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18화
자체컨텐츠 촬영장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민지호가 달려왔다.
"형 어떻게 됐어? 곡 넘겼어?"
"아, 그게."
내가 자초지종을 말하자마자 민지호가 멤버들을 불렀다.
"멤버들! 해원이 형이 또 일 크게 만들어!"
그렇게 민지호의 목청을 타고 내가 클라루스 송다온의 곡을 엎고, 초안부터 다시 수정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퍼져 나갔다.
촬영장으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에게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왜 일을 만드냐고 실컷 욕을 먹고 나서, 컨텐츠제작팀이 준 대본을 확인했다.
우리 멤버들이 전체적으로 드립에 약한 편이라, 각자 설정을 되게 열심히 짜줬다. 대신 대본 양이 많아서 외울 것도 많았다.
오프닝 영상을 먼저 찍고 나서, 식사 시간에 멤버들이 각자 자기 대본을 외웠다. 다들 순발력은 약해도 성실한 것 하나는 여느 그룹 부럽지 않아서, 한 손으로 식사를 입에 구겨 넣어가며 다른 손으로 대본을 들고 외웠다.
그래도 굶는 멤버는 없다. 굶는 건 우리 팀과 안 어울리니까.
그나저나…….
나는 바쁘게 뛰어다니던 강영호 매니저를 붙잡고 물었다.
"형, 우리 돈 너무 많이 들인 거 아니에요? 무슨 자컨 세트가 이렇게 화려해요? 뮤직비디오 찍어도 되겠네."
"우리 신생 회사라, 앨범 내고, 콘서트하고, 다큐멘터리 만들고 정신없었잖아요. 자컨에 좀 더 공들이고 싶은가 봐요."
"……신생 회사가 아니어도 정신없을 거 같은데."
원래도 TRV에 있을 때 비하면 비하인드 영상이며 뭐며 컨텐츠가 주마다 올라와서 햇살이들이 만족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우리 멤버들도 눈이 낮은 만큼, 우리 햇살이들도 눈이 낮은 것 같다……. 하, 미안하게. 그래도 탈 TRV 해서 다행이다.
자체컨텐츠 배경은 2000년대 초반으로, 레트로한 분위기로 세트장이 꾸며져 있었다. 나는 오프닝 영상을 찍은 후에 카메라를 확인해보고 감탄했다.
"오, 필터 신기하다."
나도 멤버들도 신기해하니까, 보이드 엔터 컨텐츠 제작팀 고석희 피디가 말했다.
"멤버들 2002년에 몇 살이었지?"
그 말에 나도 멤버들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황새벽이 대답했다.
"저랑 해원이가 마이너스 두 살이요."
그 말에 직원들이 허허 웃었다. 나도 황새벽도 멤버들이랑 있을 때는 되게 형인 척하지만, 촬영장 어딜 가도 막내다.
고선희 피디가 한숨 쉬며 자기 또래인 직원들에게 말했다.
"2002년 월드컵 때 만들어지지도 않았대, 맏형들도."
"아, 근데 활동 되게 오래 한 것 같네."
"그건 그렇죠. 국선아 때 새벽 씨랑 해원 씨가 열여덟 살이니까……."
"진짜 어렸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나는 멤버들과 옷 사진을 찍었다.
유행이 돌고 돈다고, 2002년 의상이라는데 지금 유행하는 의상과 큰 차이가 없었다.
컨텐츠 촬영을 하는 곳에 잡은 숙소가 야외수영장이 있는 곳이었다.
무박 2일간의 촬영이 끝나고, 나는 멤버들과 수영장으로 나갔다. 약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신지운이 멤버들에게 말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 물에 던지자."
"쪼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이 바로 가위바위보를 했다. 신지운이 져서 바로 물에 던져 버리고 안주원이 말했다.
"원래 이런 건 무조건 말 꺼낸 사람이 걸리는 거야."
"아오씨…… 다시, 다시."
신지운이 얼굴에 물을 벅벅 닦아내고 손을 들었다. 두 번째 가위바위보는 한효석이 져서 수영장에 던지고, 남은 멤버들로 데스게임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민지호가 달리려고 해서 나와 황새벽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야, 미끄러워. 뛰지 마."
"너 미끄러지기만 해, 아주."
"히잉……."
결국 민지호가 그 자리에서 물에 뛰어들었다. 어찌 됐든 물에 들어오고 나서는 신이 나서 낄낄거리며 뛰어놀고 다녔다.
고석희 피디가 비하인드로 쓰려고 우리가 물에서 노는 것을 찍으며 말했다.
"진짜 재미있게 논다."
"피디님도 이제 놀아요."
내가 고석희 피디와 직원들을 손짓해서 불렀는데, 다들 안 들어왔다.
"난 이제 비 오는 날 놀면 병나, 해원 씨……."
"야, 난 안 놀았는데 그냥 삭신이 쑤신다."
다들 슬픈 얘기를 해서 결국 못 부르고 우리끼리 놀았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체력을 다 쏟아서 놀고, 씻고, 룸서비스 시켜서 먹고, 멤버들은 바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그렇게 일과가 끝난 후에, 다시 나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내가 바로 출발하려고 하니, 룸메이트인 박선재가 다시 일어나 나를 따라다니며 물었다.
"형, 바로 서울 가?"
"어, 강 대표 집 가서 작업하려고."
"좀 잤어?"
"잤지, 그럼. 그리고 서울 가면서 또 잘 거야."
나는 박선재를 침대로 데려다 놓고, 이불까지 잘 덮은 후에 토닥토닥 재웠다.
박선재는 막내기는 해도, 사실 맏형들만큼이나 멤버들을 보살펴 주는 녀석이다. 항상 신경 쓸 게 많아서 이 녀석도 피곤하겠다.
박선재가 잠결에 중얼거렸다.
"영양제 먹어……."
"어, 차 타자마자 먹을게."
나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바로 서울로 가는 차에 탔다.
수영장에서 너무 놀아가지고,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다가, 서울 진입해서 눈을 떠보니 메일이 와 있었다. 클라루스 송다온에게서 온 샘플 메일이었다.
메일을 막 열었을 때, 송다온에게서 전화가 왔다.
-해원아, 형이 샘플 하나 보냈거든. 들어봐봐.
"안 그래도 지금 들어보려고요."
나는 바로 송다온인 보낸 샘플을 하나씩 켜서 확인했다.
'여름의 별'이 트로피컬 하우스기 때문에, 보낸 샘플도 전부 장르에 맞는 음악이었는데, 뭔가 전부 모아놓고 보니 살짝 달랐다.
내가 물었다.
"형, 퓨처베이스 만들고 싶으세요?"
-응? 응…… 어!
그 세 글자 사이로 변화하는 감정이, 글자 하나마다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래, 그거야. 이게 초안은 좀 더 퓨처베이스 느낌이 났잖아.
트로피컬 하우스는 누가 들어도 딱, 트로피컬 하우스라는 게 느껴지는 명확한 음악 장르 중 하나였다.
사용되는 악기들도 그랬다. 내가 회의에 들어간 여름의 별 음원도 마림바 연주를 중심으로 해서 악기를 쌓았고 BPM도 휴양지의 느긋함을 주기 위해 비교적 느리게 했다.
트로피컬 하우스의 주목적은 아무래도 듣는 사람이 좀 풀어지게 하려는데 있다. 나도 만들면서 듣는 사람이 최대한 힘을 풀 수 있도록, 편안한 그루브를 주는 데 신경을 기울였었다.
그런데 그 풀어지는 느낌이, 송다온의 취향에 약간 벗어났던 것 같다. 송다온이 가져온 샘플은 전부 BPM이 빠르고, 좀 더 몽환적인 분위기를 추구했다.
나는 샘플을 들어보며, 강효준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열어준 강효준에게 말했다.
"저 일 좀 할게요."
"어, 인사 고맙다."
나는 강효준의 말을 흘려들으며 바로 보이는 커피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소파를 등받이로 써서 앉았다.
그때 먼저 와 있던 송다온이 와서 물었다.
"뭐 그렇게 오자마자 바빠?"
"형,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고 싶은 거잖아요."
"어떻게 알았어."
"원래 있던 트로피컬 사운드에서 볼륨 크기만 조절해도 되게 몽환적인 느낌이 나요."
나는 말하며 바로 마우스를 움직여 '여름의 별'의 패드의 볼륨을 마구 키웠다, 줄였다 조정을 했다.
마림바 소리를 줄이고, 쭉쭉 뻗는 듯한 느낌의 사운드를 주는 패드의 소리를 들쑥날쑥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렇게 찍은 건 관념적인 퓨처베이스 사운드를 만든 것뿐이지만, 일단 송다온이 원하는 게 뭔지 알기에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형, 이거 들어보실래요?"
"아까부터 들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언제 들려주실래."
"아, 형. 제발."
언제부턴가 송다온이 옆에 쿠션을 깔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나도 잽싸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 이 형은 클라루스인데 왜 무릎을 꿇고 기다려서 이렇게 사람을 철렁하게…….
그리고 내가 서울로 오는 길에 고민한 뒤, 만든 사운드를 들려줬는데,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아……."
"아니에요?"
"아…… 맞는데…… 좀 더. 멜로디가 들렸으면 좋겠어."
"형, 원하는 거 엄청 확실했었네요?"
"응. 근데 내가 좀 거절을 못 하는 스타일이야……."
나는 송다온의 말에, 처음 송다온을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같이 중국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오가며 사람들이 인사, 악수 요청을 하는 걸 밥 먹다 말고 일일이 다 인사하고, 악수하고 있었다. 확실히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사실, 그게 지금도 되게 멋있는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그룹인데, 여전히 아이돌이다.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신경 쓰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사이 송다온이 말했다.
"미안. 바라는 게 많지?"
"아뇨. 바라는 게 확실한 거죠. 많진 않아요."
"그래?"
"네. 오히려 좋죠."
나는 말하며 다시 모니터 쪽을 봤다.
원래 퓨처베이스에는 멜로디를 모호하게 얹는 경우가 많다. 가사도 불명확하게 들린다. 하지만 송다온은 퓨처베이스의 몽환적임도 살리고, 멜로디도 확실하게 만들어 쌓고 싶어 했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겠지만, 목표가 확실하다면 거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건 노가다와 시간뿐이다.
바로 공동 작업을 시작하며, 송다온이 말했다.
"넌 진짜 재능이 있다."
"에이, 시간 들이면 다 하죠."
"해원아. 시간 들이면 할 수 있는 걸 재능이라고, 해. 보통."
"……그래요?"
그럼 뭐.
좀 있나 보다. 재능. 히히.
"하긴, 저 지금 클라루스랑 작업하는데. 재능이 있으니까 여기 있겠죠?"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클라루스 채연재가 앞에다 과일을 골고루 자른 접시를 내려주었다.
"먹으면서 해, 얘들아."
"어! 절 시키세요!"
"뭘 시켜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먹어."
채연재가 포크로 과일 하나를 집어가며 말했다.
"맛있는 거 해주께. 열심히들 해."
그러더니 주방 쪽으로 떠났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니까 송다온이 말했다.
"놔둬, 저 형 원래 저러는 거 좋아해."
"그래요?"
"응. 네가 스키퍼라서 모르는 거야. 우리 팬이었으면 알았지."
"에이, 저 형들도 좋아해요."
나는 대꾸하고, 과일을 집어 먹으며 잠깐 쉬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들어와 있던 강효준의 집 거실을 둘러보았다. 30평대 아파트 거실과 비슷한 크기였다.
"거실 생각보다 별로 안 큰데."
그러자 송다온이 말했다.
"여기 거실 아니야."
"아니에요?"
"응. 여기 그냥 현관에서 거실 가는 통로? 저기 중문 있잖아. 저 문 넘어야 거실."
"……."
하. 어이없네.
황당함에 잠깐 일에 몰두해있던 정신을 바로 차리니까 새삼 비현실적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나 지금 재벌 3세 집에서 음악 내면 무조건 빌보드 핫백 1위에 오르는 클라루스 멤버들이랑 작업하고 있었네……?
뭐……. 그런가 보다, 해야지.
어디서 누구와 일하든, 일해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
난 잠깐 놀라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 * *
앞치마를 한 채연재가 중문을 열고, 사진을 찍는 것도 모르고 작업에 열중해 있는 송다온과 정해원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강효준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내 인스타에 올려도 돼?"
"감사하지. 형 인스타에 뭐 하나 올려주는 거 몇억짜리잖아."
"응, 1억이야."
"세일하네."
"농담이었는데 이것도 세일이야? 아, 적응 안 돼."
그렇게 투덜거리던 채연재가 다시 송다온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다온이 저렇게 재미있어하는 거 오랜만에 본다. 눈물 나려고 해."
"형 자식이야?"
"야, 송다온 열세 살부터 봤는데, 거의 키웠지,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채연재가 바로 작업 중인 사진을 자기 계정에 업로드했다.
[(chae_series)클라루스 채연재 : 음악 할 때가 제일 행복한 우리 송다+천재 피디 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