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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21화 (22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21화

"나는 이제 진짜로 때가 왔다고 생각해."

민지호의 프레젠테이션에는 연습 중간에 지쳐 쓰러져 있는 멤버들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황새벽의 지분이 높았다.

"이 땀과 눈물! 노력!"

"……나 죽은 거 아니냐? 죽은 거 같아 보이는데."

황새벽이 자기 사진을 보며 말하거나 말거나 민지호가 말을 이었다.

"초심! 처음에 시작할 때 먹은 마음!"

그걸 듣다가 신지운이 나에게 소곤거렸다.

"우리 벌써 초심 타령할 연차는 아니지 않아?"

"놔둬 봐, 준비해 온 게 기특하잖아."

그 사이 화면이 넘어가며 불을 켜 앨범 커버가 나왔다.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의 존재를 알렸던 불을 켜! 이때 우리가, 심지어 새벽이 형까지 얼마나 온몸을 불살라 춤췄습니까! 이 무대를 불태우겠다는 저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길 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지호의 열정적인 발표는 부대표의 심금만은 확실하게 울렸다.

부대표가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민지호가 그 이후 몇 가지 안무 동영상들을 레퍼런스로 추가하며 말했다.

"몸을 아끼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줍시다! 강렬하게. 퍼스트라이트가 어디까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팀인지 보여주고 싶어, 해원이 형!"

"어? 나?"

하긴, 내가 곡 만들어야 하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민지호가 소리쳤다.

"형! 업그레이드 불을 켜 만들어주라!"

"업그레이드 불을 켜……."

나는 민지호의 말을 따라서 중얼거렸다.

어떤 면에서 내 계획과 일맥상통한다. 어떤 면에서는.

사실 나는 지호와 반대로, 우리 팀의 보컬 능력을 보여주는 곡을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잔잔한 곡으로.

지금까지는 박선재가 아직 자라고 있으니까, 성대가 상할까 봐 너무 목이 무리하는 곡은 될 수 있으면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다음 앨범은 내년으로 넘어가서, 박선재도 어엿한 성인이 되니까 한번 보컬 자랑을 해볼 생각이었다.

"맞아, 나도 퍼스트라이트하면 퍼포먼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그런데 박선재도 저렇게 동의하고 있고, 나도 민지호의 말을 들어보니 솔직히…… 저쪽도 끌렸다.

몸이 부서져라 무대 위에서 춤추자는 계획.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메인 프로듀서라, 내가 대답하면 분위기가 좀 내 쪽으로 끌려오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다행히 우리 멤버들은 그러지 않아서 나는 다른 멤버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멤버들의 시선이 우르르 황새벽 쪽으로 향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모여든 시선에 황새벽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나는 일상에서 체력을 비축하는 거야. 일은 열심히 해야지."

황새벽은 이 계획이 마음에 드는 것 같다. 황새벽뿐만 아니라 나머지 멤버들도 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내가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들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해, 이 멤버들은."

내 말에 멤버들과 직원들이 동시에 날 봤다. 아니, 뭐. 나 왜. 뭐.

그때 내 정면에서 노트북 휙휙을 해주고 있던 안주원이 말했다.

"제일 사서 고생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저러네."

"……."

착한 안주원이 저렇게 말하면 진심일 테니까 내가 또 할 말이 없고 그렇다.

프레젠테이션 이후에도 시끌시끌하게 멤버와 직원들이 떠들며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진짜 성숙한 망사랑 노래를 해야 할 때라니까요. 퍼라하면 망사랑, 망사랑하면 퍼라."

"퍼포먼스!"

"락……."

"콘서트가 하고 싶어요."

"아, 자기가 원하는 것만 말하지 말고 좀 컨셉 회의하자구요!"

진짜 우리 회사지만 참 시끄럽다, 시끄러워.

나는 시끄러운 건 좋지만, 정리가 안 되는 건 힘들어하기 때문에 회의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정리하지 않아도, 이미 A&R팀에서 계속 나에게 줄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TRV에서 나와 함께 온 비주얼 디렉터 정선미 팀장도 안주원과 무언가 이야기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 스타일리스트인 이예영도 함께하며 이번에는 초커 같은 액세서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여튼 우리 회사 사람들 참, 말 많다. 아이돌이나, 임직원들이나.

나는 잠깐, TRV에서 회의할 때 우리 멤버들을 떠올렸다.

다들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았었다. 직원들이 있으면 분위기가 딱딱하게 경직되고, 직원들이 없어도 회사에서 안 들어줄 것 같은 의견은 잘 내지 않았다.

사실, 내지 않는 게 아니라 못했을 거다.

우리 멤버들이 닥치라고 한다고 닥칠 정도로 기가 약한 멤버들은 아니다.

그런데도 의견을 내기 어려워한 것에 제일 큰 건 '투자를 아끼는 분위기'였다. '너희한테 거기까지는 투자를 못 한다'라는 게, 현실적이면서도 의견 내는 걸 무지하게 위축되게 했다.

그래서 '중소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그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달려간 거니까. 아니, TRV는 딱히 중소도 아니었잖아? 생각해 보니까 화나네…….

그 사이 민지호가 강효준 대표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형, 우리 퍼포먼스 비디오도 세트 멋지게 해서 찍으면 안 돼요? 비싸게? 카메라도 엄청 좋은 거 써서?"

"멋있으면 돈이 뭐가 중요해."

"우리 팀이 하는데 당연히 멋있죠!"

다행이다. 대표가 재벌 3세라.

요즘 들어서는 나와 멤버들이 눈이 낮은 것도 있지만, 강 대표의 씀씀이도 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퍼스트라이트의 지난 활동들을 돌아보면, '별빛', '썸머'처럼 보컬색이나 분위기를 강조한 활동들이 좀 더 음원 순위가 높았고, '마태오', '몬스터'처럼 퍼포먼스와 비주얼적인 면을 강조한 활동들에서 팬들이 확 유입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홍보팀에서 준 데이터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민지호가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서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X버스에서 햇살이들한테도 물어볼까? 뭐 보고 싶은지?"

팬들도 회의에 참여시키자는 민지호의 말에 직원들은 정색하고, 멤버들은 동조했다. 신지운이 말했다.

"야, 네가 물어보면 너무 대놓고 물어보는 거니까 딴 사람이 하자."

"그래!"

"아오, 작게 좀 말해라, 인마…… 효식아, 네가 해."

"네."

한효석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정리한 자료를 보다가 말했다.

"나는 더블 타이틀도 괜찮다고 보는데."

내가 말했는데 멤버들이 무시했다. 아니, 내가 만들어보겠다는데, 이놈들아…….

어느 쪽 방향으로 갈지, 회의가 이어지다 안주원과 회의를 한 정선미 팀장이 다음 회의에서 앨범 제작팀이랑 A&R팀이 컨셉 회의해서 두 방향 다 레퍼런스 마련해 오겠다는 것으로 회의가 끝났다.

회의가 끝나고 연습실로 향하는 동안에도 멤버들은 계속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지 시끌시끌했다.

황새벽은 막내에게 락의 시의성에 대해서 어필하고 있었고, 박선재는 큰 목소리를 낼 힘이 없는 황새벽을 대신해서 그걸 멤버들에게 전달해 줬다.

서로 끊임없이 의견을 내놓는 이 분위기가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 * *

10월 초. 클라루스 송다온의 음원 녹음이 시작되었다.

이번 달 말에 일본 싱글과 함께 아레나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강효준의 집에서 작업을 한 이후로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보름 정도를 작업하고, 연습하고, 작업하고, 연습하고 하다 보니 비몽사몽 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녹음을 앞두고서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동안 해외 패션 브랜드 행사 때문에 해외에 나와 있던 송다온의 입국 기사가 줄줄이 올라왔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의 작업 이야기도 올라왔다.

[클라루스 송다온, 퍼스트라이트 정해원과 협업 위해 입국]

[송다온, 정해원 완벽 시너지 보여줄까…….]

[클라루스 공백기 이후 송다온 솔로 앨범 발매, 빌보드 호성적 기대]

살짝만 기사를 검색해 봐도 기대와 주목이 엄청났다.

빌보드 핫백 진출은 당연한 거라는 기사와 그래도 오랜만인 데다, 솔로로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기사. 거기에 핫백이 안 되면 내 탓이라는 뉘앙스의 기사도 있었다.

……근데 내 탓 맞잖아? 클라루스인데. 입대 전 솔로는 핫백 55위로 진입했는데, 똑같은 클라루스의 송다온이 내 곡으로 진입 못 하면 그냥 내 탓인데……?

뭐 그런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내가 송다온과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알고 있던 부담이다.

나는 녹음을 하러 일찌감치 VVV엔터 1본부 녹음실에 도착했다. 나와 함께 보컬 디렉팅을 해줄, 나와 한 팀, 장석훈이 함께 왔다.

우리는 둘 다 긴장해서, 달달 떨며 송다온을 기다렸다.

그런데 뭔가 녹음실 앞 분위기가 이상했다. 나는 장석훈에게 물었다.

"형, 이거 맞아?"

"아, 뭔가 아닌 거 같은데……."

장석훈도 얼어서 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VVV엔터는 물론이고 VMC의 임원들까지 1본부 녹음실 앞에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뭐 이렇게까지 모이나 싶었는데 송다온에게 문자가 왔다.

[다온이 형 : 해원아 나 10분 뒤에 도착하는데 미리 미안해]

[다온이 형 : 우리 멤버들이 응원한다고 다 따라왔어…….]

[다온이 형 : 부담스럽지 미안ㅠㅠ]

송다온 포함, 클라루스 멤버 여섯 명 전원이 1본부 녹음실 앞에 올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클라루스가 전부 다 모인다고 하니, 여기 임원들이 다 모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 오늘 녹음…… 어떡하지. 멤버들 다 응원 오면 이거 녹음 비하인드 영상 뷰도 엄청 나올 텐데…….

하…….

무지하게 쫄아 있던 나는 이어서 스파이에게 문자를 받았다.

[스파이 : 해원아 이춘형 이사 녹음실 가고 있어]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니, 그냥 녹음하는 것도 긴장돼 죽겠는데, 이 새끼가 왜 온다는 거지?

* * *

국선아의 보컬트레이너였던 백범준은 VVV엔터 1본부 작업실, 그러니까 자기 앞마당에서 녹음을 준비하러 온 정해원을 발견하고 눈앞이 컴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배제되어 버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냥 좀 서로 불편하고 어색하게 오가는 정도일 거라고만 생각했지…….

자길 버리고 가는 앨범이니, 솔직히 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클라루스 팬들의 반응이 너무 훈훈했다. 퍼스트라이트 팬들도, 빅 블루의 팬들도 클라루스의 팬들도 서로 잘 부탁한다며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이러다 1본부에서 정해원의 영향력이 늘어나 조용히 정리되는 것 아닌가 불안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1본부 녹음실 앞에 이춘형 이사가 나타났다.

클라루스의 재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 1본부 임원들은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클라루스와 재계약에 실패할 거라는 가정은 하지 않으면서도, 그냥 재계약 기간이라는 것 자체로 모든 것을 경계하는 상태였다.

특히 본인 스스로가 VMC의 유일무이한 후계자라고 믿고 있는 이춘형 이사 입장에서, 클라루스의 재계약은 이 회사에서 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클라루스는 VMC의 주가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변수였다. 이춘형 이사는 강효준 4본부 본부장을 발견하고 물었다.

"이거 1본부 일 아니야? 네가 뭐하러 와."

"우리 소속사 아이돌이 클라루스를 프로듀싱하는데 그럼 안 와?"

이춘형 이사는 상당히 짜증이 난 상태였으나, 보는 눈이 워낙 많은 날이라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춘형 이사가 말했다.

"나도 한 번 인사하려고 왔지, 정해원 씨랑."

"인사보다 사과 좀 해."

강효준의 핀잔에 이춘형이 혀를 찼다.

"안 그래도 하려고 하지, 사과. 그러니까 잠깐 나오라고 그래."

"뭘 나오라고 그래. 형이 들어가."

"야, 내가 쟤 나이 두 배다, 인마."

"사과할 자세가 안 돼 있네."

"아, 이 X발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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