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50화 (25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50화

아무튼 스파이는 이상하게 날 배신한 걸 크게 미안해해서, 내 약점을 잡고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았다. 솔직히 아예 믿을 수는 없지만, 든든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스파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전화를 받아보니 스파이가 말했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뀐 거 같더라.

"어떤 의미로?"

-사내 여론이, 아무래도 차기 브엠 대표, 이춘형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오."

-내가 보기엔 지금이 딱 본부장님이 자기 사람 만들 적기 같거든? 다들 불안해할 때. 근데 본부장님이…….

"사내 정치에 관심이 없지?"

-어, 아예…… 난 이 정도로 본부장님 사람이 없을 줄 몰랐다.

아니, 그 형은 일을 그렇게 하고 사람을 그렇게 만나고 다니면서 회사에 자기 사람 몇몇 꽂아 놓는 것도 안 했나? 그나마도 내가 스파이랑 만나게 해주지 않았으면 아예 회사 소식을 모르고 살 뻔했다.

내가 속으로 투덜대고 있는데 스파이가 말했다.

-그니까 너, 이춘형 조심해.

"나?"

-그렇잖아. 이춘형 입지 절반 쪼그라들게 한 게 너고, 본부장님한테 솔직히 제일 중요한 아티스트가 너잖아.

"아, 왜 또 그렇게 말해."

-너도 솔직히 부정 못 할걸.

"아니, 할 수 있는데."

-……아무튼 이춘형이 벼르고 있으니까 조심하고, 항상 주시하고, 물론 나도 하고 있지만.

"형만 주시하면 충분해. 난 형 믿어."

-배신자를 뭘 믿어…….

"이제 믿는다니까? 형은 완전히 내 사람이잖아."

-그건 당연하지.

"형, 만약에, 강 대표랑 나랑 갈라설 때도 내 편이지?"

-응?

"혹시 모르잖아. 인생이 어떻게 될지."

지금이야 최고의 소속사지만, 인생이란 게 정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강효준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각자가 추구하는 게 달라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재계약할 때가 되면, 그냥 어쩔 수 없이 회사와 불편해질 거라고 나는 미리 마음을 먹고 있다.

스파이가 대답했다.

-하긴…… 클라루스만 해도 그렇지. 영원할 것 같았는데.

"그러게."

나는 거기에 동의했다. 정말로 클라루스는 그냥 영원할 것 같았다. 멤버들이 할아버지가 되어도 계속 팀을 유지해 줄 거라고, 자본이 그렇게 만들어줄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클라루스는 너무 피로가 쌓여서, 더 이상 클라루스라는 이름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잠깐 생각하다가 내가 물었다.

"근데, 클라루스라는 팀은 재계약을 안 해도, 회사에 남으려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클라루스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멤버도 있었다고 했으니까, 남으려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유지하고 싶어 하는 쪽이 회사에 남게 되겠지.

스파이가 말했다.

-확실하진 않은데, 해체를 하자고 말한 멤버는 내가 듣기로 서민혁 씨인 것 같아.

"……확실하지 않은데 어떻게 알아?"

-응, 우연히 대화를 들었어. 서로 마음 상해서 사이가 벌어지는 것보다 해체가 낫겠다고.

"……."

어떻게 그게 우연이냐고 캐묻지 말자. 나만 손해야.

아무튼 나는 클라루스의 리더 서민혁이 해체를 원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가장 클라루스를 사랑하고,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 서민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서민혁이 해체를 원했다는 걸 들으니 정말로 클라루스의 재계약은 어렵겠구나, 싶어졌다.

스파이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클라루스 못 잡으면 같이 회사 나가야 되는 사람들 너무 많아. 거기다가 주주들이 빠따들고 나타날 걸. 1본부 분위기 진짜 안 좋더라.

나는 클라루스의 해체만큼, VMC 차기 대표 자리를 넘보는 이춘형에게 큰 타격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후배이기 이전에 동료 아이돌로서, 해체가 안 된다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스파이와 전화를 끊고 바로 강효준 대표에게로 갔다. A&R팀과 회의를 하던 강효준은 밖에서 내가 부르는 걸 발견하고 잠깐 밖으로 나왔다.

"왜 또. 사고 쳤어?"

"내가 언제 사고를 쳤어요?"

"매일, 다채롭게."

"그게 아니라…… 형. 어쨌든 클라루스 형들, 만약에 해체해도 전부 다 브삼을 떠나진 않을 거 아니에요."

"어, 송다온은 확실히 남을 것 같더라."

"……형, 누가 남을지 알고 있었어요?"

"응. 송다랑 여름이는 재계약할 것 같은데…… 아, 둘만이라도 4본부에서 잡으라고?"

"형, 음대에서는 음악만 가르치나 봐요."

"너 덜떨어졌다는 말을 참 예쁘게 한다."

"이건 알아듣는 걸 보면 그 정도는 아닌데……."

그냥 이 형은 클라루스에 관심이 별로 없는 거다. 그리고 이미, 브삼이 아니라 보이드 엔터만 자기 회사인 거다. 그러니까 4본부의 확장에 큰 관심이 없는 거고.

나는 말을 이었다.

"두 형 4본부에 잡는 건 당연하고, 나머지 브엠 떠나고 싶은 형들을 여기로 잡아 와야죠. 형이 클라루스가 제일 믿는 A&R이잖아요. 형이 중간에 있어야 소속사 갈려도 클라루스 앨범이 또 나오지."

"야, 너 똑똑하다."

"형은 생각을 못한 게 아니에요. 안 한 거지. 아예 회사 확장의 욕심이 없어, 이 형은."

"뭐래, 엄청 있어. 나 맨날 회사에서 사는 거 안 보이냐."

강효준이 피곤한 표정으로, 하도 모니터를 보고 있어 근육이 뭉친 어깨를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근데 나는 퍼스트라이트로 회사를 확장하고 싶어. 그래서 그것만 보는 거야."

"이건 또 감동이네."

"그러니까 클라루스 신경 쓸 시간에 가서 곡 써라."

"넴."

그렇게 내 등을 떠밀고 들어갔던 강효준이 금방 다시 나왔다.

"A&R들이 너 얼굴 창백하다는데."

"아, 진짜요? 아까 코피 나가지고."

"그러고 또 계속 일했지?"

"막 피곤하진 않아서요."

"하, 양이형도 말릴 놈이 아니고."

강효준이 한숨 쉬더니 턱짓했다.

"가자, 선짓국 먹자."

"코피랑 선짓국이 관계가 있어요?"

"몰라. 어른들이 그러잖아."

근데 어른들 말이 웬만하면 맞긴 하더라…….

나는 뜨끈한 국물이 땡기긴 했기 때문에 강효준과 선짓국을 먹으러 갔다. 정작 가보니까 선짓국이 나오는 곱창집이었다. 강효준은 하마처럼 곱창을 마시고, 나는 인간답게 선짓국을 먹었다.

* * *

최윤솔은 정해원과의 영상통화를 떠올렸다.

그걸 보니 이상하게 좀 위안이 됐다. 그놈도 결국 그렇게 코피가 일상일 정도로 작업을 하는 거다. 낮이고 밤이고.

최윤솔은 어깨까지 자란 머리를 단단히 묶었다. 염색도 거의 다 내려와서 새로 탈색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최윤솔은 연한 노란색 머리를 할 때가 제일 반응이 좋았다. 이번에도 그 색으로 할 생각이었다.

초범이기도 하고, 미국 생활 중 익숙하게 접한 약이라는 게 통해 집행유예가 나왔다. 물론 변호사도 잘 썼다.

그래도 이미 인생 조진 것 같다는 확신은 약을 끊을 때 금단 증상에서 느꼈다.

"X발, X발."

머릿속에 연기가 꽉 찬 것 같았다. 약을 먹었을 때 느껴지던 그 총명한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욕은 있는데, 몸도 따라주지 않았다. 팔다리가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는 기분이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궁금한 건 많은데, 이미 천재 작곡가라는 언플을 무지하게 뿌려놨으니 어디 가서 배우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질문할 곳이 정해원밖에 없었다.

그게 참 최윤솔에게는 뭐 같은 상황이었다. 가장 이기고 싶었고, 복수심이 생길 정도로 질투하던 게 정해원이었으니까.

천재면 열심히나 하지 말든지. 열심히 할 거면 이기적이기나 하든지. 정해원이 그 와중에 자신을 어느 정도 동정하고 있다는 게 제일 눈깔 도는 부분이었다.

자신 말고도 정해원이 그냥 싫은 사람이 있을 게 분명했다. 국선아 피디라든지, 그때 선생님이었던, 나가리 된 1본부 보컬 트레이너라든지, 이춘형이라든지.

최윤솔은 생각을 비우고 작업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지금까지 최윤솔은 자신이 명곡을 만들어내지 못할 리가 없다고, 분명히 뭔가,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약을 먹었을 때가 그런 자신감의 정점이었다. 문제는, 약에서 깨고 보니 그 상태로 만든 게 전부 프로 작곡가가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쓰레기였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 사실을 알려준 게 정해원 하나뿐이었다.

"내가 만든다. 무조건 만들고 만다, 내가."

내 천재성을 증명해야지.

최윤솔이 혼자 광인처럼 중얼중얼 거리다가 머리를 키보드 위에 쿵 박았다. 금단 현상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그 상태로 옆으로 스르륵 넘어가 바닥에 풀썩 누웠다. 침대까지 갈 체력도 없었다.

의자 아래 웅크려서 생각해보니 상황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아무리 생각해도 국선아 때문이었다.

"……."

그러고 보니 그렇다.

머리가 흐리멍덩한 지금의 이 상태가 어쩌면 정상적인 상태인지 모르겠다고 최윤솔은 잠시 생각했다. 약을 빨아서 판단력이 흐려졌었는데, 좀 깨고 나서 보니 그 X같은 걸 방송하고도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들이 있었다.

내 인생은 조졌는데? 어쨌든 정해원의 인생도 조질 뻔했는데?

일단, 만약에 먼저 누군가를 칼로 찌른다면 그때 당시의 피디들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이 이춘형.

그 온갖 걸 다 지 공으로 돌리고 싶어 하던 쓰레기.

거기 누워있던 최윤솔이 전화를 눌렀다. 정해원의 전화번호였다.

-아, 왜 또. 이 미친놈아.

"전화를 받지 마. 받고 지랄이야."

-너 뒤질까 봐 자꾸 받잖아, 내가. 내 멘탈도 엉망진창이라고.

"좋겠다. 너는 멘탈이 엉망진창이어도 인간같이 사네."

-어, 나는 밥도 인간 같이 먹지…….

"뭔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왜.

"너 나 왜 도와주냐고 물어본 거였는데. 뒤질까 봐 그랬구나, 알겠다."

-쓸데없는 걸 물어보네.

"다 쇼라던데. 넌 믿냐."

-쇼여도. 쇼를 할 정도로 관심이 필요한 거잖아. 관심 좀 줘야지.

"미친 새끼."

-전화하지 마.

그러더니 이번에도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나름으로 화내는 건가 보다. 어휴, 드럽게 위협적이네.

최윤솔은 잠깐 누워있다가, 팔 힘이 생기자마자 핸드폰을 들어서, 그대로 라이브방송을 켰다.

자살 시도로 떠들썩하던 사람이 라방을 켜자 채팅창에 팬들보다 팬 아닌 사람이 더 많았다.

[와 약쟁이다ㅋㅋㅋㅋㅋㅋㅋ]

[쇼도 여러 번 하면 질린다]

[저 약 좀 추천해주세요]

[윤솔아ㅠㅠㅠㅠㅠㅠㅠㅠ]

[윤]

[솔]

[아]

[사]

[랑]

[X나 못생겼네]

[해]

채팅창을 밀어버리려는 팬들과 그 외의 사람들의 기싸움이 이어졌다. 최윤솔은 그걸 보다가 지쳐서 핸드폰을 든 팔을 땅에 내려놓고 머릴 뻗은 후에 말했다.

"금단 증상이 있어. 팔을 못 들겠어. 그래도 이제 안 할 거야."

[퍽이나]

[아직도 약쟁이 빠는 새끼가 있냐]

[저렇게 호들갑 떠는 새끼 치고 진짜 약 끊는 새끼 못 봄]

[근데 충격적이긴 하다 팔도 못 드네]

"우리 팬들. 믿어주면 재활 잘하고 올게. 근데…… 아무리 해도 난 국선아가 내 인생을 망치긴 한 거 같거든."

안 봐도 보이고, 안 들려도 들린다. 기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말을 정신없이 받아쓰고 있는 것이.

오늘 기삿거리를 충분히 던져줄 생각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