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37화
강효준이 전화를 받자마자, 흥분한 A&R 직원이 말했다.
-해원 씨가요, 아니. 갑자기 얘기하다 말고 피아노를 막 치는 거예요. 지금 표정 보니까 폴 존스 이미 죽었어요, 죽었어. 지금 바로 보내드릴게요.
정해원이 폴 존스를 어느 정도는 설득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강효준은 클라루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났다.
뭐 서로 합의가 안 되는 부분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정해원의 성공에 신경을 쓰느라 거기까지 참견할 여력이 없었다.
강효준은 결국 오늘도 퇴근을 포기하고 자리에 앉아, A&R 직원이 촬영해서 보내준 정해원의 피아노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 * *
나는 건반을 누르며 말했다.
"떼창하기 좋은 노래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서부터 베이스가 들어갈 거예요."
그리고 내가 작곡을 할 때 적당히 가이드를 만드는 해언어를 흥얼거렸다.
우리 멤버들은 이제 해언어에 익숙해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인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오늘 탄 뉴욕행 비행기와 폴 존스와의 대화를 녹인 음악을 스케치하듯이 간략하게 그려나갔다.
[안녕 잘 가 우리의 스무 살]
1월 말에 나올 '불을 켜'의 후속곡인 음악은 스무 살의 열정. 그리고 지금 만들 그다음 음악은 스무 살을 보내며, 라는 가사로 연결해 볼 생각이었다.
나는 짧은 영어로 엉성하게나마 영어 가사를 만들어 붙였다. 그래도 클라루스 채연재와 작업하며, 영어 가사 쓰는 것에 좀 익숙해진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안주원에게 전화했더니 받아서, 음을 들려주니 틈틈이 의견을 보내줬다.
금방 어느 정도 노래가 만들어졌다. 원래부터 극장이라, 피아노 소리가 이 공간에 너무도 기분 좋게 울렸다.
[안쭈 : 이거 우리한테 불러주는 노래야?]
작곡을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만들면서 느끼는 기분을, 가장 먼저는 우리 멤버들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 팬들이 느껴준다는 걸.
내가 '이거다'라고 생각하며 만들면, 우리 멤버들은 언제나 대답해줬다. '이거다'라고.
폴 존스는 우리 멤버는 아니지만, 회의를 하며 느꼈다. 나와 음악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갑자기 이 음악이 떠올랐을 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폴 존스는 이 음악을 좋아할 거라고.
음악이 끝나고, 내가 돌아보니 보이드 엔터의 A&R 직원은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고, 폴 존스의 크루들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폴 존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1, 2절 편곡을 다르게 한다는 거죠?"
크, 내 해언어를 알아듣다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예요."
"내가 2절 벌스 들어가면 되나?"
"아, 진짜 잘 통하네."
폴 존스는 고개를 끄덕인 후 크루들과 좀 더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고, 우리 A&R 직원이 폴 존스 측과 보이드 엔터로 영상을 보내두었다.
그사이에 나는 소파에 누워서 잠깐 잤다. 그렇게 많이 잤는데도 또 잠이 온다.
그때 스파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스파이 : 세 시 비행기지?]
……어?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나 뉴욕에 있는 건?]
[스파이 : 아 이건 어렵게 찾아본 거 아니야 그냥 출발하는 게 세 시 비행기 하나라서. 그리고 너 뉴욕에 있는 건 목격담이 계속 올라오더라고]
아니, 이 형은 왜 내 목격담을 찾아보고 있는 거지…….
VVV엔터에 투입된 스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역스파이짓을 하면 나도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그럼 역역스파이…… 피곤한 생각은 그만하자.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데 스파이의 문자가 이어졌다.
[스파이 : 그보다 아무래도 클라루스]
[스파이 : 재계약 안 할 생각인 것 같다. 1본부 분위기가 엄청 어수선해]
[스파이 : 멤버분들 대화하는 거 몇 번 들었는데 개인 활동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각자 활동에 집중하자는 분위기야]
클라루스가 재계약을 안 해?
뭔가 그 한 문장이 나에게 철렁 다가왔다.
물론 나는 빅 블루 팬이었지만, 클라루스는 그 동시대의 아이돌이고 세계 음악 역사에 강렬히 이름이 남을 아이돌이다.
클라루스가 해체? 그 뒤에 일어날 반응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물론 재계약이 쉬운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 역시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클라루스인데,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게 사실이었다.
[아예 확정인 분위기야?]
[스파이 : 모르겠어 혹시 대화 듣게 되면 바로 알려줄게]
[응 고마워 그나저나 1본부 분위기 진짜 어수선하겠네]
[이춘형 이사 1본부 자주 왔었다며? 그 사람이 재계약 안 하는 거에 대해서 뭐라고 한 적 있어?]
[스파이 : 잠깐만 영상 있어]
……영상이 있을 게 뭐가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스파이가 영상 하나를 보내줬다. 이어폰을 꽂고 들어보니 이춘형 이사가 집무실에서 화내는 소리가 들렸다.
클라루스가 재계약을 안 할 생각인 듯하다는 소식을 막 전해 들었는지, 이춘형 이사가 1본부 본부장을 추궁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재계약을 안 해? 장난이지?
-그게…… 아, 그러니까…….
-장난이어야지. 이게 진짜가 되면 안 되지?
이춘형은 '재계약 성사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목소리였다. 이춘형이 말을 이었다.
-계약금 올려줘. 잡으면 될 거 아니야.
-클라루스 애들, 이제 팀 활동 그만할 거래요. 계약금으로 마음이 바뀔 것 같지가 않아요.
-아니.
이춘형이 짜증을 내고 욕을 뱉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걔네 입장 알고 싶대? 계약을 하라고, 어떻게든.
그 막무가내에 할 말이 없는지, 1본부 본부장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거…… 내가 봐도 되는 영상인가…….
내가 생각하는데, 폴 존스가 회의를 끝내고 내 쪽으로 왔다.
"좋아요."
"……좋아요?"
"이거, 퍼스트라이트와 같이 부르고 싶어요."
아.
다행이다. 뉴욕에 온 보람이 있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다, 싶었는데. 폴 존스가 생일파티를 해야 한다면서 날 재촉했다.
* * *
안주원은 얼떨결에 오게 된 매장에서 계속해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새삼, 모델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된지를 깨닫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보이드 엔터 직원이 다시 옷을 갈아입고 지친 얼굴로 나오는 안주원에게 말했다.
"와, 주원 씨. 이거 공식 계정 올라가요."
"아…… 와, 아. 네."
예상하지 못한 일정에 지쳐서 적당히 대답하던 안주원이 스스로 예의 없었다고 생각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힘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잘됐네요."
"아이구, 주원 씨 빨리 해원 씨랑 곡 작업하러 가고 싶구나?"
"……죄송해요. 티 나죠?"
"약간요? 그래도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보여요. 아무튼 피곤할 만도 하지, 이게 뭐 기약이 없네요, 끝날 듯, 끝날 듯……."
안주원도 공감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시 평소처럼 웃어 보이며 피팅룸을 나갔다.
문을 잠근 매장에는 새벽인데도 많은 관계자가 와 있었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사진을 찍고 나서 드디어 촬영이 끝났다.
[해원 : 안쭈 언제 와]
[해원 : 나 영어 못하는데 사람들이 취해서 자꾸 영어로 말 걸어ㅜㅜㅜ]
[해원 : 그냥 자기들이 놀고 싶어서 내 생일 핑계 대는 것 같은데...]
[해원 : 한국 가고 싶어...]
안주원이 톡을 확인하고 다시 사복으로 갈아입으려는데 브랜드의 한국계 직원이 와서 말했다.
"주원 씨 옷, 다 선물로 드려도 될까요?"
"저걸 다요?"
"네, 많이 입어주시면, 우리가 좋으니까."
"아, 짐 되시죠. 한국으로 바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 죄송한데, 해원 씨 생일파티 이대로 입고 가셔서, 사진 좀 찍어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아, 네. 그렇게 할게요."
어차피 옷 갈아입기도 귀찮았기 때문에, 안주원은 얼떨결에 대답하고, 밖으로 나왔다.
안주원이 전달받은 클럽으로 가보니 정해원이 누가 봐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달려왔다.
"아니, 폴이 갑자기 내 생일파티를 해야 한대. 근데 누가 봐도 지가 술 먹고 싶은 거 아니야, 이거?"
"오늘 진짜 정신없다, 우리."
"그러니까…… 근데 넌 옷이 다르네?"
"어, 이거 옷 받았어."
"와씨…… 그렇게 생기면 사는 게 재미있겠다."
"너도 잘생겼어."
"빈말 안 해도 돼."
본인에 대해서는 칼같이 부정적인 정해원이 대꾸하다가,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에게 질질 끌려갔다. 안주원이 같이 온 보이드 엔터 직원에게 물었다.
"저 사람 배우 아니에요?"
"아. 나도 딱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기. 이 미드 나온 사람."
"금방 친해졌네."
"해원 씨는 그냥 아예 낯가림이라는 걸 느끼지를 않나 봐요."
"네. 솔직히, 사람들이 금방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무의식중에 알아요, 쟤는."
경험이 그 무의식을 의식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눌러서 그렇지.
안주원은 생각하며 잠깐 시끌시끌한 클럽을 구경하다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클럽 구석 의자에 앉았다.
퍼스트라이트에서는 그나마 덜 내성적이지만, 안주원도 낯을 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구석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이어폰으로 아까 정해원이 러프하게 틀을 잡은 음악을 들으며 구두로 까딱까딱 박자를 맞췄다.
클럽에서는 주로 컨트리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시끄럽지는 않아 음악 소리가 잘 들렸다.
[실패의 고통이 영원하진 않겠지만]
[너의 두려움은 당연해 사회는 험악하잖아]
[안녕 잘 가 우리의 스무 살]
[안녕 잘 가 우리의 스무 살]
[아픔을 참고 달릴 필요는 없어 고작 스무 살을 벗어났잖아]
[돌아봐 동시대에 태어난 내가 있을게]
[네 친구인 내가 있을게]
[세상이 너를 가족처럼 사랑하지도 않겠지만]
[세상은 너를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을 거라고 말해줄 거야]
[내가 멈췄을 때 네가 곁에 있어 줬듯이]
[이번에는 내가 너를 위해 같은 자리에 머물게]
한국 나이로 스무 살. 정해원은 2년 동안 머물던 방을 나와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악은 어렵게 사회에서 나온 자신과 한 팀이 되었던 퍼스트라이트에게 선물해 주는 노래였다.
그때 정해원이 옆에 와서 이어폰 한쪽을 빼고, 요즘 들고 다니는 카메라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 봐. 진짜 잘 나왔지?"
안주원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브랜드 신상을 입고, 유선 이어폰을 끼우고 음악을 듣는 사진이었다. 정해원이 말했다.
"아, 잘생겼어."
"우리 엄마보다 네가 더 날 잘생기게 보는 것 같다."
"당연하지, 너희 아버님이 조각이잖아. 어머님 눈이 높으셔."
"네가 자꾸 우리 아빠보고 조각이라고 해서 거만해졌잖아."
"야, 그럼 조각보고 조각이라고 하지."
정해원은 투덜거리며 바로 함께 온 직원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안주원이 말했다.
"이거 음악, 멤버들한테 보낸다?"
"어, 어어. 보내줘. 근데 우리 비행기 시간 많이 남았냐. 나 너무 피곤한데."
정해원이 피곤해하며 한숨 쉬었다. 하긴 다들 취했는데 혼자 술 한 방울 안 마시고 취객들과 이야기하려니 힘들긴 하겠다.
정해원이 다시 떠난 후, 안주원은 멤버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 곧바로 파일을 보냈다.
그리고 격정적으로 반응하는 멤버들의 반응에 흐흐 웃었다. 피곤이 싹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