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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22화 (222/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22화

지금까지는, 적어도 VMC 빌딩 내에서는 이춘형 이사가 기분 나쁜 티를 낸다, 싶으면 물러나는 게 평소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강효준이 말했다.

"왜 욕을 해. 사람들 있는데."

그 패턴을 벗어난 반응에 이춘형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빈정거렸다.

"너 많이 컸다?"

"그럼 내 회사 만들어서 나갔는데, 전이랑 똑같겠어?"

"아, X만 한 회사 하나 만들었다고, 더럽게 유세 떠네."

"형은 그 X만 한 것도 못 만들어봤잖아? 해보든가. 쉬워 보이면."

강효준이 같이 빈정거리는 말에 분을 못 참은 이춘형이 손을 들어 올리려는데, 강효준이 손으로 붙잡아 꽉 눌렀다.

"주가 떨어져. 가만히 좀 있어. 형은 가만히 있는 게 회사 도와주는 거야."

학창 시절 내내 운동을 하던 강효준의 손힘에 이춘형의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효준이 뭐 하냐?"

클라루스의 리더, 서민혁이었다.

강효준이 서민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사촌형 사과 좀 시키려고. 우리 프로듀서한테."

"어어."

원래 서민혁은 대쪽 같은 성격이어서, TRV의 최기문 부대표가 여론 조작을 할 때, 인스타그램에 곧바로 회사를 저격한 전적이 있었다.

[(ordinary_hyuk)클라루스 서민혁 : 우리 미국에 있는 사이에 회사 뭔일 남? 왜 우리 회사 연습생을 다른 회사 후배님 혼자 지키고 있는지? 암튼 브삼 연습생은 다 내 후배니까 건들지 않기^^ 해원 후배님도 건들지 않기^^ 내 후배 건드린 분들 나 한국 가면 보이지 않기^^]

그 이후로도 종종 정해원의 곡을 듣거나, 근황을 확인해 보던 것이 서민혁이었다. 본인도 입에 발린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 살아가며 역경이 있었던 만큼, 자기 눈에는 자신과 닮아 보이는 후배가 겪을 역경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국선아의 원흉인 이춘형 이사가 보이자 특유의 성격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하셔야죠. 사과. 저희 기다릴게요."

서민혁이 말하며 돌아보니, 클라루스 멤버들이 하나씩 컨트롤룸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클라루스 멤버 여섯 명이 전부 모이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1본부 임직원들이 다 나와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었다.

클라루스가 VVV엔터 1본부와 남은 계약 기간은 이제 10개월 정도였다.

클라루스가 대한민국 1강 엔터테인먼트, VVV엔터를 떠날 가능성은 작지만 여섯 명이 모두 잔류하게 하려면 많은 대화와 엄청나게 많은 계약금을 필요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춘형 이사는 클라루스에서도 특히 의견을 대표하는 리더 서민혁의 말을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사과하려고 했다니까. 지금 하고 와야겠네."

아무리 VMC의 대표가 아버지여도, 막대한 지분을 쥔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나면 자리를 보존하기조차 어려울지 몰랐다. 이춘형 이사는 일단 지금만이라도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재계약만 하면, 아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속으로는 이를 득득 갈았다.

이춘형 이사가 작업실로 들어오자 헤드셋을 쓰고 있던 정해원이 뒤를 돌아봤다. 정해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인사도 없었다.

이춘형 이사가 먼저 말했다.

"해원 씨. 나 이춘형입니다."

"네, 국선아 때 뵀었잖아요."

정해원은 누가 봐도 표정에서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춘형 이사는 국선아가 화제성 몰이를 위해, 정해원의 악편으로 만든 인성을 내세우는 것을 승인하고, 심지어는 시청률을 위해서는 더 심해도 된다고 지시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정해원은 이미 그 사실에 대해 다 알고 있었던 듯,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거기다 올해 정해원에게 음식 테러를 한 사생이, 정해원에게까지 접근할 수 있게 한 것에 이춘형 이사가 입김을 넣었다는 것까지 밝혀졌으니 좋을 리 없는 건 당연했다.

이춘형 이사가 말했다.

"미안할 일이 몇 번 있었네요."

"……."

"미안합니다."

이춘형 이사도 지금 당장은 숙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치는 클라루스가 밖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과하자 정해원이 입을 열었다.

"네."

"……."

"……."

이춘형 이사는 '그게 다냐'라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지만, 정해원은 답이 없었다. 그러다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사과해 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진짜 녹음이 급해서요. 녹음 좀 해도 될까요?"

그렇게 등 떠밀려서 사과했는데, 정작 정해원은 이춘형 이사보다 송다온이 쓸 수 있는 녹음 시간이 줄어든 쪽이 더 신경 쓰이는 듯했다.

이춘형 이사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굽혀가며 한 사과를 대충 넘겨버리는 정해원의 태도에 분개했으나, 그 자리에서는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이춘형 이사가 씩씩거리며 떠나버린 후.

오늘 보컬 디렉팅을 맡은 장석훈이 정해원에게 말했다.

"정신 차리자, 해원아."

"응…… 아, 진짜 정신 차려야겠다. 녹음 집중해야지."

정해원이 말하며 자기 뺨을 짝짝 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녹음실로 송다온이 들어왔다.

* * *

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미안할 일이 몇 번 있었네요.'

'미안할 일 몇 번'이라는 말로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과 이렇게 쉽게 사과를 받게 될 줄은 몰라서 생기는 생각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잠깐 사이에 몸에 힘이 엄청나게 들어갔었는지, 송다온이 들어오는 순간 탁 힘이 풀린 뼈 마디마디가 아픈 기분이 들었다. 송다온이 나에게 물었다.

"해원아, 괜찮아? 밖에 좀 시끄러웠는데."

"어어……."

나는 송다온, 그리고 컨트롤룸 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멤버가 잘하고 있나 보고 있는 클라루스 멤버들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대답했다.

"지금 너무 긴장돼서 방금 일 다 잊어버렸어요."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고 말을 이었다.

"저 지금부터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가수 녹음을 하잖아요."

"그럼, 그럼."

"우와……."

그 압박감에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아, 성공했다, 정해원."

내 말에 송다온이 유쾌하게 웃었다. 다행히 녹음 전 분위기가 풀어졌다.

송다온이 녹음을 하러 들어가기 전, 긴장되는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어휴, 떨려."

모처럼의 녹음에 그렇게 떨려 하는 걸 알고 클라루스 멤버들이 소리쳤다.

"송다온 파이팅!"

신기하다. 이제 데뷔 만 1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녹음할 때 저렇게 떨려 하고, 멤버들도 그 사실에 공감하며 응원을 하러 우르르 몰려와 준다는 게. 진짜로 부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여름의 별' 녹음에 들어갔다.

송다온은 꼭 인격이 두 개인 사람 같았다. 녹음실에 들어간 직후부터 여유만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녹음에 들어갔다.

본인이 원하는 게 이렇게 명확한 사람이, 직원들이 결정하는 걸 따라가려고 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 멤버들을 잠시 돌아보았다.

지금은 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송다온처럼 모두의 의견에 끌려가는 멤버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팀의 멤버이자, 프로듀서로서 그런 면은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아무튼. 송다온과의 녹음에서 나는 배울 점이 많았다. 송다온은 자기가 뭘 잘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나와 장석훈이 디렉팅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송다온이 말했다.

"여기 아, 아, 이 부분 다시 갈까? 좀 더 분위기 있게."

"넵. 분위기 있게 다시 부탁드려여."

분위기 있게.

사람마다 생각하는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이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따라가는 보컬을 내보자는 의미로 정확하게 소통된다.

송다온은 서로 소통하기 쉬운 언어로 녹음을 주도했다. 장석훈이 내 얼굴을 보더니 웃음이 터져서 말했다.

"좋아 죽겠지, 아주?"

"아, 너어무 좋아."

나는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존재하던 어떤 음악과 어떤 완벽한 가수가 끄트머리에서부터 차곡차곡 맞아가는 쾌감. 기포 하나 없이 핸드폰에 보호 필름을 붙였을 때의 1,000배쯤 되는 성취감과 행복이었다.

다행히 송다온도 나와 무드가 찰떡같이 맞았다.

"해원아, 잘 나왔지?"

"그냥 미쳤어요."

"그래도 한 번 더 갈래?"

"네! 저 진짜 오늘은 아예 안 지칠 거 같아요."

우리는 그렇게 촘촘하게 음악을 만들어나갔다.

* * *

녹음실 밖, 송다온의 녹음을 기웃기웃 확인하던 서민혁이 강효준에게 말했다.

"해원 씨는 자기 2년 동안 방에 있게 한 사람이랑 대화하고, 바로 저렇게 녹음 집중이 되네."

"어, 그만큼 음악을 좋아해."

"아, 멋있다."

서민혁이 컨트롤룸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송다온과 정해원이 도움을 요청하며, 기다리던 채연재까지 안에 들어가, 네 사람이 신이 나게 녹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창문에 붙어 있던 클라루스의 막내, 홍여름이 말했다.

"아, 나도 빨리 녹음하고 싶다. 노래하고 싶어서 미치겠다, 진짜."

그러자 말수 적은 클라루스 멤버 최효원이 중얼거렸다.

"1본부는 너무 신중해."

그러자 옆에 있던 클라루스 멤버, 박윤태가 말했다.

"효원이 형 눈에 신중해 보일 정도면 진짜 심각한 거지."

"응."

최효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시 컨트롤룸 쪽을 보았다. 다들 응원을 하면서도 동시에, 녹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강효준은 클라루스 멤버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폈다.

의외로, 클라루스가 재계약에서 원하는 것을 맞춰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녹음이 이어지고 있던 저녁 8시.

퍼스트라이트 공식 유튜브에 자체컨텐츠 업로드가 예정되었다.

멤버들, 특히 팬들이 물어보면 거짓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안주원이 약간의 스포를 해놨기 때문에, 팬들은 '만약 퍼스트라이트가 되지 않았다면?'이라는 주제의 꽁트 컨텐츠를 촬영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코미디가 될 거라고 생각하던 팬들의 의견과 달리, 제목이 무거웠다.

[퍼스트라이트 드라마 1 : 퍼스트라이트가 아닌 스무 살]

[뭐야…… 제목만 봐도 철렁한데 이거 맞아?]

[누가 자컨 제목으로 팬을 울려요ㅠㅠㅠㅠㅠㅠ]

[보이드 엔터 나쁘다 햇살이들 울리고]

그리고 예정된 시간, 자체컨텐츠가 업로드 었다. 배경은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연습실에서 같은 티셔츠를 입고 연습을 하는 멤버들이 등장했다.

[ㅋㅋㅋㅋㅋㅋㅋ2002년ㅋㅋㅋㅋㅋㅋㅋㅋ]

[멤버들 커플티 뭐야ㅋㅋㅋ]

[저거 빨간 티셔츠 굿즈로 나오려나??]

[↳붉은 악마 몰라……?]

[↳↳그게 뭐예요???]

[↳↳몰라요ㅠㅠㅠㅠ]

[↳↳전 TV에서 봤어요!]

[↳↳↳내가 진짜 애기들이랑 같이 덕질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멤버들이 연습하고 있을 때, 밖에서 '골!' 하고 소리치는 환호성이 들렸다. 그래도 멤버들은 여전히 연습을 이어갔다.

그러다 휴식 시간. 멤버들이 전부 동그랗게 모였다.

[2002년이라서 X니콜 쓰네ㅋㅋㅋㅋㅋㅋㅋ]

[↳와씨 내 첫 핸드폰 저건데]

[지금 민조 뭐한 거야???]

[↳배터리 충전하는 듯???]

[↳↳핸드폰에서 배터리를 뺄 수 있어????]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2002년 겪은 팬들이랑 안 태어난 팬들 섞여서 우당탕탕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안주원이 말했다.

"축구 보고 싶다."

그러자 신지운이 대꾸했다.

"인간적으로 축구는 봐도 되지 않냐? 보고 더 열심히 하면 되잖아. 월드컵을 못 보는 건 인권유린 아냐?"

그 말에 한효석이 대답했다.

"경기만 보고 끝날 리가 없잖아요. 형 딱 경기 끝나고는 축구 생각 안 할 자신 있어요?"

"하, 논리적이네……."

그렇게 투덜투덜거리다가, 황새벽이 말했다.

"얘들아. 연습하기 싫으면, 우리 이런 상상을 해보자. 만약에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고, 아이돌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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