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36화 (23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36화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무대 뒤로 향했다. 폴 존스의 초대로 온 인사들이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우리와 함께 공연을 본,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라는 사람이 안주원 쪽으로 왔다. 그리고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다행히 안주원은 영어로 말할 땐 낯을 덜 가리는 편이었다. 원래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퍼스트라이트가 해외 작업을 할 일이 많아지면서 점점 책임감이 더해지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나의 짧은 영어로 언뜻 듣기에는 통성명을 하고, 키나 이런 걸 물어보는 것 같았다.

공연 중에 디자이너와 함께 온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퍼스트라이트는 케이팝 아이돌 팀의 멤버들이라는 걸 전달받았다고 했다.

안주원은 자연스럽게 내 소개를 해줬는데, 디자이너가 내 곡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빈말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얘기하고 와."

나는 안주원에게 등을 툭툭 치고 말한 후, 자리를 비켜줬다. 사실 비켜주려고 비켜준 게 아니라, 인사해야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현지 매니저가 계속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인사를 시켜줬다.

나와 A&R 직원이 짧은 영어로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다행히 김선희 통역사가 와서 통역을 해줬다.

우리는 그때야 우리가 대화하던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우리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음악 방송사 제작진, 영화 관계자, 그리고 폴 존스의 레이블이 속해 있는 초거대 음반사의 관계자…….

나도 A&R 직원도 처음에는 영어를 못하니까 횡설수설했는데, 몇 번 비슷한 대화를 하고 나니까 적당히 대답을 할 수 있게 됐다.

매번 폴 존스와 작업을 하게 될 거냐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한번 작업하자는 이야기로 끝났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폴 존스도 대기실로 돌아왔다. 폴 존스는 한동안 바빴고, 다행히 나도 그랬다.

나는 폴 존스와 이야기할 수 있는 순서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폴 존스가 말했다.

"그럼 이제 회의 좀 할까요?"

그렇게 말해서 이제 회의하자고 안주원을 돌아봤더니, 녀석도 날 봤다. 그러더니 내 짧은 영어로 듣기에도, 저 멍청이가 디자이너의 제안을 거절하는 게 들렸다.

가까운 곳에 매장이 있으니까 의상을 입어보자고 했는데, 안주원이 나와 스케줄이 있다고 거절하고 있는 거였다.

내가 잽싸게 달려가서 말했다.

"뭔지 몰라도 해보고 와."

"뭔지 모르는데 왜 해보래?"

"가서 사진도 찍고, 인스타그램도 올리고 그럴 거 아니야?"

"그렇긴 하겠지……."

"빨리 회사에 전화해. 뭐 해."

그렇게 재촉해 봐도 안주원이 머뭇거려서, 그냥 내가 회사에 전화했다.

그 후에도 '이러려고 뉴욕에 온 게 아닌데……'라고 헛소리하는 안주원을 시큐리티와 함께 등 떠밀어 보내 버리고, 나는 A&R 직원, 폴 존스, 그쪽 직원들과 회의에 들어갔다.

다행히 콘서트가 끝날 무렵에, 여권을 챙긴 보이드 엔터 직원들도 더 도착했고, 김선희 통역사도 있어 회의 진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폴 존스는 영상 통화를 할 때도 느꼈지만, 엄청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음악 이야기를 좋아했다.

폴 존스는 내가 먼저 보낸 레퍼런스와 트랙들을 하나씩 같이 확인해 보며 말했다.

"구상은 다 너무 좋아요. 그런데 딱 이걸 해야겠다, 이런 확신이 안 서요."

"음……."

나도 그 마음을 알겠다.

애초부터 폴 존스는 나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우리 회사 쪽에서 무리하게 퍼스트라이트와 협업을 부탁한 거지.

하물며 폴 존스가 굳이, 이 콜라보에 응할 만큼 좋은 제안이었나? 라고 묻는다면 나도 대답하기 어렵다.

폴 존스가 말했다.

"해원 씨를 여기까지 부른 건 솔직히, 다시 한번 작곡을 부탁해 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

"계속 같이 작업을 해보니까 알겠어요. 우리가 잘 맞는 사람이고, 나한테 정말 필요한 프로듀서라는 걸."

"좋게 봐준 건 감사한데요."

"해원 씨. 저랑 일해봐요."

"……."

"여기서 일하다 보면, 다른 더 큰 기회도 계속해서 찾아올 거예요. 성공을 생각하면……."

"저는 성공이 사실, 그렇게 욕심나지 않아요."

내 말에 폴 존스가 멈칫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성공을 하고 싶어 하는 건 우리 멤버들이에요. 지호가 그렇고, 효석이가 그렇고. 지운이도 그렇고. 그 녀석들은 정말 야망이 크거든요. 그리고, 저와 같이 온 주원이도요. 걔, 진짜 아닌 척하는데 솔직히 같이 작업하다 보면 다 보여요. 걔는 우리 팀이 최고가 되기를 원해요."

"……."

"폴, 저는 처음 음악 시작할 때부터 바라는 게 같아요. 그냥 걔네랑 음악 하는 거요. 퍼스트라이트 음악 만드는 거."

내 말에 폴 존스가 잠시 생각하더니 씩 웃었다.

"그럼 할 수 없죠. 아, 미국에서 태어나시지. 저랑 먼저 만났으면 달랐을 텐데."

"아, 폴이 한국에서 태어났었어야죠."

"그 방법도 있겠네요."

그렇게 우리는 낄낄거렸고, 나초를 집어 먹으며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에도 파투가 날지 모른다는 생각은 잠깐 미뤄두고, 우리는 서로의 스무 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폴 존스에게는 6월, 나에게도 어제로 마무리된 만 스무 살에 대하여.

폴 존스는 비행기 안에서, 시차로 인한 두 번째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 나도 오늘 그랬는데."

"……아, 맞다. 해원 씨 생일날 밤인데 지금 나초만 내놓은 거예요, 내가?"

하, 뭐래.

"그냥 나초가 아니라, 생일에 뉴욕으로 날아와서, 폴 존스랑 마주 보고 앉아서 집어 먹는 나초잖아요."

내 말에 기겁해 있던 폴 존스가 약간 안심했다. 그래도 이렇게는 안 되겠는지, 직원들과 뭘 막 이야기했다.

그사이에, 나는 비행기에서 맞은 두 번째 생일에 대해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있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치유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 보자고 했죠?"

서로 다른 날짜에 끝난 스무 살. 그리고 하늘에서 두 번째로 맞은 스무 살의 끝.

나는 거기에 대해 느낀 것을 건반 위에 그렸다.

* * *

강효준 대표는 최근 VVV엔터 4본부의 카일룸이, 생각 이상으로 순항하는 것에 놀라워하는 중이었다.

VVV엔터의 자본과 천재 프로듀서의 프로듀싱 속에서 태어난 카일룸은 시작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 중이었다. 이러다 음반 판매에서 퍼스트라이트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VVV엔터 쪽 예측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강효준이 보기에 퍼스트라이트의 성적은 눈으로 보이는 지표만으로 확신할 수 없는 무언가 있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각종 사이트의 팔로워 수, 인터넷상에서의, 특히 해외 지역에서 급상승 중인 언급량.

뭔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고 있었다.

정해원과 안주원이 뉴욕에 가 있는 사이, 나머지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의무감을 가진 것처럼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강효준은 연습실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바닥에 누워 있는 황새벽을 멤버들이 옹기종기 둘러싸고 회의 중이었다. 이상한 장면이었다.

황새벽이 말했다.

"야, 누가 나 빛 좀 가려줘."

그러자 박선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그럼 형 잠들잖아."

그리고 연습실 구석에서 머리를 쥐어짜던 신지운이 말했다.

"옆에서 제일 갈구는 둘이 없으니까 가사가 안 나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해원이 해외에 있어 평소보다는 축 처져 있던 민지호가 한효석에게 말했다.

"네가 하면 되겠다."

"반대 아니냐."

"너 맨날 트집 잡잖아. 트집쟁이잖아, 트집쟁이."

"내가 언제."

그렇게 억울해하는 한효석을 신지운이 불렀다.

"이건 민조가 맞지. 와서 나 좀 갈궈줘 봐."

"아, 저 그런 거 못 하는…… 형, 여기 앞뒤에 자몽이라는 말이 나올 일이 뭐가 있어요."

"자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내가 자몽이잖아."

"헛소리 좀 하지 마요, 형. 사람이 자기가 개라고 우기면 이상하잖아요."

"난 강아진데!"

"난 곰돌이."

민지호와 박선재가 번갈아 말하고, 황새벽이 한 박자 늦게 중얼거렸다.

"거북이……."

한효석이 그걸 보더니 신지운에게 말했다.

"형, 저 정도는 닮아야 거북이라고 우길 수 있는 거죠. 형은 자몽이랑 닮은 부분이 없잖아요."

"상큼함이 닮았잖아."

"형 안 상큼해요."

서로 티격태격하는 걸 잠시 구경하던 강효준 대표는 방해하지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모처럼 좀 사람 꼴이 되기 위해 퇴근하려는데, 회사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정해원이었다.

안주원이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와 피팅을 하러 가게 보내달라는 거였다.

"잠깐만 지금 다음 비행기로 직원들 도착하니까, 주원이한테 위치만 확실하게 보내라고 해."

-네엡.

"가서 일 만들어오지 마라."

-내가 뭐 무슨 일을 만들어간다고 그래요. 아무튼 전 내일 비행기 타고 갈게요. 우리 멤버들한테 저 없어도 울지 말라고 꼭 전해주세요.

"안 울던데."

-아닌데, 속으로는 울고 있을 텐데…….

정해원이 툴툴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퇴근하려고 했는데, 안주원이 일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바로 안주원과 컨택 중인 브랜드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고 있으니 또 다른 곳에서 연락이 걸려왔다.

음악 방송사 제작자였다.

전화를 받아보니 정해원과 폴 존스의 공연장에서 '친해졌다'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지? 미국에 도착한지 하루도 안 돼서, 그 나라 음악 방송 PD를 만나서 친해져?

강효준이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에, 영화 제작사 직원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강효준은 좀 더 심각해졌다.

헐리우드 유명한 첩보 스파이물 시리즈 중 하나를 제작하는 제작사였다. 정확히 언제, 시리즈를 만들 거라는 말은 없었지만, OST에 제목이 들어가는 이 시리즈의 음악을 맡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 계속해서 신인들을 살펴보고 다니던 중이라고 했다.

그중 하나가 폴 존스였다.

-해원 씨가 같이 작업할 수도 있는 모양이죠? 작업물이 궁금하네요.

전화를 끊자마자 평소 겁이 없는 편이던 강효준이 힘이 쫙 빠져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영화 제작사 쪽의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클라루스 송다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있었는지, 송다온이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왜, 인마…….

"나 지금 누구한테 전화 받았는지 아냐?"

강효준이 자기가 받은 전화에 관해서 설명하자, 송다온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낄낄거렸다.

-야, 같이하기로 한 것도 아니고. 전화 받은 걸 자랑하냐? 나 클라루스야.

"누가 너 클라루스인 거 모르냐."

-끊는다. 나 졸려.

"생각나냐. 우리 처음에 미국 예능 출연 제의받았을 때."

강효준의 말에 송다온이 툴툴거렸다.

-그 얘기 왜 해. 잠 깼잖아.

"우리 다 소리 질렀잖아."

-맞아. 진짜 난리였지.

"그때 생각나. 요즘."

-재미있었지, 그때…….

"다온아."

-어.

"재계약할 때 4본부도 생각해 줘."

그 말에 송다온이 어이없어서 웃더니 말했다.

-싫어, 인마. 네가 뭘 잘해줬다고. 배신자야.

"아, 내가 4본부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안 간다고 하면 안 갈 수도 있었잖아.

"어떻게 안 가. 무조건 가야 됐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듣던 송다온이 말했다.

-벌써 우리 얘기 거의 다 끝나가.

"1본부?"

-아니.

"……."

-…….

클라루스가 1본부에 안 가겠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다온아, 다시 얘기하자."

-우리 거의 마음 정했어.

"……."

-우리 앨범 두 번째 미뤄지고 있잖아. 내 개인 활동 하면서, 형들이 더 확신한 것 같아.

"……."

클라루스는 끝을 생각하고 있었다.

기회인가? 아니면 그나마도 희망이 없나.

강효준이 생각하며 한숨 쉬고 있을 때, 정해원과 함께 뉴욕에 있는 A&R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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