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6화
[막내♥ : 근데 효식이도 과수원 갔어?]
[효식♥ : 술 먹으니까 형들 보고 싶어서]
[♥]
[감동적이야]
[막내♥ : 캠핑조는 과수원 가지 마ㅠㅠㅠ]
[막내♥ : 나 없이 다 과수원에 모이면 안 돼ㅠㅠㅠㅠ]
[막내♥ : 여섯 명 모이기 없어!]
[안쭈 : 지호가 너무 좋아해서 캠핑 1박 더 할 거야 선재야]
[안쭈 : 다음에 다 같이 가자]
[민조♥ : 신난당♥]
[민조♥ : 아자몽이랑 밤낚시 갈 거야!!!!!!!!]
[거대자몽 : 가기 전부터 피곤하네]
다들 알찬 휴가를 보내고 있다.
내가 나 빠진 단톡방으로 멘탈이 털리던 날을 기점으로 퍼스트라이트 안에는 '여섯 명이 모여서 재미있지 않기'가 약간 암묵적인 룰이 된 것 같다. 어이없지만 그게 그렇게 됐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눈을 뜨자마자 황새벽의 할머니는 어제 새로 뽑아온 가래떡을 넣고 고명이 산처럼 쌓인 떡국을 끓여주셨다. 원래 한효석이랑 나는 바로 출발하려고 했는데, 아침 먹고 과일 먹고, 점심 먹고, 부침개 먹고, 과일 먹고 저녁을 먹었더니 하루가 지나서 그냥 하루를 더 자고 나서 다음 날 일찌감치 황새벽과 함께 서울로 출발했다.
할머니 선물을 방에다 몰래 숨겨 놓고, 다 함께 내 차에 탔다. 희한하게 이틀 내내 많이 먹었더니, 오히려 또 배가 다시 고파져서 중간에 셋이 내렸다.
"새부기야, 효식아, 회오리 감자 먹자."
"저 회오리 감자 한 번도 안 먹어봤어요."
그 말에 나랑 황새벽이 동시에 한효석을 돌아봤다가, 질질 끌고 가서 회오리 감자를 포함한 먹을거리를 왕창 샀다.
야외테이블에서 먹고 싶었는데 슬슬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나서 그냥 차로 가서 먹었다.
다행히 한효석은 휴게소 간식들을 엄청나게 잘 먹었다.
"형, 이거 우리 숙소에 회오리 감자 기계 사면 안 돼요?"
"기계는 되는데 튀김 안 돼."
쟤네가 청소한다고 해놔도 내가 성에 안 차서 또 한 번 치우게 될 거 뻔하니까,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 말에 한효석이 아쉬워하니까 황새벽이 말했다.
"야, 에프에다가 하면 어떻게 되지 않겠냐? 내가 해줄게."
"……그래?"
"그럼 지금 사도 돼요?"
"알았어. 사봐, 그럼."
쓸데없이 신중하게 회오리 감자 토론을 하다가, 음악도 듣다가 하면서 서울로 오는 길이 되게 힐링이 됐다. 멤버들은 혼자 운전한다고 걱정했지만 나는 원래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그것도 좋았다.
서울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며 황새벽이 할머니 전화를 받아 이야기한 후 나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황새벽의 할머니가 내가 선물로 놓고 온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할머니가 옷 너무 좋아하신다고, 삼촌이 사진도 찍어줬다."
"오, 이쁘네. 잘 골랐지?"
"어, 잘 골랐다."
옷이 원래 고르기 까다로운 만큼, 은근 만족도도 높은 선물인 것 같다. 원래 옷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었는데, 아이돌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점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옷 선물하는 것도 자신이 생긴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캠핑조가 달려와서 반겨줬다. 그리고 곧이어 박선재도 숙소로 돌아왔다. 휴가 마지막 날은 다 함께 숙소에 모여, 과수원에서 얻어온 과일을 먹으며 시끌시끌하게 보냈다.
* * *
"다온 씨가 이번에 해원 씨 곡으로 작업한대요."
클라루스의 송다온이 퍼스트라이트 정해원의 곡으로 작업한다는 소식은 VVV엔터 1본부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그럴 만도 한 대형 사건이었다.
클라루스가 속해 있는 VVV엔터 1본부는 사실상 VMC의 심장이고, 손발이고, 얼굴이었다. 정해원이 클라루스와 일한다는 소식은, 작업이 시작도 되기 전에 VMC 전체에 퍼졌다.
VVV엔터 1본부에 소속된, 국선아 당시 보컬 트레이너로 참여했던 백범준은 정해원이 1본부로 온다는 소식에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원아, 연습 안 했니?'
'했어요.'
'뭐라구?'
'했다구요. 연습.'
국선아 시절, '별이 된다면'의 촬영 당시 정해원의 악편이 있었다. 그리고 백범준 트레이너는 그 악편 짜깁기를 위해 논란을 만들 만한 부분을 촬영했다.
이렇게 짜깁기할 거란 걸 사실 짐작하고 있었다. 대본이 이렇게 나왔는데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그냥 했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짜깁기 논란 이후, 본인도 욕을 어지간히 먹었다. 저렇게 짜깁기한 걸 몰랐을 리 없다고, 네티즌들이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저런 일들로 더 이상 방송에 얼굴 비추지 않고, 1본부에서 조용히 보컬트레이너로 지내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정해원을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불편해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혹시 진짜로 송다온과 정해원이 작업을 하게 되면 보컬트레이너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됐다.
오도 가도 못하고 회사에 남아 있는데, 저 멀리서 정해원이 나타났다.
백범준은 순간 정해원을 못 알아볼 뻔했다. 국선아 때와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후텁지근하던 스타일링도 본인에게 어울리게 바꾸고, 항상 굳어 있던 표정이 풀린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안녕하세요."
정해원이 꾸벅꾸벅 열심히 인사하며 1본부로 들어왔다. 눈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인사할 생각인 것 같았다. 국선아 때는 어땠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렇게 허리 아프겠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인사하던 정해원은 백범준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는 사이처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사이 같지도 않게 인사하고 정해원이 지나갔다.
* * *
다행히 송다온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나는 빈 회의실에 들어가 숨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나와 같이 와준, 4본부 매니지먼트팀에서 팀장 승진한 스파이, 박중운이 물었다.
"해원아, 괜찮아?"
"어, 잠깐만."
백범준 보컬트레이너의 얼굴을 보니까, 국선아 때 숨쉬듯이 까이던 게 기억이 났다.
방송에 나간 이상으로, 백범준 보컬트레이너는 내 보컬을 지적하는 것에 의무감마저 느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노래를 좀 더 잘했으면 없던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정작 백범준을 보고 나니까 속이 울렁울렁거렸다.
'너 계속 그렇게 팀원들한테 피해 줄 거야?'
나는 계속 연습했는데, 돌아오는 건 지적밖에 없으니까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래도 백범준은 클라루스의 보컬트레이닝을 맡고 있으니, 못 지낼 수가 없다. 아까 날 보던 떨떠름한 눈빛이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지만, 내 보컬을 지적할 일은 이제 없을 테니까 최대한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팀장 스파이가 말했다.
"해원아, 시원한 거 사다 줘?"
"창문 좀 잠깐만 열어주라."
"이 회의실 창문 못 열어. 잠깐 나가자."
스파이는 건물 구조도 아나 보다. 날 창문이 열리는 복도로 데려갔다.
복도에서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쐬니 좀 괜찮아졌다. 나는 잠깐 호흡만 정리하고 스파이에게 말했다.
"됐다, 가자."
"좀 더 있는 게 낫지 않냐?"
"내가 뭔데 다온이 형을 기다리게 해."
나는 말하며 다시 회의실로 향했다. 내가 자리에 앉고 5분 내외로 클라루스의 송다온이 도착했다.
그리고 곧이어 클라루스의 채연재도 도착했다. 문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반짝이 가루를 뿌리고 들어오는 사람 같았다.
"해원 후배님 처음…… 아니, 그렇게까지 인사 안 해도 돼요."
아메리칸 스타일로 인사하려던 채연재는 내가 너무 머리가 땅에 닿게 인사하니까 영 불편해했다. 하, 그렇다면 내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저 악수도 해주세요, 형."
"제발 그래 주라."
채연재가 그제야 마음 편해해서 나는 눈을 마주 보고 악수를 했다.
클라루스 멤버 둘, 1본부 본부장과 팀장 이상급이 전부 회의에 참여했다. 나는 박중운 팀장 하나만 데리고 와서 쫄아 있었는데, 다행히 곧 우리 대표도 왔다. 나는 강효준이 도착하자마자 팔을 붙잡고 징징거렸다.
"아, 형 왜 이제 와요. 저 팀은 저렇게 많이 오셨는데 중운이 형이랑 둘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잖아요."
"미안하다. 나도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올 줄 몰랐지."
강효준 역시 예상 못 했는지 송다온에게 핀잔했다.
"넌 왜 이렇게 온 1본부 사람을 다 끌고 왔어."
"나 클라루스야, 인마."
"……하긴."
나 클라루스야. 이거 한마디면 송다온이 뭘 해도 다 설명이 된다는 게 멋지다.
그리고 사실 이게 맞다. 송다온의 솔로 앨범은 충분히, 첫 미팅에도 이만큼의 인원이 모여서 고심할 만한 일이다. 지금까지도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송다온 솔로 음원 회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긴장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곳에서 음원을 틀자마자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있는 힘껏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남들 보기에 웃겼겠다. 허허.
[여름의 별]
나는 일주일의 휴일이 끝나자마자 사흘 동안 작업실에 처박혀서 나머지 가사를 완성했다. 내가 한국어로 쓴 가사를, 채연재와 상의해 전부 영어로 교체할 예정이었다.
늘 나와 코러스 작업을 하는 장석훈이 내가 쓴 가사로 다시 한번 가이드 녹음을 해줬다.
[모래 위에 남는 발자국처럼]
[쓸려갈 하루 같겠지만]
[여름의 베가가 있는]
[저 하늘의 커다란 삼각형처럼]
[영원한 여름의 별로 남을 밤이야]
[여전히 선택은 네 손에 남아 있고]
[만남이 짧아도 그렇게 기억할게]
[휴가는 짧아도 나를 알아가는 건]
[바이올렛 피즈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쉬워]
[오늘은 이 해변에 앉아 투명하게 나를 알려줄게]
[영원한 여름의 별로 남을 밤이야]
[여전히 선택은 네 손에 남아 있고]
[만남이 짧아도 그렇게 기억할게]
듣는 순간 트로피컬 하우스라는 걸 알 수 있는, 명확한 장르의 음악이었다. 내가 워낙 하우스 장르를 좋아해서, 엄청 신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내가 신나서 만들면 FX(효과음)가 많이 들어가는데, 이 곡이 그랬다.
음원이 끝나고, 1본부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적는 게 보였다.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해줘서 엄청 쫄아 있는데, 채연재가 나에게 말했다.
"해원 씨."
"아, 네!"
"우리 많이 싸우면서 만들어봐요. 가사."
채연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너무 솔직했나 보다.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던 1본부 사람들이 좀 웃었다.
채연재도 웃었다. 웃는 것도 슈스 같았다. 슈스처럼 웃는 건지, 슈스라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채연재가 송다온에게 말했다.
"해원이 진짜로 귀엽네."
"당연히 귀엽지, 형이랑 띠동갑인데."
"아, 그 얘길 또 왜 하냐."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한다. 하, 나 귀엽나. 만족스럽네……. 신지운 때문에 나까지 좀 귀여움에 집착하게 된 것 같다. 집착을 버려야지.
나는 다시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귀엽다는 것도 좋은데, 곡에 대한 의견을 좀 듣고 싶었다. 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신중했다.
내가 불안해서 강효준 쪽을 보니까 강효준이 1본부 A&R 팀장을 턱짓하며 말했다.
"괜찮아, 저 팀장님은 아니면 바로 아니라고 할 사람이야."
"그래요?"
라고 말하기 무섭게. 1본부 A&R팀 팀장이 손을 들었다.
심장이 철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