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29화
내 생각에, 우리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전체적으로 언어 능력이 좋았다.
05 둘은 물론이고, 한효석도 어릴 때부터 영어를 열심히 익혀놨고, 민지호도 일본에서 산 시기가 있어 일본어를 잘했다.
그래서 어느 쪽의 공연을 가도 걱정이 없다. 든든했다.
그중에서, 황새벽은 특이한 케이스인데, 평소에는 회사에서 받는 외국어 회화 시간에 보통 잘 대답을 못하고 어물어물하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만나면 술술 문장을 만들어냈다.
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이 딱 그랬다.
황새벽이 룸서비스 시킬 때만큼은 영어를 잘한다는 걸 몰랐다면 많이 놀랄 뻔했다. 그때 이미, 황새벽이 룸서비스를 주문하는데 너무 완벽하게 문장을 구해서 안주원과 신지운도 놀랐던 경험이 있으니까.
황새벽은 밴드 에카의 멤버 데이브 레비탄과 허허거리고 웃으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양이형은 음악은 둘째 치고 일단 영어를 잘 몰라서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양이형이 나에게 말했다.
"음악 얘기하다가 저렇게 웃을 일이 있냐?"
"내 말이."
두 사람은 락의 역사를 하나, 하나 되짚어보고 있었고, 요즘 새로 쓰기 시작하는 용어가 말도 안 된다면서 서로 얘기하다가 박장대소했다.
우리 둘은 대화에 끼어들기가 어려워서, 그런 황새벽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도 못 알아듣고 있을 우리를 위해 김선희 통역사가 중간중간 통역을 해주기는 했다. 덕분에 우리도 좀 알아들었다.
-옛날엔 그런 장르는 있지도 않았어!
"아, 그니까요. 근데 데이브 씨."
-무슨 씨야, 그냥 이름 불러.
"그럼 데이브라고 할게요."
황새벽은 평소 낯을 엄청 가리는데, 음악 이야기를 할 땐 그 벽이 빠르게 허물어진다. 저번에 '무엇이 케이팝을 만드는가'의 피디도 엄청난 락덕이라, 둘이 죽이 잘 맞았다.
그나저나 우리는 50대 중반의 아저씨에게 말 놓기 힘든데, 황새벽은 이름 부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름을 불렀다. 하여튼 특이한 놈이다.
그렇게 둘이서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회사 통해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황새벽이 너무 떠들었나, 싶은지 날 힐끔 봤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네가 신나 보이니까 좋다, 야."
나는 우리 멤버들이 신나 보이면 그냥 나도 같이 신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히히.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황새벽이 리더로서 고생하는 게 늘 신경 쓰였다.
"너 평소에 리더라서 좋아하는 거 말 못 하잖아."
내 말에 황새벽이 좀 민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내가 언제 그랬어."
"안 그러는 날이 어디 있냐? 맨날 그러지."
"안 그런다고."
"아, 그런다고."
우리가 그렇게 말싸움하고 있으니까 양이형이 말했다.
"야야, 너네 우정 참 눈물겹다. 근데 좀 나가서 싸워."
"싸우는 거 아니야……."
나는 투덜거리고 황새벽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하고 싶으면 확실하게 말해주라. 양보하지 말고."
나는 진심이었고, 황새벽은 괜히 목을 긁적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 크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야, 해원아. 근데. 양보 이런 게 아니라."
황새벽이 방금 신나게 얘기하던 건 딴 사람이었던 것처럼 얼어서 말했다.
"사실 너무 쫄려. 우상이랑 작업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자체가."
"……어, 이건 진짜 이해 간다."
"그치? 무서워. 우리가 좀 겁이 많잖아."
"많이 많지……."
우리는 서로의 쫄보력의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양이형이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덜떨어진 놈들 덕에 먹고산다는 게 참 그렇다."
그건 우리도 부정할 말이 없어 그냥 같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 * *
여느 때처럼 작업실에서 밤샘을 하다가, 적당히 널브러져 자고 있는데 강영호 매니저가 들어왔다.
"슬슬 회의 시작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그 말에 소파에 누워서 자던 황새벽이 일어났다.
"어, 벌써 아침이네."
"새벽 씨도 여기서 잤어요?"
"네……."
나는 먼저 일어나서,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황새벽을 일으켜 줬다. 보통 이건 우리 막냉이 몫인데, 지금은 박선재가 없으니까 내가 해줬다.
그리고 양이형까지 셋이서 작업실을 나왔다.
양이형과 황새벽이 먼저 회의실로 가고, 나는 강영호 매니저의 등에 들러붙었다.
"형 요즘 하는 일 왜 이렇게 많아요?"
우리와 TRV에서 같이 온 강영호 매니저는 날이 갈수록 회사에서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었다.
내 말에 강영호 매니저가 마냥 싫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니까요. 대표님이 날 너무 좋아해."
"내 말이. 형 왜 이렇게 좋아해, 효준이 형은."
강영호 매니저는 나보다 네 살 위라, 나이도 좀 어리고 2년 전에 제대 직후부터 TRV에서 처음 매니저 일을 시작한 게 전부라 경력도 짧았다.
그래도 강효준 대표는 스파이와 다르게 다른 회사의 제안, TRV의 꼬임에도 의리를 지킨 부분을 되게 높이 사는 모양이었다. 무지하게 믿고, 중책들을 턱턱 맡기는 걸 보면.
물론 그래서 나도 이 형을 엄청 믿는다. 언젠가 강영호 매니저가 독립을 할 수도 있고, 혹은 내 바람대로 강효준이 VVV엔터를 먹어버리면 거기서 자리를 잡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나는 프로듀서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줄 생각이었다. 나도 의리는 있으니까.
박중운 매니저가 처음 배신했을 때, 강영호 매니저가 없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늘 고마운 형이다.
그런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강영호 매니저를 귀찮게 굴며 회의실에 도착해 보니, 우리 멤버들과 직원들이 다 와 있었다.
직원 절반은 미국 시간대로, 나머지 절반은 한국 시간대로 움직이고 있어서, 이렇게 회의가 있으면 이렇게 이른 아침에 맞췄다.
보이드 엔터는 엔터 회사치고는 비교적 괜찮은 회사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빡세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거기에 성적이 안 좋으면 배로 힘들 텐데, 분위기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다들 엄청 피곤해 보이지만…….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직원들이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전부 다 먹는 얘기였다.
대표가 밥에 워낙 진심이다 보니, 식대도 다 지원이 되고, 직원들도 밥에 진심이다. 우리 멤버들이 직원들과 금방 친해지게 된 것도 음식 때문인 것 같다.
하긴 나도 얼마 전에 회사 앞에 피자집에 갔더니, 사장님이 보이드 엔터가 꼭 잘돼야 된다고 했다.
지금 이만한 규모에서도 이만큼 시켜 먹는데 큰 회사 되면 얼마나 많이 먹겠냐고 그러시는 걸 보니 많이 먹긴 많이 먹나 보다.
아무튼 그렇게 먹는 얘기를 하다가, 회의를 시작했다. 자체컨텐츠에 관한 내용이 먼저였다.
템플스테이를 하자는 의견을 가져온 한효석이 말했다.
"모처럼 채식도 좀 하고요. 심신 안정도 시키고. 해원이 형한테서 전자기기도 좀 뺏고요."
"나 뭐어."
내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우리 멤버들도 강영호 매니저도 심지어 강효준 대표까지 박수를 쳐줬다. 하, 억울하네.
다들 마음에 들어 하는데, 안주원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리 멤버들 다 가면 절에 있는 음식이 거덜 나지 않을까."
그 말에 민지호가 같이 걱정하며 말했다.
"우리 배고프면 어떡해?"
"그 부분은 이제 미리 말씀을 드려야지. 근데 지운이 형 괜찮아요?"
한효석이 천주교 신자인 신지운에게 묻자 신지운이 대답했다.
"어, 완전 괜찮지."
그렇게 자컨 관련된 회의를 끝내고 나서, 폴 존스와 에카에게서 온 제안 관련된 회의가 시작됐다. 이 두 팀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말에 직원들이 동시에 탄성했다.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황새벽이 말했다.
"진짜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해원이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일단은 아무래도 퍼스트라이트 활동이 우선이니까요, 어느 쪽이든 우리 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는 쪽을 골라야 한다는 걸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황새벽의 말에 우리 막냉이 박선재가 장성한 자식 보듯 하는 표정을 지었다.
A&R팀 박선혜 팀장도 동의했다.
"그건 너무 당연하죠. 물론 내가 폴 존스…… 너무 좋아하지만, 그래도 최우선은 퍼스트라이트 활동이 맞죠."
그러더니 옆에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있는 나에게 박선혜 팀장이 물었다.
"해원 씨, 괜찮으세요?"
"제 의견이 새벽이 의견이기도 하고요……. 애초에 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무조건 우리 팀이 제일 잘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내가 미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들과 작업하지 않게 될 때, 그 이유가 양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있는 것 같았다. 날 보는 표정을 보니까.
근데 절대 아니다. 나는 무조건 우리 팀이 제일 잘될 것 같다. 진심으로.
일단 거절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A&R팀에서 준비한 두 팀에서 원하는 것들에 대한 정리를 들어보았다. 둘 다 요구하는 게 굉장히 확실했다.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감동적인 건, 나는 솔직히 좀 가벼운 마음으로 한 제안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는 거였다. 폴 존스 측도 생각보다, 내 음악을 많이 들었던 듯했고, 에카도 우리의 공연 영상을 봤다고 했다.
아무래도, 폴 존스는 좀 더 내 개인적인 프로듀싱 능력 쪽에 관심이 있고, 에카는 퍼스트라이트라는 팀 자체와의 콜라보레이션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 내 생각도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그랬다.
회의는 엄청 길어졌고, 점심을 먹고 회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내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럼 핫백 작곡가인 제가 후식 사드릴게요. 커피랑, 디저트 드시고 싶은 거 말해주세여."
"오!"
"잘 먹을게요, 해원 씨. 일단 저 아아."
"저 곡물라떼."
그렇게 직원들이 마시고 싶은 걸 받아 적고 있는데, 신지운이 말했다.
"와, 형, 그 멘트가 사실이라는 게 진짜 멋있다."
히히, 그러게.
아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나 진짜 핫백에 곡 넣었네. 어우, 다시 생각하니까 심장 떨린다.
내가 멘탈이 약하다 보니, 잘 되는 것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게 의지가 된다. 옆에서 한효석이 말했다.
"형, 청심환 드릴까요. 저 핫백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무서운데."
"어, 좀 주라……. 심장 떨려."
한효석은 진짜로 청심환을 들고 다녔다. 웃기는 놈이다. 생긴 건 세상 무서울 게 없게 생겨가지고…….
멤버들은 피자를 시켜서, 다 같이 피자를 먹고 나서, 나는 커피와 디저트를 시켰다.
나는 회의를 하는 내내, 노트북으로 작업 파일을 만져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성인이 된 우리 막냉이, 그리고 황새벽의 매력적인 보컬을 살린 보컬곡을 작업하고 있었다.
우리 팀 보컬은 이 둘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좋은 편이다. 한효석도 타고난 목소리가 좋고, 안주원도 따듯한 느낌의 안정적인 보컬을 가졌다.
저음을 깔아주는 신지운의 보컬도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어정쩡한데, 그래도 나름 많이 따라왔다.
그리고 회의를 다시 시작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박선혜 팀장이 허 웃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돌아보니까, 박선혜 팀장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미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신인이랑 제일 유명한 락 밴드 중 한 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네요."
정신이 없어서 그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게 그렇다. 박선혜 팀장의 말에 다른 직원들도 다들 뒤늦게 이야, 하고 탄성했다.
"캬, 우리 회사 잘나간다."
부대표가 만족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