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5화
나는 황새벽의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가서 과수원으로 가기 위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빈손으로 가긴 좀 그러니까 할머니 선물이랑 사촌 조카가 일곱 살 여자애 쌍둥이라고 해서 걔네 줄 거를 샀다.
그리고 남의 집에 갈 때는 과일인데 과수원을 가면서 과일을 살 수는 없으니까 케이크만 몇 개 샀다.
그걸 차에 바리바리 실어서 황새벽의 과수원을 네비로 찍고 근처에 도착했다. 나는 황새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부기, 나 지금 근천데."
-뭐 보여.
"음, 나무."
-좀 자세히 말해봐.
"포도? 오, 포도 같이 생겼어."
-어, 알았다. 나갈게.
그리고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까 황새벽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내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니까 황새벽이 말했다.
"야, 여기 길 운전하기 어려우니까 조심해라. 차도 큰데."
"새벽아, 새벽아. 나 희영 누나 매니저였어. 이 정도 길이면 나한테 포장도로야."
"아, 맞다. 그랬지."
내가 또, 운전은 아주 이골이 나게 했었다. 허허. 그것도 행사장 찾아다니느라 별의별 길로 다 다녀봤기 때문에, 무서울 게 없다.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황새벽이 따라오라고 손짓해서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공터에 차를 대고 집에 도착해보니 비어 있었다.
"어, 다들 어디 가셨어?"
"과수원 가셨지, 일하러."
"지금 수확 철이라 제일 바쁠 때지?"
"야, 3월 되면 3월이라고 바쁘고, 5월이면 5월이라 바빠. 안 바쁜 때가 없어."
"아하."
황새벽이 나한테 말했다.
"일부터 하자."
"어? 밥 준다며."
"일하면 밥이 맛있어."
"뭐야, 노동 사기네."
나는 말했지만 그래도 같이 일하러 가보기로 했다.
황새벽이 나한테 일바지를 줬는데 엄청 편했다. 바로 사진을 수백 장 찍어 남기고 나가보니 과수원이 엄청 컸다. 내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황새벽의 사촌 조카들이 끌고 가서 복숭아나무로 향했다.
조카 둘이 번갈아 가며 나에게 말했다.
"이거 따요!"
"예쁜 걸로 따야 돼요, 알겠지?"
"다 이쁜데."
내가 말하니까 조카 둘이 뭔 소리냐고 성화다. 섬세하게 확인해서 섬세하게 따라고 잔소리를 그렇게 한다.
그래도 잔소리를 하는 만큼 잘해주기도 잘해줬다. 물도 가져다주고, 과수원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도 안아 들어다 보여줬다.
"고양이 이름 여름이에요!"
"아닌데? 세미인데."
"여름이야."
"세미야!"
둘이 고양이 이름을 합의 보지 못해 싸워서 내가 말했다.
"그러면은 딱 반년씩 해. 5월부터 10월까지는 여름이, 11월부터 4월까지는 세미."
다행히 협상에 성공했다. 다음 달까지 이 고양이는 여름이다.
그걸 보더니 이 과수원집 큰딸이면서, 저 꼬마들의 엄마인 황새벽의 사촌 누나가 나에게 말했다.
"와, 해원 씨. 저거 가지고 지금 쟤네 1년 내내 싸우고 있었는데, 드디어 해결을 해줬다. 아우, 살 거 같네."
여름이 겸 세미가 이 과수원의 큰 분란을 일으켰나 보다.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쟤네 원래 말 진짜 안 듣는데, 네 말은 잘 듣는다."
"원래 애들은 자기 부모님 말 제일 안 듣잖아. 남의 말 잘 듣고."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여름이는 꼬리를 바짝 들고 내 다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 환영해 주나 보다. 신난다.
생각보다 복숭아를 따다 보니 일에 집중하게 돼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복숭아를 땄다. 내가 가진 아주 약간의 미미한 강박증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간만에 칭찬을 엄청 받고 다녔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나는 몇 시간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햇살이들 보여주려고 황새벽과 다시 사진을 수백 장 찍고 있으니까, 황새벽의 할머니가 불쑥 나타나셨다.
"집에서 무슨 사진을 그렇게 찍어?"
"할머니이."
콘서트에도 오신 적이 있어서 내가 달려가서 와락 안았더니 할머니가 기겁을 하셨다.
"아니, 이거 몸이 왜 이래?"
"저요?"
내 손목을 주물러 보신 할머니는 거의 뒷목을 잡고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아이고, 가시야, 가시."
"에이, 가시까지는……."
"얼굴 이거 어떡하나. 피골이 상접했네."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충격받은 할머니는 안 그래도 뒤로 넘어가시게 생겼는데, 황새벽이 부추겼다.
"할머니, 얘 하루에 한 끼 먹어. 그것도 요만큼 먹어."
"야, 내가 언제 그만큼 먹었어어."
황새벽이 검지 한 마디 정도 먹는다고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진짜로 할머니가 쓰러지실 뻔했다.
화면으로 봤을 때는 실제보다 좀 더 살이 있어 보이게 나오니까, 어느 정도는 빼는 게 좋을 텐데 요즘에는 보기 안 좋을 정도인 것 같다. 그게 안 그래도 걱정이었기 때문에, 잘 먹자고 생각하고 올 생각이기는 했는데.
나는 앞에 쌓이고 있는 식사에 고개를 들어서 할머니를 봤다가, 밥상을 봤다가, 다시 할머니를 봤다.
"하, 할무니?"
"이그, 먹을 게 하나도 없네."
"먹을 거 백 갠데요? 만 개인데요?"
내 말은 공허한 외침으로 돌아왔고, 황새벽이 할머니를 도와서 밥상에 자리가 없어 그릇과 그릇 위에 쌓다가 목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할머니 게장 없다."
"아, 내 정신 좀 봐."
"야, 여기 있어."
"그건 간장이잖아. 양념도 있어."
나는 이제 할머니가 내주는 음식에 충격받기를 포기했다. 할머니는 내가 너무 말라서 큰일이 났다고 한숨을 푹푹 쉬시더니 먹고 있으라면서 시장에 가셨다.
나는 밥상 사진을 찍고 황새벽에게 말했다.
"이거 어떻게 그냥 먹냐. 용돈이라도 드리고 가야겠다."
"미쳤냐, 네가 왜. 내가 이미 많이 드려."
"그래? 그럼 다행이긴 한데……."
뭐부터 먹어야 될지 모르겠다. 일단 감자를 채를 썰어서 부친 감자전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이미 맛있었다.
"와."
"게장을 먹어. 할머니 게장이 진짜야."
먹기 시작하니까 입에 침이 저절로 고인다. 확실히 노동을 했더니, 운동했을 때랑은 다른 느낌으로 입맛이 돌았다.
"미쳤다."
나는 게장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했고, 바로 한 공기를 더 가져다 먹었다. 물론 그사이에 황새벽은 이미 네 공기째 먹고 있었다.
맛있는 게 너무 많았다. 나물도 다 맛있고, 김치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었다. 배가 터지겠다, 싶을 때쯤에 쌍둥이가 복숭아를 먹자고 가지고 들어왔다. 쌍둥이의 일상생활에 대한 TMI를 들으며 복숭아를 다 먹었더니, 할머니가 시장에서 떡을 사 가지고 오셨다.
막 찐 떡이 맛있어서 그것도 먹고 있으니까 황새벽이 말했다.
"야, 너 오늘 잘 먹는다?"
"너무 맛있어. 그리고 일하고 나니까 막 쑥쑥 들어가."
"진작 데려올걸."
몸 쓰는 일 하고, 먹고, 쌍둥이랑 놀아주느라 또 체력 쓰고, 또 먹고 하는 하루가 무지하게 좋았다. 요 몇 년 사이에 가장 긴 시간 음악 생각을 안 한 것 같다.
그렇게 먹고 일하고, 놀고 하다가, 나는 내 등이랑 어깨를 밟고 올라다니는 쌍둥이에게 말했다.
"선물 줄게. 그거 가지고 놀아."
"무슨 선물이에요?"
"내가 좋은지 봐줄게요."
"아, 평가받는 거 떨리는데."
나는 말하며 카니발에서 이 꼬마들 키보다 큰 인형의 집을 꺼내왔다. 내가 황새벽의 사촌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이거 어디다 놔요?"
"아이, 왜 그런 걸 사 왔어!"
"아니, 그냥……."
나는 쓸데없이 선물을 사 왔다는 구박을 흘려들으며 쌍둥이의 방에다가 인형의 집을 놔줬다. 쌍둥이는 다행히 좋아했다. 입이 딱 벌어져 멍하니 보고만 있는 걸 보니까. 나에 대한 관심이 너무 사라진 건 좀 아쉽지만…… 하긴 저 멋진 인형의 집과 내가 경쟁이 안 되긴 하지…….
아무튼 쌍둥이 둘은 방문까지 닫아버리고 자기들만의 세계에 푹 빠졌다. 집이 조용해지고, 어른들은 하루종일 노동한 후유증으로 바로 잠이 드셨다.
나는 황새벽과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과일을 먹었다. 갓 따온 과일은 서울에서 먹는 과일보다 훨씬 맛있었다.
내가 황새벽에게 물었다.
"체중계 있냐?"
"어, 저기 저울."
나는 황새벽이 가리킨 곳에 가서 몸무게를 재보고 말했다.
"내 원래 몸무게를 모르겠네, 생각해보니까."
"근데 너 살면서 60㎏ 넘어본 적 있냐?"
"어, 패딩 입고 쟀을 때 한 번."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는."
"내가 키가 막 크진 않잖아."
"180 넘었잖아."
"안 넘어. 179.5야."
"그거 국선아 때 잰 거잖아."
"안 컸거든."
"넌 진짜 신지운한테 뭐라고 하면 안 돼. 진짜 동족 혐오야."
"야, 걔랑 나랑 10㎝가 차이 나는데. 난 귀여울 수 있어. 걘 없어."
"넌 진짜 아이돌 안 하면 뭐 할 뻔했냐."
"피아니스트? 작곡가?"
"음악 빼고."
"과수원 좋다. 과수원 할래. 넌 뭐 할래."
"나는 밴드 기타리스트."
"아, 음악 빼자고."
"그럼 밥집 하지 않을까."
"그럼 과일은 내가 공수해 줄게……. 이거 자컨 좋다. 퍼스트라이트가 되지 않았다면."
"잠깐만 지금 전화해야겠다."
황새벽이 바로 회사로 전화를 걸다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야, 우리 여기 와서도 일 얘기하네."
"그만큼 일을 좋아하는 거지. 얼마나 운이 좋냐, 좋아하는 일 하는 게."
"그래, 좋게 생각하자."
황새벽이 말하며 회사에 전화해 자컨 아이디어를 전달했다.
그사이에 나는 평상에 누워서 하늘의 별을 세보았다. 과수원 주변에 가로등도 없어서, 하늘의 별이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누워 있는데 근처가 잠깐 밝아졌다. 택시가 근처에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나와 황새벽이 얼떨결에 나가보니, 한효석이 내렸다.
"어, 효식이 뭐야."
어제오늘 친구와 약속이 있었던 한효석이 뜬금없이 과수원에 왔다. 택시가 떠나고 한효석이 말했다.
"아니, 한잔하니까 형들 보고 싶어서요."
"어어……."
내가 감동해서 안아주려고 달려가니까 그 정도는 아닌지 피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게 진짜 감동적이다. 나는 한효석의 등을 쓱쓱 문지르며 말했다.
"효식이가 진짜 멤버들 좋아해. 맨날 뚱해 보여도."
"안 뚱해요."
"진짜 감동적이다. 형 눈물 난다."
"안 나잖아요."
한효석이 언제나처럼 까칠하게 굴며 우리랑 같이 평상에 앉았다.
황새벽이랑 한효석은 막걸리를 한 잔 더 마시고, 나는 다시 평상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혼자 숙소에 있을 때는 그렇게 자꾸 깨고, 그러더니 여기 멤버들 둘이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까 풀벌레 소리와 말소리에도 스르륵 잠이 왔다.
* * *
우리의 자컨 의견은 바로 통과가 됐다. 강영호 매니저가 톡을 보냈다.
[영호 형 : 멤버분들 휴가 기간 동안 '내가 퍼스트라이트(혹은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관련된 직업 하나씩만 생각해 주세요^^]
[얘들아 음악 빼고]
[음악 관련 안 돼]
[새부기는 지금 핸드폰 들 힘이 없어서 톡을 못하는데 요리사 한대]
[난 과수원할 거야]
[거대자몽 : 과수원 같은 소리하네 좀 어울리는 걸 해]
[거대자몽 : 난 신부]
[안쭈 : 신부님은 어울리냐?]
[거대자몽 : 아니면 아기자몽이 되까♥]
[안쭈 : 아뇨 신부님 하세요]
[민조♥ : 나는 안무가!!!!!!!!!!!]
[효식♥ : 음악 빼라고]
[막내♥ : 그럼 효식이도 발레 빼야 돼]
[효식♥ : 안무가가 되도록 해]
[민조♥ : 나 캠핑장에서 다람쥐 봐써!!!!!!]
[민조♥ : (사진)]
[효식♥ : 청설모임]
[민조♥ : 나 캠핑장에서 청설모 봐써!!!!!!]
겨우 일주일 휴가 보내는데, 단톡방이 잠깐도 안 쉬고 계속 시끌시끌하다. 참 서로 죽고 못 사는 놈들이다. 물론 나도 숙소에서 혼자 하루를 못 있는 놈인 건 똑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