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99화 (19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99화

강효준은 무사히 시작된 무대를 확인하며 안도했다. 강효준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도 콘서트 오프닝이 시작되자마자 박수를 쳤다.

"됐다!"

"오와, X, 긴장해서 손 떨리는 거봐."

무사히 시작할 수 있을까, 다들 무지하게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여전히 신생 회사다 보니, 콘서트 시작하는 것에 모든 게 트러블이고, 모든 게 새로웠다.

오프닝을 끝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스태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로, 강한 압박감을 보이드 엔터의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강효준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해원이 프로듀서로서 지나치게 많은 일을 소화해주지 않았다면, 혼자 엔터 회사를 운영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적당히 운영이야 했겠지만, '잘'은 못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 곡이 끝나면 개인 멘트로 이어지기 때문에, 강효준은 그제야 걱정을 끝내고 아까 부재중 전화를 남긴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할아버지."

-도대체, 춘형이는 요즘 뭘 하고 다니는 거냐?

"……."

그새 외조부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강효준이 말했다.

"저도 몰라요, 왜 저러는지."

-아이고, 골치야……. 그, 저. 효준아.

"네."

빨리 전화를 끊고 싶은데 길어지는 분위기라, 강효준이 흘려들으려고 모니터 쪽을 보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 돌아왔다.

-그 왜,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잖냐.

"……네?"

-그 말이. 그거 맞는데, 근데 손주는 또 좀 다르더라.

"……."

-근데 네가 지금까지 음악 말고는 관심이 없었잖냐. 아, 근데 이놈이 웬일로 정신 차리고 사업 욕심을 다 내. 뭐…… 주변에 누가 좀 부추기냐?

"네, 저희 회사 애가."

-여, 여자분?

"아뇨."

-그래? 실망스럽다……. 난 네가 태어나자마자부터 차암 잘생겼다고 생각했어. 근데 아닌가 봐. 할애비 콩깍진가 봐…….

"자꾸 결혼 잔소리하면 저 진짜 전화 안 해요?"

-그냥, 실망스럽단 거지. 아무튼 춘형이 이놈은 사회면 나오고 잘하는 짓이다. 이 섀끼 이거.

편애하는 손주 소리까지 나오는 거 봐서는, 이춘형에게 어느 정도 제재를 가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화끈한 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또 그놈은 야망이 있지.

"저도 있어요."

-야, 걔건 오래됐고, 네 건 새 거잖아. 구관이 명관이다.

아무리 그래도 외손주보다는 친손주인가.

강효준이 생각하는데 생각하는데,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래도 너 4본부 본부장으로는 바로 올려줄게.

"아, 네. 그리고 할아버지."

-그래.

"제가 수습할게요, 춘형이 형."

강효준은 정해원이 기획한 것을 떠올렸다. 대표실에 찾아온 정해원은 강효준에게 이렇게 설득했다.

'형, 나 그레이존, 그 기획 좋아요.'

'서바이벌은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서바이벌 말고. 그 기획 잘 수정해서, 4본부로 가져와서. 그걸 다큐멘터리로 변경해서 제작했으면 좋겠어요.'

'…….'

'VMC가 가지고 있는 채널들에서는 당연히 안 내줄 테니까, OTT에 빅 블루 정민이 형 통해서 물어봤는데 좋대. 가져만 오래요.'

'너 참 은근히 인맥 좋다.'

'형.'

정해원이 단호하게 밀어붙였다.

'돈 들인 이 기획 뒤집어질 때, 형이 살려보겠다고 나서요. 주워 먹자고요, 우리가. 형, 브엠 만큼은 아니어도 꽤 언론 친화적이잖아요. 한바탕 난리 좀 쳐요. 사촌형이 VMC 말아먹게 생겼다고. 형네 사촌형 사람이 후지잖아요. 젠체만 하고 살면 후진 사람 못 이겨요.'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제가, 잘 해볼게요."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외할아버지가 강효준에게 물었다.

-아, 효준아.

"예."

-그 찌라시 네가 돌렸구나?

팬미팅에 사생을 들여보낸 1본부 매니저의 결혼식 사진이 포함된 찌라시에 대해 외할아버지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사업을 꽁으로 키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효준이 대꾸했다.

"뭘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말에 외할아버지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친손주를 때리는 찌라시가, 다른 손주 손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저렇게 웃는 게 강효준은 황당하게 느껴졌다.

-아이 참내. 대가리가 크긴 큰다, 너도.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어찌 됐든, 외할아버지의 반응을 보니 더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사촌 형을 아는 프레스들을 이용해 좀 더 때려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 *

무대에 오르기 전, 강효준이 외할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소식에 나는 며칠 전, 최정민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어, 해원아.

"정민이 형."

빅 블루의 최정민이 빡빡한 스케줄에 다소 졸음이 쏟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고 하시네. 가져와 보라고.

OTT 플랫폼에서 엄청난 인기의 시즌제 예능, '디데이'를 진행 중인 최정민의 확답에 나는 슬쩍 웃었다.

"감사합니다."

-네가 뭐가 감사해, 인마. 아, 해원아. 이런 거 어때. 케이팝을 이끄는 프로듀서들 이라는 다큐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

"오. 좋아요. 멋있어요."

-그래?

역시, 머리가 참 빨리빨리 돌아가는 사람이다.

최정민은 그렇게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다가, 이어서 또 뭔가 한참 이것저것 온 세상의 근황 토크를 하다가 끊었다.

아무튼 스파이가 여기저기 확인해본 결과, VMC는 그레이존에 많은 돈을 들였고, 많은 공연장을 미리 잡아 놓았다.

이 방송이 취소되는 건 투자금의 문제도 있지만, 신용의 문제도 있었다.

그걸 그대로 내다버리는 건 내 입장에서도 아까웠다. 그리고 그 기획을 강효준이 가져오게 된다면, 어느 정도 VMC에서 자리를 잡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효준의 외할아버지가 왜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계획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콘서트가 시작되고, 첫 번째 곡이 끝나가고 있었다.

팬미팅 이후 처음 무대에 올라온 나는 밝은 얼굴로 팬들을 향해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그러다 근처에 있던 팬들이 울기 시작하자, 정해원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근처에 있던 안주원에게 '또 울렸어…….' 하고 우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첫 곡이 끝나고, 곧바로 세트리스트 두 번째 곡인 '별빛'이 이어졌다.

그리고 인사를 포함한 첫 번째 MC 파트가 지나가고, VCR이 나오는 사이에 우리는 의상을 갈아입었다.

콘서트 VCR은 다음 무대들을 팬들이 예측할 수 있게 만든 영상이었다.

워낙 신경 써서 준비한 VCR이라, 나도 멤버들도 팬들의 반응을 무지하게 궁금해했다. 다행히 스태프들이 팬들의 반응이 좋다고 알려줬다.

내가 옷을 갈아 입고 있을 때,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이 나에게 물었다.

"해원아, 컨디션 괜찮아?"

그러자 다른 멤버들도 궁금했는데 못 물어봤던 건지, 한 마디씩 보탰다.

"형, 끝까지 괜찮겠어? 이제 시작인데?"

"혀 안 아파?"

멤버들이 돌아가며 물어봐서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OK 사인을 했다. 옷만 갈아입기에도 시간이 짧은데, 나 때문에 지체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VCR이 끝나가고 있었다.

민지호는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 역시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하나 같이 무대에 대한 의견도, 욕심도 넘치는 놈들이다 보니, 장치들을 설치하는데 무대가 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야외 공연장을 선택한 건, 우리 모두에게 잘된 일이었다.

몬스터를 부르고 있을 때 하늘은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더없이 맑고 적당히 따듯할 정도로 훈훈한 5월 중순의 봄날씨 속에서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듯한 빛으로 보이고 있었다.

VCR이 끝나갈 때 안주원의 내래이션이 들렸다.

[밤은 계속되고]

[숲속의 괴물들이 나를 발견했다]

[아니면 괴물인 나를 누군가 발견했든지]

그리고 바로 이어서, 우리의 정규 타이틀곡이었던 몬스터가 시작되었다.

[Tell me who's the monster]

[Tell me who's the monster]

[Oh, monster 극야의 축제를 열어]

[It ain't me, 타켓이 된 내 안의 그림자를 뒤집어]

[그 순간부터 밤은 우리의 것]

[상관없지 내가 괴물이라도]

[우리는 이 밤이 끝나도록 살아남아]

[괴물의 밤은 그저 축제가 될 거야]

몬스터가 끝나고, 우리는 전부 메인스테이지로 돌아왔다. 멤버들이 잠깐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무대 위에는 나 혼자 남아 있었다.

무대 위에 설치된 소파 위에 내가 앉은 후, 댄서들이 무대로 올라왔다. 우리 정규 타이틀 몬스터와 연계되어 만든 내 솔로곡, 프루티가 시작되었다.

사실 멤버들은 물론이고, 나조차도 혼자 무대를 하는 것을 무지하게 쫄려 했다.

내가 지금 당장 솔로 무대를 할 수 있을까. 멤버들 없이…….

무대 아래서 했던 그런 걱정은, 무대로 올라가자마자 완전히 사라졌다.

여기에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어떤 강렬한 확신이 나의 나약한 부분들을 뒤엎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를 보아도, 누구와 눈을 마주쳐도 반가워해주는 것이 느껴진다. 정말, 왜 그러게까지 나를 보고 밝게 웃어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뭐가 얼마나 이쁘다고…….

솔로 무대 도중, 메인스테이지에서 달려나가 돌출되어 있는, B스테이지로 달려가는데, 양옆에서 내가 달려가는 길을 따라서 햇살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들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잠깐 스테이지에 멈춰 서고 말았다.

내가 분명히 뭔가, 전생에 잘한 게 있긴 한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태어나서 이런 황홀함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이상했다.

콘서트 전까지만해도 솔직히, 약간은 내 컨디션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꽤 오래 쉬면서 조심하기는 했지만, 대기실에 들어올 때 잠깐잠깐 다친 기억이 떠올라 소름이 확 끼칠 때가 있었고, 노래를 한두 곡만 해도 다쳤던 곳이 욱신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대 위에서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잠깐 무대 위에서만 사용하는 날개 달린 가벼운 몸을 빌린 것처럼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팬들의 목소리와 어두워질수록 밝아지는 응원봉의 불빛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모든 상상이 가능하고, 이루어지는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 * *

최윤솔은 연달아 뜨고 있는 서바이벌 취소 기사에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레이존 불발…… VMC의 대책은?]

[최윤솔 VS 정해원 프로듀서 라이벌 대결 불발…….]

[3세 경영, 이춘형의 헛발질, VMC는 어디로 가는가…….]

부정적인 기사뿐이었다. 그레이존의 취소가 거의 확실시된 상태였다.

최윤솔은 화를 삭이려 애썼으나, 요즘 들어 약의 부작용인지 급격히 욱하고, 우울해질 때가 많았다.

최윤솔은 어떻게든 화를 가라앉혀 보려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답답했다. 뭔가 기분을 환기할 것이 필요했다. 이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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