↳초동 70만장으로 1만석 양일을 어떻게 채워ㅋㅋㅋㅋ]
[↳↳아니야 얘네 대중 인기 좋아서 공연장 잘 채워]
[↳↳↳퍼라 팬미팅도 이선좌 파티였음]
[↳↳↳그럴만함 무대 잘하고 재밌어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퍼라는 실물이야ㅎㅎ 살면서 한 번은 봐야 돼]
[↳↳↳↳현장 판매분 있지? 낼 갈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기사가 떴다.
[(단독)보이드 엔터측, 음식 테러 사생, VMC 직원 통해 팬미팅 입장 사실 확인……. 경찰, 사실 확인 중]
[↳?]
[↳어?]
[↳X발 뭔 소리야?]
[↳아니 나 진짜 이해 안 가 이게 무슨 소리야?]
[↳다른 회사 직원이 사생을 일부러 들여 보냈다고……?]
[(단독)보이드 엔터, 아티스트 보호를 위해 VMC 서바이벌 '그레이존' 참가 번복 의사 전해…….]
[(단복)사생 테러 사건에 배후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이중계약 보복?]
[↳기자 단독 X나 신났나 보네]
[↳단복ㅋㅋㅋㅋㅋㅋㅋㅋ]
[(단독)VVV엔터 매니저 단독 소행? 결혼식 화환 보낸 VMC 임원들의, 꼬리 자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