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48화
절이 엄청 산속에 있어서, 우리는 올라가는데 좀 고생을 했다. 그것도 컨텐츠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올라가서 우리는 스님과 인사를 하고,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짐을 풀러 우리 방으로 향했다.
방이 세 개라서 가위바위보로 방을 나눴다. 한효석 독방, 06즈, 그리고 민지호와 황새벽이 같은 방, 나는 막냉이와 방을 쓰기로 했다.
방이 나뉘자마자 황새벽이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바꿔주라……."
"새부기 가자!"
"제발……."
"신나겠다, 그치!"
벌써 지친 황새벽을 민지호가 질질 끌고 사라졌다. 06즈야 뭐 워낙 친한 단짝들이라 서로 지겨워하며 방으로 들어가고, 한효석도 독방에 당연히 불만이 없었다.
"형 진짜 산할아버지 같다."
방에 들어와서 수련복으로 갈아입는데, 박선재가 나에게 말해서 나는 흐흐 웃었다.
이번 컨셉을 위해서 나는 활동 2주 내내 백발을 유지했다. 내가 유일하게 내 신체에서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이 모근인데, 역시 튼튼하게 버텨줬다.
활동하는 내내 할아버지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여기 와서는 더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옷을 갈아입고 우리는 스님과 함께 절 구경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첫 스케줄인 등산을 위해 나가려는데 최윤솔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거 같이 들어봐.
그러더니 이 미친놈이 다짜고짜 나에게 음악을 들려줬다. 음악을 다 들어보지 않고, 영상 통화로 보이는 모니터만 봐도 알겠다. 비트를 정렬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찍어놔서 중간중간 박자가 어긋났다. 이 정도로 막 만들었으면 강효준 대표가 먼저 한 소리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아 뭐라고 못했나 보다.
근데 이대로 놔두면? 계속 저따위 곡을 만들어서,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나?
나는 최윤솔에게 한 소리 퍼붓고, 그냥 전화를 끊으려다가 혀를 한번 차고 말했다.
"야, 자리 앉아봐."
-왜.
"앉으라고."
최윤솔은 원래 드럽게 말을 안 듣는 고집불통에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놈인데, 술에 취하고 욕까지 처먹어서인지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다. 나는 우선 단축키를 알려 주고, 트랙들을 다 정렬하게 했다.
가끔, 아티스트는 영감만으로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기본적인 규격을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생각을 펼치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
최윤솔이 딱 그런 과였다.
소설가가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려면, 그 단어를 대체할 말이 세상에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래 존재하던 단어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을 알아야 한다. 기존의 것을 모르면, 무엇이 새로운지도 모르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저러고 작곡을 해왔다는 게 놀랍다.
아니지. 그 최윤솔이 소속되어 있던 터미널 엔터, 그리고 나와 라이벌이라고 언플하던 VMC의 방식이 놀라웠다. 천재 작곡가라고 언플하고 싶으면, 기본적인 교육은 시켰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본인이 알아서 하면 좋지만, 본인이 알아서 안 하고 있었잖아?
나는 그렇게 최윤솔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말했다.
"됐다, 끊어."
-뭘 끊어. 하다 말고.
"나 등산해야 돼."
-등산을 왜 해.
나는 무시하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버리니까 박선재가 말했다.
"그걸 또 가르쳐 주고 있어?"
"그럼 어떡해. 쟤 저러다 진짜…… 죽으면 안 되잖아."
내가 중얼거리고 있는데 언제 나왔는지 방에서 나온 한효석이 나에게 말했다.
"형,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그럴 것 같다가도 갑자기……."
"그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형이 안정이 안 돼서 그런 거 아니에요?"
"뭔 소리야."
"형이 힘드니까, 남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우울해서 갑자기 어떻게 될까 봐."
"……."
"형이나 생각해요. 형이 지금 누구 챙길 정도로 멘탈에 여유 있지 않잖아요."
한효석이 하는 말에 박선재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 효식이가 원래 잘 갈궈."
"갈구는 게 아니라. 걱정에서 나오는 말이지."
한효석이 투덜거렸다.
나는 한효석의 말이 틀린 것 같지도 않아서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등산을 했다. 산에는 눈이 남아 있는데, 등산로에는 다행히 눈이 없었다. 주기적으로 배가 고픈 신지운이 등산 중에 중얼거렸다.
"이따가 배 엄청 고프겠다."
민지호가 갑자기 걱정되는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절에 밥 충분히 있어요? 지운이 형 많이 먹는데!"
"충분히 있어요."
그러니까 신지운이 핀잔했다.
"너도 많이 먹잖아."
"내가 나 조금 먹는댔어? 형이 많는다고!"
"아, 그래. 알았다."
유난히 잘 티격거리는 둘이 싸우는 사이에 박선재는 등산 소리가 나왔을 때부터 사색이 된 황새벽을 부축해 산을 올랐다. 한효석은 스님과 죽이 잘 맞는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안주원은 멤버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행히 나도 최윤솔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좋은 공기를 호흡하고 뱉을 때마다 멀리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는 딱 노을이 지는 시간이었다.
멤버들은 햇살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열심히 사진을 남겼고, 나랑 같이 셀카도 찍어줬다. 핸드폰을 꺼버린 나는 멤버들과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노을을 구경했다.
안주원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 또 영감 같은 거 받고 있어?"
"내가 일중독자인 줄 아냐?"
"응, 그건 그렇지."
"……그치?"
솔직히 나도 이제 내가 일 좋아하는 걸 부정은 못하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노을을 구경하고 우리는 모두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했다.
원래도 잘 먹는 애들이 등산까지 하고 내려오니까, 다들 건강한 식단을 보고도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채소를 산처럼 쌓고, 나물과 밥도 가득 퍼서 자리에 앉았다.
"와,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신지운이 감탄하며 밥을 퍼먹었다. 민지호가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저 여기 살래요."
"스님들은 새벽에 일어나는데?"
"아이돌도 새벽에 일어나요!"
"그럼 괜찮지."
그러자 옆에서 평소 식단과 다름없게 먹는 중인 한효석이 말했다.
"쟤 엄청 먹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이, 잘 먹으면 좋…… 지호 씨 다 먹었어요?"
"녜에."
민지호가 말하며 일어나 두 번째로 밥을 뜨러 떠났다. 잘 먹는다고 해도 저 정도로 먹을 거라고는 스님도 생각 못 한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먹고, 준비된 음식을 싹 먹어 치우고 나서도 배고파하는 멤버들에게 떡을 가져다주셨다. 다행히 보이드 엔터에서 미리미리 넉넉하게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율해놔서 멤버들은 드디어 배가 부를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스님을 따라서 차를 마셨다.
이것도 스케줄에 촬영이기는 하지만, 모처럼 등산도 하고, 천천히 밥 먹고, 차도 마시고 하니까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실컷 쉬고 나서 방에 들어가려는데 한효석이 멤버들을 막았다.
"앉아서 대화 좀 하고 들어가요. 방송 분량 나오게."
"추운데 무슨 얘기를 해."
"그럴까?"
신지운은 툴툴거리고 안주원은 받아줬다. 그래도 둘 다 한효석을 따라서 툇마루에 앉았다. 민지호도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효식이 혼자 방 들어가기 싫어서 그러지?"
"아니야."
"맞잖아."
"……혼자 방 쓰는 건 좋은데, 다른 멤버들은 둘씩 쓰잖아?"
"자기만 혼자 방 쓰기 싫은 거지!"
우리 멤버들이 외로움을 좀 많이 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늘 단체 생활을 해서 그런 모양이다.
우리는 툇마루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2월 중순이라 추워서 패딩들을 입고 굳이, 안 들어가고 덜덜 떨며 이야기했다.
우리가 굳이 나와 있어서 그런지, 직원들이 절과 조율해 장작을 가져다 즉석 캠프파이어를 하게 해줬다. 그 사이 하나씩 떨어지는 눈을 보며 우리는 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말 없는 형들 덕에 진행병이 생긴 박선재가 말했다.
"우리 새 회사에서 1년 있었잖아. 작년 한 해 다들 어땠어?"
"너무 좋아!"
민지호가 흥분해서 일어섰다.
"나 우리 회사 연습실도 너무 좋고, 어, 회사 사람들도 다 좋고, X이슨도 좋고!"
"상표 좀 말하지 마라……."
한효석이 한숨 쉬며 말하니까 민지호가 삐처리 해달라고 스태프들 쪽으로 애교를 부리고 말을 이었다.
"다른 거보다, 제일 좋은 거. 나는 그건 거 같아. 우리가 하고 싶은 거 지지해주는 거."
"아, 그치. 그거지."
옆에서 나도 동의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나는…… 일단 우리 멤버들이 야망이 있잖아. 다들 바라는 게 크고. 이상이 높고. 나는 그런 게 참 좋고, 그래서 너희 꿈이 다 이뤄졌으면 좋겠어."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으니까 꼭 수학여행 같다. 그래서 괜히 진솔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내 말에 황새벽이 안주원에게 말했다.
"너 우냐?"
"아니, 안 울지."
"눈이 빨간데."
"하…… 근데 나도. 우리 멤버들이 너무 좋고. 그래서. 사람이 아예 실패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멤버들은 최소한으로 했으면 좋겠는 마음이야."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당연히, 모든 멤버들에게 그런 마음인데 특히 해원이가 최소한의 실패만 했으면 좋겠어."
그러자 친구인 신지운이 동의해 줬다.
"나도 그래. 아무래도 해원이 형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잖아."
"아, 부담스러. 쭈어니가 좋은 말 해줬는데 왜 부담줘어."
"이게 뭐가 부담이야, 앨범 나올 때가 진짜 부담이지. 햇살이들도 다 알겠지만, 해원이 형 앨범 나오기 전에, 스트레스가 진짜 크단 말이야. 이미 세상이 형한테 가진 기대가 너무 크잖아."
"……그랬어?"
"아, 뭘 모르는 척이야."
……아니, 진짜 세상이 기대하는지는 몰랐는데?
내가 멈칫하는데 옆에서 박선재가 내 등을 토닥토닥거렸다. 역시 우리 막냉이밖에 없다. 민지호가 옆에 한효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서 말했다.
"나는 해원이 형아 노래 진짜 좋아해…… 진짜 많이 좋아해."
"나도 민조 사랑해."
내 말에 민지호가 히히 웃으며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준다. 역시 프로 아이돌이다.
나는 자꾸 옆에서 칭찬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화제를 돌렸다.
"나는 요즘 새부기가, 진짜 너무 든든해."
"나?"
"맞아!"
민지호가 또 흥분해서 일어났다.
"새부기 진짜 참리더야!"
"앉아서 말해도 너 흥분한 거 다 알아."
한효석이 말하며 민지호를 끌어다 앉혔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근데 진짜로, 요즘 새벽이 형 너무 든든해요."
"아, 왜들 그래."
황새벽이 민망해서 패딩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가자 멤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한마디씩 칭찬했다.
"믿고 보는 우리 리더."
"황리더 사랑해!"
"진짜로, 형은 맨날 자기가 누워만 있다고 그러는데, 항상 우리 얼마나 많이 생각해 주는지 멤버들 다 알아."
박선재가 말하며 황새벽을 안아주자 다른 멤버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와서 안아줬다. 잠시 후 패딩 모자를 벗으며 나온 황새벽의 얼굴이 시뻘겠다.
안주원이 말했다.
"아, 나 이번에 지호. 무대에서 지호 너무 멋있더라."
"그치? 나 민조 센터로 나갈 때, 너무 매력 있어서 심장 뛰어."
나도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게 돌아가며 하나씩 칭찬하며 우리는 한참을 떠들었다.
멤버들이 다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툇마루에 잠깐 남았다. 그리고 내가 막말한 후의 최윤솔의 상태가 신경 쓰여 강효준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어. 지금 회사 가는 중.
"형, 전화 끊고 어떻게 됐어요? 최윤솔 열 받아서 뭐 막 다 부수고 다닌 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