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27화
같은 시간.
스파이, 박중운 매니저는 VVV엔터 1본부에 있었다.
강효준 대표에게는 여전히 본인이 VVV엔터 사람이라는 자아가 있지만, 보이드 엔터에 좀 더 애정이 커지는 걸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4본부 본부장이 1본부에 와있을 법도 한데 보이드 엔터 쪽에 가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래서 스파이는 자기가 대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얼굴 아는 1본부 직원들을 따라서 스르륵 1본부 쪽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와 있어 스파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2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VVV엔터 1본부 직원들은 벽에 걸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음원차트 순위를 띄워 놓는 모니터였다.
그리고 2시.
박중운 매니저는 VVV엔터 1본부 직원들의 반응을 눈으로 확인했다. 예상 이상이었다.
"1, 1위다!"
"1위 진입! 1위 진입!"
"됐다! 됐어!"
VVV엔터가 떠나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보이드 엔터도 만만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더 잘 나올 수 없는 최상의 국내 차트 차트인 성적이 확인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1본부에 이춘형 이사가 나타났다.
요즘 이춘형은 1본부에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시 클라루스가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재계약이 많이 남지 않아, 주기적으로 이렇게 들락거리며 자기 입지를 다졌다.
박중운 매니저가 한숨을 쉬고 강효준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본부장님 죄송하지만 오늘 한 번 정도는 1본부에 얼굴은 비추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효준 본부장님 : 왜?]
왜……?
스파이가 한숨을 쉬었다. 강효준은 사내 정치와는 매우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먼 정도가 아니라 그냥 음악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실 4본부로 보냈을 때도, 본인은 어쨌든 팀장직이니 낙하산으로 갔다고 믿고 만족하고 지냈던 듯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클라루스가 가장 믿고 의지하던 A&R이 강효준이었다. 오히려 강효준이 VMC 대표의 외조카가 아니었으면, 1본부에서 더 빨리 승승장구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여튼. 저 보이드 엔터는 아티스트나 대표나 똑같은 것들이었다. 이래서야 보이드 엔터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너무 안일한데?
스파이는 앞으로도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이춘형 이사를 감시해주는 것밖에는 보이드 엔터가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파이가 강경하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이춘형 이사님이 1본부에서 생색내고 계세요]
[강효준 본부장님 : 왜??]
물음표가 두 개로 늘어났다.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춘형 이사가 뭐로 생색을 내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축하를 받으면, 받는 사람이 잘한 게 되잖습니까.]
[강효준 본부장님 : 일단 갈게]
스파이는 강효준이 뭔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에 자리에 남겨둔 점심을 걸 수 있었다.
* * *
탑백 차트에 1위로 진입.
나는 이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진짜로, 폭소했다.
내가 너무 신나게 웃어서 민지호도 같이 신났다.
"해원이 형 부자 돼서 신나?"
"민조 뭐 가지고 싶어. 형이 다 사줄게."
"진짜? 그럼 나 호떡믹스."
……음?
"어, 형, 저도."
"응, 효식인 뭐."
"저는 감자 한 박스만 사주세요."
……응? 응?
"해원아. 동생 아니어도 사주니."
안주원의 말에 내가 물었다.
"너도 뭐 밥 사줘?"
"아니. 나 펜 사줘. 요즘 보고 있는 펜이 있는데."
"펜을 왜 사주냐. 사주는 기분도 안 난다, 이놈아."
"야, 펜도 여러 개 사면 비싸."
아, 왜 이렇게 바라는 게 소박해, 이놈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신지운이 말했다.
"형, 나는."
"꺼져."
"아, 왜. 나는 레고."
그러자 박선재가 옆에서 신지운에게 물었다.
"형 레고 받으면 나도 같이 만들어도 돼?"
"야, 같이 사달라고 하자. 내가 사달라고 하면 안 사주니까."
이러고 있는 와중에 나는 얘네가 사달라는 걸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호떡믹스, 감자 한 박스, 좋아 보이고 만드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은 레고를 사고 나서 나는 황새벽에게 물었다.
"새부기, 너는."
"어, 생각하고 있었어……. 소금이랑 식용유 떨어지긴 했는데."
"그건 회사에 사달라고 하자."
"네가 사주는 건 다르지."
얘네가 장난치는 건지, 진짜 이게 가지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하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면 치킨 배부르게 먹을 만큼 시키자고 하는 놈들이니까……. 근데 사실 얘네 배부르게 먹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그렇게 시끌시끌 떠들며, 멤버들이 사달라는 것들 외에 내가 사주고 싶은 것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동안에 핸드폰이 계속 울렸다. 많은 연락이 오고 있었다.
내가 연예인 동료들이 이렇게 많아졌구나, 새삼 신기했다.
연예인 동료뿐만 아니라 패션지. 명품 브랜드에서도 개인적으로 축하 연락이 왔다. 나는 연락에 전부 답장을 했다.
신기하면서, 동시에 쫄렸다.
잘 진행되고 있는 게 맞겠지? 아무 문제 없겠지?
너무 성적이 좋으니까,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멤버들을 돌아봤다. 다들 송다온의 뮤직비디오를 재탕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멤버들이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되자.
* * *
[미친 해원이가 프로듀싱한 선배님 곡 탑백 진입 1위]
[↳이게 되는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우리 해원이 진짜 너무 자랑스럽다ㅠㅠㅠㅠ]
[역시 우리 상서로운 해원이ㅠㅠㅠ]
[퍼라팬들 다 울고 있는데 눈치 없는 질문 같아서 미안한데 해원이 모에화 진짜 소야……?]
[↳응ㅋㅋㅋㅋㅋ]
[↳해원이가 좋아해…….]
[아니 어쩌다가 소가 됐고 왜 좋아해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막냉이가 만들어준 거니까…….]
[↳↳막냉이가 해준 거 아니었으면 이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듯ㅋㅋㅋㅋㅋ]
[타팬이 보기엔 무조건 고양잇과인 줄 알았는데]
[↳그니까ㅋㅋㅋㅋㅋㅋ 제일 안 어울리는 동물을…….]
[소는 순둥순둥하잖아 해원이는 완전 반대 아닌가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해원이 이래서 소 모에화 좋아하나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해원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햇살이들 왜 여기서 울고 있어?]
[↳↳↳↳해원이 순둥이로 보이는 게 꿈인 애라…….]
[클라루스 선배님들 다 해원이 태그해 주셨어ㅠㅠㅠㅠㅠ]
[↳내리 사랑ㅠㅠㅠㅠㅠ]
[↳선배님들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김문재 배우님도 올려주셨다ㅠㅠㅠㅠ]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배우님 팬분들 댓글 왜 다 해원이한테 친구해줘서 고맙다고 하셔ㅋㅋㅋㅋㅋ]
[↳↳배우님이 이런 거 올리신 거 처음이래ㅋㅋㅋㅋㅋㅋㅋ]
[↳↳I인간 여섯 명 보유 그룹이라 김문재 배우님은 남 같지가 않아…….]
[↳↳↳그러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뭐야 갑자기 퍼라 X포티파이 스밍수 엄청 오른다]
[↳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클라루스는 모든 게 규격외구나]
[↳이러다 다음 앨범 X포티파이 진입하는 거 아님……?]
[↳↳나 햇살이지만 그건 아니…….]
[↳↳↳근데 또 모르지??]
[↳↳↳↳맞아 모르는 일이긴 해]
[하 성적충 심장 떨려 새로고침할 때마다 재밌어 죽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넌 진짜 성적충이란 말이 아깝지가 않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나는 긴장을 좀 내려놓으려고, 잠깐 노트북을 들고 작업실로 돌아갔다.
11월 11일.
내내 회사와 숙소에만 있었더니 이렇게 추워진 줄 몰랐다. 안주원이 패딩 입고 나가라고 해서 입었는데 말 안 들었으면 바로 다시 들어갈 뻔했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축하 인사를 진짜 엄청 들었다.
다음 앨범에서, 나는 강한 퍼포먼스 곡과 보컬을 강조한 곡을 둘 다, 타이틀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 볼 계획이었다. 애초에도 나는 곡을 만들 때 수록곡, 타이틀곡을 따로 나누고 하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계획적인 타입인데, 작곡을 할 때는 좀 무계획해지는 것 같다.
이번 자체컨텐츠를 찍으며 비교적, 앨범 컨셉을 정확하게 잡았다.
'20세.'
내년이면 이제 막내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20대가 된다. 내가 지금 만으로 딱 스무 살이기도 하고.
내가 이번 앨범에서 20대의 초입에 대해서 노래해 보자고 했더니, 다들 좋다고 했다. 우리가 전부 성인이 된다는 게, 멤버들에게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작업실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영국에서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이제 영국은 일곱 시쯤 됐을 텐데 일찍도 전화했다.
영상 통화를 켜자마자 에블린 맥긴리, 그러니까 내 조카 정노을이 화면을 탁탁 두들겼다.
"노을아아."
진짜 부쩍부쩍 큰다, 우리 노을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날 보더니 손으로 화면을 자꾸 때린다.
"아, 삼촌 아파, 노을아."
내가 맞는 시늉을 하며 뻘짓 하고 있으니까 영국 햇살이, 매형이 말했다.
-노래 좋아. 여름의 별 대박이야.
"오."
-아, 노을이는 핸드폰 뿌시는 게 아니라, 삼촌 꺼내고 있는 거야.
"진짜요?"
-응.
아, 감동이다.
"노을아, 삼촌 꺼내줘."
-나아!
-노을이가 나오래.
"아, 진짜 노을이 보러 가고 싶다. 언제 올 거예요?"
-크리스마스. 꼭 간다.
"우리 노을이 크리스마스 때 보겠네."
-앤서니 맥긴리도 보겠네.
조카만 찾아서 약간 섭섭했던 매형의 말에 나는 흐흐 웃었다.
날 핸드폰 밖으로 꺼내 주려고 애쓰는 노을이를 보고 있으니까 괜히 찡했다. 내가 말했다.
"매형, 누나는요?"
-우리 허니는 좀 눈물 많이 났어.
"에이, 또 왜."
-원래 안 울었는데, 요즘 종종 울어. 처남이 슈퍼스타 됐으니까 마음이 편해져서.
"그 정도는 아닌데."
-그 정도야. 빌보드, 내 생각에 잘 나와. 미친 곡이야.
매형은 전화할 때마다 한국어가 늘어 있다. 영국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자꾸 한국어가 느는지 신기하다. 이게 덕질의 힘인가. 역시, 언어는 덕질로 배우는 거라는 우리 해외 햇살이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잠깐 전화를 끊었는데, 바로 다시 영상 통화가 왔다. 받아보니 매형이 말했다.
-큰일 났다. 끊으면 노을이 운다.
"그럼 좀 켜놓죠, 뭐. 나 이제 작업할 건데, 우리 노을이 뭐 연주해 줄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긴장도 풀 겸, 잠깐 건반을 건드렸다. 그리고 즉석에서 잔잔한 반주를 시작했다.
노을이를 재우려는 목적이라, 자장가 같은 분위기의 반주였다.
"달도 잠드는데…… 달도. 아, 좋다."
나는 연주를 해주다가, 중간에 작업 생각이 나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중간에 영상 통화 중이었던 걸 떠올리고 화면을 보니까 매형이 잠든 노을이를 안아 토닥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나도 좀 진정됐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X포티파이 진입을 기다리며 계속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거의 바로 송다온에게 전화가 왔다.
"어, 형. 잘 도착하셨어요?"
-응, 잘 왔어.
한국에서 음악방송 사녹을 해놓고 바로 스케줄이 있는 뉴욕으로 날아갔다. 말이 안 되는 스케줄이었는데도 꼭 음방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을 나도 알 것 같았다. 음악방송에서 팬들에게 얻는 에너지가 있다.
"형은 안 떨려요?"
-너보다 내가 훨씬 떨리지!
그렇게 이야기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중얼거렸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한 것 같아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록들을, 송다온이 세워나가고 있었다. 내 말에 송다온이 대답했다.
-벌써 세상이 변한 것 같아? 너 반응이 얼마나 좋은지 못 봤구나.
그러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