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53화
잠시 후 차가 채연재의 집 앞에 섰다. 잠에서 깬 정해원이 강효준과 함께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와, 연재 형 부자."
"클라루스잖아."
그렇게 이야기하며 두 사람은 채연재의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던 클라루스의 매니저가 달려왔다.
"연재 형 지금 주무실 거 같은데요."
"벨 계속 누르면 깨겠지."
"안 될 거 같은데……."
"급한데 어떡하냐."
채연재를 이 시간에 깨우기가 어려워서 매니저가 머뭇거리는 사이 강효준이 벨을 눌렀다. 한 번 눌러도 안 깨서 여러 번 누르니까 곧 문이 열렸다. 채연재가 하품을 하며 강효준에게 물었다.
"효준아, 미쳤니?"
"아,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아. 들어가 봐."
"그치, 원래 미친놈들이 뻔뻔하지…… 해원이 하이."
채연재가 말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강효준과 정해원을 들여보냈다. 채연재에게 경쾌하게 인사한 정해원이 창문 밖으로 보이는 양재천에 감탄했다.
"우와, 야경 진짜 좋다."
"너는 또 왜 왔어, 안 그래도 바쁜데."
"형 보고 싶어서 왔죠."
"그래? 잘 했어어."
채연재가 말하고 하품을 한 후 강효준이 보냈던 핸드폰 문자들을 확인하고 말했다.
"너네 사촌형 왜 저러냐, 진짜."
"내가 미안하다, 진짜."
"우리 애들은 뭐래?"
"다들 반응이 안 좋은데, 그냥 딱히 뭐라고 말도 없더라."
"응, 이래 놓고 또 미뤄질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채연재와 강효준이 한숨 쉬는데 야경을 보던 정해원이 물었다.
"근데 곡은 있어요? 곡도 없으면서 어떻게 컴백을 해요. 곡이 있어야 날짜를 잡지."
"해원이 혹시 남는 곡 있니."
"에이, 아무리 급해도 어떻게 클라루스가 남는 곡을 써요."
그러자 채연재가 강효준에게 물었다.
"그거 엎어진 거, 데모 가지고 있지?"
"응."
강효준이 대답하더니 익숙하게 채연재의 집 블루투스 스피커를 켰다. 그리고 연결된 자기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줬다. 채연재가 정해원에게 말했다.
"이거, 수원이 형이 작곡한 거. 원래 준비하던 건데. 뭔가 밋밋하다고 엎어졌어."
"어, 노래 진짜 좋은데요…… 미쳤는데?"
"그치. 이게, 이상하게 A&R들은 다 좋다고 했거든. 작곡가들도 다 좋다고 하거든? 근데 직원들 반응이 안 좋더라고. 멤버들도 왠지 확신이 없어 하고."
"음."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근데 밋밋하다는 것도 뭔지는 알 것 같아요."
"그래?"
"사운드가 진짜 좋은데. 뭔가…… 뭔가 그, 뽕삘이라고 하는……."
그 말에 강효준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다들 그 얘기하고, A&R들도 아는데. 어떻게 뭘 건드려야 되는지 모르겠다."
"아, 진짜 아깝다. 너무 좋은데…… 효준이 형 제 거 못 쓴 곡 중에 그거 있잖아요, 비비드."
"어."
정해원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랑 섞으면 딱 좋았을 텐데. 그거 브릿지…… 딱 지금 나오는 여기 넣으면."
강효준은 비비드를 떠올렸고, 정해원이 말하는 순간, 지금 들리는 음악에 비비드의 브릿지가 섞여 들렸다. 잠깐 신호에 걸렸을 때, 강효준이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야, 정해원. 너 진짜 천재다."
"왜, 왜. 비비드가 뭔데?"
채연재가 재촉하자 강효준이 바로 핸드폰에 있던 'VIVID'를 틀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브릿지로 넘겨주자 채연재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곧바로 멤버 단톡방을 열었다.
[자기들]
[좀 깨봐]
[우리 집 좀 와봐]
그러자 안 그래도 강효준의 연락 때문에 깨있던 멤버들이 줄줄이 답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옆 동에 살던 클라루스 리더 서민혁이 금방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왜, 뭔데…… 어, 효준이랑 해원이 왔니."
그런 서민혁을 다짜고짜 스피커 앞으로 데려온 채연재가 강효준의 핸드폰을 빌려 곡을 틀고, 중간에 멈춰 비비드의 브릿지로 연결했다.
"어? 알겠지?"
"……형, 이거 뭐야? 누구 생각이야? 근데 이 곡 써도 돼?"
헛돌던 톱니바퀴가 갑자기 탁 맞아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기계 장치 전체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분. 채연재가 말했다.
"해원이 아이디어. 해원이 곡. 아직 못 쓴 거래."
"쟤 진짜 천재구나…… 해원아, 이…… 어, 자네."
돌아보니 콘서트 연습을 하고 여기까지 온 정해원이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그 사이에 채연재의 집으로 멤버들과 작곡가 박수원이 모였다.
* * *
어떻게 해도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
어른이 엉엉 울 수는 없으니까 다들 주먹을 꼭 쥐고, 설움을 참으며 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클라루스 전담팀에서 드디어 일정을 가지고 본부장을 찾았다.
"본부장님, 5월 29일이요."
"5월 29일? 그게 제일 빨라요?"
"네. 대신 멤버분들, 일본 투어 중간에 한국 와서 사녹하고 다시 가야 돼요. 그래도 일본은 가까우니까……."
"하, 5월 29일……."
지금이 2월 24일인데, 그러니까 석 달 뒤 컴백 티저를 지금 내자는 거였다.
"석 달…… 석 달?"
심지어는 석 달 뒤 일정을, 날짜만 박아서 올리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곡도 없고, 컨셉 포토도 없고, 앨범 제목이며 뭐며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1본부 비주얼 디렉터가 빈 화면에 날짜가 박힌 이미지를 들고 왔다.
"일단은…… 최대한 심플하게 해봤어요. 심플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없는 거긴 한데…… 아,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직원들 모두의 얼굴에 자괴감이 있었다. 비주얼 디렉터도 이걸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역력해 보였지만,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직장인이라 꾸역꾸역 스스로와 타협하는 느낌이었다.
1본부 본부장은 화면에 띄운 이미지를 확인했다. 예전에 쓴 굿즈에 들어간 변형된 클라루스 로고, 그리고 그 아래 날짜만 박힌 이미지였다. 비주얼 디렉터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클라루스인데. 컴백 일정을 그냥 공계에 띡 띄우고 말 순 없잖아요. 이거, 미국에도 걸어야 되고, 일본이랑 유럽게도 다 걸어야 돼요. 저거를…… 어떻게 걸어요…… 쪽팔리게……."
비주얼 디렉터가 한탄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솔직히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 짧은 시간에 저 아이디어를 낸 것에 좀 감탄하고 있었다.
클라루스라는 이름 없이, 로고와 컴백 일정만을 띄우는 마케팅.
그래도 예술가 입장에서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듯했다. 비주얼 디렉터가 말을 이었다.
"하다 못해서, 곡 분위기가 짐작이라도 되면 로고랑 컴백 일정 컬러라도 조절할 수 있거든요. 근데 저게 뭐예요, 허옇게…… 좀 이쁜 흰색으로라도 바꿔야겠다."
비주얼 디렉터가 우는소리를 하며 뭘 열심히 만져서 흰색을 이것저것 바꿔봤다. 솔직히 그걸 보고 있는 1본부 팀장급 모두의 눈에는 그게 그걸로 보였지만, 안 그래도 예민해져 있는 비주얼 디렉터를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마케팅팀 팀장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달은 줘야지, 우리도 광고를 잡죠. 아무리 클라루스여도 오늘 당장 광고를 어떻게 띄워요. 5월 29일이면 한 달 뒤에 광고 때리면 진짜 딱 좋겠는데…… 아,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우리 애들 이렇게 날림으로 대할 애들이 아닌데……."
'솔직히, 이러니까 멤버들이 회사를 뜨지.'
그 자리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팀장급 직원들은 대부분 클라루스가 신인일 때부터 함께 으쌰으쌰 해온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클라루스를 봐왔기 때문에, 더더욱 재계약 시기에 서로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해도 서로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고, 그래서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는 클라루스의 마음을 이해도 했다.
그래서, 해체 전 마지막 앨범은 멋지게 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날림이 아니라.
1본부 본부장은 클라루스의 로고가 뜬 화면을 보다가, 결국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올리지 맙시다."
"예?"
동시에 회의실 내 사람들의 시선이 본부장을 향했다. 본부장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이 맞지, 우리 클라루스, 이런 대우받을 사람들 아니에요. 제대로 준비해서 올립시다, 우리."
상황을 보니까, 이거, 올려도 본인 자리를 지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급조한 일정을 올리면 클라루스의 마음은 회사와 더더욱 멀어질 거고, 그나마 재계약 생각이 있던 멤버들 마음마저 닫아버릴 게 분명했다.
그렇게 돼도 자기 자리는 결국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차라리, 어차피 날아갈 자리라면 멤버들의 마음이라도 덜 상하게 하고 날아가는 게 나았다.
그렇게 잠깐 회의실에 침묵이 흐를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강효준이 들어왔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안 올리셔도 큰일 안 나게."
"예?"
"제 사촌 형이 말썽부린 거니까, 제가 수습해야죠."
강효준의 말에 1본부 본부장의 팔이 툭 떨어졌다. 그러더니 울먹거리며 팔을 벌리고 물었다.
"제가 한 번 안아 드려도……."
"아, 괜찮습니다."
"네, 그럼 마음으로…… 근데 어떻게 수습하시게요?"
강효준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일단은, 이 사진을 공계에 올리시죠."
* * *
그리고 그날 오후 2시 17분. 클라루스 데뷔일 2월 17일에 맞춘 시간.
클라루스 공계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클라루스 멤버 전원과 강효준, 송다온의 솔로 앨범 프로듀서였던 정해원, 그리고 VVV엔터 1본부 박수원 프로듀서였다.
송다온이 찍은 단체 사진에, 송다온의 코멘트가 들어갔다.
[신인 때로 돌아간 기분>< 우리랑 함께 큰 강효준 A&R, 우리 천재 후배 해원이, 수원이 형,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멤버들까지 모여서 회의중♥]
[↳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
[↳회산데 눈물 안 멈춘다…… 어떡하냐……]
[↳우리 애들 다 모였어ㅠㅠㅠㅠㅠㅠㅠㅠ]
[↳효준 A&R 돌아왔네ㅠㅠㅠㅠㅠㅠㅠㅠ]
[↳↳늦덕이라 모르는데 누구예요???]
[↳↳↳입대 전까지 앨범 쭉 같이 한 A&R이에요ㅠㅠㅠㅠㅠㅠ]
[↳↳↳팬들이 얼마나 찾았는데 4본부랑 보이드 갔다가 이제야 와ㅠㅠㅠㅠ아니야 와줘서 고마워요ㅠㅠㅠㅠㅠ]
[↳심지어 데뷔시 맞춰줬어ㅠㅠㅠㅠㅠㅠ]
그리고 2월 24일 화요일.
아침부터 곤두박질쳤던 VMC 주가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X발 개잡주 요동을 치네 아주]
[오늘은 얼마나 떨어질까^^]
[근데 왜 갑자기 또 올라 무섭게 진짜 망하나]
[↳클라루스 사진 올라왔어요]
[근데 이춘형이 사고친 날 강효준이 클라루스랑 찍은 사진 올라온 거 유의미한 거 아님?]
[↳당연히 유의미하지]
[↳이춘형 확실히 나가리 된 거 같은데]
[↳↳나가리까진 몰라도 수습을 강효준이 하는 건 맞음]
[강효준이 대표되면 오르나요?]
[↳아무래도 오너리스크가 줄어들긴 하죠]
[오르는 척 하고 내릴 줄 알았는데 계속 오르네]
[↳그저 빛]
[↳나 이 씨인데 오늘부터 강 씨 한다]
[↳이춘형 나가리 기대 심리+클라루스 컴백 풀반영된 듯]
[오늘 주가 회복 속도랑 사진 올라간 거 보니까 강효준이 확실하게 치고 올라오는듯]
[근데 정해원 미쳤네 클라루스랑 작업하는 것 같은데]
[↳보이드 엔터 상장 언제 하나요]
[↳여기가 진짜 눈여겨 봐둬야 하는 곳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