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13화 (21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3화

[탑백 1위 퍼스트라이트 SUMMER]

나는 내 핸드폰에 뜬 순위를 한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순간적으로 주변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이 고요해진 것 같은 기분.

나는 핸드폰을 보다가, 바로 X버스를 켰다.

[해원 : 탑백 1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일 먼저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한테 인사를 하고 나서, 나는 핸드폰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작업실에 들어와서 일단 내 자리에 앉았다.

무슨 기분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데, 너무 좋아서 감당이 안 된다.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보고 있으니까 멤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박선재가 물었다.

"형 무슨 생각해?"

"콘서트 하고 싶어."

누가 물어보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투어 하고 싶다."

무대에 올라가고 싶었다.

"나도!"

그런 마음을 가장 잘 공감해 주는 민지호가 소리쳤다.

"일 년 내내 콘서트 하고, 일 년 내내 햇살이들 보고 싶어! 또 할래! 형, 투어 하려면 어떡해?"

"부대표님한테 건의해 봐."

"그래! 건의할게!"

민지호가 신이 나서 부대표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황새벽이 소파에 누우며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 제일 어려운 일 하는 사람, 내 생각에 부대표님이야."

"육아가 큰일이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여동생이 있는 안주원이 공감했다.

투어 생각에 신이 난 민지호를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진이 빠져서 각자의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8월 말, 깨끗한 밤하늘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넋이 나가 있는데, 곧 민지호가 돌아왔다.

"부대표님한테 말하고 왔어! 이제 자자!"

민지호의 말에 우린 주섬주섬 침낭을 꺼냈다. 바로 사녹 스케줄이 있어서, 곧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작업실에서 잠깐 잠을 자기로 했다.

내 작업실이 크긴 한데, 일곱 명이 다 모여서 자기에는 작았다. 그것도 보통 큰 놈들이 아니다 보니.

그래도 숙소 다녀오기 귀찮다고, 그 큰 숙소 두고 굳이 작업실에 옹기종기 모여 누워 있는 게 나쁘지 않았다.

다들 첫 음원 차트 1위에 잠이 안 오는지, 누구 하나 잠들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이런 날 멤버들과 함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야광별 붙일까."

"나 지금 딱 그 생각했는데."

황새벽의 말에 안주원이 말했다.

"아, 나 야광별 있다. 우리 집 막내가 선물로 줬어."

안주원이 말하더니 내 작업실에 놨던 자기 짐에서 야광별을 꺼냈다.

천장에 붙이는 건 좀 너무 작업실 분위기에 안 맞는다고 한효석이 지적해서, 내 작업실에 걸려 있는. 전체적으로 은하수를 표현한 우리 타이틀 '별빛'의 앨범 커버 포스터에 야광별을 붙였다. 그리고 그 장면을 신지운이 촬영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멤버들이 다 야광별 붙이기에 몰두한 건, 우리 팬송 중 '폴라리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 * *

'퍼스트라이트 첫 탑백 1위 하던 날'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식 채널에 올라왔다.

[나는 네 별이었고, 너는 내 별이 되어]

[영원히]

[영원히!]

[그 어떤 계절에도 서로를 잃지 않고]

[우리는 이곳에 함께 있을 거야]

[하늘의 저 별처럼 널 지켜주겠다고 마음먹었던 날이 어제 같은데]

[언제나 달렸던 건 네가 있어줘서야]

[저 북극성처럼 날 지켜준 건 너였어]

멤버들은 작업실 포스터에 야광별을 붙이며 폴라리스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햇살이들한테 진심이야ㅠㅠㅠㅠ]

[1위 기념으로 팬송 스페셜 영상을 자체 제작했네]

[아니 근데 왜 해원이 작업실에 침낭이 깔려 있어? 저기서 자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진짜 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숙소 놔두고 왜 저기서 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애들 진짜 모여 있는 거 좋아한다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아무리 곡이 좋고 주말이어도 퍼라 탑백 1위 진짜 대단한 거 아니야? 최근에 빅 블루 클라루스 말고 탑백 1위 해본 남돌 있어?]

[↳없지]

[퍼라 진짜 음원 잘 나간다 부러워…….]

[요즘 자컨도 많이 주더라 보이드 일 잘하는듯]

[↳보이드 일 잘해 팬들 대만족]

[↳심지어 직전 소속사가 TRV였는데ㅋㅋㅋㅋㅋ]

[TRV 다시 봐도 대단하지 않냐 저 얼굴에 저 능력치 팀을 망하게 할 뻔했다는 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망하기 전에 해원이 데려온 건 잘했어]

[↳↳이거 하나 잘했다]

[퍼라 나이트폴 빌보드 200 43위 차트인ㄷㄷㄷ]

[↳금 컴백 잘했네]

[↳퍼라 진짜 슈스네]

[썸머 진짜 미친 거 같애 노래가 안 끝나]

[↳한 시간 반복해놔도 안 질림]

[요즘 퍼라 팬들 제일 부럽다 해원이 아팠을 때 빼고 올해 계속 축제 분위기더라]

[↳제일 부러운 거 팬송 많은 거ㅠㅠ]

[↳↳이거 진짜 부러움…….]

[↳나 퍼라 팬도 아닌데 맑은 날, 폴라리스 들으면 벅차 팬송에 서사가 있어ㅠㅠㅠ]

* * *

클라루스 송다온은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의 촬영을 위해 VMC에 도착했다.

오늘 촬영은 다큐멘터리의 총정리이자, 마지막 화에 업로드될 내용이었다.

VVV엔터에 가기 전에, 같은 빌딩의 VMC를 지나가면서 보니 분위기가 확 가라앉아 있었다. 제작하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엎어진 것도 모자라, 그게 4본부 다큐멘터리로 대박을 내고 있으니 당연한 분위기였다.

회사에 온 김에 VMC의 이춘형 이사와 식사를 하기로 해서, 번거로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나왔다. 재계약이 많이 남지 않아 잘해주려고 애쓰는 것 같긴 한데, 미안한 말이지만 영 인간이 호감이 안 가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서 VVV엔터 4본부에 도착한 송다온은 강효준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어이, 본부장."

"어이, 이런 거 하지 마라. 아이돌이."

"나도 이제 좀 있으면 삼십 대 중반 돼."

"무슨 상관이야. 나는 아저씨 돼도 되는데, 넌 안 돼."

강효준이 말하며 서류를 넘겨줬다. 송다온이 자료와 대본을 확인하며 물었다.

"그니까, 난 다큐 보고 그 작곡가 세 명한테 꼰대 짓만 하면 된다고?"

"꼰대 짓이 아니라, 대선배로서 글로벌 마인드를……."

"뭐래."

"미안하다. 대본에 그렇게 쓰여 있어서."

송다온이 확인해 보니 진짜로 글로벌 마인드를 알려주라고 쓰여 있었다.

송다온은 원래 매사에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 황당해하면서도 열심히 대본을 숙지했다. 그리고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스튜디오에서 다큐멘터리를 쭉 보면서, 케이팝에 대한 개인의 자부심, 의견, 방송에 대한 전체적인 코멘트를 하며 성실하게 촬영을 마쳤다.

그렇게 촬영이 끝난 후, 송다온이 강효준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 집에서 준희랑 한잔할 건데, 갈래?"

"나 시간 없어서 진짜로 한 잔밖에 못 해."

"알았어, 한 잔만 해. 넌 진짜 왜 이렇게 바빠? 가끔 보면 이준희보다 더 바빠."

"네가 생각보다 한가한 거야."

"나는 뭐 한가하고 싶어서 이러냐. 연말에 내기로 한 앨범도 내년으로 미뤄지고……. 이게…… 우리가 연차도 있고 보는 눈이 너무 많잖아. 나도 그렇고, 우리 멤버들도 다 이게 무서워. 앨범 내는 게."

"음."

"너도 해원이 멘탈 관리 잘 해줘. 지금은 미친 듯이 올라가는 중이니까, 그냥 재미있지. 힘들고 멘탈 깨져도, 성적 보면 바로, 바로 복구된다고. 근데 그러다가 정체기 오고 뭘 내놔도 '지난 앨범만 못하다'라는 소리 들리기 시작하면, 차라리 안 내고 말지, 싶어진다?"

"……."

"근데 해원이는 또, 안 내고 말지, 이러는 타입도 아니잖아. 그때 되면 그냥 멘탈 깨진 상태로 지난 앨범보다 좋은 거 만들려고 붙잡고 있다가, 뭐가 뭔지 더 모르는 상태로 앨범 내고……."

너무 공백기가 길었던 탓에 송다온은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자신감을 밀어내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강효준은 그런 송다온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이건 음악을 좋아하지 않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민이었다. 돈은 넘치도록 있으니까, 이제 음악은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해 줄 것인지에 대한 문제.

그렇게 이야기하며 송다온은 세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하나씩 다시 들어보았다. 그리고 정해원의 곡, 레인보우를 들으며 감탄했다.

"와, 진짜."

"곡 좋지?"

"응."

송다온이 대꾸하더니 혼잣말했다.

"아, 나 진짜 해원이랑 솔로곡 하나 같이하면 좋겠다."

정해원의 음악은 예전부터 송다온의 취향에 잘 맞았다. 기본적으로 하우스 장르를 좋아하는 것부터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서도, 강효준이 냉큼 알았다고 하지는 않을 거라고 송다온은 생각했다.

세상 작곡가 중에 누가 클라루스와 작업하는 걸 꺼리겠냐마는, 본인이 아이돌인 경우에는 좀 달랐다.

클라루스는 솔로 음원도 잘 뽑으면 빌보드 핫100에 넣을 수 있는 가수였다. 그런데 만약에 정해원과 작업한 솔로 음원이 핫100에 못 들어갈 뿐만 아니라, 성적 자체가 좋지 않다면?

그것도 망하기만 기다리는 지긋지긋한 악플러들이 있는 정해원에게는 그 타격이 클 것이 뻔했다.

이건 기회이기도 하지만, 쓸데없이 욕을 얻어먹을 위험이 큰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해원이 곡을 써서 가져다준다고 해서, 송다온이 알았다고 한 번에 받아들일 가능성도 작았다. 몇 번을 곡을 보내고, 까고, 보내고, 까는 작업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별수 없었다. 자신은 클라루스의 멤버니까.

정해원과 작업해 볼까, 하는 게 혼잣말이긴 했어도, 강효준이 딱히 대답이 없는 것만 봐도, 조심스럽겠구나, 짐작했다.

딱 한 잔만 하기로 하고, 강효준이 본부장실에서 가방 챙기는 걸 기다렸다. 송다온이 본부장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야, 너 여기 안 있지? 완전 브엠에 마음 떴네. 물건이 하나도 없어."

"뜨긴, 언젠가 브엠 내가 먹을 거야."

"어?"

송다온이 황당해하는데도 강효준이 태연히 말했다.

"비밀이야."

"야, 넌……. 쟤 이상해졌어, 안 저랬는데."

송다온은 그렇게 투덜거리다가 강효준의 모니터에 떠 있는 음원 파일을 발견했다.

[여름의 별]

파일 이름을 힐끔 본 송다온이 물었다.

"효준아, 이거 뭐야?"

그러자 강효준이 모니터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어, 그거. 이번 퍼라 앨범 컨셉이 여름이거든. 해원이가 여름 관련된 곡을 여러 개 뽑았는데."

"응. 썸머. 너무 좋잖아, 노래."

"근데 이게 곡은 너무 좋은데. 앨범에 다른 곡들이랑 같이 들으면 너무 튀어. 우리 애들이랑도 잘 안 맞고."

"들어봐도 돼?"

"그래."

강효준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음원을 틀고 헤드셋을 건네주었다.

송다온도 아는 목소리, 헤이의 코러스가 들렸다. 아직 가사가 다 완성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분위기는 알 수 있었다.

송다온이 하 웃었다.

이건 솔로곡이었다. 트로피컬 하우스의, 휴양지의 바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힙한 분위기의 곡. 송다온이 헤드셋을 내리며 말했다.

"너 이거 나 들으라고 가져다 놨지?"

"좋은 게 좋은 거지. 네 스타일이기는 하잖아."

"와, 강효준 사업가 다 됐네."

"이건 A&R 업무야. 난 본업이 A&R이고. 아티스트한테 맞는 곡 매치시켜 줘야지."

강효준의 말에 송다온이 웃었다. 저렇게 잘 둘러대는 걸 보니, 멘트까지도 준비한 모양이다. 송다온이 말했다.

"파일 줘봐."

"너 듣고 있는 사이에 이미 보냈어. 운전 내가 할게, 가면서 들어."

핸드폰을 보니 진짜로 이미 와 있었다. 수작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곡을 들어보니 싫다는 말이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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