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24화
나는 내가 꾼 예지몽을 생각해 보았다.
그 꿈속에서 나는 퍼스트라이트가 되지 않았고, 쭉 매니저 생활을 하다가 이래저래 눈에 밟히던 연습생들을 데뷔시키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잘 안됐다.
솔직히, 잘 안됐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내 생각에 죄질이 나쁘다.
사람을 정말로 지하까지 끌고 가는 건 오히려 희망이 아닐까.
꿈속에서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거기서 뭔가를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꿈에서 깨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바늘구멍만 한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희망의 빛을 부나방처럼 따라가고 있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새벽 1시.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잔잔했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인 건 아닐까.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내가 팔을 꼬집어 보는데 문이 열렸다. 양이형이었다.
"아니, 너는 회식이 있으면 그냥 회식을 하지. 여길 왜 또 기어들와있어."
"형들 다 술 마시는데 나 혼자 안 마시면 좀 그렇잖아. 그리고 탄력받은 김에 쫙 마무리하고 믹싱 넘겨버리게."
"넌 진짜 서른 넘게 살면 기적이다."
"나 보기보다 진짜 건강하게 살아."
"잠을 안 자는데 뭐가 건강하게 살아. 얼굴이 맨날 희멀게, 이 새끼는."
"아, 나 피부 원래 이렇다고."
우리는 거의 모든 대화를 말싸움을 하다가 바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클라루스의 음악의 믹싱을 몇 년 째 담당해온 엔지니어 팀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딱 점심 먹고 난 시간이라 영상통화를 하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서로 영어로 대화했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아마 그냥 대화를 하면 하와유 아임파인땡큐 하고 대화가 끝났겠지만, 음악이 우리의 언어를 채우고 있었다. 엔지니어 둘까지 네 사람이 믹싱하는 내내 웃고 떠들고,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밤새 믹싱까지 끝나고, 아침이 되어 양이형도 나도 작업실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러다 아침 일찌감치 출근한 강효준의 목소리에 깼다.
"……밤에 일했어?"
강효준이 말해서 양이형이 나한테 손가락질했다.
"쟤가 새벽에 불러 가지고 일하래요."
"저 형이 자기가 제 음악 노예라고 해서 엔지니어들이 기겁하잖아요."
"그럼 이 시간에 끌려와서 일하는 게 노예지, X……."
"또 싫은 척 하네."
"악, X발."
양이형이 괴로워하는 게 참 나의 기분을 훈훈하게 한다.
강효준은 전날 클라루스와 빅 블루가 모인 녹음 기념 회식에서 무지하게 마셨는지, 두 손에 해장용으로 음료수를 박스로 사들고 왔다.
내가 음악을 들어보려고 헤드셋을 찾는 강효준에게 물었다.
"형, 국밥 시켰어요?"
"아니, 핸드폰 들 힘이 없었어."
"내가 시킬게요."
보이드 엔터 전용 해장 음식이 있는데, 사옥 근처에 있는 밥집에서 만드는 매운 콩나물국밥이다. 매운 걸 좋아하는 직원 몇 명이 청양고추를 많이 넣고 맵게 끓여달라고 하기 시작한게 점점 다른 직원들과 우리 멤버들에게까지 퍼져서, 해장에는 매운 콩나물국밥이 공식이 됐다.
내가 전화를 하니까 식당 사장님이 받았다.
-아이구, 해원이.
워낙 단골이고 내가 주문을 많이 해서 날 알게 되셨다. 가게를 접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었는데 우리 회사가 생기고 다시 안정을 찾으셨다고 했다. 우리 회사에 워낙 잘 먹는 사람이 많아서, 인원이 적어도 밥집 하나 살리는 건 일도 아니다. 허허.
"사장님, 저 매운 콩나물 국밥…… 일곱 그릇이요."
-또 지운이랑 주원이 술 마셨어?
"아뇨, 대표님이랑 저랑 이형이 형."
-아이, 그렇구나. 금방 가져다줄게.
그러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금방'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곧바로 두 손에 바리바리 국밥을 챙겨 들고 오셨다. 볼 때마다 점점 표정이 밝아지시는 걸 보니 진짜 우리 회사 사람들이 어지간히 시켜 먹나 보다.
우리는 곧 셋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매운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양이형이 말했다.
"아,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 된다."
그렇게 먹는 도중에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클라루스 송다온이었다. 내가 뜯는 사이에 국밥 하나를 마신 강효준이 말했다.
"음원 바로 보내서 들었나봐."
"벌써들 일어나네, 어제 마시는 속도 봐선 지금 뻗어있어야 되는데."
내가 중얼거리다 전화를 받았는데, 예상대로 목소리가 완전히 맛이 간 송다온이 말했다.
-해원아. 이 곡 좋아…….
술이 덜 깼다. 절대 안 깼다, 이 형.
내가 낄낄거리니까 송다온이 말을 이었다.
-아, 간만에 진짜 재미있게 작업했다.
이 곡이 잘 될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부담도 크다.
근데 진짜로, 재미있게 작업했다. 내 아티스트도 그렇게 생각한다니 지금 당장은 만족스러웠다.
-또 작업하자.
"네, 형. 이제 다시 자요."
-으응…… 아니, 근데. 강효준 출근했어?
"지금 국밥 두 그릇째 마셔요."
-지독한 놈들.
"놈들이라녀. 하나만 저러는데."
-……녹음 끝나고 회식하다 밤샘 작업한 사람은 너 아냐?
……그치. 나긴 하지.
그때 옆에서 채연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이드 엔터 무섭다, 무서워.
-그니까 말이야. 아무튼 난 다시 잘게.
송다온이 그렇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는다. 진짜 어지간히 마셨나보다.
나는 다시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밤을 샜는데 기분이 좋은 걸 보니 맛이 완전히 갔나 보다. 이제 진짜 좀 자야겠다.
* * *
[퍼라 자컨 조회수 개잘나오네]
[↳이거 어때? 재밌어?]
[↳↳꿀노잼이야]
[↳↳↳어ㅋㅋㅋㅋㅋㅋㅋㅋ?]
[↳↳↳궁금한데 봐야되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봐ㅇㅇ 멤버들 이름도 몰라도 그냥 얼굴만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어ㅋㅋㅋㅋ]
[↳↳↳↳↳이거 진짜인 게 다양한 직업군의 잘생긴 남자 나옴 회사원 요리사 신부 미술 선생님 발레리노 스트릿댄서]
[진짜 꿀노잼인게 애들이 막 순발력 있고 그런 타입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얼굴이 미친 듯이 재밌어]
[↳그치 딱히 재미있다는 생각 안 하면서 봤는데 영상 끝나니까 내가 웃고 있더라ㅋㅋㅋㅋㅋ]
[근데 퍼라 멤버들 연기 하나 같이 잘하더라]
[↳일곱 명 다 회사에서 한 번은 연기멤으로 밀어줄 생각했을 얼굴들이라…….]
[↳↳이거 일리있다]
[↳↳ㅇㅇ진짜 그럴 듯]
퍼스트라이트 자체 컨텐츠, '퍼스트라이트가 아닌 스무 살'은 빠르게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영상은 퍼스트라이트 막내, 박선재의 인터뷰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월드스타, 가수 박선재입니다."
만약 아이돌이 되지 않았다면 다른 직업을 뭘 했을까. 멤버들은 회의 전, 음악 관련은 안 된다고 제외했지만 박선재는 블루오션을 노렸다.
'그래도 한 명은 가수여야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 내가 할게.'
그리고 그 선점은 성공적이었다. 박선재가 다리를 꼬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월드스타의 삶이란 고독한데요……."
[ㅋㅋㅋㅋㅋㅋㅋ]
[막냉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고 있으니까 선재가 막내는 막내다 뭘 해도 귀여움ㅋㅋㅋㅋ]
[근데 내가 기억하는 박선재는 찐애긴데 언제 남자 됐어…….?]
[↳그니까 나도 놀랐어 왜 이렇게 잘생겨졌어?]
[↳↳국선아 땐 너무 애기라서 덕질하려다 접었는데 이제 해도 될 듯]
[선재 진짜 은근 정석 미남이다 이목구비가 다 예뻐]
[↳그래서 효석이가 맨날 선재가 진짜 잘생겼다고 그러잖아 맨날]
[↳↳이십 대 중반 정도 되면 진짜 난리 날 듯…….]
"이제부터 저는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던, 하마터면 저와 함께 데뷔할 뻔한 멤버들을 찾으러 가볼 생각입니다. 이제 혼자 활동하는 것이 외로워서, 다시 한번 데뷔에 도전해보자고 부탁할 생각인데요.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그리고 영상은 생활감이 느껴지는 널찍한 오피스로 넘어갔다. 박선재가 나타나자 웅성웅성 소리가 효과음으로 깔렸다. 그리고 일하고 있던 정해원의 자리를 찾았다.
[해원이ㅋㅋㅋㅋㅋㅋ연기 뭐야ㅋㅋㅋㅋㅋㅋㅋ]
[개피곤해 보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돌일 때는 반짝반짝한데 회사원되더니 눈이 죽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원증 등 뒤로 넘겼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근데 정해원 셔츠핏 미쳤다 격무에 찌든 남자가 저렇게 섹시할일…….]
[우리 회사에 저런 남자 있으면 출근이 즐거울까…….?]
[↳나 햇살이지만 그건 아니]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이 햇살이 왜 이렇게 찌들었어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출근해서 짜증날 때마다 한 번씩 보면 울분은 내려갈 듯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오랜만이야."
그러자 정해원이 흘러내린 안경을 두 손가락으로 반듯하게 당겨놓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바쁘니 빨리 말해주겠어? 내가 워낙 유능하고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서 잠깐도 쉴 수 없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와중에 왜 발연기ㅋㅋㅋㅋㅋㅋㅋㅋ]
[모니터에 뭐 써있는 거야?]
[↳집에 가고 싶다 여러 나라 언어로 써놨네]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원이 원래 과수원 주인 역할 하고 싶어했는데 멤버들이 다른 거 하라고 해서 대기업 회사원 됐대 다른 멤버들 정해원 대리님 보게해줘서 고맙네…….]
[↳ㅋㅋㅋㅋㅋ이거 귀엽네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이 커피를 쭉 마시는 사이, 박선재가 말했다.
"내가 월드스타가 되고 나니까, 나와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해서 인터뷰를 하러 다니는 중이야. 형은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응, 나는…… 무역?"
"뭘 무역하는데?"
"……옷?"
"상당히 주먹구구로 일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 지금이라도 저와 함께 데뷔를 준비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말했지만 저는 이 회사에서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요."
"아무 것도 안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전혀 그렇지……. 아니, 애초에 연습생들 중에 신부님이 있는데? 신부님이 아이돌 하신대?"
"앗, 물어보고 올게!"
"데뷔 관련 자료 보고서 작성해서 올려놓으세요. 고려해 볼 테니까."
[보고서 작성ㅋㅋㅋㅋ]
[해원이 드라마 많이 봤구나ㅋㅋㅋ]
[근데 신부님이 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촬영은 곧 신지운이 있는 성당으로 이어졌다.
[퍼라 이 성당에서 촬영 많이 하네]
[↳지운이 어릴 때 다니던 성당이래]
[↳↳허락을 해주신대…….?]
[↳↳↳재미있어하면서 빌려주신다는데ㅋㅋㅋㅋ]
박선재가 사제복을 입은 신지운에게 걸어갔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월드스타 박선재입니다."
[와 X발 개존잘이네ㄷㄷㄷ]
[성당 가면 이런 신부님들 있나]
[↳진짜 저렇게 생기면 신부 하기 너무 힘들 듯…….]
[신지운 X나 날티나게 생겼는데 사제복 왜 잘 어울리냐]
[↳과거 청산한 신부님 같음]
[↳↳누가 이걸로 길게 좀 써줘 봐봐]
[퍼스트라이트 진짜 뭐지 잘생긴 애 지나가면 또 잘생긴 애야]
[퍼라 이거 영상 목적 그냥 영상 화보 아님……?]
[↳그냥 보이드 엔터가 우리 소속사 아티스트들이 이렇게 생겼다고 자랑하는 영상 같음ㅋㅋㅋㅋㅋㅋㅋ]
[↳↳아까 2편 올라왔는데 2편도 봐라…… 그냥 입이 안 다물어짐…….]
[얘네가 데뷔를 못하고 딴 직업 찾는 설정이 말이 되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하마터면…….]
[↳말이 될 뻔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