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49화
최윤솔의 행동에 대해서 물었더니 강효준 대표가 대답했다.
-그냥 자더라.
"아무 것도 안 때려 부수고 그냥 자요?"
-어, 의외로.
진짜 의왼데……?
아무래도 너무 취해서 꼬장을 부릴 체력도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물었다.
"상태는 어때 보여요? 국선아랑 이춘형 욕하는 인터뷰 쪽으로 설득되겠어요?"
-그거야 뭐…… 어차피 협박하겠다는 소리잖아. 스파이가 알아서 하겠지.
협박? 무슨 협박?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나는 협박의 'ㅎ'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어서 억울했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까 저렇게 완전히 맛이 간 최윤솔을 설득하는 건 헛된 희망이 맞다.
그래도 강효준 대표랑 스파이가 죽이 맞는 걸 보니 왠지 경계의 한숨이 나왔다.
"아, 절에서 협박 같은 소리 하기 찝찝한데."
-네가 설득이라고 말하면 내가 적당히 협박으로 알아들을게.
우리는 어찌 되었든 최대한 최윤솔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치고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모처럼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잠을 청하니 등이 따끈따끈해서 솔솔 잠이 왔다.
오늘 템플 스테이 룸메이트 박선재는 거의 눕자마자 기절해서 자고 있었다. 절이 잘 맞나 보다.
최윤솔이 자살 시도를 한 뒤, 나는 악몽 때문에 잠이 약간 줄었다.
나는 잠깐 잠들었다가 금방 깨버렸고, 박선재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밖으로 나와서 절 안을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새벽의 산사는 고요했다.
웬일로 나는 작업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차가운 겨울밤 공기를 마셨다.
그렇게 지루해서 더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일출 시간이 되어 박선재를 흔들어 깨웠다.
"박곰돌, 일출 보러 갈까?"
"일출? 갈래."
박선재가 엄청 졸려 하면서도 눈을 떴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영상을 남기고 싶어서, 나는 자고 있던 자컨 촬영진에게 짐벌과 카메라 하나를 받아왔다.
내가 밖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소리에 한효석이 먼저 일어났다.
"형 일출 보러 간다고요?"
"응, 나머지 애들도 다 깨우자."
"제가 지운이 형이랑 주원이 형 깨울게요."
"아, 야, 거기가 깨우기 쉽잖아."
"그니까요."
"하나 빼기 해."
"보통 말 꺼낸 사람이 지던데."
라는 진리는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다. 결국 내가 져서, 나는 민지호와 황새벽을 깨우러 두 사람 방으로 향했다.
둘 다 빡세지만 그나마 좀 쉬운 민지호를 깨웠다.
"민조야, 일출 보러 갈까?"
잠 많은 민지호가 돌아누웠다. 나는 민지호를 한 번 더 깨웠다.
"우리 다 보러 갈 건데?"
"좀만 이따가 보자……."
"형이 해 뜨는 시간은 조절할 수가 없어."
"아냐아, 할 수 이써……. 형이 잘 눌러서 못 뜨게 해바……."
졸린 민지호가 아무 말이나 했다. 이번 활동 내내, 가장 안무가 빡센 파트에서 센터로 나갔던 민지호가 유난히 몸을 많이 쓴 것도 사실이라, 그냥 자게 놔둘까, 마음이 약해졌다. 그때 황새벽이 뒤에서 말했다.
"민지호. 가자."
"……어?"
민지호가 바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나도 놀랐다. 우리 둘 다 황새벽을 돌아보며 거의 동시에 말했다.
"귀신이냐?"
"저 사람 새부기 아니야!"
우리가 충격을 받거나 말거나 황새벽은 일어나서 불을 켜고 본인 것과 민지호의 패딩을 꺼냈다. 민지호가 내 팔을 꽉 쥐고 말했다.
"해원이 형, 무서워……."
"나도…… 저거 새부기 아닌데……."
우리가 달달 떨고 있으니 황새벽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아니, 일출 보면서 소원 빌려고."
"무슨 소원?"
내가 묻자 황새벽이 대답했다.
"퍼스트라이트 대박 나게 해달라고."
"와…… 참리더."
"멋쪄……."
나와 민지호가 감동해서 올려다보니 황새벽이 얼굴이 벌게져서 우리 둘의 얼굴을 손으로 슥 밀어버렸다.
그렇게 모두 일어난 우리는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올랐다. 가위바위보에 져서 짐벌 카메라를 든 신지운이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게, 새벽이 형이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났어요."
"기적 아니야?"
안주원의 말에 내가 말했다.
"심지어 먼저 일어나서 민조 깨우더라?"
"진짜 말도 안 된다."
박선재가 놀라워하니까 한효석이 말했다.
"채식이 몸에 좋아서 그런 것 같으니까 우리 돌아가면 채식하자."
"그럴까?"
"역시 이걸 받아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황새벽은 퍼스트라이트의 대박을 기원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끌고 꿋꿋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일어날 때까지는 그렇게 피곤해하던 민지호가 중간이 진이 빠진 황새벽의 팔을 당겨줬다.
"새부기 가자! 영차, 영차."
"지호야, 좀 낫다……."
황새벽은 벌써 오늘 하루 쓸 기력을 다 쓴 얼굴이었지만 민지호가 끌어주는 것에 의지해 포기하지 않고 정상으로 향했다.
시커먼 밤에 시커먼 패딩들을 입고 안 그래도 길쭉한 남자 일곱 명이 산을 올라가고 있어서 길 가던 사람이 보면 좀 놀랄 것 같았다. 다행히 오늘은 길에 등산객이 별로 없었다.
세상이 드디어 완전한 밤에서 벗어나 파르스름해지자 안주원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퍼스트라이트네."
"오, 진짜네."
신지운이 같이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고, 다른 멤버들도 같이 하늘을 봤다.
여명이 서서히 하늘을 덮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 정상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해가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말 그대로 퍼스트라이트를 내뿜고 있었다.
우리 팀 이름 그대로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태양이 반 정도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황새벽이 말했다.
"퍼스트라이트 대박 나게 해주세요."
"대박 나게 해주세요!"
옆에서 민지호도 같이 소원을 빌었다. 안주원이 말했다.
"그럼 내가 건강 빌게. 우리 멤버들 건강하게 해주세요."
"어, 형 저도 건강. 그리고 멤버들이 운동을 좋아하게 해주세요."
"나도 운동 좋아해, 효석아. 너랑 하는 것도 좋은데, 힘들어서 그렇지."
"멤버들이 저랑 운동할 때 고통을 즐기게 해주세요."
"그래, 그래."
한효석의 소원이 점점 괴상해지는데 안주원은 그냥 그래, 그래 이러고 있다.
나도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퍼스트라이트 대박 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시고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모든 가족과 우리 햇살이들의 건강과 세계 평화……."
내가 소원을 너무 많이 비니까 신지운이 예능적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아니, 솔직히 이 정도는 다 이루고 싶잖아…….
그렇게 소원을 빌고,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고, 절밥을 바닥냈다.
황새벽은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누웠지만,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템플 스테이였다.
* * *
맨날 배달 음식만 시켜먹다가, 절에서 1박 2일 채식했더니 약간 건강해진 기분이다.
절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 건강해진 기분으로 양이형과 콘서트 편곡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콘서트 일정에 맞춰 백발을 애쉬민트로 염색했다.
처음 해보는 색이라 엄청 고민했는데, 정작 하고 나니까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이 머리로 콘서트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산할아버지 머리가 끝났다고 막내즈가 좀 아쉬워했다. 내가 할아버지 같은 게 좋았나 보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우리의 콘서트는 빡셀 예정이었다.
작업실에 앉은 나는 하품을 한 번 했다. 이제 거의 모든 틀은 끝났고, 편곡도 마무리 단계였다.
요 며칠, 편곡과 콘서트 연습으로 에너지 드링크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양이형이 소파에 엎드린 나에게 말했다.
"너 30대 체력 다 끌어다 써서, 서른 넘으면 이제 뒤졌다."
"말 나온 김에 형 삼십 대 축하드려여."
"나이 얘기하지 마."
"뭐, 서른 어려. 우리 이형이 형 애기다, 애기."
"아, 좀 뒤지라고."
"나 진짜 심장마비 올 거 같다. 형."
"너 또 코피 난다."
"날 때 됐다. 올해 첫 코피."
나는 휴지를 꺼내서 코를 틀어막았다. 매해 죽을 듯이 피곤할 때 한 번씩은 코피가 나는 것 같다. 연례행사다, 거의. 허허…….
그렇게 코를 휴지로 막고 화장실 쪽으로 가는데 최윤솔에게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이 새끼 또 왜 이러나, 싶은 마음과 한효석이 말한 것처럼 저놈 자살 시도에 과몰입이 좀 있어서, 일단은 영상통화를 받아줬다.
지난번과 다름없이 비쩍 말라서 눈이 퀭하긴 하지만, 좀 덜 취해 보이는 최윤솔이 물었다.
-피야?
"어, 코피. 왜, 빨리 말해."
-너 어디 아퍼?
"안 아프니까 빨리 본론, 본론."
내 재촉에 최윤솔이 모니터 쪽으로 핸드폰을 돌려 시퀀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야, 이거 로딩창 어떻게 없애냐.
"야이씨, 그건 컴퓨터 전공자한테 물어봐야지…… 껐다 켜봤어?"
-잠깐만.
그러더니 프로그램을 껐다가 다시 켰다.
-없어졌네.
"아, 이 새끼는 하나하나 떠 먹여줘야 되나……."
-야, 근데 이거 마스터 키보드 딜레이 어떻게 해.
"그거 오디오 드라이버 문젠데."
작곡 프로그램 기본 세팅부터 문제가 있었다.
물론 아예 작곡을 안 한 건 같진 않다. 뭔가를 꾸준히 시도했다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익히기 귀찮은 부분들을 익히지 않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귀찮아서 그냥 넘어간 부분들이, 결국 모든 배움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까 터미널 엔터에서는 최윤솔이 작곡을 한다는 기분만 내게 해주고, 그 이름으로 마케팅을 하는데 이용할 뿐 사실 전반적인 작업은 프로 작곡가들이 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그것만 설명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더 할 수도 없었다.
화장실에 가서 코피를 닦아내고 거울을 보니까 출혈 때문에 입술이 허예서, 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는 립밤을 슥슥 발랐다.
"아, 별론데."
나는 내 민낯을 오래 보기 꺼려져서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끈을 바짝 쪼였다.
좀 여유가 생기고 나니까 최윤솔 전화를 너무 그냥 끊었나, 싶었다. 국선아랑 이춘형 욕하라고 설득해야 되는데…….
문제는 저놈이 날 저렇게 지식인으로 이용만 하고, 여전히 날 안 좋아한다는 거다.
그런 저놈에게 나 스트레스받기 싫으니 너 나중에 또 자살 시도하면 욕먹을 대상을 좀 이춘형으로 바꿔 달라는 말을 어떻게 잘 돌려 말할 수 있을까?
역시 설득보다는 협박인가? 근데 스파이가 알아서 한다는 게 뭔 말이야. 그 형 또 뭔 스파이짓 하고 있는데. 최윤솔 약점 잡았나?
……그 형 혹시 내 약점도 잡고 있는 거 아냐?
나는 의심을 하자마자 곧바로 스파이에게 문자를 했다.
[형 최윤솔 약점 잡은 거 있어?]
[스파이 : 약점까진 아닌데]
[스파이 : 사진이 있어 몇 번 우연히 만났거든]
[스파이 : 말하면 네가 신고할 테니까 안 보여줄게]
섬뜩하다…… 몇 번 '우연히' 만났을 것 같지가 않다…….
사진은 안 보여줬지만 대충 짐작은 갔다. 최윤솔이 한국에 와서는 약 한 번 안 하고 얌전히 술만 마셨을 확률? 솔직히 없다는 거 안다.
내가 물었다.
[형 혹시 내 약점 같은 건 없지?]
[스파이 : 당연히 없지]
[스파이 : 왜? 누가 네 약점 잡은 거 있대?]
[스파이 : 누군지 말해주면 내가 그쪽 약점 잡아볼게]
……든든한 건지,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 든든하면서 무서운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업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