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40화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 민지호가 말했다.
"빨리 마시고 비밀의 방 보자!"
그 말에 박선재도 동의했다.
"나도 해리포터 1편밖에 안 봤어. 다음 편 보자."
술을 마시기 위해 팝콘 대야를 잠깐 옮겨 놓으려고 들어 올린 내가 말했다.
"야, 이게 영화 한 편 만에 바닥이 보이네."
그러자 황새벽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거봐, 안 많다니까."
"이것도 찍어놔야겠다."
나는 멤버들이 바닥낸 팝콘 대야를 한 장 찍었다. 이미 햇살이들이 영화 보기 전에 올린 팝콘 대야 사진에 정신없이 웃고 있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사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것 같았다.
우리는 각자 술을 한 잔씩 따랐다. 안주원이 박선재에게 말했다.
"스무 살 된 기념으로 건배사 해야지?"
"내가?"
박선재가 민망해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이런 거 원래 형들이 하는 건데."
그러더니 잔을 들고 말했다.
"올해도 다들 건강하고, 술들 너무 마시지 말고……."
"건배사 하라고, 잔소리하지 말고."
"특히 형이 잘하라고, 형."
박선재가 재촉하는 신지운에게 한소리하고 건배사를 이어갔다.
"멤버들 내가 많이 사랑하고, 우리 계속 행복하자!"
"행복하자!"
"그래, 그래."
건배사를 하고 우리는 박선재의 인생 첫 번째 술의 박자를 맞췄다. 박선재가 질색하며 말했다.
"진짜 맛없어!"
"맥주 마셔볼래?"
안주원이 따로 맥주를 따라줬는데 그것도 그리 맛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박선재가 말했다.
"나는 술은 안 맞는 걸로. 해원이 형이랑 같이 금주할래."
"그러자."
한 잔씩만 하고, 영화를 보며 계속 마시려고 다시 해리포터 2편을 틀었다. 그렇게 마시다 보니 제일 먼저 황새벽이 징조를 보였다.
"얘들아. 잠깐만 내 얘기 좀 들어줘."
그러더니 영화를 멈추고 황새벽이 말했다.
"우리 이제 다 성인이라 내년 1월 1일은 모일 이유가 없잖아."
"그래도 모일까?"
박선재가 되묻자 황새벽이 말했다.
"응. 약속을 하자. 1월 1일 넘어갈 땐 무조건 우리 멤버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기."
그 말에 한효석이 말했다.
"손가락 걸어요."
"효식이 취했다!"
한효석은 취하면 약간 뜨거운 남자가 된다. 우정! 영원하자! 이걸 온몸과 눈빛으로 표현하는데, 평소 깔끔 그 자체 인간인 한효석이 아주 끈적끈적해져서 부담스럽다.
안주원이 종이를 가져와서 말했다.
"우리 뭐만 하면 손가락 걸어서, 나중에 손가락 모자라겠다."
"이번엔 전 재산 걸자."
신지운의 말에 내가 말했다.
"근데 천재지변 있으면 예외라고 항목 추가해 줘."
"이 형 역시 지킬 재산이 많아지니까 예외 붙이네."
"야, 나 아직 빚쟁이야, 인마."
"부채도 자산이라고."
우리는 티격태격하며 예외 조항을 달았다. 그사이 황새벽의 술버릇이 이어졌다.
"내가 또 할 말이 있어. 막내야, 항상 우리 팀의 멘트 정리 담당이 돼줘서 고맙다. 그리고 너 요즘 너무 잘생겼어. 우리 박곰돌 형이 참 많이 사랑한다……."
"얘 취했다."
내가 말하니까 황새벽이 날 보며 말했다.
"우리 천재 프로듀서. 나는 진짜 과장 아니고 세상에서 네 음악이 제일 좋다."
평소엔 그렇게 기력 없던 놈이 취하기만 하면 온 기력으로 멤버마다 붙잡고 칭찬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징징거리는 건 귀찮은데 또 칭찬해 주는 건 좋으니까 다들 놔두고 들어준다.
"효석이. 네가 항상 신경 써주는 덕에 우리 멤버들이 아프지 않고 활동하는 거야. 그리고 너는 몸이 진짜 작품이야……."
"알아요."
"그리고 주원이 넌 진짜 멋진 놈이야. 그냥…… 다 멋져…… 숨 쉬는 것도 멋있어……."
"응, 고마워."
"지운아. 넌…… 자몽이 맞아."
"오."
신지운이 좋아해서 내가 한소리 했다.
"뭐가 자몽이고 뭐가 '오'야, 이놈들아."
"지운이 잘 보면 쟤도 귀여워……."
"만취해서 분별력이 없네."
"그리고 우리 지호. 세상에서 춤 제일 잘 추고, 천상 아이돌이고, 나는 진짜 스타성이라는 말이 널 위한 말 같다."
"고럼, 고럼."
민지호의 칭찬을 끝으로 황새벽의 칭찬 릴레이가 끝났다. 그리고 멤버들도 돌아가며 황새벽 칭찬을 한마디씩 해줬다.
나는 원래 술을 잘 마셨었는데, 일 년에 한 번 마시니까 소주 서너 잔에 슬슬 취한다.
알딸딸한 상태로 멤버들과 돌아가면서 소원 겸, 올해 목표를 하나씩 말했다.
"올해 최대한 햇살이들 많이 만나기."
"음원차트 1위."
"초동 백만이 넘었으면 좋겠어요."
"나 콘서트! 많이 하고 싶어! 무대에서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많이!"
"형 살려줘, 지호야……."
"형 소원은 뭐야?"
"나는…… 어."
민지호가 묻자 황새벽이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민지호가 하고 싶은 만큼 콘서트를 해도 내 체력이 버텨주는 거."
그 말에 민지호가 울컥하더니 황새벽을 와락 껴안고 말했다.
"형아 내가 오늘 사랑한다고 많이 해줄게!"
그렇게 시끌시끌 소원을 말하는데 안주원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나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무조건 이뤄져야 하는 소원이니까 말 안 할래."
내 말에 황새벽이 말했다.
"무슨 소원인지 알 것 같다."
"나도, 나도."
멤버들이 다들 공감해 줬다. 다들 내 소원이, 우리 팀이 영원하길 바라는 거란 걸 알아준다.
* * *
그러고 나서 우리는 휴가를 받았다.
멤버들 모두 친구를 만나거나, 본가로 돌아가고 나는 부모님, 누나 부부, 노을이랑 서울 구경을 했다.
오늘만 기다렸던 내 9인승 카니발에 다 같이 타고 돌아다녔는데, 매형도 누나도 운전석이 반대인 걸 너무 적응하기 힘들어해서 웬만하면 운전 좋아하는 내가 운전했다.
노을이랑도 엄청 친해지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다가, 누나 가족이 영국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에 배웅하러 갔다.
노을이는 '잘 들어가'라고 인사하면 내가 가는 걸 알아서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그 단어를 조심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 매형이 무심코 말하고 말았다.
"처남, 잘 들어가고…… 아. 망했어."
진짜로 망했다. 잘 들어가라는 말을 듣자마자 노을이는 진짜 서러워하며 울기 시작했다. 내가 얼른 말했다.
"아냐, 노을아. 삼촌 안 가. 자, 같이 영국 가자."
그렇게 말했지만 노을이는 안 믿고 그냥 엉엉 울었다. 정이 많이 든 것 같다.
그래도 비행기에서 노을이를 쭉 재우려고 온 가족이 매달려 밤늦게까지 놀아준 보람이 있어서, 노을이는 울던 도중에 잠이 들었다.
누나가 말했다.
"갈게, 그럼."
"누나 자주 와. 내가 비행기 다 업그레이드해 줄게. 나 마일리지 엄청 쌓였어."
내가 비행기 표 사준다고 하면 질색하니까 업그레이드를 제안했다. 다행히 누나가 거기 혹했다.
"그래? 그렇게 많이 쌓였어?"
"당연하지, 나 맨날 돌아다니잖아."
"너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연예인 같다."
"나 연예인이라구."
"하긴. 이번에 우리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너 알아봐서 약간 주변 분위기 어색해지고 그러잖아? 노을이가 그거 익숙해졌는지 지나가는 사람이 너 보고 안 놀라면 눈이 커진다니까?"
"에이, 설마."
"설마 아니야. 하여튼, 뭐 볼 때마다 더 슈스가 돼 있냐, 너는."
"기다려 봐. 나 우리 팀이랑 더 높이 올라갈 거야. 더 잘 될 거야."
내 말에 내내 꾹꾹 참던 매형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
"맞아. 퍼스트라이트는 더 잘될 거야, 처남."
"너 때문에 울보 둘 데리고 귀국하게 생겼잖아."
미안하게 됐다…….
아무튼 누나는 잠든 울보와 깬 울보를 데리고 영국으로 떠났다.
배웅 후 나는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새해 목표를 간략하게 세웠다.
* * *
회사에 도착해서, 올해 처음으로 작업실에 들어가려는데 복도 저 끝, 대표실에서 급하게 나오는 강효준 대표가 보였다.
평소에는 누가 봐도 집에 안 간 사람처럼 하고 다녔는데 오늘은 엄청 비싸 보이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와, 형 구두 신은 거 진짜 처음 봤다."
"나 본가 좀 다녀올게. 난리 났다, 거기."
"왜요? 아, 클라루스 형들?"
"어. 안 그래도 춘형이 형이 브엠 주가에 난리를 쳐놨는데, 우리 외할아버지 귀에 클라루스 해체 건까지 들어갔거든."
"아니, 근데 형은 집에 가면서 정장 입어요?"
"응. 외할아버지가 다 모이라고 하면 잘 입어야 돼. 가풍이야."
"아, 가풍이구나."
"꼴값이지."
"약간?"
나는 말하며 흐흐 웃었고, 강효준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나에게 물었다.
"너도 갈래?"
"내가 왜 가요?"
"너 말 잘하잖아. 낯도 안 가리고. 앞으로 더 잘나갈 거고. 사촌형도 빡칠 거고."
오.
그건 좀 괜찮은데.
나는 약간 혹했지만 정장 입고, 저 형이 구두까지 신게 만드는 그 분위기에 끼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형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타서 말했다.
"난 안 갈 거지만, 형은 보이드 엔터를 위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잘하고 와요. 알죠? 잘 보이란 말이에요. 브엠을 먹어야 하니까."
"그래, 알았다고. 아, 우리 부모님도 너만큼 내 성공을 바라진 않으시겠다."
"제가 원래 좀 극성이에요. 안주원도 비슷한 얘기 하던데. 근데 회의하면 무슨 얘기 해요?"
"왜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 물어보겠지. 최대한 얘기 밖으로 안 나가게 하고, 해체 안 하게 하라고 할 거고."
"클라루스 멤버들 의견을 물어봐야지, 집안사람들끼리 얘기한다고 뭐 답 나오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지? 이 짓을 왜 하고 있냐."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나는 잠깐 멈춰서 강효준에게 말했다.
"형은 우리한테 물어봐 주세요."
"응?"
"혹시나. 혹시 우리 멤버들이 퍼스트라이트를 그만하고, 자기 인생 살고 싶다고 하면요. 재계약이란 거, 엄청 어렵잖아요. 안 되는 게 정상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 송다온이랑 촬영하면서 얘기 많이 했구나."
"네. 아무래도 다온이 형 얘기 들으니까 걱정이 되는 거예요. 우리 재계약할 때면 제가 스물여섯 살이잖아요. 막내는 스물세 살이고. 스물세 살이, 계속 나랑 같은 팀을 하고 싶지 않으면 어떡하지, 싶은 거예요."
우리 팀이 평생 갔으면 좋겠는데, 바로 눈앞에서 클라루스의 끝이 다가오니까 좀 무서웠다.
퍼스트라이트가 아닌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 든다. 실제로도 그렇겠지.
나는 강효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형은 혹시 멤버들이 재계약하기 싫어하면, 멤버들 의견 많이 물어봐 주세요. 그리고 저한테 말해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볼 수 있게."
"사서 걱정하네."
강효준이 뭔가 답답해하더니 시간을 확인하고 손을 흔든 후 떠났다.
* * *
오후에 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작업실에서 수록곡 마무리 작업을 하다가 회의실로 이동했다.
일정, 컨셉 트레일러, 컨셉 포토를 공개하는 순서를 결정하는 최종회의였다. 신지운이 기획을 해왔는데, 그게 통과됐다. 오늘은 그 디테일을 확정 짓는 날이었다.
회의실에 가보니 이번 프로모션에 사용할 일곱 개의 컨셉포토가 있었다. 직원들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야…… 느낌 온다. 팬분들이 좋아할 느낌."
크.
나도 느낌이 온다. 햇살이들이 좋아해 줄 것 같다.
이번 컨셉은 20세의 열정.
컨셉 포토 첫 번째 버전의 컨셉은 반항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