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05화
[케이팝을 만드는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팬이죠."
그렇게 4분할 화면에서 똑같은 대답을 한 이후, 한 명씩 출연자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VVV 엔터 작곡가 곽신희라고 합니다."
"구웃 이브닝, '이브닝'의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는 윤시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윤솔입니다. 국선아…… 출신입니다. 저를 대표하는 말이 됐네요."
"서드 세컨 퍼스트. 안녕하세요, 퍼스트라이트 정해원입니다."
그 후 케이팝의 성장과 규모에 대한 영상 자료 위로, 배우 김문재의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라디오 방송 같은 분위기의 부스와 톤을 컨셉으로 한 내레이션이었다.
-안녕하세요, 전세계의 케이팝팬 여러분.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해집니다. 무엇이 케이팝을 만들까요? 케이팝의 미래를 이끌어갈 이 네 명의 젋은 프로듀서가 말한 것처럼 팬이 있을 것이고요, 그다음에는, 음…….
[미친 김문재 목소리 개사기네]
[와씨 라인업ㄷㄷㄷ]
[우리 문재 진짜로 해원군이랑 친구였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
[접점이 이거였어ㅠㅠㅠㅠㅠ]
그리고 각 프로듀서들의, 케이팝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 성장 과정 인터뷰가 이어졌다. 정해원의 성장 과정 역시, 본인이 설명하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빅 블루 선배님들의 팬, 스키퍼였구요. 연습생이었고, 서바이벌 방송의 출연자였고, 지금은 퍼스트라이트의 멤버입니다."
[본인을 아티스트(예술가)라고 생각하시나요?]
출연자 공통 질문에 정해원이 대답했다.
"아티스트라는 게, 예술창조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첫 곡을 만들 때부터 예술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무사히, 43분 분량의 1편이 업로드되었다.
신기하게도, 첫 편부터 이거다, 싶을 정도로 전세계 케이팝 팬들에게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온 피디는 정해원이 보내고, 강효준이 수정했다는, 처음 전달된 기획안을 다시 들춰보며 허허 웃었다.
처음 '다큐멘터리'로 변경하겠다는 소식을 받고, 온 피디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다 코멘트를 달 전문가들을 섭외하려 했다.
음악평론가, 기자, 관련 논문을 낸 교수들까지.
하지만 보이드 엔터에서 전달받은 기획안을 보고 그 섭외 계획을 전부 접었다.
이건 케이팝을 분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다. '케이팝이 뭔지를 음악과 무대로 보여주겠다'라는 결의에 대한 기획이었다.
놀라운 것은 참가자인 네 명의 프로듀서가, 이 기획으로 본인들의 실력이 직접 비교가 될 것이 분명한데도, 누구 하나 기획안이 싫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5년 차 걸그룹 이브닝의 멤버, 윤시연은 기획안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이거죠, 케이팝 이야기를 하는데 팬들 의견을 안 넣는 게 말이 돼요? 이거 기획안 아이돌이 썼죠?"
"해원 씨가 썼어요."
"아, 그럼 그렇지."
윤시연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윤시연이 말했다.
"그리고 후반부에 클라루스 송다온 선배님 섭외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아, 그것도 해원 씨가 기획안에 써놨더니 강효준 대표님이……."
"……여기 기획안 중에 해원 후배님이 손 안 댄 게 뭐예요?"
"내가 급여를 반만 받아야 할까 봐요……."
온 피디가 허허 민망해하며 웃었다.
어찌 되었든 아이돌이 만든 이 기획안이, 아이돌의 마음을 저격했는지, 윤시연은 정말로 이 다큐멘터리에 목숨을 걸 듯한 자세로 촬영에 임했다. 그것은 다른 세 출연자도 사실 마찬가지였다.
* * *
퍼스트라이트 황새벽의 일본팬, @04nn0312는 다큐멘터리 2화의 업로드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업로드된 1편의 반응은 화끈했다. 말 그대로 '케이팝뽕을 채우자'는 것을 목표로 만든 다큐였다. 자본과 노동력을 때려 박아 만든 영상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지난주에 업로드된 1편은 프롤로그 형식으로, 4명의 프로듀서의 눈물과 땀, 청춘을 담은 내용이었다.
아이돌 팬들이 어떻게 케이팝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왜 계속 케이팝을 좋아하는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인터뷰와 교차로, 4명의 프로듀서가 일주일 동안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빠르고,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본인이 만든 곡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작업 과정이,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이어졌다.
"청춘이네."
저절로 그런 말이 나왔다. 4명의 프로듀서들이 잠을 줄여가며 무대를 위해 모든 것을 쏟는 모습을 보면 같이 피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큐멘터리의 화제성은, 프로듀서들에 대한 비교로도 이어졌다. 거기까지도 이 다큐멘터리의 화제성을 만들고 있었다.
[참가자 네 명 중에 최윤솔 빼고 일간 1위 다 찍어봤네ㄷㄷㄷ]
[↳근데 밀리언셀러 음판 프로듀싱해본 건 최윤솔밖에 없음]
[브삼 곽신희도 X나 잘생겼다 아이돌인 줄]
[↳신희 형 왜 여기 계세요]
[↳신희니?]
[아이돌 작곡가들 개빡세네 작곡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무대, 촬영 다 하는 거잖아]
[↳아니 근데 곽신희만 봐도 분야가 좀 다르긴 하지 노가다는 전업작곡가들이 다 찍잖아]
[근데 노가다하는 것도 정해원이랑 나머지 둘이 확 다른데ㅎㅎ 올림픽 때 RUSH로 봐서 알긴 했는데 쟨 왜 저 노가다를 다 처하고있냐ㅋㅋㅋㅋ]
[↳지가 하는 게 제일 퀄리티가 잘 나오니까…….]
[↳그나마 양이형이 쏠메라 다행ㅎㅎ]
[↳↳작곡 잘 모르는 햇살인데 다행인 거예요?]
[↳↳↳넵 겁나 다행인 거예요 양이형 없었으면 정해원 그냥 지가 죽는 줄도 모르고 자다가 과로사했을 듯요ㅎㅎ]
[↳↳↳↳ㅠㅠㅠㅠㅠㅠ]
[하 새삼 소중해지는 이형이 형의 존재…….]
[↳이형이 형ㅠㅠㅠㅠㅠ]
[↳맨날 인스타에 해원이가 작업실 감금해서 부려 먹는다는 얘기만 올라오구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
[↳↳음악 노예 형ㅠㅠㅠㅠㅠ]
[↳↳사실 이형이 형도 부려 먹히는 거 좋아해서 올린 건 듯]
[↳↳↳해원아 댓글 달 시간 있으면 밥 먹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새로 업로드된 2편은 본격적으로 VMC의 글로벌 콘서트, V페스티벌을 위한 준비에 관한 내용이었다.
4명의 프로듀서 모두, 새로 곡을 만들어 V페스티벌의 첫 번째 무대에 올리게 될 예정이었다. 일본과 미국에 걸쳐, 총 8회로 이어지는 그 첫 번째 무대가 미국에서 있었다.
출국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작업하다가, 미국행 비행기에 타마자마자 기절하듯이 잠든 프로듀서들의 얼굴이 카메라에 들어왔다.
뒤이어 출연진들이 도착해서도 바로 호텔로 이동해서 작업을 시작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특히 정해원은 거의 눈도 잘 못 뜨는 상태로 캐리어를 후다닥 정리해 놓고, 바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건가요?]
질문에 대한 정해원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저도 어렵게 무대에 섰지만, 팬분들도 어렵게 시간, 돈, 체력, 거기에 사랑을 더해서 무대 앞까지 오셨을 테니까요. 절대로, 절대로 실망할 만한 무대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04nn0312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X위터에 한국어로 글을 올렸다.
[@04nn0312 해원이 때문에 평생 탈케 못하게 생겼다ㅠㅠㅠㅠ]
[↳아니 @04nn0312님 항상 느끼지만 일본햇살이 맞냐구요ㅋㅋㅋㅋㅋㅋ]
[↳↳@04nn0312 일본햇살이 맞아요~]
그리고 이어서 X위터 반응을 찾아보니, 반응이 다 좋았다. 반면에 이상한 쪽으로 화제가 된 부분도 있었다.
[여기 햇살이들 있어? 나 물어볼 거 있는데 해원이 왜 밥을 다 쉐이크 같은 거로 먹어? 비행기에서도 뭐 안 먹던데]
[↳아직 음식 테러 후유증 남아서 외부 음식 먹기 힘든가봐…….]
[↳↳아이구ㅠㅠㅠㅠ]
한국에서는 바로 해명이 되었지만, 그 잠깐의 의혹을 문 해외 케이팝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몇몇 국가의 악성 케이팝 관련 연예 프로그램, 그리고 일본의 프로그램에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지난번에 퍼스트라이트가 출연한 방송에서, 정해원에게 악플에 대한 반응을 직접적으로 물어봐 한바탕 욕을 먹었던 MC, 무로가 다큐멘터리에 대해 말을 꺼낸 것이었다.
-한국 아이돌들이 섭식장애가 있는 건 유명하잖아요? 소속사에서 극심한 다이어트를 조장하는 경우가 정말 많죠. 이게 섭식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고 들었어요.
-섭식장애가 생길 정도로 다이어트를? 너무 무섭네요.
-역시 이런 부분이 아무래도 케이팝의 어두운 면이 아닐까…….
그리고 누가 봐도 정해원을 모자이크 처리한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의 한 장면이 자료로 사용되었다.
예상대로 일본 케이팝 팬들이 시끌시끌했다.
[무로!!!!!!!!!!!!!!]
[왜 또 저래 더위 먹었어?]
[이상한 건 무로인데 부끄러운 건 왜 나야?]
[근데 섭식장애 맞긴 한 거 아냐? 다른 참가자들 밥 먹는 거 계속 나오는데 혼자 한 끼도 안 먹잖아]
[↳심지어 멤버들 먹을 때도 먹는 시늉만 함…….]
[↳↳나 저거 알아 나도 섭식장애 있을 때 음식 못 넘겨서 저렇게 음식 계속 쪼개서 버렸어]
[↳↳↳케이팝에도 어두운 면이 있는 거겠지]
[↳↳↳아무래도 국책 사업이니까 자율도가 떨어지잖아ㅠㅠ]
[↳↳↳↳케이팝 아이돌 불쌍해…….]
@04nn0312는 무로를 옹호하는 세력에 화가 나서 뒤통수를 붙잡았다. 그리고 한국 팬들이 설명해 준 것을 중심으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 * *
2화 이후, 한국어 반응을 보며 흐뭇해하던 안주원은, 일본 반응을 확인하려 번역을 눌렀다가 섭식장애에 관한 댓글들에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시청률 높은 방송에서 '심각한 체중 조절 때문에 생긴 섭식장애'가 분명하다, 라고 떠들고 나니, 반향이 큰 것 같았다.
안주원이 바로 컨텐츠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TRV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대신 연락해 줄 사람이 정해원도 있고, 황새벽도 있으니 안주원이 직접 직원과 연락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보이드 엔터로 온 이후에, 모든 멤버들이 필요할 때마다 직접 직원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찾아갔다.
다행히 이미 컨텐츠팀에서도 대응 방안을 준비 중이었다.
-해원 씨한테 말 좀 잘 해주세요. 덜 걱정하게. 아무래도 멤버분들이 말해줘야 해원 씨가 긍정적으로 듣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안주원이 막 전화를 끊었는데, 양반은 못 되는, 촬영 때문에 해외 일정에서 독방을 받은 정해원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응, 해원아."
-쭈어나아.
말꼬리 늘어나는 걸 보니 백프로 부탁할 게 있는 거였다.
"룸서비스 시켜달라고?"
-야, 내가 너한테, 룸서비스 때문에만 전화하냐? 형 섭섭하다.
"아니냐?"
-아니, 지금은 맞긴 한데…… 그래도 내가 부탁할 때만 전화하는 건 아니잖아.
"절대 아니지."
사실 평소에 멤버들에게 사소한 일로도 가장 전화를 많이 하는 멤버가 정해원이기는 했다. 특히 멤버가 개인 스케줄을 나가 있으면 꼭 한 번씩 전화해서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안주원이 객실을 나서며, 룸메이트인 황새벽에게 물었다.
"룸서비스 시키려고 하는데 너도 갈래?"
"……."
"……."
"……좀 자고 내가 시켜 먹을게."
새부기라는 별명처럼 한참 동안 고민하던 황새벽이 이불속에서 대답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황새벽이 평소에는 외국인한테 절대 말을 걸지 않지만, 룸서비스를 시킬 때만큼은 안주원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깔끔한 영어를 구사했다.
안주원은 황새벽을 두고 정해원이 있는 객실로 향했다. 안주원이 바로 룸서비스를 시킨 후에 말했다.
"올 때 비행기에 최윤솔 있더라."
강효준 대표가 나름 신경써서 최윤솔과 정해원의 동선이 안 겹치게 스케줄을 짜주긴 했는데, 비행기까지 다르게 하지는 못했던 듯했다.
"그래? 자느라 못 봤네."
"아…… 컨텐츠팀 연락받았어?"
"어, 아니, 씨, 그냥 좀 쫄려서 그렇지, 이게 무슨 섭식장애……."
정해원이 투덜거렸다. 아마 그래서 더 룸서비스를 시키자고 한 모양이었다.
안주원이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벌써 온 피디님이랑 효준이 형한테 연락했어. 사생 테러랑 밥 먹을 때 좀 신경 쓰여 하는 부분, 3화에 넣어도 된다고."
"……그래도 되냐?"
"희영이 누나가, 난 불쌍한 게 매력 포인트랬어. 써보려고, 내 매력."
뭐든지 써서, 우리 팀, 끝까지 올라가 보자. 정해원이 힘주어 말했다.
안주원은 정해원의 매력은 '불쌍함'이 아니라, 그래도 열정적일 수 있는 저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