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17화 (21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7화

[여름의 별]

클라루스 송다온은 처음 들었을 때보다 몇 단계로 완성도가 높아진 곡을 듣고 있었다.

'……쟤가 진짜 천재구나.'

송다온 역시 오랜 시간 작곡을 해왔다. 수정 전 버전을 들었으니까, 초기 아이디어로부터 어떻게 빌드업을 해나갔는지가 들렸다.

그러나 그건 일종의 기계적인 파악이었다.

송다온은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음악을 들었고, 그만큼 공부도 해왔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여름의 별'도 너무 많이 반복해 들어서, 첫 느낌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그저 천재가 초안을 잘 완성까지 끌고 갔구나, 라는 것만 머리로 파악할 수 있었다.

송다온은 판단을 의지하기 위해 힐끔 멤버인 채연재를 확인했다. 타고나길 흥이 많은 채연재는 고개를 흔들흔들하며 여름의 별을 청음 중이었다.

딱 봐도 신나 보였다. 신나는 음악이었으니까.

저렇게 흔들흔들 하는 걸 보니까, 그제야 좀 이 음악을 들을 때 첫 느낌이 기억이 난다.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다.

송다온은 입대 전, 마지막으로 낸 앨범을 떠올렸다. 형들이 먼저 입대하고 난 후에 한 솔로 활동이었다.

그 당시 1본부 A&R이었던 강효준과 밤새도록 음악을 들으며 고민하던 기억이 났다.

형들 없이 처음으로 혼자 한 활동이었다. 그냥 솔로 활동이 아니라, '클라루스'가 계속되고 있다는 걸 팬들에게 알려주는 그런 음악이 필요했었다.

그러니까 완전히 클라루스와 별개의 음악은 아니어야 한다고, 두 사람은 합의하고 음악을 구상해 나갔었다.

그때는 재미있었다. 자신도 있었고.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멤버가 제대한 후에, 클라루스가 다시 시작된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 앨범이니 두 배, 아니, 한 다섯 배로 부담이 컸다.

강효준이 4본부로 옮겨갔지만, 송다온은 여전히 강효준과 작업하는 게 익숙했다. 긴 시간 으쌰으쌰해 가며 음악을 만들어온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내는 이 앨범도 그러면 좋을 것 같았다.

예전에 같이 음악 기획해 나간 거 기억나냐고 송다온이 힐끔 강효준을 봤는데, 이미 남의 회사 사람이 되어 본체만체였다.

그때 클라루스가 속한 1본부 A&R 팀장이 말했다.

"곡은 좋은데요."

까다로운 1본부 A&R 팀장에게 이 정도면 극찬이었다. 그제야 다른 직원들도 안도하고 한마디씩 칭찬을 했다.

"아, 진짜 잘 만들었다. 해원 씨, 스물두 살이라고 했죠?"

"어? 해원 씨 스물두 살이야? 진짜로?"

그렇게 떠들썩해진 분위기 속에서 1본부 A&R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근데 걸리는 게, 음원이 겨울에 나가게 될 텐데, 여름 분위기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정해원과 송다온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남반구에서……."

"남반구……."

그렇게 대답하자 회의실에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정해원이 먼저 말씀하시라고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송다온이 사양하지 않고 말했다.

"해원이 말처럼, 남반구 로케이션 하시죠? 썸머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효준…… 본부장님, 뭐 준비한 거 있지? 썸머 크리스마스야?"

"어, 뭐. 얼추 비슷합니다."

강효준이 말하며 가져온 레퍼런스를 직접 돌렸다.

1본부, 4본부 사람들 모두 이 곡을 좋아하는 눈치였고, 채연재도 좋아했다. 분위기가 좋았다. 확정 분위기였다.

그럼 이걸로 하는 거구나.

송다온이 생각하며 강효준이 준 자료를 확인했다. 작곡팀과 A&R팀이 신나게 회의하고 난 결과물이라는 게 느껴지는 자료들이었다. 송다온이 중얼거렸다.

"곡 만들 때 재밌었겠다."

송다온의 말에 채연재가 힐끔 보더니 말했다.

"다온아, 우리도 재미있게 하자."

동생 마음을 알아주는 형의 말에 송다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다온도 지금까지 A&R이 가져다 준 곡들을 전부 들어본 결과, 이 여름의 별이 가장 좋았기 때문에, 여기에 불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채연재가 가사를 마음에 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 반응이면, 이 곡이 좋은 게 맞겠지.

송다온이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데, 정해원이 자기 쪽을 힐끔힐끔 살폈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니까, 뭔가 확신한 듯 손을 들었다.

"저."

그리고 사람들이 집중하니까 정해원이 입을 열었다.

"초안에서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요?"

그 말에 직원들은 뭔 소린지 몰라 미간을 좁히고, 강효준은 한숨 쉬며 정해원을 외면했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저, 초안부터 다온이 형이랑 연재 선배님이랑 같이 만들어가고 싶은데요. 안 될까요? 너무 바쁘실까요? 그래도 어떻게 안 될까요?"

말하며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빌드업한 곡. 그렇게 수정해서 이 자리의 직원들 모두가 좋다고 말한 곡을 초안부터 다시.

1본부 A&R 팀장이 말했다.

"해원 씨, 이 곡, 이 편곡 다 좋아요. 우리가 칭찬이 부족했나? 진짜로 좋은데."

"아뇨…… 이거, 클라루스 선배님들이 진짜 오랜만에 내는 음악이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곡으로 하면 되겠죠?"

"다온이 형이 프로듀서인데…… 이걸로 활동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요. 그냥…… 제 생각에는요."

정해원이 송다온에게 물었다.

"다온이 형, 이 곡 괜찮으세요? 좋으세요?"

"음……."

괜찮은 곡인 건 안다. 그런데 좋은지는 모르겠다. 뭐가 좋은 음악이었는지, 송다온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해원은 굉장히 선배에게 잘 치대는 성격이라, 평소에도 고민이 있으면 서슴없이 송다온에게 연락해 묻곤 했었다.

언젠가 송다온은 정해원의 음악 고민에 그렇게 답을 해줬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 대중이 좋아할 것 같은 음악만 하게 되잖아. 그럼 잊어버리게 되더라. 시작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했는데 대중이 좋아해 줬었다는걸. 그때의 고마움 같은 걸.]

후배에게는 그렇게 답을 해놓고, 정작 본인은 제대 후 지금까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정해원이 다 된 회의에 재를 뿌리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송다온이 곧바로 정해원에게 가서 물었다.

"너 시간 많아?"

"안 많죠. 근데 형 클라루스예요. 형 음악 위해서 작곡가가 밤새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수정하면, 이것보다 곡 퀄리티 오히려 떨어질지도 몰라. 지금 완성도 있잖아. 너도 네가 완벽하게 만든 거 알잖아."

"근데 형이 재미가 없잖아요."

"……."

"저는 형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송다온이 대답을 못 하고 있으니까, 채연재가 와서 송다온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이 정도면 고백받은 거 아니야? 결혼해."

"아, 형 뭐 해."

"부추기지이."

채연재가 잔망을 떨며 말했다. 아이돌 그 자체였다. 그러더니 정해원에게 말했다.

"해원아, 다온이가 그렇게 다 된 밥상 엎어줘서 고맙대. 얘가 원래 좀 눈치를 많이 보는 스타일이거든."

"형 나도 입 있어."

"우리 동생이 삼십 대지만 덜 컸어."

"진짜 형한테만은 안 듣고 싶다."

그렇게 멤버 둘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나니, 1본부 사람들도 대충 정황 파악이 된 듯했다. 1본부 본부장이 말했다.

"그러면 일단, 날짜 다시 잡으시죠. 조만간."

결국 그렇게 됐다.

송다온은 회의가 흐지부지된 것에 안심했다. 끝나고 나니까, 이제 이게 맞았구나, 싶었다. 송다온이 강효준에게 말했다.

"효준아, 우리 너네 집 다 같이 가서 밤샘 하자."

"우리 혹시 시간 여행 했니. 이걸 왜 또 하게 됐지."

그러자 정해원도 신이 나서 말했다.

"효준이 형, 나도 형네 집 놀러 가요?"

"어차피 올 거잖아."

"오, 재벌집 구경 간다."

"내가 재벌이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들이 재벌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스케줄을 맞춰서, 강효준의 집에서 밤샘할 날짜를 정했다. 송다온은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에 생기를 느꼈고, 말은 안 했지만 채연재를 보니 마찬가지로 즐거워 보였다.

이거였지. 이게 재미였지.

송다온은 모처럼 생각했다.

* * *

회의실에서 나오며 강효준에게 많은 욕을 먹었다.

"네가 미친놈인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명이라고 해도 삼십 대는 버틸 줄 알았는데 잘하면 이십 대 안에 죽을 수도 있겠다, 너."

"말이 심하시네."

"아니, 근데 왜 우리 집에서 모여."

"형네 집이 크니까."

"안 와봤잖아."

"다온이 형이 형네 거실이 웬만한 가정집만 하다던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형이 웬만한 가정집 크기를 모르는 건 아니에요?"

"……."

"우와. 부자다."

어휴, 부자라고 놀림을 당하다니. 놀리면서도 이 형의 인생이 부럽다…….

아무튼 나는 바로 자체컨텐츠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가 일찌감치 끝난 후에도 무지하게 바빴다.

바로 샵으로 가서 이쁘게 단장하고, 두 시간 떨어져 있는 자컨 촬영장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황새벽과 내가 휴가 중에 기획한, 멤버들 각자 '퍼스트라이트가 아니었다면' 가지게 되었을 직업을 가졌을 때를 가정한 상황극이었다.

아직 정확히 어떤 컨텐츠로 진행될지, 컨텐츠제작팀이 비밀로 하고 있어서 멤버들도 다들 궁금해했다.

그렇게 회의실을 나가서 1본부를 지나가다가, 나는 다시 국선아 때 보컬트레이너였던 백범준과 마주쳤다.

아까 들어올 때는 다른 직원들에게 인사하던 차라 덩달아 인사하는 게 괜찮았는데, 나오면서 따로 눈이 마주치니까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송다온과 다시 작업을 하려면, 백범준 보컬트레이너와도 어느 정도 교류를 하게 될 테니 과거를 잊고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솔직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그냥 지나치려는데 강효준이 핸드폰을 보더니 물었다.

"아, 범준이 형이 국선아 때 너 갈궜어?"

"어…… 네."

강효준은 백범준과 작업을 많이 했을 텐데, 자세한 내용을 몰랐던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예전에 딱 국선아 방영 시기에 송다온의 솔로 작업을 하느라 제대로 못 봤다고 나한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클립들만 찾아봤다고.

아마 그 이후에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멤버들도, 멤버의 가족들까지도. 나를 아끼는 모든 사람에게는 국선아가 말도 꺼내기 싫어하실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되었으니까.

내가 힐끔 핸드폰을 보니 팀장 스파이가 국선아 때 백범준에 대해 문자를 보내놓은 것 같았다.

강효준이 말했다.

"석훈이 부르자. 다온이 녹음할 때는."

나와 양이형 팀, 장석훈을 데려와서 하자는 모양이다. 그걸 들으니까 안심이 돼서 내가 말했다.

"형 그거 알죠. 석훈이 형이 저 보컬 진짜 많이 잡아줬잖아요. 목에 있어서는 명의예요."

"범준이 형이 망쳐놓은 거, 석훈이가 잡아준 거네."

"뭐. 음."

아무래도 강효준이 1본부에서 클라루스와 오래 작업을 했다 보니까, 백범준과도 친분이 두터웠던 모양이다. 엄청 실망한 표정인 걸 보니까.

사람이 원래 상황에 적응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동물이니까. 나에게는 눈만 마주쳐도 나쁜 기억들이 떠오르게 하는 백범준이 강효준에게는 '꽤 괜찮은 형'이었을지 모른다.

악편에 관여된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나에게는 나쁜 사람이었어도, 일상에서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겠지.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머리로 이해하려다가도, 속이 답답해지곤 했다.

그래도 악플러들은 보이드 엔터에서 왕창 고소를 때리고 있으니, 그거나 잘됐으면 좋겠다. 이미 잘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나는 샵에 들러서 헤어메이크업을 하고,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자체컨텐츠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각자 선택한 직업에 맞게 의상을 받아서 입고 있는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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