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2화
V페스티벌 퍼스트라이트 무대 직전, 백스테이지.
한효석은 힐끔 정해원의 상태를 확인했다. 정해원이 응원하러 온 카일룸의 차우석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형, 컨디션 안 좋다면서요? 좋아 보이는데?"
"좋으니까 저리 가."
"아, 왜 저만 보면 가래요!"
"안 반가우니까."
"반갑잖아요."
"왜 내 마음을 네 자의적으로 판단하냐."
그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정해원의 표정만 봐서는 확실히 차우석을 반가워 하고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심지어 민지호까지도 불안한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피하는 성격이 대부분인데 차우석은 그냥 다 내뱉는 성격이었다. 그게 가끔 정해원이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형 근데 아직도 무대 올라가기 전에 막 불안하고 그래요?"
"글쎄."
"형 저랑 대화하기 싫죠?"
"드디어 알았구나!"
"아, 진짜."
말로는 틱틱거리면서 팔짝팔짝 뛰는 차우석을 웃겨 하고, 한편으로 후배로, 본인이 프로듀싱한 팀의 멤버로서 아끼는 게 보였다.
다행히 그렇게 차우석이 미치고 팔짝 뛰며 정해원의 불안감을 중화한 듯했다.
잠시 후 퍼스트라이트의 V페스티벌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
한효석은 이번 앨범에서 자신의 책임을 막중히 느끼고 있었다.
정해원이 꾸준히 '이번 앨범은 너야'하고 부담을 줬기 때문이다. 정해원은 가족 같은 멤버인 동시에,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엄연히 퍼스트라이트 메인 프로듀서였다.
기본적으로 선을 잘 긋고, 깍듯한 한효석에게 그 구분은 더더욱 명확했다.
그래서 부담이 컸다.
일단 열심히는 했다. 발레 전공자 한효석에게 '열심히'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팬들이 좋아해 줄지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동갑인 민지호는 한효석과 완전히 정반대의 타입이었다. 물론 열심히도 하지만, 원래 가지고 있는 끼의 격이 달랐다. 예체능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씩은 재능의 벽을 만났다.
특히 한효석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에게는 그것이 더더욱 큰 벽이었다. 본인도 대단히 엘리트인데, 바로 옆을 영재원에서 추월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민지호가 그랬다.
발레를 할 때도 민지호 같은 벽이 종종 있었다. 사실 처음 캐스팅을 받고, 아이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솔직히. 그 벽을 피해 도망친 것과 다름없었다. 그때까지 한효석의 플레이리스트에는 고전 음악들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몰입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맨 처음에는 솔직히 좀 얕봤던 게 사실이었다.
아마 계속 그런 마음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랬다면 팬들도 그런 마음이라는 걸 알았겠지.
이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이 아는 만큼 멤버들과 팬들도 알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이번에는 민지호 같은 벽을 만나도 돌아서 가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만 들었다.
한효석은 돔에 가득한 환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무대 아래서 불안해하던 정해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대에 집중했다.
정말로 죽어도 팬들과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하고, 무대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효석은 정해원이 '여기가 하이라이트니까 네가 무조건 살려줘야 돼!'라고 계속 부담 주던 파트를 시작했다.
[잘 가 잊어버릴게 여름에 잠깐인 사랑처럼]
[너도 날 잊어버리길 재미없는 영화를 본 것처럼]
'잘 가'라는 첫 가사를 입에서 뗄 때, 이미 느꼈다.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것. 좋아해 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무대가 최고라는 것까지.
* * *
그날 밤. 숙소에 돌아가자마자 신지운이 룸메이트인 민지호에게 말했다.
"너 효식이랑 연습실 갈 거지?"
"응. 아, 효식이 진짜 반응 좋더라, 아까. 깜짝 놀랐어. 안 돼, 무대에선 내가 이길 거야."
"어차피 같이 갈 거잖아."
"고럼. 같이 가면 더 열심히 하게 되자나. 형 X이앱 할 거라구?"
"응. 다큐에 혹시 오늘 해원이 형 힘들어하는 거 들어가면 걱정하잖아."
"마자……. 그럼 X이앱 해. 너무 귀여운 척하지 마."
"귀여운 척이 아니라 귀여운 거라고."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 민지호가 나가고. 신지운은 바로 X이앱을 켰다.
팬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신지운이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햇살이들 안녕. 내가 오늘은 할 말이 있어서 X이앱을 켰어."
신지운이 한숨을 푹 쉬며 심각한 분위기를 잡더니 말을 이었다.
"햇살이들이 자꾸. 나랑 안주원을 자몽즈라고 부르잖아. 근데 그럼 안 돼. 내가 자몽이지, 걔는 피처링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X이앱까지 켤 일이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켜줘서 고마운데 그렇긴 한데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멤버들이 다 약간, 귀여운 상은 아니잖아? 근데 다들 좀 귀여움에 대한 욕심이 있어. 근데 자꾸 햇살이들이 자몽즈라고 부르니까, 안주원도 지가 귀여운 줄 알잖아. 나만 귀여워. 걘 안 귀여워. 지가 막 복숭아상 밀려고 그래. 우리 팀에 복숭아가 어딨어."
[자몽은 있냐]
"자몽은 있냐 누구니. 있다, 여기. 아기자몽."
[미치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백구십의 아기자몽이 있는 퍼라하세요…….]
신지운이 이야기하며 저녁으로 시킨 햄버거를 먹다가, 댓글을 확인하고 말했다.
"퍼스트라이트를 안 했다면 랩퍼 신부 되기 VS 배우 되기? 와."
[ㅋㅋㅋㅋㅋㅋㅋㅋ]
[질문 뭐야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모르겠다. 그냥 퍼스트라이트 하면 안 돼? 배우 좋지. 너무 재미있는데, 촬영을 해보니까 오히려 더 우리 팀이 막 애틋해지는 거야. 배우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나한테 일 순위는 퍼라구나,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들더라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럼 랩퍼 신부?]
[MC 신부]
"아니, 햇살이들. 랩퍼 아니면 신부가 되고 싶은 거라구. 동시에 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하면 디스를 못 해. 다른 신부님들한테 혼나면 어떡해."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신지운이 댓글을 확인하고 말했다.
"아, 자몽에 대한 멤버들 반응 어떠냐고. 해원이 형이 원래 막 별명 붙이잖아. 요즘에 지 필요한 거 있으면 아자몽이라 그래. 아기자몽. 뭐야."
[귀여운데 왜 이렇게 싫어해ㅋㅋㅋㅋㅋ]
[표정 너무 싫어하는데ㅋㅋㅋㅋㅋㅋㅋ]
"왜 싫어하냐면, 봐봐. 저 형은 내가 자몽인 게 귀여워서 아자몽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야. 아자몽이라고 발음하는 지가 귀엽고 싶은 거야. 의도가 불순하잖아."
[왜 이렇게 까다로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어쩌라고ㅋㅋㅋㅋㅋㅋ]
"저 형은 맨날 지는 귀여운 척하면서 나한테 안 귀엽다 그런다니까? 지나, 나나. 지가 귀여운 줄 알아."
[솔직히 해원인 귀엽지…….]
[너네 둘 다 귀여워 싸우지 마]
신지운은 야밤의 X이앱을 통해, 그렇게 내내 귀여움에 대한 토로를 이어갔다.
* * *
박유나의 언니이자 한효석의 팬, 박해린은 주말, 앨범을 구하러 레코드 샵으로 달려갔다.
박해린을 기다리던, 친구가 손을 흔들었다.
"아니, 여기 햇살이들 진짜 많아, 무슨 일이야?"
"오, 진짜네?"
박해린이 친구를 따라 레코드 삽으로 들어가 보니, 친구 말대로 퍼스트라이트의 팬들로 가득했다. 손에 이번 퍼스트라이트 앨범, 나이트폴이 들려 있고, 여기저기서 교환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앨범을 사 들고 나온 박해린이 말했다.
"아, 효석아, 제발, 제발."
"나 지운이 나오면 바로 교환 갈기자."
그렇게 합의하고, 자리에서 앨범을 구매했다.
근처 카페에 가서 앨범을 뜯어보니 멤버들이 골고루 나왔다. 그래도 최애가 나오지 않아 약간 초조해하던 박해린이 마지막 포카를 보고 소리를 지를 뻔한 입을 틀어막았다.
"악! 효식이 뮤비착."
"와, 한효석 끼 부린 거 봐."
"효자다, 효자."
박해린이 감격하며 뮤비착인 어두운 녹색 정장을 입고 찍은 포토카드를 이리저리 확인했다.
정해원은 멤버들을 돌아가면서 주목받게 해주고 싶어 하는 타입이었고, 이번에는 진작부터 제일 안 그럴 것 같은 한효석이 나쁜 남자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했었다.
그래서 한효석이 최애인 박해린은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평소보다도 더 기대감에 불타 있었다. 그리고 발매된 앨범은 바라던 것 이상이었다.
박해린은 국선아 때의 한효석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도 발레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지금이 더 발레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커 보였다.
그래서 X버스에서 어떤 팬이 그 얘기를 하니까 한효석이 답을 달았다.
[효석 : 햇살이 질문에 생각해 봤는데요. 아마 제가 어릴 때보다 좀 더 사랑하는 법을 알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도 발레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더 많이 깊게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아마 햇살이들이 제가 받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 없는 큰 사랑을 줘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줄 수도 있다잖아요? 햇살이들한테 배웠어요.
상상해 본 적 없는 행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햇살이들의 아이돌로 살아갈 수 있는 이번 생이 참 만족스럽고, 감사해요.]
평소 그렇게 말이 많거나, 장문의 글을 쓰는 편이 아니던 한효석의 장문 답변이었다. 발레에 대해, 팬들의 사랑에 대해 고심해서 답을 썼다는 게 느껴졌다.
한효석의 팬들에게는 '한효석'이라는 아이돌을 사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 중의 하나였다.
"아, 평생 햇살이 해야지."
박해린이 혼잣말하다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말했다.
"와, 주말 현장판매분 계속 올라. 초동 80만 장 넘었어."
"미쳤다, 진짜. 이거…… 이러다가 100만 장 되는 거 아니야?"
"……되면 어떡하지?"
"우리 애들이 이제 슈스 되는 거지. 해원이 부자 되고."
"해원이 진짜 부자 됐으면 좋겠다."
"부자 되면 뭐해. 밥도 안 먹고. 일만 하고."
"맞아, 돈 벌어도 라면이나 끓여 먹겠지……."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퍼스트라이트 이야기를 하던 토요일 밤 9시.
다른 테이블에서 퍼스트라이트 앨범을 뜯던 팬이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찬가지로 퍼스트라이트 앨범을 테이블에 놓고 있던 박해린의 테이블로 와서 핸드폰을 보여줬다.
그리고 처음 만난, 두 테이블에 있던 퍼스트라이트 팬 네 명이 서로 손을 부여잡았다.
* * *
토요일 8시 55분, 보이드 엔터테인먼트 사옥.
초동 80만 장 소식이 먼저 전해지며 직원들의 신난 목소리로 사옥이 들썩들썩 했다. 음악방송과 스케줄을 끝내고 온 멤버들도 전부 대회의실에 모여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주말은 평일보다 팬들의 스트리밍으로 순위를 올리는 것이 쉬운 편이었다.
거기다가 이번 타이틀 썸머가 워낙 마냥 틀어놓기 좋은 여름 겨냥 신스팝이다 보니 토요일 탑백 순위가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9시 예측이 1위가 떴을 때. 누가 모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퍼스트라이트와 스케줄을 함께하던 보이드 엔터 사람들이 하나둘 대회의실로 모여든 상태였다.
다들 긴장해서 말이 없었다. 멤버며 직원들이 긴장감에 푹푹 한숨 쉬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리고 정확히 토요일 9시.
탑백 순위가 바뀌자마자 보이드 엔터 부대표가 소리쳤다.
"대애애애박이다! 우리 퍼스트라이트! 최고다! 퍼스트라이트!"
부대표를 시작으로 직원들과 멤버들이 모두 환호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렇게 소란한 상태에서, 정해원이 안도하며 핸드폰으로 성적을 확인했다.
[탑백 1위 퍼스트라이트 SUMMER]
처음으로 확인한 성적은, 탑백 1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