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34화
기억에서 빠져나와서 눈을 떠보니 나를 내려다보는 강효준 대표와 매니저 형의 얼굴이 보였다.
대기실로 가면서 들어보니 내가 깨워도 안 일어나고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고 했다.
강효준 대표가 말했다.
"그니까 영화가 잘 될 것 같은데, 주원이가 찍는 건 싫다고?"
"네!"
"왜?"
"그니까……."
"주원이 연기 쪽에 집중할까 봐?"
"에이, 걘 연기에 그렇게까지 뜻이 있는 애가 아니에요."
아, 이거 왜 그 초대박 영화를 찍으면 안 되는지 설명을 못 하겠네……. 아무튼 나는 횡설수설하다가 일단 무대 올라갈 시간이 다가와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멤버들의 얼굴이 보이고, 안주원도 보였다.
나는 곧바로 안주원에게 달려가서 와락 껴안았다.
"어? 해원아, 왜?"
내가 평소에 드럽게 치대기는 하는데, 스킨십은 또 별로 안 좋아해서, 안주원이 무지하게 황당해했다.
"얘 왜 이래? 미쳤냐?"
황새벽도 옆에서 황당해하고, 안주원은 얼떨결에 내 등을 툭툭 두들겼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내가 말했다.
"야, 감독님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어?"
"삼라만상 제목도 별로야……. 영화는 대박 날 것 같은데, 네 배역이 마음에 안 들어."
"……."
"그냥 연기하지 마. 내가 잘해줄게."
그 영화는 진짜 안 된다. 안주원은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얻을 것이다.
아니, 근데.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과거의 미래라는 게 뭔데. 예지몽이라면 지금 상황이 바뀌고, 나도 더 이상 매니저 일을 하지 않게 됐으니 꿈속의 상황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안 바뀌고 있다. 그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부정태의 매니저였고,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연락을 받아주지 않는 이기적인 쓰레기였다.
그것도 혹시 진짜 나인가? 이게 꿈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는 건가?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아니, 진짜로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으면…… 나 되게 남의 인생 여럿 망쳤잖아……?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철렁하다.
이번에는 안 그래야지. 절대로 망치지 않아야지.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러다 시상식이 시작되고, 우리는 모두 무대로 올라갔다. 다행히 복잡하던 머릿속은 무대가 시작되며 정리가 됐다.
* * *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 데뷔 초부터 05즈와 한효석,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인 차 두 대로 늘 다녀왔기 때문에 언제나 그 구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네 명이 탄 차는 옆에서 음악을 틀어 놔도 잘 자는 사람들이었지만, 세 명이 탄 차의 인원들은 조용해야 잠을 잘 자는 사람들에 속했다.
그래서 세 명이 탄 차는 보통 음악을 틀어도 이어폰으로 들었고, 말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세 사람도 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효석이 안주원에게 물었다.
"형 오디션은 볼 거죠?"
"모르겠어. 해원이가 너무 싫어하니까 찝찝하다, 좀."
안주원의 말에 신지운이 동감하며 말했다.
"저 형 이상하게 감이 좋잖아. 저 형 말대로 안 했다가 피 본 사람도 많고."
"그치? 나도 그래서 찝찝해."
"찝찝할 만하지. 대박 날 건데 하지 말라는 건 뭐야. 어쩌라고."
신지운이 대신 툴툴거리자 안주원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나 드라마할 때도 그 형 거의 작두를 탔다니까. 나한테 들어온 배역 말고, 다른 역으로 오디션 보라고 했잖아. 그거 말고도 그 형이 말해준 거 다 맞았어."
"하긴, 해원이가 워낙 영화를 많이 봐서. 그쪽으로 보는 눈이 있잖아."
"내 말이. 이쪽으로 그 형 말 무시 못 한다니까."
신지운은 그때 상황이 신기했는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TRV는 처음부터 안주원에게 연기를 시키고 싶어했기 때문에, 아마 이런 기회가 생기면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무조건 하자고 했을 것이다.
안주원이 고민하고 있을 때, 한효석이 말했다.
"형, 우리 퍼라 잘 안됐으면 이런 거 고민도 못 했겠죠?"
그 말에 안주원이 돌아보더니 말했다.
"응. 선택권이 없었지, 그럼."
그러자 신지운이 말했다.
"아, 우리 잘돼서 다행이다."
"그러게."
안주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창밖을 보며 정해원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감독 이름과 영화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건 그냥 트집 같고, 본론은 마지막인 듯했다.
'네 배역이 마음에 안 들어.'
배역이 마음에 안 들 것이 있나? 그냥 재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좋은 사람 같던데. 안주원은 배역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봐야 하나를 생각했다.
안주원이 매니지먼트팀에 연락했다.
[저 어떤 배역인지 정확히 알게 되면 오디션 보러갈게요]
그렇게 보내니까, 잘 알아봐 주겠다고 답이 왔다. 안주원은 그제야 약간 마음을 놓고 창밖을 보았다.
처음에 TRV에 캐스팅이 될 때만 해도 아이돌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실 멤버들 중 처음부터 아이돌을 하겠다고 마음 먹고 소속사에 들어간 건 정해원과 민지호뿐이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대부분 소속사에서 하도 오디션 한 번만 봐보라고 하니까,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돌을 꿈꾸게 된 사람들이었다.
처음이 그래서인지, 안주원은 가끔 자기가 진짜로 아이돌이 하고 싶었던 게 맞나, 의심이 될 때가 있었다.
제일 그런 생각이 강렬해질 때는 아무래도 무대에서 별처럼 반짝거리는 멤버들을 봤을 때.
저런 사람이 아이돌을 하는 건데. 내가 잘못 끼어든 건 아닌가, 염려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대작 영화의 제안을 받고, 진짜로 진행될 상황이 앞에 닥치니 머릿속이 오히려 깨끗해졌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무대 위의 멤버들이 특히 더 자랑스럽고, 부럽게 느껴지는 건 자신도 무대를 잘하고 싶어서였다. 본인도 무대에서 빛나고 싶었으니까.
부족한 건 자신감이지, 야망은 아니었다.
* * *
영화 '삼라만상'에 대한 검토가 이어졌다.
보이드 엔터가 TRV와 가장 다르고,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은 의견 공유가 빠르다는 것이다.
회사에 삼라만상에 대한 자료가 들어오는 대로 바로바로 안주원에게 공유해 줬다.
내 작업실에서 다음 앨범 가사 작업을 함께하던 안주원이 매니지먼트팀에서 보낸 자료를 확인하고 나에게 말했다.
"내 배역. 감독이 좀 이상하대."
"그래?"
"어. 지금 제작사랑 회의 중인데, 회사에서 엄청 구체적으로 물어봤나봐. 일단 후반부 시나리오가 없으니까."
"응."
"근데 잘 말을 안 해주더래. 일단 와서 오디션 보고 생각하자고."
TRV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회사와 아티스트 사이에 있는 벽과 TRV가 가진 안주원을 연기자로 키우려는 욕심을 감독이 알아봤을 것이다.
그리고 배우에게 배역에 관한 후반 설정은 비밀로 하고 오디션을 진행하자고 했겠지.
하지만 보이드 엔터는 딱 봐도 연기보다는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에 집중하는 회사였고, 제작사 쪽에서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배역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안 해줬겠지.
그렇게 짐작하고 있을 때, 안주원이 다시 직원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허 웃었다.
"캐릭터에 반전이 있을 거라는 것만 말해줄 수 있다고 했대."
"아하. 반전."
"너 어떻게 알았어?"
"뭘 알아. 그냥 기분이…… 찝찝했어."
"음……."
안주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회사도 안주원도 내 횡설수설을 진지하게 들어줬다.
TRV와는 다르다. 그 회사는 배역의 설정을 숨겼지만, 지금 보이드 엔터는 회의하는 중간중간에도 안주원에게 내용을 싹 다 전달해주는 중이다. 이제 좀 마음이 놓였다.
안주원이 말했다.
"그럼 나가서 자세한 거 알아볼게. 어쨌든, 개인활동 관심가져 줘서 고맙다."
"어이, 그래그래."
나는 손을 흔들어 안주원을 보내고, 다시 우리 타이틀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폴 존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폴 존스가 말했다.
-해원 씨. 보내준 레퍼런스 잘 받았어요.
"아, 네."
나와 A&R팀에서 상의해 보낸 자료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폴 존스가 물었다.
-지금 올래요, 미국?
"……지금요?
-이건 만나서 얘기할 것 같아서요. 내일 뉴욕 공연인데, 이거 끝나면 유럽 투어라 시간을 못 내요.
"뉴욕 어디서요?"
-라디오시티 뮤직홀이요.
우와, 가보고 싶다.
진짜 가고 싶은데 문제는 내일 아침에 바로 화보 촬영이 잡혀 있다는 거였다. 내가 말했다.
"그러고 싶은데, 내일 화보 촬영이 있어요."
-그래요? 할 수 없지.
그렇게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무지하게 아쉬워하고 있을 때, 상태창이 떴다.
[(여름의 별)의 S급 히트가 확실시됩니다]
[추가 보상을 획득했습니다]
아, 저게 보상이 끝이 아니야?
오.
[필수 스케줄을 조정합니다]
[조정 중…….]
[조정 중…….]
그렇게 상태창이 떴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보 촬영을 하기로 한 잡지사의 에디터였다.
-해원 씨, 지금 회사에도 전달 드렸는데. 너무 죄송해서 해원 씨한테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좋게 보면 좋은 소식이고, 나쁘게 보실 수도 있는데요.
"저 긍정적이에요."
-음. 다온 씨가 일정이 되신대요.
"……진짜요?"
아, 송다온을 잡을 수 있으면 대체해야지……. 내가 생각하는데 에디터가 말을 이었다.
-해원 씨랑 같이 화보 찍는 거, 너무 마음에 든다고.
"아, 같이요? 진짜요?"
-네……. 아니, 설마 해원 씨 화보 취소하고 그날 다온 씨 촬영이라고 알아들으신 거예요?
"다온이 형이면 당연히 잡아야죠……."
-해원 씨. 해원 씨 그럴 급 아니에요. 이쪽 업계 누가 어떻게 해원 씨랑 스케줄을 막 취소해요?
급이 아니라는 말을 이렇게도 쓰나 보다. 에디터가 너무 어이없어해서 나는 괜히 좀 민망해졌다. 에디터가 말했다.
-그래서 VVV엔터랑 보이드 엔터에 연락해 보니까 두 분 일정 조정하면 사흘 뒤인데, 그때 휴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떠세요?
"전 너무 좋죠. 다온이 형이랑 화보."
-아, 진짜 너무 고마워요. 은혜 갚을게요, 제가.
사실 내가 더 좋다. 히히. 내가 물었다.
"근데 내일 촬영장이랑 소품 예약 다 잡아두신 거 아니에요?"
-두 분 촬영한다니까, 다 양해해 주셨어요. 전부 다.
이야. 이게 무슨 일…….
진짜로 스케줄 조정이 됐다. 그것도 모두가 행복한 방향으로.
나는 너무 고마워하는 에디터에게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폴 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시인가 봐요. 지금 갑자기 화보 일정이 바뀌었어요."
-저 보러 오려고 화보를 미뤘어요?
"그냥 저쪽에서 먼저…… 아뇨, 그런 걸로 해요."
나는 말하며 히히 웃었다. 남의 돈으로 여행하는 걸 놓칠 순 없지……. 나는 아직 빚쟁이니까…….
아무튼 폴 존스가 말했다.
-지금 바로 비행기 타요.
"지금요?"
-세 시간 뒤!
나는 전화를 끊었고, 강효준이 폴 존스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하며 작업실로 왔다.
"해원아, 미국을 갈 거면 대표한테 말 좀 해줄래."
"갑자기 결정됐어요."
"미국 가는 걸 갑자기 결정하는 너도 참 대단하다."
"가도 되죠?"
"네가 가고 싶으면 가."
가야지, 당연히.
나는 바로 작업실에서 짐을 꾸렸다. 어차피 거의 여기 살아서, 충분한 짐이 꾸려졌다.
그리고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