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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14화 (21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4화

내가 그 전화를 받은 건 2주 차, 막방을 하루 남겨둔 밤이었다. 일본 직수입이 한국 초동 기간이 끝나고 시작되면서, 우리는 2주 차에 100만 장을 넘겼다.

그리고 동시에, 올해 발매한 정규 앨범도 덩달아 팔리면서, 마찬가지로 100만 장을 넘기게 됐다.

그래서인지, 100만 장 축하한다는 인사를 엄청 많이 받았다.

"해원이 형, 백만 장 축하드려요."

라디오 스케줄을 하러 갔을 때, DJ 자리를 꿰찬 뉴데이즈 강진영이 날 보자마자 말했다.

인사를 들을 때마다 뭔가 괜히 낯간지러워서 흐흐 웃었다. 나는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았는데, 축하받는 기분이 이상했다.

라디오 시작 전에, 강진영이 나에게 말을 이었다.

"아, 진짜 저 형 덕분에 MC도 되고, 라디오 시작하고 다 형 덕분이에요."

"내가 무슨."

"형, 우리 팬들이 뉴데이즈 말고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이 형이에요. 저는 정말로 형만 믿고 따라갈게요."

"어딜 따라와."

"케이팝의 길을요."

가끔 봐도 강진영은 미친놈 같다. 뭔 소리야…….

아무튼 사적으로는 도라이지만, 방송을 시작하면 우리 멤버들과 달리 자연스럽게 말하고, 진행도 깔끔하게 잘했다. 약간 엘리트 느낌이다. 물론 쟤네 팬들은 도라이라고 생각한다.

"아, 이번 곡, 썸머. 진짜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해원이 형이 열심히 만들었어요, 안 자고."

그렇게 곡 소개도 하고, 인사도 하다가 내가 신기하게 강진영을 보고 있으니까 강진영이 말했다.

"계속 청취자 여러분들이 해원이 형이 저를 장성한 자식 보듯이 본다고 하시는데 왜 그러시는 건가요."

"제가 그랬어요?"

"네, 그러셨나 봐요."

멤버들과 작가진이 다들 웃었다. 나는 민망해서 따라 웃고 말했다.

"어른 된 것 같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우리 멤버들은 아직도 앤데, 진영이가…… 강디가 진행하고 있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진짜로 신기했다. 강진영은 워낙 말도 잘하고, 사교성도 좋아서 예능에 부지런히 얼굴을 비추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꾸준히 작곡을 해오던 뉴데이즈의 멤버, 채유호가 작곡한 곡을 처음으로 타이틀에 올렸다.

아직 서툴긴 해도, 뉴데이즈의 색깔이 확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했다.

데뷔가 비슷한 동료 아이돌에게는 왠지 애틋함이 생긴다. 우리 같이 버티고 있다, 이런 동료애가 있다. 뉴데이즈가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던 걸 아니까, 이렇게 차차 자리 잡는 게 대단했다.

내가 애틋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강진영도 마찬가지인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 뭐야. 울어?"

"진형이 형 왜 그…… 아, 우는 척한 거구나."

멤버들이 말하며 넘어갔지만, 강진영은 진짜로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뉴데이즈와 연습생 시절을 같이 보낸 한효석이 말했다.

"진영이 형이랑 연습생같이 했는데, 형 저렇게 울컥하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요. 항상 여유로워 보이는 형이거든요."

강진영이 뉴데이즈의 정체기에, 정말로 고민이 많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아이돌이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인다는 게, 얼마나 치열한 노력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손을 뻗어서 강진영의 팔을 툭툭 쳤다. 강진영이 웃는 건지 울상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 마요. 저 진짜 울어요."

"강디 울면 퓨처스(뉴데이즈 팬클럽) 속상해요."

내가 말하자 강진영이 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보니 작가들이 그냥 확인만 하라고 체크해 준 문자들이 들어왔다. 퓨처스가 보내준 문자들이었다.

[우리 강디가 해원님은 믿음직스러운 나무 같대요]

[햇살이 친구랑 맨날 같이 스트리밍 갈기고 있어요><]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그걸 보고 웃음이 터졌다.

"퓨처스 한 분이 저 적게 일하고 많이 벌라고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그 문장이 내 취향을 저격해서 웃고 있으니까 신지운이 말했다.

"근데 저 형은 많이 일하고, 많이 버는 스타일이에요."

"맞아! 일 좀 고만해!"

옆에서 민지호가 호통쳤다. 어휴, 이제 일도 몰래 하게 생겼다…….

아무튼 계속해서 따듯한 문자를 퓨처스와 햇살이들이 보내줘서 나는 엄청 힐링을 했다.

그렇게 가슴 따듯해진 상태로 바로 숙소도 돌아갔다. 침대에 막 누웠는데 핸드폰 불빛이 반짝거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강효준이었다.

-해원아. 여름의 별.

"아, 그거.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우리 애들이랑은 좀 안 어울려서 편곡을 바꿀까 봐요. 아예 안 쓰긴 아까우니까……."

나는 여름의 별이 마음에 들었다.

그건 내가 갑자기 여행이 가고 싶어졌을 때 쓴 곡이었다. 누나가 우리 조카 에블린 노을 맥긴리의 사진을 보내줄 때마다 당장 영국으로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스케줄이 빡빡하고, 스케줄이 끝나도 영국 갔다 올까, 라고 말만 꺼내도 민지호가 삐져서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내 멘탈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삐져 있다가 한참 뒤에 나한테 문자를 보낸 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민조♥ : 런던 가고 싶으면 가도 되는데 나도 델꾸가]

[민조♥ : 너무 바쁘면 가까운 바다 보러 가쟈♥]

[민조♥ : 내가 많이 놀아줄게!!!!!!!!!!!!!!!!!]

그 문자를 받고 나니까 뭔가 찡했다.

그 찡한 마음과 결국 여름 내내 해외를 돌아다녔지만, 호텔과 공연장만 다녔던 아쉬움으로, 여행지에서의 설렘과 거기서 만난 연인에 대해 쓴 곡이 여름의 별이었다.

그런데 우리 멤버들이 이상하게, 정말 아주 이상하게 행복한 사랑이 좀 안 어울렸다. 여행지에서 만난 연인? 우리 멤버들은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도망치는 애들이다. 절대 어림없지.

아무튼 그러다 보니 가사를 뜯어고치고, 편곡도 다시 해야 우리 멤버들이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곡을 새로 쓰는 게 시간이 덜 걸린다고 양이형이 시간을 어디서 만들어오냐고 쌍욕을 했다.

하여튼 참 사랑을 욕으로 표현하는 형이다. 나 엄청 좋아하면서 괜히 저런다. 흥.

그래서 행복한 연인을 찢어서 굳이 불우한 사랑 이야기로 바꿀 계획도 다 짜놓고, 그럼 저절로 제목도 바뀌겠거니, 생각하던 차였다.

강효준이 말했다.

-다온이가 달래.

"다온이가 누구예요?"

-다온이.

"그니까 다온이가 누구냐구요."

-다온이 중에 제일 유명한 애.

"다, 다온이 형이요?"

나는 무심코 하극상을 벌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클라루스 다온이 형이요?"

-어, 클라루스 송다온.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 트로피칼 하우스의 달달한 사랑 노래, 송다온과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그리고 가사는 연재 형이 영어로 번역해 준다네.

"……클라루스 채연재 형이요?"

-응. 그 형.

뭐지. 꿈인가.

지금 내가 쓴 곡을 우주대스타 클라루스의 송다온이 부를 건데 그걸 클라루스 채연재가 영어 가사를 공동작업 해준다고…….

"와, 클라루스 팬분들이 좋아하시겠네요."

근데 이상하게, 처음 튀어나온 말이 그거였다. 내 말에 강효준도 어이가 없는지 웃었다.

-그야, 그렇지.

올해 초에 클라루스의 막내까지 제대하며 팬들이 앨범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사이 낸 솔로 앨범에, 다른 멤버가 작사가로 참여한다면 당연히, 팬들은 기쁠 거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고, 강효준에게 말했다.

"어떻게 팔았어요?"

-그냥 모니터에 띄워놨어. 딱 송다온 스타일이잖아, 그거.

"와, 형 진짜 A&R이 천직이다."

내 말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효준은 엄청 크게 터져서 웃었다. 별로 웃긴 말도 안 했는데 왜 웃지?

나는 강효준과 좀 더 구체적인 방향을 이야기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자려고 했지만, 당연히 잠이 오지 않았다.

* * *

썸머 2주차 활동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미니팬미팅이 있었다.

나는 어제 충격적인 이야기로 잠을 거의 못 잤지만, 미니팬미팅을 하며 팬들과 만나니까 신이 나서 피로가 싹 사라졌다.

박선재가 우리가 커피차와 함께 선물한 부채를 든 햇살이들에게 말했다.

"부채 귀엽죠? 디자인은 주원이 형이 했어요. 천잰 거 같아요."

나도 안주원이 디자인한 부채를 받았다. 썸머라고 영문으로 쓰고, 주변에 곡 분위기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했는데, 진짜 예뻤다.

그래서 몇 개 더 달라고 해서 부모님도 보내드리고, 영국 햇살이한테도 주려고 챙겨놨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 방송에서 입었던 의상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딱 9월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나름 가을 색깔의 정장이었다.

일곱 명이 다 일상생활에서는 절대 못 입을 것 같은 색으로 제각각인데, 희한하게 다 같이 모아 놓으면 잘 어울렸다. 이런 게 예술성인 것 같다. 나는 미술과는 영 거리가 멀다 보니 이런 게 신기했다.

오늘 활동이 끝나면 우리는 바로 일주일간의 휴가를 받았다. 강효준이 송다온과의 미팅도 그 이후로 잡았으니까, 이번에는 곡 만들어오지 말고 그냥 냅다 쉬라고 했다.

근데 나는 원래 음악이 취미라서, 냅다 쉬다가도 갑자기 뭘 만들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겠지…….

보이드 엔터는 나름으로 휴가를 챙겨주려는 회사지만, 그동안 도무지 쉴 수 없는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게 있었다.

나는 팬들과 미니팬미팅을 하며 아쉬워서 인사를 하고, 또 하고 손을 열심히 흔들며 차로 돌아왔다.

차에 탁 탔는데, 이제 뭐 할까 머릿속이 텅 비었다.

숙소에 오자마자 안주원과 신지운은 캠핑 준비를 했다. 오늘은 민지호도 캠핑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이 일행에 막내답게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하고 있었다.

"해원아, 진짜 안 가?"

안주원이 물어봐서 나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벌레 싫어. 그리고 너희 뭐 인수봉 이딴 데 안 가지? 캠핑 가, 캠핑. 사진 보내."

내 말에 침낭을 꺼내던 신지운이 핀잔했다.

"이딴 데라니, 백만 암벽인한테 사과해."

"죄송한데 니넨 안 된다. 절대. 놀다가 어디 하나 삐끗하기만 해."

"지나 잘하지. 밥이나 제때 먹어. 형은 잔소리할 위치를 잃었어, 지금."

……할 말이 없다.

민지호가 다 챙겨준 형들을 따라가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 올 때 선물 사 올게!"

"캠핑장에 선물 살 곳이 있을까."

"도토리라도 주워올게!"

그 말에 난 웃었는데, 도토리 줍는 어린이를 챙겨서 캠핑을 가게 된 05즈는 한숨을 쉬었다.

한효석은 간만에 같이 발레하던 친구들을 만나러 갔고, 황새벽은 본가에 갔다. 과수원에서 일손 도와드리는 시늉만 하면서 배 터지게 과일을 먹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박선재와 빈 숙소에 남았다.

박선재는 내일 부모님과 유학 중인 누나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우리 효자 막내 부모님의 비행깃값까지 싹 다 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박선재가 물었다.

"형 일주일 동안 뭐 할 거야?"

"일단…… 잘 거야."

"진짜 좋은 생각이다."

박선재가 잘 생각했다고 칭찬까지 해줬다. 이게 칭찬받을 일…… 아무튼.

자야겠다.

머릿속에는 스무 시간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박선재와 먹고 싶은 것들을 왕창 시켰다. 그리고 박선재가 치팅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나름으로 음식을 먹으며 보고 싶어 하던 영화를 봤다.

그리고 박선재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침대에 누워서 바로 잠이 들었다.

알람도 꺼놓고, 진짜로 스무 시간쯤 잘 생각이었다. 간만에 휴일이니까. 근데 아침이 되니까 그냥 눈이 떠졌다.

"……아, 심심해."

빈 숙소…… 하루 만에 외롭다…….

일주일 동안 큰 숙소를 점거하려고 했는데 멤버들이 없으니까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으로 채널만 돌리는데, 황새벽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냉큼 전화를 받았다.

"어잉, 새부기."

-야, 과수원 와라.

"과수원?"

-우리 할머니가 너 밥 잘 못 먹는다는 거 듣고 굉장히 화가 나셨어. 안 오면 찾아가실 것 같은데.

아, 황새벽네 집안 다 많이 먹어서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빈 숙소가 심심했기 때문에, 나는 일단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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