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33화
음악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나는 뒷좌석에 누워 있고, 운전석에는 부정태가 보였다.
"어, 형."
내가 일어나니까 부정태가 말했다.
"이야, 너 그래도 마신 거에 비해서 빨리 일어났다. 간이 좋은가 보다."
"반대 아니에요? 간에 구멍 나서 술이 빠져나간 것 같은데."
"뭔 소리냐, 그게?"
"전혀 모르겠어요, 저도."
그렇게 말하면서 백미러에 비친 부정태의 얼굴을 봤는데, 최근에 내가 본 얼굴이 아니었다. 혈색이 안 좋아 보였다.
혈색과 달리, 부정태가 경쾌하게 말했다.
"그래도 세상에 이런 연예인이 어디 있냐. 재워줘, 아침 줘, 운전도 해줘."
"근데 형 또 저 데리고 집에 들어가면 형수님한테 쫓겨나는 수가 있어요."
"……이미 오늘 밤도 큰일 났다. 어떡하냐."
"뭘 어떡해요. 일찍 들어가서 냅다 빌어야죠."
"그렇지. 무릎 꿇어야 되니까 관절 좀 풀어놔야겠다."
"형, 방석 꼭 까세요."
"당연하지. 나 무릎 꿇기 프로야."
이상하다.
내가 말하고 있지 않은데 그냥 술술 말이 나온다.
그리고 카페에 도착하니까 내 몸은 저절로 차에서 내려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1월이었다.
이게 그 '과거의 미래'인가 보다. 그러니까 예지몽 속.
그나저나, 나는 꺼진 액정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관리를 안 하고, 군 복무도 마친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 관리를 잘 받은 덕에 그나마 아이돌을 하고 있구나, 싶다. 진짜 별로다.
나는 질색하며 습관적으로 모자를 푹 눌러썼다.
원래 부정태는 단 거 더하기 단 거는 맛있다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디저트는 무조건 단 음료와 먹었다. 다행히 요즘 부정태는 내 강력한 영업으로 제로 콜라와 아메리카노에 맛을 들였다.
액상과당이라도 줄이는 게 어딘가. 부정태의 수명이 길지 않은 예지몽을 보고 왔으니, 어떻게든 수명을 늘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크림이 듬뿍 든 달달한 음료에 디저트를 두 손 가득 사 들고 차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부정태에게 음료를 건네줬다. 부정태가 음료를 쭉 들이켜고 운전을 하는데, 내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박선재22 : 형 주원이 형한테 연락 좀 해봐]
[박선재22 : 삼라만상 VOD 나온다고 또 한바탕 홍보해서 엄청 스트레스 받고 있어…….]
[박선재22 : 또 씹지 말고]
퍼스트라이트가 잘되지 않았다면.
안주원의 원래 소속사였던 TRV는 거의 바로, 녀석을 연기 쪽으로 돌렸을 것이다.
여기서도 안주원은 삼라만상 감독의 눈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아니, 근데 그보다.
"……."
하트를 안 붙였네. 우리 막냉이한테. 기분이 이상하다. 박선재에게 하트가 안 달려 있으면, 빌런즈 둘도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이름 저장한 것을 확인했다. 전부 이름 뒤에 적당히 숫자가 붙어 있다. 핸드폰 번호를 바꿀 때마다 대충 붙여놨나 보다.
나는 걱정이 돼서 바로 안주원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적인 게 아니라 그냥 물리적으로. 예지몽 속의 내 몸은 조종이 안 되나 보다.
스케줄에 도착해서, 부정태는 촬영을 시작하고 그사이 나는 핸드폰으로 삼라만상의 VOD를 구매해서 봤다.
영화관에서도 안 봤나? 안주원이 나오는데? 진짜 말도 안 되는…… 미래다.
VOD를 틀자 어두운 화면으로 시작했다. 나는 겁은 없지만, 무지하게 잘 놀라는 편이라 공포 영화를 즐기지는 않았다. 공포 영화는 불시에 화면에 뭐가 튀어나올 때가 있으니까…….
이 재난 영화는 외계인 침공에 관한 이야기인데, 은근 공포 영화 같은 연출이 있었다.
안주원은 연기를 꽤 잘했다. 처음엔 보자마자 친구 얼굴이 나와 끌까 망설였던 것이 금방 사라져 버렸을 정도로. 그런데 문제는 후반부 캐릭터에 있었다.
안주원의 캐릭터는 처음에 선했다가, 중후반부에 본색을 드러내는 비열한, 약자를 골라서 뒤통수를 치고, 살해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나쁜 게 아니라, 비열하고, 기분 나빴다. 나는 차마 못 보고 그냥 영화를 중간에 꺼버렸다.
그리고 삼라만상 관련 내용을 검색했는데 안주원의 연기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배우한테는 미안한데 얼굴 보면 자꾸 생각나서 기분 더러워져ㅠㅠㅠㅠ]
[처음부터 너무 강렬한 역할로 대중한테 인식된듯 심지어 영화도 대박 나서 이 이미지 벗어나기 쉽지 않겠어]
[그래도 배우 커리어로는 좋지ㅋㅋㅋ]
그러다 나는 감독의 인터뷰를 찾았다.
-사실 주원 씨는 후반에 그런 캐릭터가 되는지 모르고 캐스팅이 됐어요. 소속사 측에만 전달하고, 안 배우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했거든요.
-몰랐다고요?
-네. 제가 반전을 원했거든요. 주원 씨, 얼굴이 너무 깨끗하고 잘생겼잖아요. 저런 사람이 약자만 골라서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그 반전이 너무 좋지 않아요? 이런 캐릭터라는 걸 모르고 연기했기 때문에, 더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심장이 철렁했다.
이 감독…… 개X끼네? 아니, TRV는 알고 있었는데도 더 쓰레기네?
안주원은 착하고, 다정한 녀석이다.
세상이 이렇게 X 같은 걸 알면서도 착하던 안주원은 아마 약자를 골라 폭력을 휘두르고, 살해하는 저 장면을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핸드폰에 지금까지 와있던 멤버들의 문자를 확인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안주원과 관련된 것이어서인지, 다른 멤버들이 보낸 문자는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안주원이 보낸 것들은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매니저 생활을 시작한 이후 반년에 한 번씩 문자를 남겨 놓았다.
[안주원 : 해원아 잘 지내니^^]
[안주원 : 해원아 밥 먹었어?]
[안주원11 : 지운이가 말했던 거 기억나지? 우리 각자 데뷔해도 언젠가 한 팀이 되자고 했던 거. 갑자기 생각이 나. 이제 삼십 대에도, 사십 대에도 아이돌인 선배님들이 생겼잖아.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꿈에 나이가 뭐가 중요해!]
[안주원11 : 나 영화 촬영한다 무섭네ㅜㅜ]
그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문자를 보고 나니, 갑자기 매니저 생활을 시작하던 때가 생각났다.
매니저 생활을 시작했다는 건, 아이돌로서의 꿈이 끝났다는 뜻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아마 안주원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본인이 맡은 역할이 연기자로서의 활로는 열어주겠지만, 아이돌로서의 희망은 닫아버릴 거라고.
안주원은 삼십 대나 사십 대에, 나까지 모여서 무대에 설 수 있을지 모른다는 꿈을 꿨던 것 같다.
예술을 전공해서 그런가. 꿈도 크다, 참.
[박선재22 : 주원이 형 좀 아픈 것 같아 어떡하지]
[박선재22 : 형도 힘든 거 알아서 미안한데 나한텐 답 안 해도 한 번만 주원이 형한테 연락해 줘]
[박선재22 : 그냥 언젠가 같이 무대하자고 주원이 형한테 거짓말 좀 해줘]
이상하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은 울지도 않는다. 저게 안 슬퍼? 쟤네가 누구 때문에 멘탈이 나갔는데. 양심이 있냐, 정해원.
좀 울어라, 인마. 그리고 안주원한테 전화 좀 해.
나는 내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끝까지, 박선재에게도 안주원에게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진짜 나도 참 나쁜 놈이다.
* * *
"안 일어난다는 게 무슨 소리야?"
강효준 대표가 묻자 매니저가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원 씨요. 평소에 잠 없잖아요, 근데 아무리 불러도 안 일어나요. 심지어 들어서 차에 싣는데도…….
"그냥 잠든 게 맞아?"
-네, 그건 맞아요. 색색 숨 쉬면서 자는데요. 아, 왜 이렇게 안 일어나, 섬뜩하게.
강효준은 정해원이 약간의 수면장애가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주 가끔 이유 없이 잠든 상태로 자리를 이동한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몇 걸음 움직이지 않아 그 자리에 웅크려서 계속 잠을 잔다고 했다.
멤버들 말이, 예전에는 힘든 일이 있는 날 그러는 줄 알았는데, 몇 년을 함께하다 보니 그렇게 수면장애가 있는 날에 대중이 없다는 듯했다.
꿈을 꾸는 것 같은데, 깨고 나면 꿈을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보이드 엔터의 운영은 너무 쉬웠다.
신생 회사인데도 TRV에서 빼 온 베테랑 직원들이 채워지고, 알아서 미친 곡을 뽑아오는 프로듀서, 그리고 본업을 즐기고, 언제나 열심히인 아티스트가 있는 회사.
이 쉬운 회사의 가장 큰 리스크는 처음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정해원이었다.
정해원은 다치거나, 아픈 것에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최대한 제어를 해보려고 해도, 정해원 스스로가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쉽지 않았다. 휴가를 줘도, 정해원은 음악을 만들어왔다.
사실 처음부터 강효준은 퍼스트라이트라는 팀보다 정해원이라는 프로듀서 개인에게 욕심이 있었다. 정해원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혹해 회사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지금은 강효준도 멤버들 모두를 정말로 많이 아끼게 되었지만, 여전히 정해원의 성공이 회사의 성공이라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에카와의 협업이 결정됐을 때도, 폴 존스에게 일부러 자세한 일정과 음악을 흘렸다.
최대한 일적으로 정해원을 밀어줄 생각이지만, 수면장애가 같은 체력적, 심리적 리스크가 커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강효준은 시상식 생방송 화면으로 아티스트석에 앉은 퍼스트라이트를 보았다.
정해원이 없을 때 나머지 멤버들은 조금 조용해졌다. 황새벽 말을 들으니 보이드 엔터로 오기 전에는 차이가 컸다는 듯했다. 그래도 이제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많이 변한 거라고.
그래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조용하기는 했다. 신기하게, 그렇게 시끄럽던 민지호가 특히 조용해졌다.
매니저가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강효준이 급하게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어보니 정말로 정해원이 자고 있었다.
"해원아. 정해원."
그리고 진짜로 안 일어났다. 잠결이긴 하지만 표정도 괴로워 보였다.
"병원으로 가야 될까요, 대표님? 아, 근데 생방송 무대 해야 되잖아요……."
"그래도 상태가 이런데 어떡해. 병원 데려가. 애들한테 내가 설명할게."
"네, 대표……."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정해원이 번쩍 눈을 떴다. 그러더니 몸을 일으키고 물었다.
"어, 뭐야. 왜 여기 있어요?"
정해원의 말에 매니저가 주저앉았다.
"아, 해원 씨, 놀랐잖아요……."
"왜, 왜요?"
"잠든 사람이 일어나질 않아서!"
"아…… 몸이 안 좋아서 깊이 잠들었나 봐요."
정해원이 민망한 표정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몸이 안 좋다고, 사람이 저렇게 깊이 잠들 수가 있나?
강효준은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정해원에게 말했다.
"일단 가자. 생방송 무대 올라가야지."
"어…… 아, 그래도 시간 좀 남았네."
정해원이 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일단 대기실로 가서 급하게 환복하고, 메이크업을 받게 했다. 샵에는 못 갔기 때문에 집에서 나온 머리 그대로 올라가기로 했는데 머리가 얼굴빨을 받아 나름 청순해 보이고 괜찮았다.
그렇게 메이크업을 끝내고, 안무팀과 오늘 바뀐 안무를 마지막으로 체크했다.
그리고 백스테이지로 향하기 전, 정해원이 강효준에게 말했다.
"아, 형. 주원이, 그 영화…… 안 될 거 같아요."
"영화 왜. 망할 거 같아서?"
"아뇨, 초대박 날 것 같은데……."
"근데 왜."
"그게요. 아…… 그게 또 문제네. 영화는 대박이 나는구나…… 우와, 어떡하지."
정해원이 횡설수설했다. 평소에는 따박따박 잘만 말하는데…….
역시 수면장애 전문가를 알아봐야겠다고 강효준은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