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35화
나는 한국에서 오후 3시 비행기를 탔다.
짐 챙기고 비행기에 타는 데까지 3시간. 아슬아슬했지만 무사히 시간을 맞췄다.
생각해 보니까 미친 짓이다. 나는 비행기에 탄 후에야 제대로 판단했다. 그리고 같은 비행기에 탄 안주원에게 말했다.
"야, 이게 맞아?"
"모르지. 나도 얼떨결에 따라왔는데."
그렇게 3시간 만에 출발하려니 문제가 생겼다. 물론 폴 존스 쪽에도 김선희 통역사가 있지만, 우리도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필요한데 빨리 출발하려니 영어가 되면서, 지금 여권을 가지고 있고, 갑자기 미국에 다녀올 수 있는 직원이 없었다.
그래서 시큐리티와 A&R팀 직원 하나, 그리고 회사에 영화 문제로 남아 있던 안주원이 통역도 해줄 겸 따라나섰다. 이렇게 네 사람 여권은 다 회사에 있었다.
사실 내가 좀 우긴 것도 없지 않아 있기는 했다. 애가 고민도 좀 많아 보이고, 뭔가 느낌이 데려가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안주원은 속이 깊은 놈이라, 내 마음을 알아줬다.
"영화 하지 말라고 하더니, 공연장 보여주려고 데려가?"
"그런 것도 약간 있지."
그렇게 좀 정신을 차리고, 나는 멤버들에게 연락했다.
[효준 형이 말했지??? 나 미국 다녀올게 진짜 갔다가 하루 있고 돌아갈 거야]
[민조♥ : 잘 갔다와!!!!!! 맛있는 거 사와!!!!!!!!]
[새부기 : 지호 웬일로 기자 말라고 안 하냐]
[민조♥ : 쭈어니 형이랑 같이 가니까!!!!!!!!!!!!!!!! 형아 해원이 형 미국에서 산다고 해도 잘 데리고 돌아와!!!!!!!!!!]
[내가 미국에서 왜 살아…….]
[나 외국가서 안 살 거야…….]
[안쭈 : 내가 잘 데리고 갈게^^]
[넌 또 왜 그러냐 인마]
그렇게 쓰긴 했지만 안주원이 이렇게 말한 덕에 민지호가 조용해지기는 했다. 하여튼 내가 영국에 잠깐 간 게 큰 문제였나 보다.
그리고 그때 누나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누나 : 나 드디어 간다 한국]
[누나 : 새해는 한국에서]
원래 크리스마스에 오려고 했었는데 너무 비싸서 못 오다가 새해에 비행기 표를 잘 구했다는 모양이다. 한국 돌아오면 우리 노을이 보겠다. 미국에서 선물 사 가야지.
아무튼 다행인 건 우리 둘 다 시상식과 앨범 준비로 너무 바빴었다는 것이다. 둘 다 거의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나도 안주원도 엄청 식욕이 있는 건 아니어서, 식사도 간단히 때웠다.
남의 돈이기는 해도 일등석이라 밥값이 아까웠는데, 다행히 술 좋아하는 안주원이 술을 꽤 마셨다.
우리 팀에서 주량은 안주원이 그냥 독보적으로 제일 세다. 갓 성인 됐을 때는 취하게 마시기도 하고, 웃는 미친놈이 돼서 옆 사람한테 술을 권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특히 내가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있어도, 절대 권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셔도 말릴 거다.
"맛있어? 달아?"
"응. 달아. 넌 안 좋아하겠다."
나는 내 전두엽을 위해서 안 마시는 거지, 술이 안 먹고 싶은 건 아니라서 칸막이를 내리고 안주원이 술 마시는 걸 보며 대리만족했다.
그렇게 있던 중간에, 승무원이 케이크를 가져다주며 생일을 축하해 줬다.
"와. 감사합니다."
미국 시간으로도 내 생일이었다. 이제 오늘로 나는 미국에서도 만 21세다. 으른이다, 으른. 히히.
내가 케이크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안주원이 말했다.
"올해는 생일 두 번이네."
"그니까. 오."
생각해 보니 잘 된 것 같다. 안 그래도 스무 살에 대한 노래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데, 20살이 끝나는 생일을 두 번 맞이해 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나는 안주원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넌 아직 만 21세 안 돼서 미국에서 술 못 마시니까 지금 마셔놔."
"아, 그러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자고, 술 마시는 거 구경하고, 간단히 식사하고 또 자고 하다 보니 금방 뉴욕에 도착했다. 비행이 피곤할 줄 알았는데 하도 많이 자서 오히려 개운했다.
공항에서 나오니 폴 존스가 보낸 매니저가 기다리고 있었다. 뉴욕에서 누가 우리를 알아보겠나, 하면서 가는데 알아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있었다. 신기하다.
공항 앞에서 기다리던 차에 타서, 나는 안주원에게 물었다.
"우리 여기 있는 거 사람들이 알아도 되나? 햇살이들이 우리 뭐 하는지 궁금해하려나?"
"응, 좀 있으면 이제 목격담 올라오고 그러면 많이 궁금해할 거야."
오. 그렇군.
인터넷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는 나는 안주원이 그렇다면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어느새 창밖으로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12월의 28일의 뉴욕이 보였다. 아직 군데군데 크리스마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생일에 운 좋게 뉴욕에 이렇게 와있다. 그것도 형제이자 친구와 함께. 다행인 건 안주원도 이 상황을 엄청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거다.
안주원이 말했다.
"좋다. 연말에 뉴욕."
"그치? 형이 잘 데려왔지?"
"어, 그래그래. 고마워."
안주원이 대충 받아주며 허허 웃는다. 그러더니 현지 매니저와 뭔가 영어로 이야기하며 또 웃었다.
왜 내가 못 알아듣는 얘기를 하면서 웃는 건가, 생각하는데 차가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멈췄다.
길 한복판이었다. 차에서 내리며 내가 물었다.
"여긴 왜?"
"잠깐만 기다려 봐."
안주원이 말하며 광고판 쪽을 가리켜서 그쪽을 봤는데, 앞선 광고가 끝나며 다음 광고가 시작됐다.
내 생일 광고였다.
"……우와."
나는 힘이 풀려서 잠깐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국어와 영어로 맑은 날 가사가 적혀 있었다.
[내가 너를 만날 때, 세상은 맑은 날]
[해원아 생일 축하해!]
"햇살이들 뭐야……."
나는 입을 틀어막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고, 안주원은 내 반응을 진작부터 찍고 있었다. 뉴욕의 광고판에 뜬, 낯선 풍경을 배경으로 두고 보이는 내 생일 광고가 정말로, 기분을 이상하게 했다.
안주원이 나를 찍은 영상을 저장하고, 나에게 말했다.
"전 세계 햇살이들이 너 축하해 주고 있어. 여기만 아니라."
"아, 진짜 기분 이상하네."
"빨리 가서 서봐. 바뀌기 전에 사진 찍게."
"아, 그래. 인증샷 남겨야지."
나는 말하며 얼른 달려가서 광고판이 잘 보이는 곳에 섰다. 다행히 내 생일 광고가 떠 있는 사이에 괜찮은 사진을 얻었다.
생일 광고 앞에서 한동안 감격하고, 구경하다가 우리는 다시 록펠러 센터에 있는 극장, 라디오시티 뮤직홀로 향했다.
잠깐 다른 곳에 다녀왔더니,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아슬아슬하게 공연 시작 직전이었다. 시큐리티가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백스테이지 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로비에 화려한 조명이 있고, 폴 존스의 투어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대스타란 느낌이 확 든다.
원래 여기서는 1월까지 공연이 있는데, 올해 사정상 공연을 이 공연장이 만들어진 어제까지만 공연을 했다.
그래서 폴 존스는 오늘, 12월 28일에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뉴욕 콘서트를 하게 됐다.
이렇게 심장이 떨릴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기자들이 꽤 보였다. 다들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를 텐데 그냥 일단 찍었다. 나는 안주원에게 물었다.
"우리 누군지 모르는데 그냥 찍는 거지?"
"응, 그래 보이지?"
"하긴. 네가 누가 봐도 연예인이긴 해."
"그 정도로 잘생기진 않았다니까."
"뭐래, 미친놈아. 겸손한 게 아니라 기만이야."
"아니, 내가 언제 나 안 잘생겼대? 잘생겼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그 정도라고."
그렇게 말싸움을 하면서 백스테이지로 향하는데 기자들이 말하는 게 들렸다. 클라루스 송다온이랑 일한 프로듀서라는 얘기가 오가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더 빨라졌다.
"이름이 뭐라고?"
"해원? 주원?"
"원?"
"뭐? 원?"
"여기서 그딴 말 하지 마라. 숫자도 둘부터 세."
왠지 뉴욕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내가 안주원에게 물었다.
"왜?"
"어, 보스턴에 있는 야구선수, 원이라고 부르잖아."
"어, 알지, 너랑 신지운이 제일 좋아하는 야구선수."
"뉴욕 사람들에게 나쁜 기억이 있나 봐."
그렇게 말하는 안주원의 표정이 무지하게 신나 보였다. 안주원과 신지운이 야구 보는 거 끼어서 구경할 때, 뉴욕 야구팀이랑 보스턴 야구팀이 라이벌이라고 들은 것 같다. 대충 그런 이야기인가 보다.
아무튼 기자들은 나에게 폴 존스와 협업을 하는 거냐고 물어봤고, 안주원이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용하는 언어마다 성격이 달라진다고 언젠가 들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안주원은 영어를 쓸 때 좀 더 쿨해 보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상태로 백스테이지에 도착했다. 공연 직전의 백스테이지는 익숙했다. 정신없고 소란스럽고 흥분해 있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좀 평온하던 폴 존스가 날 발견했다.
"해원 씨! 생일 축하해요!"
"오, 감사합니다."
폴 존스가 내 생일 챙겨줬다. 하. 나 인생 좀 괜찮게 살고 있네.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는 사이에 폴 존스가 말했다.
"공연 재미있게 보고, 끝나고 얘기해요!"
"네,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와준 게 고맙죠."
그렇게 말하더니 무대로 올라갔다. 그 순간 극장 안에 함성이 가득 찼다.
역사적인 장소에서의 연말 공연.
그냥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하는 팬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생일에 뉴욕에서 공연을 보는 기분. 진짜 감동적이다.
그렇게 공연을 보고 있는데, 우리가 앉아 있는 초대석 쪽 근처에서 누가 우리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60대 여성분이었는데, 스타일이 엄청 멋있었다.
A&R팀 직원이 누군지 알아보고 흥분해서 나와 안주원에게 말해줬는데, 명품 브랜드 수석 디자이너라는 듯했다.
안주원의 얼굴을 엄청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 저렇게 생긴 얼굴은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 당연하긴 하지.
내가 안주원에게 말했다.
"야, 인사하고 와."
"모르는 분한테 무슨 인사를 해."
"어른한테 인사 잘해야지."
"난 내성적이라서 안 돼."
"야, 그래도 우리 팀에서는 네가 비교적 외향적이야."
"노력을 하는 거지……."
우리는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다가 다시 공연에 집중했다.
끝내주는 공연이었다. 기억에 남을 밤이다.
* * *
[JFK에서 일하는 햇살인데 갑자기 주변 분위기가 이상한 거야. 뭔가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서 돌아봤는데 해원이랑 주원이가 지나가고 있었어!!! 미친 건가? 내 인생에서 이런 일이? 맞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심장 멎을 뻔했어……. 정말 두 사람이 지나가는데 주변 분위기가 바뀌더라]
뉴욕 현지팬의 목격담이 올라오자 퍼스트라이트 팬들이 한바탕 시끌시끌했다.
[해원이랑 주원이 뉴욕이야? 왜?]
[미친 나 지금 록펠러 센터인데 해원이랑 주원이 봤어ㅠㅠㅠㅠ 라디오시티 뮤직홀로 들어가더라ㅠㅠㅠ]
[↳거기 왜? 공연보러?]
[↳↳지금 알아보니까 폴 존스 투어 하나봐!]
[↳↳↳어?????????]
[↳↳↳우리 애들 폴 존스 알아?????]
[와 미친 현지 기사 떴는데 폴 존스랑 해원이 협업하는 것 같다고ㄷㄷㄷ 추측성 기사니까 걸러서 듣자!]
[↳어??????]
[↳아니 이게 뭐야ㅋㅋㅋㅋㅋㅋㅋ협업 아니어도 폴 존스한테 초대 받고 간 건 맞는 거네??]
[↳해원이 인맥 어디까지 뻗어가는 거야……?]
[↳이쯤 하니까 솔직히 해원이 사교성까지도 재능인 것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