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46화
예능 촬영이 끝나고, 나는 계속 잤다.
졸음이 오면 몸이 편안해진다.
나는 졸린 상태에서 벗어나기 싫었다. 반쯤 잠든 이 상태는 우울한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그저 더 자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나는 남은 활동 일주일 동안, 일어났다가 스케줄하고 자고를 반복했다.
이건 컴백을 한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인 루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는 이번에 예능이며 뭐며 스케줄이 엄청 많은 편이었다. 보이드 엔터가 스케줄을 잘 잡아 왔기 때문이었다. 신생인데, 능력이 좋다.
활동 마지막 날에도 역시 자고, 일어나자마자 음악 방송을 위해 이동했다. 무대는 사전녹화를 해놨고, 우리는 생방송 마지막 1위 발표를 위해 무대에 올라갔다. 우리가 후보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무대에 사람이 많은 게 엄청 힘들었다. 2주 활동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나는 원래 사람이 많으면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데, 오늘은 아니었다. 기도를 누가 누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앞에 있던 한효석에게 말했다.
"효식아, 나 좀 가려주라."
내 말에 한효석이 묻지도 않고 내 쪽으로 가까이 와서 섰다. 다른 멤버들도 대충 눈치채고 나를 가려줬다. 고맙게도 이번 주에 컴백한, 우리와 함께 더 라이징을 촬영한 INO 형들도 같이 서줬다.
그래도 생방송 중인데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오늘 1위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앵콜을 할 자신이 없었다.
"점수 공개해 주세요."
숨을 겨우 돌리고 있는데 점수가 떴다.
"퍼스트라이트!"
1위였다.
나는 황새벽이 소감을 말하는 동안, 한효석의 팔을 잡고 서있었다. 앵콜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더 호흡을 누른다. 그런데 아이노 형들이 안 내려가고 무대에 있었다.
아이노 멤버 열한 명, 우리 멤버 일곱 명이 있으니 출연자와 MC가 다 빠져도 무대가 북적북적했다. 아이노 멤버들은 같이 활동을 해서인지 우리 노래를 너무 잘 알았다.
"네가 있으면 밤도 낮처럼 빛나!"
"다시 밤이 우릴 멈춰 세울 수 없게 손을 잡아줘! 너를 만나러 갈 때 나에겐 한계가 없어. 모든 것을 넘어, 모든 것을 태워, 미친 듯이 달려!"
형들은 우리 멤버들과 마이크를 같이 쓰며 노래를 불렀다. 내 파트도 리더인 강한우가 같이 불러줬다. 그리고 파트가 끝나니까 날 꽉 안아주며 말했다.
"더 라이징 때는 네가 고생했잖아. 서로 돕고 살자, 해원아."
그 말을 들으니까, 숨이 막혀서 눈물이 나는데 웃음도 났다.
음방 본방송 입장에는 햇살이들도 있고, 다른 팬들도 많았는데 내가 쩔쩔매고 있는 걸 아무도 나쁜 눈으로 보지 않았다. 햇살이들도 그렇지만, 내가 서 있던 쪽에 있던 아이노의 팬클럽, 앤써즈도 엄청 열심히 응원해 줬다. 우리 응원법까지 써가면서. 그래서 INO의 멤버 이수한이 '왜 알아?' 하고 눈을 부릅떴다. 서로 웃음이 터졌다.
아이노 멤버들은 우리 멤버들과 돌아가며 챌린지를 찍었기 때문에, 킬링 파트 안무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열여덟 명이 동시에 킬링 파트 안무를 하는 건 멋있었다. 동선 같은 건 상관없이, 그냥 다들 아이돌이 천직이구나, 싶어지는 광경이었다.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점점 더 즐거워졌고, 무대가 끝나는 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방송과 상관없이 음악방송 측에서 하이웨이를 끝까지 틀어주며 갑작스러운 콜라보 무대를 마쳤다.
우리는 환호를 들으며 우르르 무대에서 내려왔고, 민지호가 말했다.
"꺄, 재밌다! 너무 재밌어! 형아들 또 하자!"
"아, 민조 목소리 진짜 커."
이수한이 엄살을 떨자 민지호가 귀에다 소리쳤다.
"수한이 형아, 또 하자!"
"알았어, 알았어!"
"퍼라 애들아! 야구도 하자!"
야구 좋아하는 강한우의 말에 안주원이 냉큼 대답했다.
"형, 우리 원래 야구 연례행사잖아요. 당연히 해야죠."
"그치? 야, 이제 안 하면 우리 앤써즈 섭섭해해."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지들이 하고 싶은 거면서 왜 팬들 핑계를 대?"
내 말에 강한우가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형한테 지들이 뭐냐, 지들이."
"아니, 근데 형 왜 이렇게 커졌어?"
"커졌니. 요번 컨셉에 맞게 좀 키웠어."
강한우가 말하며 뿌듯하게 자기 가슴을 슥슥 쓰다듬었다. 좀 부럽다. 몸 진짜 멋있다…….
평균 키는 우리 멤버들이 확실히 큰데,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워낙 마르고, 아이노 멤버들이 워낙 몸을 키워서 엄청 대비가 커보였다.
우리는 다시 설날 맞이 야구 일정을 맞춰보고, 각자의 대기실로 돌아왔다.
퍼라, 그리고 아이노 멤버들과 함께한 즐거운 앵콜 덕분에 완전히 진정이 됐다.
팬사인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강영호 매니저가 물었다.
"해원 씨, 팬사인회 빠질래요? 지금 공지하면 팬분들 다 이해해 줄 거예요."
"저 진짜 괜찮아졌어요."
"아, 무리하지 말지?"
"진짜 괜찮아요. 진짜로."
나는 장담했고, 결국 팬사인회 장소로 이동했다.
내 생각대로 나는 괜찮았다. 오히려 햇살이들과 이야기하며 활력을 되찾았다. 사인회가 끝나고 팬싸템을 골랐다. 엄청 예쁜 모노클이 있어서 쓰고 멋진 척을 하고, 아이템을 바꾸기 전에 물었다.
"나 많이 찍었어요? 딴 거 쓴다?"
햇살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끄덕 거려줘서 나는 한바탕 웃고 팬싸템을 바꿔썼다. 웬만하면 가져온 팬싸템은 다 한 번씩 써주고 싶었다.
멤버들이랑 햇살이들이랑 웃고 떠들며 팬사인회를 끝내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활동이 끝났으니, 민지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환호했다.
"라면 먹자!"
옆에서 같이 식단을 하던 신지운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피자가 두 주째 먹고 싶었다……."
"그것도 먹자!"
"저는 로제 떡볶이."
한효석의 말에 박선재가 말했다.
"효식이가 의외로 고칼로리 좋아해."
"내 말이. 나 큰일 났어."
그렇게 각자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며 한 숙소에 모였다. 활동 끝나는 날 다 같이 고칼로리를 때려먹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이것저것 음식을 시키고, 오늘은 막내즈가 라면을 끓여보겠다고 해서 호들갑 떨 준비를 하며 기다렸다. 그사이 안주원이 핸드폰을 보고 있어, 내가 물었다.
"생방 괜찮아? 아이노 형들한테도 미안하네."
"반응 엄청 좋아. 오히려 형들 소속사에서도 좋아할걸?"
"그래?"
그럼 다행인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안주원이 말했다.
"기자가 너한테 얘기한 거 엄청 화제야."
"그래?"
내가 확인해 보니까 진짜였다. 기자가 떠든 것이 번역까지 되어가며 엄청난 리트윗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진짜_문제는_마약
#진짜_문제는_국선아
그리고 해시태그가 있었다. 안주원이 설명해 줬다.
"지금 이거 심상치가 않아."
"오."
"폴 존스도 올렸어."
"이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황새벽이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에카 공계랑."
그리고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안주원네 브랜드도 올렸어."
"아직 아니라니까……."
"사실 확정이지. 조율만 하면 끝나는데."
최근 안주원은 뉴욕에서 컨택한 브랜드의 피드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걸 보더니 신지운이 말했다.
"이야, 우리 팀 인맥 글로벌하다."
나는 동의하며 핸드폰으로 햇살이들이 올린 글들을 확인했다.
오히려 힘내라는 응원이 지치게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응원에 지치는 사람이었다면 아예 아이돌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다.
힘내라는 댓글들을 보고 있으니까, 내가 뭐에 우울해하고 있었는지 머릿속에서 날아간다. 결국 내가 무서운 건, 국선아 때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상태로 돌아가게 될까 봐였다.
그런데 해시태그를 보니까 아닌 걸 알겠다.
"내 편이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다, 내 편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햇살이의 글에 멈췄다.
[해원아, 이제 아무도 네 인생을 악의적으로 편집할 수 없을 거야. 햇살이들이 그렇게 안 둬.]
……그러게.
나는 크게 한숨 쉬고 소파 뒤로 기댔다.
"아, 갑자기 든든하다. 햇살이들도 있고, 너희도 있고."
"갑자기 왜 저래."
신지운이 금쪽이 같이 대꾸하는데, 막내즈가 라면을 가지고 왔다. 셋이 힘을 합쳐서 끓인 라면이 너무 쫄아 있어서 우리는 다 같이 끅끅거리고 웃었다. 짜고 맛있는 라면이었다.
그렇게 놀고 나서, 방으로 돌아온 나는 최윤솔의 번호를 보며 잠깐 망설였다. 연락해 볼까 했지만, 그래도 이런 건 회사 통해서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강효준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 * *
기자 생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출근길에서 퍼스트라이트 팬이 찍은 영상에 자기들 목소리가 들어갈 걸 몰랐던 건 아니었다.
-지 때문에 사람이 자살 시도를 했는데 예능을 하러 나오네.
그렇게 이야기하는 영상이 올라오는 것도 다 예상을 했다. 지금은 엄청 욕을 먹고 있지만, 동조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곧 잠잠해질 거라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나 욕해봤자 니네 오빠만 손해다."
박 기자가 차를 몰며 비웃었다. 어차피 이춘형 이사가 식대 겸 용돈도 지원해 주는데, 잠깐 욕하다 말 아이돌 팬들이 무섭지는 않았다.
몇몇 팬들이 신상을 터는 것 같아서, 그 부분만 좀 고소를 할 예정이었다. 그것도 어차피 이춘형 이사가 내줄 테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하이엔드 메르세데스 한 대가 따라왔다. 자꾸 따라붙어서 운전하기가 매우 불편했다.
"저 새끼 무슨 벤츠 운전을 저따위로 해."
그렇게 생각하는데 차가 박 기자의 차를 가로질러 골목으로 먼저 진입했다. 그러더니 차를 거기서 세웠다.
슬슬 뭔가, 불길했다.
"어……. 이거 영화에서 봤는데……."
뒤를 보니 뒤에도 차가 멈춰 차를 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앞에서 내린 건 강효준 대표였다.
가까이서 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도 덩치가 컸다. 강효준이 창문을 손등으로 두들겼다.
"박 기자님. 잠깐만 얘기 좀 하시죠."
"왜, 왜요?"
"내가 설마 뭐 기자를 패겠습니까? 튕기지 말고 나와요. 잠깐이면 돼요."
"하, X발……."
기자 생활 18년 사이, 가장 무서운 상황이었다.
* * *
강효준은 나름 담백하게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박중운 매니저에게 뒤로 차를 빼라고 손짓했다. 차를 빼주자마자 박 기자가 정신없이 차를 몰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잠깐 담배를 꺼내며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정해원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정해원 프로듀서님 : 형 저 그래도 최윤솔이랑 한 번은 얘기해야 될 거 같아요]
클라루스의 A&R일 때부터 유구하게 아티스트 과보호가 일상인 강효준은, 정해원이 뭐든지 지가 해결하려고 드는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거 하라고 있는데 소속사 아닌가? X소 후유증인가?
강효준이 전화를 걸었다.
"걔를 왜 봐."
-생각해 봤는데, 어쨌든 걔도 국선아 피해자잖아요.
"너한텐 그냥 가해자야."
-그건 아는데, 걔가 이렇게 어그로 끌 때마다 저 피보고, 우리 멤버들까지 영향받잖아요.
강효준이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다른 손으로 라이터를 찾고 있으니 박중운 매니저가 라이터 불을 켜줬다. 강효준이 알아서 한다고 손짓하고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였다. 그 사이 정해원이 말했다.
-차라리 최윤솔을 설득해 보면 안 돼요? 걔가 국선아랑 이춘형 욕하는 인터뷰 하나 해주면, 걔가 어그로 끌 때, 나 말고 이춘형이 욕먹을 것 같은데.
"……."
나쁜 생각은 아닌데. 약쟁이가 설득이 되나……. 아, 설득이 아니라 협박하자는 소리구나?
나름대로 유추하고 나니, 스파이가 핸드폰 소리가 들렸는지 옆에서 두 눈을 반짝반짝 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양옆에 미친놈들이 있으니까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