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23화 (22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23화

녹음이 거의 끝나갈 즈음. 비하인드 영상 카메라 조정으로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사이 나는 이번에 힘줘서 찍은 자체콘텐츠가 업로드된 것을 확인했다.

[퍼스트라이트 드라마 1 : 퍼스트라이트가 아닌 스무 살]

이번 퍼스트라이트 자컨은 사실상, 올해가 끝나면 박선재까지 전원 성인이 되는 걸 기념하는 자컨이었다.

만약 퍼스트라이트가 되지 않고, 우리가 더 어른이 되어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할지.

다시 만나는 장면은 펜션에서 찍었고, 연습생 시절 장면은 댄스 스튜디오 대여를 해주는 곳에 가서 찍었다.

나는 촬영 당일을 잠시 떠올렸다.

회사에서 빌렸다고 해서 가보니, 우연히 아는 곳이었다.

"어, 여기 퍼펙트 엔터 있던 곳인데."

내 첫 소속사, 퍼펙트 엔터의 구사옥이었다.

나는 도배를 새로 한 것을 빼면 그대로인 퍼펙트 엔터를 추억에 빠져 둘러보았다.

"와, 이게 그대로 있네."

내가 문짝이며 작은 창고 같은 걸 보며 신기해하고 있으니까, 황새벽이 말했다.

"넌 진짜 왜 이 소속사를 왔냐. 대형 오디션 본 적도 없다며."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아이돌 되려고 딱 마음먹었는데, 우리 반 애가 자기 작은아버지가 엔터 회사 한다고 하셔서."

"그래도 그렇지, 너는 빅 블루 선배님들 팬인데 소속사 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

"내가 고를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지. 오디션 본다고 다 뽑아주냐. 노래도 못하는데."

"넌 뽑아, 인마. 너 소속사 들어간 다음에는 캐스팅 많이 받았잖아."

그건 그렇지…….

뭐, 어찌 됐든 모처럼 어릴 때 지내던 곳에 오니까 좋았다.

그때는 사장이 자꾸 내가 성형을 해야 한다고 날 볼 때마다 한숨 푹푹 쉬었던 걸 제외하면 재미있었다.

여기서 내가 있던 숙소도 가까웠다. 자고, 눈 뜨면 연습실, 새벽까지 연습하고 숙소 생활을 반복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지금은 MII가 된 우하정, 그리고 우하정과 거리가 생긴 이후 덩달아 멀어진 MII 박재원과 정말로 친했었다.

하루 종일 연습하고, 숙소 오면 셋이서 2층 침대 하나를 썼는데 선착순이라, 매일 먼저 들어가려고 문 앞에서부터 몸싸움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끼리 나름 정한 규칙은 하나 남은 사람은 무조건 아래 침대에서 자는 거였다. 그래서 맨날 2층 침대를 차지하려고 몸싸움하고, 내기하고, 가위바위보도 하고, 심지어는 2층 침대 일주일 이용권을 생일 선물로 주기도 했다.

웃기는 건 그 짓을 매일매일 했는데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하니 섭섭하지만, 그때는 그놈들과 정말로, 친했었다.

촬영을 하고, 잠깐잠깐 쉬는 사이에, 우리 멤버들은 TV 앞에 모여 앉아서 2002년 축구를 보고 있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 긴장하면서 본다. 그중에서도 스포츠 좋아하는 06, 안주원과 신지운은 거의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었다.

"야, 이놈들아. TV 속으로 들어가겠다."

내가 핀잔하자, 신지운이 진짜로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 내가 저 때 있었어야 되는데."

그 말에 보이드 엔터 컨텐츠 제작팀 고석희 피디가 말했다.

"그니까. 진짜 재밌었는데 안 됐다, 늦게 태어나서."

"아, 억울해."

신지운이 진짜로 억울해하는 걸 보며 낄낄거리던 고석희 피디가 강효준 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님도 어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저는 미쳐서 볼 나이였죠. 부모님한테 축구선수 하겠다고 그러고. 야구 좋아했는데, 그 시즌에는 야구도 안 봤어요."

"그래도 그 해에 응원팀 한국시리즈 갔잖아요."

"그니까요. 그땐 또 신나더라고요."

그러더니 축구를 보면서 야구 얘기로 빠져서, 안주원이 강효준에게 말했다.

"형 신바람 야구의 해에 태어났잖아요."

"그니까. 한 해만 늦게 태어났으면 우리 팀 우승하는 거 못 볼 뻔했네."

강효준이 말하면서 보이드 엔터 사내 야구팬들이 웃는데 이상하게 아무도 진심으로는 안 기뻐 보였다. 왜 야구팬들은 아무도 안 기쁘지? 도대체 이러면 잘하는 팀이 있긴 있는 건가…….

아무튼 그렇게 쉬는 시간마다 자그마한 TV 앞에 멤버고, 직원들이고 모여서 축구를 봤다.

2002년 사진을 찾아가며 계속 스타일링을 해주던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타임머신 탄 거 같애. 뭐야. 웃기네."

그 말에 직원들이 한바탕 웃었다.

그 사이 옷을 갈아입었던 한효석이 자기 옷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누나, 허리가 없는데 이거 맞아요? 2002년에는 원래 이렇게 입어요?"

크롭 재킷이라서 허리가 뚫려 있었다. 이예영 스타일리스트가 깜짝 놀라서 이너를 찾아왔다.

"안에 이거 입어야 돼, 효석아."

"아, 그쵸?"

그걸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와, 너 몸 진짜 좋다."

"그렇죠, 뭐."

한효석은 자기 몸이 얼굴만큼이나 잘났다는 걸 매우 잘 알았기 때문에, 자기 배를 내려다봤다. 신지운도 와서 감탄했다.

"야이 씨, 너 복근이 진짜 이쁘긴 하다."

"그러니까 형도 야식을 끊어요."

"끊어도 이건 안 나오지."

덕분에 한효석은 올해 화보 촬영을 꽤 많이 했다. 멤버들이 보기에도 아주 그럴 만하다.

그렇게 스타일링을 재정비한 후 우리는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나는 좀 더 퍼펙트 엔터에서의 숙소 생활을 떠올리다가 다시 촬영으로 돌아갔다.

* * *

"녹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카메라 조정은 금방 끝나고, 녹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여름의 별' 녹음은 휴식 시간 합쳐 한 시간을 약간 넘긴 시간 내에 끝났다.

녹음이 끝나고, 송다온이 진이 쭉 빠져 있으니까 클라루스 맏형, 채연재가 초코우유를 가져다 빨대를 입에 넣어까지 줬다.

"당 챙겨, 다온아."

송다온은 채연재에게 챙김받는 것이 워낙 익숙해서 초코우유를 가져다 마시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서 보면 겨우 두 살 차이인데, 그게 어릴 때 연습생 시설에는 진짜 어마어마한 차이로 느껴진다.

나도 연습생 막 시작했을 때는 먼저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던 형들이 하늘 같아 보이던 때가 있었다.

녹음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보니 클라루스의 리더, 서민혁이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어, 해원 씨."

"안녕하세요!"

처음에 인스타에서 내 편 들어줬을 때도 그렇고, 서민혁은 '이유 없이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왜 잘해주는 건가, 궁금했는데 채연재가 설명해 줬다.

"얘가 너 자기 닮은 것 같다고, 엄청 신경 쓰더라고. 그리고 예전에 해원이가 다온이 깐 적 있잖아."

"……제가요?"

내가 되묻는데, 송다온이 다시 생각하니 욱해서 말했다.

"그래, 네가 나 깠잖아. 네가 '몬스터' 만들 때 내가 그 곡 달라고 했더니."

"아니, 제가 어떻게…… 깐 게 아니라요."

"아니면 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어? 없잖아."

송다온의 말이 맞다. 내가 그때 미쳤었나? 어떻게 클라루스의 멤버가 곡을 달라는데 안 줬지…….

내가 나 스스로를 황당해하는데, 서민혁이 말했다.

"근데 난 그게 멋있더라고. 아니, 자기네 타이틀인데, 송다가 달라고 한다고 주면 안 멋있잖아."

놀리는 거란 걸 알지만, 그래도 서민혁이 내 편을 들어주니까 마음이 놓인다.

어쨌든 서민혁은 팀에서 최연장자가 아닌데도 리더를 맡았을 만큼, 그 역할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서민혁이 그렇다고 하면, 멤버들이 서로 야유하면서도 결국은 따라주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 리더는…… 하…….

고생이 많다. 이따가 고기라도 사 들고 들어가야겠다. 그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고기뿐이니까.

아무튼 클라루스 멤버들 사이에 껴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서민혁이 말했다.

"녹음 끝났으니까 밥 먹으러 가자. 효준이, 갈래?"

그 말에 강효준이 대꾸했다.

"클라루스 한가하네."

"그니까. 안 한가하고 싶은데."

서민혁이 투덜거리고, 송다온이 말했다.

"아니, 내가 녹음을 했는데. 축하를 해야 될 거 아니야. 당연히 밥 먹어야지. 우리 집 갈래?"

"가자, 가자."

내가 뭐라 의견을 낼 틈도 없이, 멤버들이며 스태프들이 죄다 송다온의 집으로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나는 얼떨결에 사람들을 따라서 송다온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녹음이 끝난 기념으로 '밥을 먹자'는 건 내 처음 생각처럼 간단히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송다온의 집에 가자마자 음식이 쌓이기 시작하고, 곧이어서는 클라루스의 라이벌으로도 불리고, 몇 안 되게 남아 있는 비슷한 시기 데뷔한 남자 아이돌이기도 한 빅 블루 멤버들도 시간 되는 사람마다 집에 도착했다.

급하게 연락을 받았는데도 하나씩 모여든 송다온의 집을 보고 있으니까 어처구니가 없었다.

"……와, 클라루스랑 빅 블루가 한 자리에 있을 수도 있구나."

내가 혼잣말하니까 빅 블루의 리더 최정민이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야, 10년 전에는 어딜 가나 이렇게 같이 있었어. 지금 다들 너무 커서 그렇지."

그 말에 서민혁이 최정민에게 말했다.

"형 우리 나중에 예능 꽂아줘요."

"민혁아. 녹음하자. 제발."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스케줄이 맞았는지 영화 촬영 중이던 이준희도 집에 도착했다. 송다온이 나에게 말했다.

"해원아, 네 최애다."

"아니…… 형. 저 클라루스 정말 좋아해요."

"근데 최애는 아니잖아."

"아, 우리 같이 녹음도 했잖아요!"

"하, 그래도 너한테 까인 기억은 영영 못 잊을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이준희가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까인 적 없는데. 최애라 그런가 봐."

하. 이 형들이 날 놀리는 게 재미있구나.

나는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무릎을 꿇었다.

"진짜 깐 거 아니에요."

나의 가벼운 무릎에 송다온과 이준희가 웃으며 날 일으켜줬다.

술 좋아하는 최정민이 왔기 때문에, 술도 한 병씩 늘어났다. 갑자기 이루어진 축하파티는 꽤 재미있었다.

* * *

나는 어차피 술을 안 마시기 때문에, 거기서 밥 먹고, 형들이 이래저래 놀리는 걸 들어주다가 중간에 빠져나와 보이드 엔터 사옥의 내 작업실로 돌아왔다.

이제 또 올해가 끝나고 1월 1일. 우리 막냉이가 성인이 되는 날 한잔해야 하니까 나의 간을 깨끗하게 유지 관리하고 있다.

그날 우리 멤버들은 또 드럽게 많이 마실 테니까.

나는 바로 편곡을 넘기기 위해, 작업실에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녹음이 워낙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서, 보컬 편집을 할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멤버가 여러 명일 때와 한 명일 때는 여러 가지로 작업이 수월했다. 아무리 대월드스타의 음악이라도 작업 과정이 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일하고 있다니까 양이형에게 문자가 왔다.

[양이형 : 미친놈아 안 자냐]

[양이형 : 나 지금 오라고?]

[내가 언제 오랬어 그냥 주무셔]

[양이형 : 미친놈아 네가 거기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자냐고]

하여튼 이 형은 지가 막 이러고 자기 발로 와놓고 내 탓을 한다니까.

물론 내가 혼자 일하는 거 싫고, 같이 일하는 거 좋다고 불쌍한 척을 하긴 했는데. 거기 넘어간 건 지 탓이지…….

[알아쩡]

[사랑해♥]

[양이형 : 디져 X새야]

[좋으면서♥]

그리고 어차피 다음 건 길고 긴 욕일 테니 안 봐도 된다. 히히.

밤새도록 나머지 보컬 편집을 하고 나서, 나는 잠깐 다시 여유가 생겨 우리 자체콘텐츠를 틀어보았다.

그걸 보다 보니, 나는 정말로 내가 퍼스트라이트가 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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