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0화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 5화.
세 명의 출연진들은 모두 작곡에 심취해 있었다.
"케이팝 하면 힙합이지."
이브닝, 윤시연의 말에 VVV엔터 작곡가 곽신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밴드지, 이 사람아."
"나는 클래식."
"아니, 그래도 힙합이죠."
"밴드라니까. 밴드 기반 아니면 케이팝이 안 나오지."
"그래도 힙합이 케이팝 문화의 기반이죠."
"저는 그래도 클래식."
유령이 된 것 같다. 다들 내 말이 안 들리나 보다. 허허.
"난 여기 있는데,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아아. 내 맘 알아줄 사람 하나 없나아."
내가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어도 다들 무시했다. 아니, 클래식이 왜요. 왜 무시하는데.
나는 정말 많은 노력 끝에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관심을 얻은 뒤에 내가 말했다.
"난 클래식."
"어, 아까부터 듣고 있었는데 무시했어."
"나도."
"하, 이 형 누나들이……."
역시 막내의 설움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래도 나는 막내가 잘 맞는다.
다시 태어나면 퍼스트라이트 막내로 태어나고 싶…… 아, 다른 그룹 고를 수 있나? 음, 그래도 뭐…… 퍼스트라이트 막내로 태어나야겠다.
아무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두 사람의 싸움을 뒤로하고 나는 건반을 눌렀다.
음악 소리가 들리자 윤시연과 곽신희가 드디어 관심을 줬다.
곽신희가 말했다.
"샘플링하자고?"
"넵."
그리고 몇 가지 샘플링할 클래식을 찾아봤다. 셋 다 좋아하는 곡은 달랐지만, 결국 대중적으로 샘플링에 쓰는 곡으로 돌아오게 되는 건 별수 없었다.
많이 쓰일 때는 많이 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셋이 모여 있는 게 엄청 재미있었다. 다 자기 장르가 뚜렷하고, 음악에 대해 잘 알고, 고집도 무지하게 강했다.
내가 대충 전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러프하게 건반을 누르고 있으니까 그걸 듣던 곽신희가 물었다.
"우리가 말한 거 다 때려 넣자고?"
그리고 내가 하려던 말을 윤시연이 했다.
"이게 그거네.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에 관한 곡이네."
"그니까여. 제 말이."
작곡가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무지하게 긴 서사시 한번 만들어 보는 거.
곽신희가 마음에 드는 건지, 황당한 건지 박수를 쳤다.
"이야, 클래식 샘플링을 여러 개 쓰는구나."
"해원아, 나 여기 줘, 이 파트."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윤시연이 말을 이었다.
"우리 과하게 가자."
곽신희도 동의했다.
"내 말이 그 말이었어. 클라이언트 없으니까 그냥 막 하자."
나도 그 생각이었다.
방송이 맺어준 인연이지만, 셋이 참 잘 맞았다. 우리는 밤을 새우고 음악을 만들었다.
* * *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 5화.
세 사람의 공동 작업 장면이 등장하고, 곽신희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딱 그 느낌 아시죠, 어릴 때 부모님 몰래 놀고 있는 느낌? 제가 같은 작곡가여도 시연이랑 해원이랑은 다른 게. 그 친구들은 자기 그룹을 위한 노래를 만드는 거잖아요. 어쨌든 팀이어도, 자기를 위한 노래를 만드는 건데. 근데 저는 회사에 소속이 돼서, 그 소속 아티스트의 지향점을 따라가는 작곡을 주로 하게 되거든요. 물론 그게 제 음악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마음대로 놀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셋이서 이렇게 작업하는 게 진짜 자유롭다,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곽신희가 손으로 슥슥 코를 비비고 말을 이었다.
-해원이랑 곡 작업할 때 생각 하는 게, 자율도라는 게. 줘도, 안 놀아본 애들은 어떻게 놀아야 되는지 모르잖아요. 제가 딱 그런 상태였는데, 얘랑 노니까 뭔가. 노는 법을 알려주는 친구랑 노는 느낌? 그런 느낌이었어요. 진짜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윤시연의 인터뷰도 이어졌다.
-재미있더라구요. 이게 말이 돼? 이거 해도 돼? 어, 다 하자. 이러면서 만들었어요. 진짜 놀고 있는 느낌? 막 놀고 있으면 중간에 서로 친구 불러오고 그러잖아요. 이렇게 작업하다가 중간에 다 서로 같이 작곡하는 작가들까지 다 깨워가지고 화상채팅 하면서 일했거든요. 진짜 올해 들어서 제일 많이 웃었어요. 아, 그냥 너무 좋아요. 이거 다큐 계속 찍으면 안 돼요?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던 양이형의 인터뷰도 짧게 들어갔다.
-새벽에…… 3시에 정해원이 전화하더니. 물론 작곡가들 다 야행성이니까 안 자고 있긴 했는데. 갑자기 미팅하자고 그러고, 일 시키더니, 형, 내가 모닝콜 해주니까 좋지? 이러면서 윙크를 하는 거예요. 진짜 죽이고 싶었어요……. 재미있긴 했는데, 정해원은 제가 죽일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이지만 이건 인정이에요 이형이 형…….]
[불쌍한 노예형ㅠㅠㅠㅠㅠㅠㅠ]
[윙크ㅋㅋㅋㅋㅋ정해원 원래 저래??? X나 사납게 생겼는데ㅋㅋㅋㅋㅋㅋ]
[↳원래 저래ㅋㅋㅋㅋㅋㅋㅋ]
[↳이형이 형한테 특히 더 하긴 한데 전반적으로 애교가 많아ㅋㅋㅋㅋㅋㅋ]
양이형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새벽에 합류해 보니까. 신희랑 시연 씨랑 해원이가 벌써 틀을 짜놨더라고요. 원래 이제, 해원이가 약간 강박적으로 정리하는 그 성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긴 곡 송폼을 다 써놨어요. 근데 진짜 그 송폼 보는데 딱 이게 정해원 그 자체인 거예요. 걔가 진짜 피곤한 게, 완벽주의자인데, 귀가 얇은 완벽주의자예요. 좋아 보이는 거 다 넣거든요. 이 송폼이 그렇더라구요. 근데 평소에는 그 다 때려 박았다는 사실을 다 숨겨 놓거든요. 저를 미친 듯이 갈궈가면서 샘플링도 티 안 나게 덮고, 메이저랑 마이너 수시로 바꿀 때도 매 순간순간 귀에 안 걸리게 다 감춰놔요. 근데 이건 일부러 연결고리들을 다 드러내 놨더라고요. 클래식 악장 바뀌듯이요. 그러니까 이걸 들으면서, 여러 곡 같은 느낌이 들게 하려는 거죠. 결과적으로 이게 다 케이팝이라는 거죠. 좋아 보이는 부분은 전부 다 수용하면서 발전해온 음악이요. 아, 잘 만들었더라고요.
* * *
약물에 의지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최윤솔은 얼마 못 가 약물 복용을 다시 시작했다. 재판에 영향을 줄 걸 알면서도 그랬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합리화 때문에 오히려 더 약을 끊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약을 먹은 상태로 6화를 틀어보니, 지난주 5화에서 만든 음악이 흘러나왔다.
6분이 넘는 긴 곡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정해원이 쓴 가사로 신지운의 랩 파트가 있었다.
[너무 아무것도 몰라 넌 항상 그랬지]
[난 하고 있어 하고 싶은 거]
[잡는 순간 쥐었지 기회를 타고 올라]
[우리가 기회가 없지 열정이 없냐?]
[난 기회만 주면 담배도 끊어]
[내 마음 같은 연습생이 대체 몇 명이야]
[기회를 날리고 미안한 줄 몰라]
[방금 그건 마지막 찬스였어]
[네가 버린 거]
정해원이 최윤솔을 저격한 가사였다.
맨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들으니 더 빡이 쳤다. 최윤솔이 모니터를 주먹으로 쳐서 깨부쉈다
"X발, 뭐야. TV에 벌레 X나 많네……. 아, 뭐지."
그렇게 헛걸 보고 횡설수설하며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인터넷 반응은 완전히 정해원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X발ㅋㅋㅋㅋㅋㅋㅋㅋ최윤솔 저격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전부터 느꼈지만 정해원도 어지간히 남 눈치 안 본다 X나 눈치 보는데 안 봐]
[↳절대 안 봐 미친놈임ㅋㅋㅋㅋㅋㅋㅋ]
[중간에 영어가사 뭔뜻임?]
[↳우울증 환자의 적]
[↳최윤솔이 우울증 핑계 대면서 처방도 없이 약빤 거 얘기하는 듯]
[↳↳쎄게 저격하네ㄷㄷㄷ]
[↳↳이게 힙합이긴하지ㅋㅋㅋㅋㅋㅋ]
[브엠에서 우울증이니 ADHD니 언플 X나게 때려서 그렇지 의사 처방없이 약빤 거? 그냥 흔하디 흔한 약쟁이 1임]
[↳이게 맞지]
[↳미국에서 많이 먹는 약이라고 해서 약쟁이 아닌 거 아님 그냥 관리 구멍뚫린 거지 원칙적으로는 다 의사랑 대면하고 받아야 되는 약들인데]
[↳↳그런 거야? 진짜 치료 목적인줄…….]
[↳↳↳그니깐ㅋㅋㅋㅋㅋㅋㅋㅋ언플을 하도 해서 나도 이런 줄]
[아니 근데 진짜 음악이 미친 강강강강이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윤시연 랩도 개쎄다ㅋㅋㅋㅋㅋㅋㅋㅋX나 멋있네]
[오히려 최윤솔 빠지니까 더 재미있는데ㅋㅋㅋㅋㅋㅋ]
[↳진짜 찐으로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으쌰으쌰하는 느낌ㅋㅋㅋㅋ]
[↳분위기 X나 좋다ㅋㅋㅋㅋㅋㅋ]
맛이 간 상태에서도 느껴졌다.
뒤로 갈수록 자신에 대한 거론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게. 6화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마치 원래 최윤솔이라는 출연자는 없었던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6화 중반 이후에 시작된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 다큐의 미국 마지막 공연.
V페스티벌의 표를 구하지 못해서 오열하며 돌아가는 팬들의 모습 위로, 배우 김문재의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V페스티벌의 마지막 미국 공연. 현장 판매까지 빠르게 매진이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예상하지 못한 인기로, 마지막 공연에서는 안전이 확보되는 한 최대로 좌석을 늘렸는데도 말이죠.
이른 매진.
출연자 중에 이름값이 높은 팀이 없어, 초기에는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이던 것이 이제는 전부 다 채워지고도 자리가 부족했다.
중간에 일어난 출연진 논란에도 다큐멘터리의 인기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었다.
[클라루스 잠깐 출연한다고 하지 않았나ㄷㄷㄷ아직 등장도 안했는데 매진ㄷㄷㄷ]
[다른 나라에서도 X플릭스에서 순위 높은데 미국이 진짜 미침]
[↳자기 나라에서 찍는 거라 관심도가 X나 높더라]
[↳그레이존 그대로 밀고 나갔어도 이렇게 안 됐을 듯ㅋㅋㅋㅋㅋㅋㅋ]
[↳4본부랑 보이드 엔터 대표가 제일 노났네ㅋㅋㅋㅋ]
* * *
내 생각에도 그렇다. 이 다큐멘터리로 가장 노난 사람.
최대 수혜자는 나, 그다음이 4본부 본부장이며 보이드 엔터 대표 강효준이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공연 당일.
퍼스트라이트 멤버들과 보이드 엔터 직원들은, 공연장 대기실에 모여 앉아 1시에 공개될 뮤직비디오 티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무지하게 긴장한 상태였지만 강효준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대기실 밖으로 나가서, 안으로 못 들어오고 밖에 서 있는 강효준에게 말했다.
"형, 들어와서 같이 기다려요."
"안 돼. 그래도 내가 대푠데. 너무 쫄아 있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
"열심히 준비해 놓고 왜 이렇게 쫄아요."
"네가 이쁘게 숟가락까지 다 얹어 놨는데, 소속사가 그것도 못 받아먹을까 봐 무섭다……."
말은 저렇게 해도, 첫 금요일 컴백 앨범을 위해, 강효준을 포함한 보이드 엔터 직원들도 정말 많은 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다행히 먼저 공개된 컨셉 포토 반응은 무지하게 좋아서, 약간은 안심한 게 저 상태다.
직전에 낸 우리 정규 앨범이 판타지적인 컨셉을 강조했던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최대한 심플하게 찍었다. 도시를 배경으로, 패션에 신경 쓴 사진들이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워낙 팀에 포토제닉한 멤버들이 많다 보니, 이번 컨셉을 우리 팀이 아주 잘 받아먹은 듯하다.
나는 긴장한 강효준의 등을 툭툭 두들겨 주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신지운이 중얼거렸다.
"왜 매번 이렇게 앨범 공개할 때마다 체할 거 같냐. 점점 더하네."
그러자 한효석이 옆에서 진중하게 말했다.
"형. 그러니까 굶었어야죠, 저처럼."
"아, 나한테 말해주고 같이 굶자고."
민지호는 심각하게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고, 박선재는 떨린다고 안주원이랑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야, 빨리 앉아. 30초 남았다."
나는 재빨리 가서 황새벽 옆에 앉았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1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