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01화 (20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01화

그나저나 스파이가 승진을 한다는 건, VMC에서 박중운 매니저의 능력치를 슬슬 알아보고 있다는 뜻일 것 같다. 내 스파이인데, 다른 사람이 능력을 알아보고 스카우트할까 봐 걱정스럽다.

아무튼 나는 스파이가 보내준, 그레이존 기획에 연관된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계속해서 느끼지만, 강효준 대표가 자기 사람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오로지 실무자들밖에 없다.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나보다. 아주 지 같은 사람만…….

원래는 그게 정치적으로 약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명단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레이존 기획에 관련되어 있는 실무자들을 설득하는 일에는 강효준이 유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 *

콘서트 마지막 날.

콘서트 직전, 신지운이 나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햇살이들이 나보고 아기자몽이래."

"……하."

"표정이 왜 그러냐? 형도 말랑버턴데, 어, 내가 아기자몽인게 뭐가 문제야."

"……."

내가 한숨만 쉬고 있으니까 옆에서 황새벽이 말했다.

"햇살이들이 그렇다니까 쟤가 탈룰라 될까봐 뭐 말을 못하잖아."

"알고 그러는 거임."

신지운이 말하고는 나에게 자꾸 댓글을 읽어줬다. 콘서트를 일주일 연달아 해도 이놈보다는 안 피곤하겠다.

신지운은 햇살이들이 귀엽다니까 신났는지 2절에 3절을 했다.

[자몽이♥ : 오늘 또 봐여 내 사랑들♥]

X버스 이름을 자몽이로 바꾸고, 셀카도 올렸다.

말문이 막히게 어이없지만 햇살이들이 진짜로 귀여워하는 게 보여서 뭐라 말을 못하겠다. 옆에서 안주원이 핸드폰을 보다가 나에게도 보여줬다.

아이돌 신지운 팬들과 배우 신지운 팬들의 인식 차이를 요약한 게시글이었다.

[지운이가 아이돌 자아가 많이 강했구나……? 선겸이로만 알아서 몰랐어ㅋㅋㅋㅋㅋㅋ]

[↳대여섯 살만 더 먹으면 까칠한 재벌 남주역 대본 쓸어모을 텐데…….]

[↳느와르도 잘 어울릴 거 같아요]

[↳↳그치만…… 배우 되면 자몽><을 못하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로 배우 인터뷰에서는 나이에 비해서 너무 침착하고 어른스러웠다구요ㅠㅠㅠㅠ]

[↳우리 금쪽이가요……? 어른……?]

[↳하긴 아무래도 신부님을 꿈꾸던 남자니까]

[↳↳ㅋㅋㅋㅋㅋㅋ개웃곀ㅋㅋㅋ]

[↳↳헐 잘 어울려요ㅠㅠㅠ]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돌 신지운 팬이랑 배우 신지운 팬 반응이 너무 다른데욬ㅋㅋㅋㅋㅋㅋ]

[↳↳↳심지어 배우로는 너무 애기여가지고 상애기 취급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쪽 팬들의 인식 차이가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배우 신지운을 탐내는 걸 보니까 약간…… 신경 쓰인다…….

신지운의 아이돌 자아가 점점 더 강해져서 괜찮지만, 나는 드라마계에 혹여라도 신지운을 뺏길까 봐 정말 어쩔 수 없이, 평생 퍼스트라이트를 해달라는 염원을 담아서 X버스에 댓글을 달았다.

[↳해원 : 거대자몽]

그걸 바로 확인한 신지운이 말했다.

"아, 거대 빼줘!"

신지운의 생떼에 민지호가 핀잔했다.

"형 자몽같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자몽 붙여준 것도 고마운 줄 알아."

"뭐래, 햇살이들이 나 자몽이랑 어울린댔어."

"아니. 형은…… 형은 자몽이 아니라…… 아, 왜 과일은 다 귀여운 거야!"

민지호는 신지운에게 다른 과일을 붙여주려고 했던 모양인데, 떠오르는 과일이 다 귀여웠나 보다. 아무튼 저러고 말도 안 되는 걸로 티격태격하다가, 또 금방 낄낄거리며 장난치고 놀다가 다시 무대로 향했다.

첫콘에 풋풋한 설렘이 있는 것처럼, 막콘에는 뭉클한 열정이 있었다. 오늘도 재미있을 것 같다.

* * *

"아, 비 오겠다……."

콘서트 시작 전, 하늘을 올려다보며 몇몇 팬들이 중얼거렸다.

전날의 몽환적이던 노을 대신, 오늘은 흐릿한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다. 비 소식이 미리부터 있었기 때문에, 팬들은 대부분 우비와 우산을 챙겨온 상태였다.

퍼스트라이트 팬이며 이번에 성공적인 티켓팅을 한, 정해원의 영상계를 운영 중인 희은은 친구인 sooo_1818, 수정과 함께 콘서트를 올콘을 뛰고 있었다.

희은이 말했다.

"약간은 비 와도 될 것 같은데. 신나잖아."

"아,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 무슨 비가 오는 게 좋아?"

수정이 절대 안 된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까칠해 보여도, 희은에게는 여전히 입덕을 부정하면서도 정해원의 악플 PDF를 같이 따주고, 올콘을 뛰자는 말에 구시렁구시렁하며 함께해 준 마음 따듯한 친구였다.

수정이 말했다.

"보이드 엔터는 그래도 꽤 악플 잘 잡더라. 벌써 고소도 들어갔어. 옮긴 지 얼마 안 됐는데."

"이게 정상이지……."

"내 말이."

두 사람은 이야기하다가, 도중에 또 신경 쓰여 핸드폰을 확인했다.

VMC에서는 이대로 취소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지만, 대중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VMC에서 사생팬과 접촉해서 프로그램이 취소됐다는데……. 사생팬이 뭐예요?]

[↳연예인들 사생활까지 쫓아다니는 팬이요]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먹을 음식에 칼날을 넣었대요]

[↳↳헐ㄷㄷㄷ무섭네요]

[대기업도 진짜 치사한 듯…….]

그렇게 이야기하던 중 막콘이 시작되었다.

전날과 세트리스트는 약간씩 달랐고,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달랐다. 똑같은 곡도 노을이 근사하게 지고 있을 때 부르는 것과, 어두울 때 부르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멤버들의 MC가 이어지는 중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비 온다."

멤버들이 하늘을 보며 한 마디씩 했다. 황새벽이 박선재에게 말했다.

"아, 우리 막내가 비 오면 햇살이들이랑 나 감기 걸린다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맞아, 형은 연약하니까."

"응, 내가 연약하지……."

팬들이 좋아하는 맏막즈의 대화에 팬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VCR이 이어지는 사이에는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활동곡 몬스터에 팬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비에 젖은 스피커에서 빡센 음악 소리가 심장을 두들겼다. 원래 정해원이 작곡한 곡들은 대형 스피커로 들을 때 더욱 빛났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무대는 마치 우림 같았다. 그 속의 멤버들이 더욱 맹수처럼 느껴졌다.

나름 입덕을 부정하고 있어, 이성적으로 무대를 보기 위해 애쓰는 중인 수정은 자리가 너무 좋은 탓에 바로 코앞에서 보이는 황새벽을 올려다보았다.

'……찢었다.'

희은이 종종 '아기어르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황새벽이었다. 희은의 말만 들을 때는 '언제나 피곤하지만 마음속만은 빛나는 아이돌☆'의 느낌이었는데 무대 위의 황새벽은 섹시한 어른 남자 그 자체였다. 핸드마이크를 든 손에 힘줄과 옆얼굴이 보였다.

피곤해 보이는 인상도, 섹시해 보이는 인상도 약간 끝이 내려간 눈꼬리에서 나오는 듯했다. 학창 시절 그렇게 인기가 많았다더니, 수정도 황새벽과 같은 학교였으면 무조건 황새벽을 첫사랑으로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넋이 나가 있다 보니 몬스터가 끝나고, 옆자리에서 언제나 형을 잘 챙기는 박선재가 와서 황새벽을 수거해 갔다.

황새벽이 민망한지 허허 웃었다. 희은이 항상 '막내><'라고 부르던 박선재도 실제로 보니 감동적인 얼굴이었다.

물방울 같은 눈매에 아직은 이목구비에 말랑말랑한 느낌이 있었지만, 앳된 티를 벗어나면 사람들의 반응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몬스터가 끝난 직후, 희은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 해원이 아직 안 건강한데."

"어?"

수정은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을 안 희은이 흐흐 웃었다.

"아, 너무 입덕하셨어엉. 뼈햇살이다, 뼈햇살이."

"아니, 너무 많이 잘생겼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비가 내리는 무대 위에 놓인 소파에서 정해원의 솔로곡, 프루티가 시작되었다.

몬스터 무대에에서 입고 있던 라이더 재킷을 벗고, 버건디색 셔츠와 까만 머리칼이 비에 젖은 상태로 이어지는 무대를 팬들이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뱀파이어의 먹이를 컨셉으로 한 무대는 비와 탁월하게 어울렸다.

"아니야, 이거 안 돼. 이러면 안 돼……."

희은은 자기도 모르게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걸 봐도 되나, 하는 걱정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빨간 잔을 가져가 나는 희망을 마시고]

[내 추억엔 아픔만 남겨줘 그냥 빨갛게]

[하얀 눈과 검은 밤이 내리는 길]

[그저 너를 기다리게 해]

[black and white or red]

[black and white or red]

[all red all red]

무대와 가까운 다른 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비는 다행히 곧 그쳤고, 중간중간 몇 방울 떠어질 때가 있었지만 오히려 레전드 영상들을 남겼다.

* * *

"햇살이들 또 봐!"

"사랑해요."

"진짜로, 진짜로. 아니, 진짜로!"

평소에는 민지호가 무대에서 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면 다들 놓고 간다고 장난치는 분위기였는데, 오늘은 다들 집에 가야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모든 공연이 재미있지만, 오늘 빗속에서의 막콘은 정말 특별히 가슴 속에 남을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씻고 나니 멤버들 모두 방에 들어가기 싫다고 거실에 모였다. 아무리 비 맞고, 콘서트를 해서 피곤하더라도 콘서트장에서 돌아와서 혼자 방에 들어가면 너무 기분이 이상한 모양이다.

나도 똑같았기 때문에, 멤버들과 함께 거실에 모여서 야식을 먹을 준비를 했다.

민지호가 내 다리를 베고 누워서 말했다.

"맨날 콘서트만 하고 싶다. 그치?"

"응."

그러자 소파에 머리를 박고 골골거리던 황새벽이 중얼거렸다.

"나를……. 두어 달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해……."

"형, 운동해요."

"아니……."

한효석은 매일 거절을 들어서인지 전혀 상처받지 않고 멤버들에게 감기약을 챙겨줬다. 특히 나에게 잔소리했다.

"형은 진짜 꼭 먹어야 돼요. 프루티 할 때 비 많이 왔잖아요."

"알아써. 바로 먹지, 내가."

나는 대답하고 감기약을 먹었다. 05즈는 술을 한 잔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약을 거부했지만 한효석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약을 먹었다.

황새벽을 시작으로 멤버들이 하나씩 거실에 픽픽 쓰러지면, 다른 멤버들이 방까지 질질 끌어다 던져놨다. 나는 잠이 잘 안 와서, 멤버들을 다 방에 던져 놓은 후 마지막으로 내 방에 돌아왔다.

그리고 방에서, 스파이가 보낸, 그레이존의 방송을 위해 예약한 무대들을 하나씩 살폈다.

민지호의 말대로였다. 나도 매일매일, 평생 콘서트만 하고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대 구경만 해도 심장이 뛰어서 잠이 안 왔다.

혼자 방에 있다가 이 벅차오름을 못 참겠어서 슬쩍 나를 받아줄 민지호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대자로 뻗어 자고 있는 민지호를 흔들었다.

"민조야. 이거 봐봐. 여기서 공연하면 재미있겠지?"

"뭔데에……."

민지호가 공연이라는 말에 깨서 반도 못 뜬 눈으로 핸드폰을 봤다. 미국에 있는 홀 사진을 본 민지호가 말했다.

"쪼아……."

"관객 거의 없을 거야."

"쫌만 있어도 돼. 무대에 우리 멤버들 다 있기만 하면……."

민지호의 잠꼬대 같은 말에 나는 히히 웃었다. 역시, 무대에 대해서 제일 공감을 해주는 녀석이다. 민지호가 다시 잠들고 나는 방을 나왔다.

그때 강효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미안. 자고 있었지?

"아뇨, 잠 안 와 가지고 깨있었어요. 형 안 피곤해요? 목소리가 왜 이렇게 쌩쌩해요?"

이 형도 참 체력 좋다. 처음 대표로서 치른 콘서트라, 오로지 무대만 잘하면 되는 우리보다 훨씬 신경쓸게 많고 피곤했을 텐데 또 일이다.

-내가 콘서트를 한 것도 아닌데 뭐가 피곤해. 아무튼 그레이존 기획, 4본부로 가져오는 거. 회의 잡혔다.

"오."

나는 강효준에게 전달을 받고 나서 대답했다.

"형, 저 다큐로 돌리는 거. 나름 기획해 본 거 있는데 보내드릴게요, 기획안."

-너 진짜 안 자냐? 회사에서 수면시간까지 감시해야 돼?

"아, 왜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구박해요."

-이건 너희 부모님도 내 편이실 거다, 인마.

……하긴.

나는 괜히 코를 훌쩍거렸다가 감기 걸린 거 아니냐고 또 한바탕 갈굼을 당하며 노트북을 열어 메일로 기획안을 보냈다. 강효준이 바로 확인하고 말했다.

-……너 '그레이존' 남이 기획한 거 날로 먹고 싶다며. 이게 날로 먹는 거냐?

"아니, 제 작업실에 있으면 이상하게 덜 피곤해요. 한 20% 정도?"

나는 아주 솔직하게 고백했지만 강효준은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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