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04화 (20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04화

나는 멤버들에게 내 곡을 가장 먼저 들려주는 게 좋다. 물론 A&R팀도 강효준도 최대한 솔직하고 정확하게 의견을 말해주기는 한다.

그런데 똑같은 의견이어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말이 더 와닿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나는 신곡을 들려주고 바로 민지호의 표정을 살폈다. 가장 먼저 반응이 오는 게 민지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로 한효석이 먼저 대답했다.

"형."

"어."

"저도 때마침 나쁜 남자가 돼보고 싶었어요."

팬들의 말로는 '난초 같은 선비상'인 한효석이 열정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마음을 안다.

"어, 나도 딱 이번에 효식이가 진짜 막 약간 위험한 남자 같아 보였으면 좋겠어. 얘가 제일 안 그래 보이잖아."

내 말에 안주원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제일 인상 좋다며?"

그러자 박선재가 득달같이 말했다.

"아냐, 내가 드라마에서 보니까 형이 제일 나빠."

"내가?"

"원래 만인한테 다정한 게 제일 나쁜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곡을 한 번 더 듣고 난 민지호가 말했다.

"이거 좋아!"

저게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거 같아도, 진짜 좋지 않으면 '이거 시러!' 이런다. 제일 솔직한 멤버기 때문에, 민지호가 좋다고 해야 나도 진짜로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멤버들에게 미리 들려주고 있을 때, 박선혜 A&R 팀장이 내 연락을 받고 들어왔다.

박선혜 팀장이 음원을 들어보더니 바로 A&R팀으로 가져갔다. 한숨을 푹푹 쉬는 것도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확실히 다들 친한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 이제 리액션만 봐도 좋은지, 안 좋은지를 알겠다.

* * *

박선혜 팀장은 강효준이 도착하자마자 대표실에 찾아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강효준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우리 준비하던 컨셉 엎어야 할 것 같은데요?"

"왜요? 멤버들이 싫대요?"

"아뇨, 해원 씨가 먼저 선수 쳤어요. 곡 가져왔는데, 그냥 미쳤어요."

"어떻게 선수를 쳐요? 걔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일단 가서 한번 들어보세요."

강효준은 바로 일어나 정해원의 작업실로 이동했고, 아직까지 작업실에서 놀다가 막 나가던 빌런즈가 강효준을 돌아봤다.

"형! 이거 해요! 이거! 이거!"

"대표님, 저도 좋습니다."

동갑이지만 성격이 정반대인 민지호와 한효석이 한마디씩 하며 떠났다.

작업실에 들어선 강효준이 정해원의 뒤통수에 민지호가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떼서 건네주며 말했다.

"친구 생겼니, 축하한다."

"어, 이거……. 아니, 지금 사람이 몇 명이 들락거렸는데 아무도 안 알려줘?"

정해원이 투덜거리며 '해원이 형이 친구가 있다니! 기특하다!'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워낙 동생을 예뻐해서인지, 민지호가 장난친 쪽지도 보고 웃은 후에 버리지 않고 서랍에 챙겨 넣었다.

정해원은 바로 음악을 플레이하고 깍지낀 손으로 뒤통수를 받치며 의자 뒤로 기댔다. 강효준이 음악을 듣다가 중간에 멈추고 물었다.

"킬러나 마피아에 대한 노래야?"

"아뇨, 사랑 노래예요."

"너넨 사랑 노래가 뭐, 잘 이뤄진 게 없냐."

"퍼라 컨셉이에요."

"그래도 내가 대표인데 컨셉이 있으면 좀 알려주라."

강효준의 말에 정해원이 웃었다. 강효준이 음악을 다시 플레이한 후, 정해원이 말했다.

"장르는 하드보일드예요."

"하드보일드는 장르가 아니라 스타일이지."

"형, 내 곡은 내가 장르라고 부르는 게 장르예요."

평소 정해원은 잘 웃고 애교가 많았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강효준은 정해원이 이런 곡을 만드는 것도 놀랍지는 않았다. 건조한 스타일, 도덕성을 고려하지 않는 진행. 확실히, 이 곡은 장르가 하드보일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보이드 엔터의 A&R, 비주얼 디렉터가 생각한, 처음으로 금요일 1시 컴백을 노리고 기획 중인 컨셉과는 정반대의 장르였다.

강효준이 말했다.

"하, 회의 무지하게 해야겠다."

"이거 꼭 타이틀 아니어도 돼요. 그냥 앨범에 넣어주기만 하면."

"이걸 넣으면 이걸 타이틀로 해야지. 이걸 넣고 타이틀로 안 가면 회사가 멍청해 보이잖아."

강효준 나름의 칭찬에 정해원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 * *

배우 김문재는 최근 가장 잘나가는 라이징스타 중 하나로, 이번 사극 로맨스의 흥행으로 대본 보는 눈까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김문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확인했다.

[처음 해본 하트들이 많아서 못생겼다ㅠㅠ 역시 아이돌……. 촬영장 놀러와 준 해원이~~ 더운데 힘 많이 됐다구! 고마워 멋진 아이돌 해원이 많이 응원해주세요]

그리고 김문재의 인스타그램에 정해원과 다양한 하트를 만든 사진이 연달아 올라오자 정해원의 팬들은 혼란에 빠졌다.

[네……???]

[세계관 파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애가 왜 저기서 나와……?]

[도대체 접점이 뭔데ㅋㅋㅋㅋㅋ]

[우리 해원이 2년 만에 사회 나왔는데 나보다 친구 더 많네 현타온다]

[↳이건 진짜 팬만 할 수 있는 말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정해원 팬들의 충격은 김문재의 팬들이 받은 충격과 비교하면 그저 소소하게 넘어가는 해프닝 정도에 불가했다.

[세상에 우리 문재가 친구가 있었어ㅠㅠㅠㅠㅠ]

[어떻게 된 거야 김문재 파워내향형 실드를 어떻게 뚫은 거야?]

[울 반에 해원군 팬인 학생한테 물어보니까 파워외향으로 뚫은 것 같대요ㅋㅋㅋ 원래 멤버들이 다 내성적이라 내성적인 사람한테 익숙하다구ㅋㅋㅋㅋㅋㅋ]

[↳이게 되네ㅠㅠㅠㅠ]

[↳해원군 고마워요ㅠㅠㅠㅠㅠ]

[근데 이게 맞아……? 문재가 볼하트를 하고 있는데……?]

[↳내가 죽기 전에 이런 사진을 볼 줄은ㅋㅋㅋㅋㅋㅋㅋ]

[↳해원군 아이돌력 무섭네요]

[아니 문재야 무슨 하트를 그렇게 협박 당해서 찍은 표정으롴ㅋㅋㅋㅋㅋ]

[↳해준 게 어딥니까ㅠㅠㅠㅠㅠ]

[↳둘이 진짜 어떻게 친구야 누나 너무 궁금하다 대화하면 한 글자도 빼놓지 말고 책으로 써줘]

[너무 고마워서 해원군한테 서폿 넣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죠ㅠㅠㅠ]

[↳해원군 소속사가 서포트 안 받는데요ㅠㅠㅠ]

[↳↳그래요? 그럼 우리 문재랑 놀아줘서 고마운 이 마음은 어떻게 하죠…….]

[↳↳↳극성 학부모냐구욬ㅋㅋㅋㅋㅋㅋㅋㅋ]

김문재는 생각 이상으로 기뻐하는 팬 반응에 난처해졌다. 아무래도 진짜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팬들을 속이는 기분이 어쩐지 좋지 않았다.

원래 거짓된 행동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해원과 친해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쁜 사람 괜히 귀찮게 구는 건 아닐까? 이미 친하지도 않은데 친한 척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극민폐였는데 여기서 더?

그렇게 김문재가 갈등하고 있는데 아까 정해원이 교환하자고 한 번호로 문자가 날아왔다.

[퍼스트라이트 정해원님 : 형! 잘 들어가셨어요? 오늘 촬영장 구경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스트라이트 정해원님 : 근데 형 드라마 촬영 너무너무 바쁘시겠지만 혹시 끝나고 나서 저희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해주시면 안 돼요? 저희 피디님도 너무 기대하시더라구여 아무래도 형 목소리가 보물이니깐…….]

[퍼스트라이트 정해원님 : 심심하면 부르시구 밖에서 밥 드시는 거 불편하시면 집에 불러주세요 형네 고양이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요ㅋㅋㅋ콩이랑 송편이ㅋㅋㅋ]

벌써 인스타그램에서 고양이 사진도 본 모양이다. 김문재는 문자만 하고도 기를 쭉 빨린 기분이 되어 콩이와 송편이 사이에 풀썩 드러누웠다.

* * *

[배우 문재 형 : 오늘 감사했습니다]

[배우 문재 형 : 내레이션도 알겠습니다^^]

문자에서도 힘듦이 느껴진다. 어쨌든 놀자고 해도 무지하게 힘들어하면서 거절 못 하고 놀러 나올 것 같은 형이다.

다이렉트로 부탁하면 거절 못 할 것 같아서 문자를 보냈는데, 역시 성공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라이징 스타를 내레이션으로 섭외해왔다고 그레이존의 온 피디가 무지하게 설레했다.

"어떻게 김문재 배우가……. 엄청 낯가린다던데 어떻게 섭외했어요?"

온 피디가 물어서 내가 대꾸했다.

"그냥 해달라니까 바로 콜 하시던데요?"

"햐, 신기하네."

그렇게 신기해하며, 우리는 미팅에 들어갔다.

VMC의 중요한 행사, 글로벌 콘서트인 V페스티벌로 향하는 준비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지만 유명한 공연장을 도는 기획이었다.

이 촬영에 특히 많이 흥분한 사람은 황새벽이었다.

"여기 진짜 가? 우리가? 가?"

알고 보니 그레이존 촬영을 위해 잡아놓은 그 작지만 유명한 공연장이, 락 팬들에게는 꿈의 장소인 모양이었다.

레전드 락밴드들의 시작이었던 곳들. 아마 온 피디가 락덕이라 공연장이 이렇게 잡힌 것 같다.

온 피디와 황새벽은 사전미팅 단계에서부터 이미 영혼의 단짝이었다.

"아, 이게 영혼이 울리는 소리죠."

"하, 내가 불혹에 지음을 만났네."

사전미팅 때부터 저러더니, 본 촬영이 들어갈 때는 진짜로 소울메이트가 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황새벽이 누구와 저렇게 빨리 친해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역시 공감대 형성이라는 게, 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4본부에서 '그레이존'의 기획을 넘겨받은 거기 때문에, 출연자 계약도 그대로 가져갔다. 다만 제목이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라서, 힙합 프로듀서 두 명이 안 하겠다고 했다.

아이돌인 나와 최윤솔, 그리고 VVV 엔터 소속 작곡가 곽신희, 마지막으로 걸그룹 '이브닝'의 프로듀싱 멤버 윤시연만 남았다.

다들 스케줄도 빼놓고, 준비들도 많이 했는데 촬영 직전에 엎어지게 되니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다행히 새로 촬영을 하게 된다고 하니 회사에서나 본인들이나 많이 안심한 것 같았다.

브삼 작곡가 곽신희는 카일룸 프로듀싱 때문에 아는 사이고, 윤시연도 음악방송에서 몇 번 봐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키지는 않지만, 보는 눈이 있으니 최윤솔과도 악수를 했다. 딱히 대화는 하기 싫었는데, 다행히 놈도 말이 없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 * *

[그레이존으로 다큐 만든 거 업로드 언제 돼?]

[↳보통 세 시쯤이면 올라오더라]

[↳재미있을까ㅎ]

[↳일단 올라와봐야 알 듯]

[너무 사건사고가 많았어서 벌써 질려]

[↳그럼 안 보면 돼^^]

사건사고로 엎어졌던 방송이라, 일시적으로는 관심이 올라갔었으나, 서바이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변경되었다는 소식 때문인지 확 관심이 줄어들었다.

그런 사람들의 미적지근한 반응 사이에, 그레이존을 다큐멘터리로 변경한,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 1화가 X플릭스에 업로드되었다.

[케이팝을 만드는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효과음과 함께, 타자로 치는 듯한 효과가 들어간 질문이 여러 가지 언어로 동시에 떴다.

그리고 개인 미팅에서 네 사람의 프로듀서가 대답한 것이 4분할 화면으로 뜨며 목소리가 겹쳐졌다.

'팬이죠.'

동시 대답이 겹쳐지고, 이어서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찬 전 세계의 케이팝 공연장들이 보였다.

[시작부터 냅다 케이팝뽕부터 채우네ㅋㅋㅋㅋㅋㅋ]

[X플에서 제작비 많이 받았나 때깔 오진다ㄷㄷㄷ]

[탈케 했다고 생각했는데 심장이 반응하네……ㅎ]

다양한 이슈로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방송이 업로드된 직후, 실시간으로 뜨거워졌다.

[X나 리얼이네]

[아니 X플 가서 순한맛 된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매웤ㅋㅋㅋㅋㅋㅋㅋㅋ]

[X발 눈물 나ㅠㅠㅠ]

[돌다큐 반응 개좋네 해외 순위 쭉쭉 올라온다]

[브삼이랑 X플 손잡은 거 X나 현명한 듯 그래도 이쪽에는 머리가 있네]

[↳이거 진짜 잘한 선택임 보이드 엔터가 일 잘하네]

[↳이거 아이디어 낸 직원 상줘야돼 X망할 뻔한 걸 살렸네]

[아니 근데 이 좋은 컨텐츠를ㅋㅋㅋㅋㅋㅋㅋ승계 경쟁하다가 놓치냐ㅋㅋㅋㅋㅋ]

[↳이거 루머 아님?]

[↳↳루머 아니야 주식하는 사람들 다 뒤집혔었어]

[↳↳↳X나 멍청한 새끼ㅎㅎ주어없음ㅎㅎ]

[↳↳↳ㅋㅋㅋㅋㅋㅋ견제하려다 똥볼찼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