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30화 (23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30화

회의는 역시, 밴드 에카와 함께 공연하자는 쪽으로 천천히 기울어졌다.

내 생각에는 폴 존스의 곡을 혼자 작곡하는 건 완전히 나한테만 득이 올 것 같아서, 에카와의 콜라보레이션 쪽을 당연히 선호할 줄 알았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폴 존스가 워낙 화제성이 좋아서, 클라루스 멤버에 이어 폴 존스를 프로듀싱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내 이름값을 엄청 높일 테니, 팀에게도 좋다는 의견이 의외로 셌다.

홍보팀 직원의 의견에 이어, A&R팀 팀장, 박선혜가 말했다.

"거기다가 음악색 자체가 에카는 좀 달라요. 아마 콜라보 하는 거, 정말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 팀이 거기 끌려가게 될 수도 있어요. 들러리처럼 보이면 안 되잖아요."

박선혜의 팀장의 말에 신지운이 대꾸했다.

"해원이 형 성격이 어디 끌려가고 그러는 성격은 아니잖아요."

그 말에 우리 멤버들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왜, 이놈들아. 왜 한숨 쉬냐.

안주원이 중얼거렸다.

"해원이한테 참 많이 욕먹었지……."

"야, 그럼 내가 성격이 이상해 보이잖아. 그리고 요즘 안 해."

"하긴."

"예전에도 지금처럼 노래를 잘했으면 내가 뭐라고 안 했지."

"……지금은 잘해?"

"잘하잖아."

"근데 왜 칭찬을 안 해주냐, 나는? 칭찬할 정도는 아니야?"

"칭찬했어! 네가 못 들은 거지. 형, 그치?"

내가 양이형 쪽을 보며 물어보니까, '어' 하고 대충 대답했다. 안주원은 여전히 미심쩍어했다.

"했으면 내가 들었을 텐데."

"네가 너무 녹음할 때 긴장해 있어서 그래. 긴장 좀 풀어. 더 잘할 수 있는 놈이."

나는 투덜거렸고, 평소 녹음할 때 자신감이 좀 떨어지던 안주원이 씩 웃었다.

내가 칭찬에 너무 인색했나 보다. 다음번에 녹음할 때는 많이 칭찬해 줘야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황새벽이 에카의 멤버 데이브 레비탄과 이야기한 내용을 줄줄 전달해 줬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이번 앨범의 컨셉이 '20세'라는 걸 그쪽도 마음에 들어 했던 듯하다.

우리 앨범의 발매일이 1월 말인데, 에카가 원래 일하는 속도가 빠른 팀은 아니기 때문에 아마 일정을 거기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일단은 에카 쪽 일정을 정확하게 해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회의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이어진 두 번째 회의는 나와 양이형, A&R팀이 함께했다.

A&R팀 직원이 말했다.

"에카 쪽에서 일정은 6월 정도가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문제가, 우리 쪽 앨범, 20세 컨셉이 너무 마음에 드나 봐요. 꼭 그걸로 진행이 하고 싶대요."

"그러면요."

나는 말을 이었다.

"이번 앨범을 두 파트로 나누는 건요? 우리 예전에 백야 앨범이랑 극야 앨범을 냈었거든요. 이런 식으로 약간 상반되는 두 스타일로?"

"아, 이거는 정선미 팀장님 불러야겠다."

그리고 TRV에서 나와 함께 온, 앨범 제작, 비주얼 디렉팅을 총괄하고 있는 정선미 팀장이 곧 회의실로 나타났다.

이번 1월 말 앨범을 준비하느라 누가 봐도 정신없이 바빠 보이던 정선미 팀장이 피곤한 눈으로 내 의견을 검토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갈 거면, 해원 씨. 두 타이틀을 아주 다르게 해줘야 돼요."

"이미 더블 타이틀로 기획하는 곡이……."

"아뇨. 그 장르 말고, 내용이요. 기획적인 면이. 예를 들어서 20대의 열정을 강조하는 곡이 있다면, 반대인 곡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야 백야, 극야 앨범 컨셉처럼 연결이 될 수 있으니까."

그 말에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내가 만든 곡은 둘 다, 열정열정한 곡들이었다. '불을 켜'의 후속곡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었으니까. 말 그대로 '이 무대를 찢고, 20대를 불태우자! 무릎 갈자!'라는 느낌의 곡들이었다.

정선미 팀장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두 앨범 연속으로 20대를 불태우자는 곡이 들어가면, 좀 지루할 것 같았다.

박선혜 팀장이 말했다.

"그럼 아예, 콜라보곡은 완전히 다른 컨셉으로 레퍼런스 준비할게요."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저도 황새벽이 하도 락 좀 사랑하라고 해서 만들어 놓은 트랙(반주)이 몇 개 있거든요. 그거 다 보내드릴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강효준 대표가 직접, 폴 존스에게 정확한 상황 설명과 함께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며 거절했다. 폴 존스를 거절하고 나도 박선혜 팀장도 한숨을 푹푹 쉬었다. 솔직히 거절도 쫄렸다.

그렇게 두 번째 회의가 끝날 때만 해도, 나는 이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게, 곡을 맞춰서 새로 만들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몰랐다.

* * *

A&R팀의 레퍼런스와 내가 보낸 예비 트랙들을 받고 사흘째 되던 날 밤. 에카 측에서 연락이 왔다.

에카가 고용한 통역사, 김선희가 말했다.

-어떡하죠? 데이브가, '불태우는 20세'에 관한 곡이 하고 싶대요. 잠시만요, 영상 하나 보내드릴게요.

그러더니 바로 회사로 영상을 보내줬다.

에카의 한 멤버가 '불을 켜 2탄'을 만들고 싶다는 민지호의 의견을 받아들여, 강렬한 퍼포먼스를 위해 만들고 있던 더블 타이틀 중 한 곡을 약식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있었다.

애초에 나도 락 버전 편곡을 고려하고 만들기는 했는데, 기분이 좀. 묘했다. 강효준 대표가 팔짱을 끼고 영상을 보다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다.

"남의 곡을 왜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편곡해. 준다고 한 곡도 아닌데."

아, 저 부분이 약간 찝찝했구나, 내가…….

솔직히 편곡은 좋았다. 역시 레전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데 강효준의 말대로였다.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편곡. 나를, 심지어는 우리 팀, 우리 회사를 좀 우습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연주한 곡이 끝났다. 의도는 알겠다.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밴드니까 믿고 따라와라.

직원들이 내 쪽을 봐서, 내가 말했다.

"음악은…… 좋긴 좋네요. 내가 편곡하는 것보다."

내 말에 강효준이 핀잔했다.

"너 새벽이 때문에 그러지?"

"아뇨, 무슨."

"안 해도 돼. 퍼스트라이트가 콜라보 못 한다고 큰일 나는 팀도 아니고, 팝가수랑 협업한다고 다 주목받는 것도 아니야."

맞는 말이다.

음악이 잘돼야 주목을 받는 거지. 그리고 그 잘된 음악에, 우리의 음악이 있어야 그 주목을 이어갈 수 있는 거지. 그냥 콜라보 하나 하는 걸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건 아는데.

일단 저 편곡도 좋고, 리더라고 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맨 뒤로 돌려 버리는 황새벽을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김선희 통역사에게 말했다.

"일단, 저건 퍼라 1월 말에 낼 타이틀이라 안 돼요. 이미 저걸로 준비 다 들어가고 있거든요. 그래도 에카 쪽에서 바라는 건 알았으니까. 제가 예비 트랙에서 좀 더 빌드업해 볼게요."

-아…… 근데, 해원 씨. 에카 멤버들, 고집 드럽게 세요.

'드럽게'라고 말하는 부분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김선희 통역사가 말을 이었다.

-원하는 대로 해주든지, 안 하든지. 그래야 될 거예요.

"네, 조언 감사합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제 쪽으로 말하세요.

김선희 통역사는 교포라고 들었는데, 처음부터 우리와 일하게 된 걸 엄청 자랑스러워했었다. 말이라도 이렇게 해주니까 안심이 됐다.

내가 말했다.

"한번 해볼게요. 원하는 거 만들어보지, 뭐. 저 음악 잘해요."

나는 장담했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 * *

그리고 나는 황새벽과 함께 일주일 동안 트랙을 붙잡고 빌드업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락과 황새벽이 생각하는 락은 좀 달랐다.

근데 황새벽이 원하는 건 지나칠 정도로, 찐 락이라 본인도 거기까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웬만하면 내 쪽으로 맞춰가며 의견을 정리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밤 열한 시.

네 시간 뒤에 시상식 리허설이 있어 우리는 시계를 계속 확인하며 에카와 화상 회의를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지난번에 영상 보내주신 거 기준으로 해서, 최대한 락 편곡을 해봤는데요. 저희가 아이돌이다 보니까, 완전히 락으로 갈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나름으로 중재를 해가면서 만든 거니까 이 부분 고려해 주세요."

-네, 고마워요, 해원 씨.

김선희 통역사가 말하고, 에카의 멤버들에게 이 내용을 통역해 줬다.

그 후 나는 음악을 틀었다. 락적인 느낌을 주고 싶어서, 황새벽에게 기타를 따로 연주해 달라고 했다.

음악이 흐르고, 황새벽의 전자기타 사운드가 내 작업실에 쫙 퍼졌다.

좋았다. 심장이 떨린다. 황새벽의 연주는 끝내줬다. 들으면서 에카 멤버들의 표정을 보니, 저쪽도 꽤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그렇게 음악이 끝나고, 멤버들이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데 황새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나도 사실, 대충은 알아들었다.

김선희 통역사가 같이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새벽 씨 연주, 너무너무 좋대요. 나중에 무대, 같이 서고 싶을 정도라고.

그 말에도 황새벽이 대답이 없었다. 이어질 말 때문이었다.

김선희 통역사가 말을 이었다.

-근데, 지나치게 케이팝이래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가끔 그런 순간 있지 않나. 그때 이렇게 반박할걸, 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떠오르는 순간. 지금이 그랬다.

나중에 생각하면 이때 반박 못 한 걸 후회할 것 같은데, 그걸 아는데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 짜증이 나서.

그렇게 잠깐 굳어 있다가, 황새벽이 나에게 말했다.

"야, 이거. 하지 말자."

"어? 왜."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우상은 우상으로 남는 게 좋은 것 같다. 가까워지니까 너무 같잖네."

"야이씨."

내가 움찔해서 김선희 통역사 쪽을 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손을 저었다. 김선희 통역사가 황새벽의 말을 그대로 통역했는데, 희한하게 그 말을 들은 에카도 그렇게까지 화내는 것 같지 않다. 이런 게 락스피릿인가…….

레전드들이 듣거나 말거나 황새벽이 말했다.

"이미 충분히 저기 맞췄어. 여기서 뭘 더 해. 그게 어떻게 네 음악이야."

"이번엔 내 음악이라기보다……."

"네 음악이 아니면, 퍼스트라이트 음악이 아니잖아."

그 말에 괜히 좀 찡했다. 그래서 더 발랄하게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이 자식.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평소에 워낙 누워 있어서 몰랐네."

장난을 치면서 말했지만, 고마웠다. 이렇게 생각해 준다는 게.

어이없는 건 그걸 전해 들은 에카 아저씨들도 감동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황새벽의 저 마인드가 락이라면서. 락, 의외로 범위가 넓다…….

그렇게, 파투가 난 상태로 회의가 끝났다. 그 와중에 분위기는 좋았다는 게 특이한 부분이다.

그리고 시상식 리허설을 가려는데,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번호를 보고, 해외사업팀에서 전달해 줬던, 우리가 제안을 거절한 폴 존스라는 걸 알았다.

"어?"

"뭐 해, 빨리 받아."

황새벽이 거북이 같지 않게 재촉해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영어가 들려서, 내가 물었다.

"네? 어…… 영어?"

그랬더니 괜히 자기가 미안해하느라 밖으로 나와 따로 영상 통화를 켰던 김선희 통역사가 말했다.

-제가 통역할게요, 스피커폰으로 해주세요.

"어, 잠시만요."

나는 김선희 통역사에게 '스피커폰으로 할게요'라는 문장을 배워서 말했고, 폴 존스가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폴 존스의 말을 김선희 통역사가 통역해 줬다.

-강효준 대표님한테 앨범 진행에 집중해야 해서 프로듀싱만 하는 건 어렵다고 들었다고 하고요. 20세를 두 가지 관점에서 보는 컨셉 부분도 들었다고 하시네요. 첫 번째는 무대와 열정에 관한 앨범이라고.

강효준 대표가 거절하면서 대외비인 부분까지 말했다는 건, 이 협업이 다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김선희 통역사가 말을 이었다.

-그럼 두 번째 20세에 관한 음악은, 치유에 관한 음악이 어떠냐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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