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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54화 (25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54화

2월 24일 오전 7시. 채연재의 집에 클라루스 멤버 여섯 명, 그리고 보이드 엔터의 강효준 대표와 정해원, VVV엔터 1본부 작곡가 박수원이 모였다.

클라루스 멤버들이 한 명, 한 명 도착했기 때문에 똑같은 노래를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해원이 계속 모르고 자고 있었기 때문에, 슬슬 걱정이 된 채연재가 강효준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봤을 땐 해원이 잠자리 예민한 것 같았는데, 너무 안 깨는 거 아니야?"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래."

"윤솔이 그 친구 때문에?"

"응."

"하긴, 계속 인터넷에 자기 이름 나오는데 어떻게 상관이 없었겠어."

채연재가 한숨 쉬는 사이 강효준이 정해원을 깨웠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흔들고 나서야 깬 정해원이 거실에서 클라루스 멤버 전원이 자길 보고 있는 걸 알고 얼른 일어났다.

"어우, 죄송해요, 왜 이렇게 잘 잤지……."

송다온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해원의 옆에 털썩 앉아 어깨동무를 했다.

"그래서 해원아, 저 노래 줄 거야?"

"아, 써주시면 제가 감사하죠."

"한 번 까인 트라우마가 있어서 물어봤지이."

"그건 제가 잘못했다니까요……."

그렇게 송다온이 익숙한 레퍼토리로 정해원을 놀리고 있는 사이 VVV엔터 1본부 작곡가 박수원이 노트북을 들고 두 사람 쪽으로 왔다. 그리고 커피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해원 씨."

"아, 저 그냥 말 편하게 해주세요."

"그럴까? 효준이한테 스템 파일 받아서 섞어봤는데."

박수원이 자신이 만든 곡과 정해원의 곡을 섞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정해원이 잠이 덜 깨서 흐흐 웃었다.

"너무 좋은데요? 형이랑 저랑 잘 맞나 봐요……. 이런 말 해도 돼요?"

"안 될 건 뭐냐."

박수원도 기분이 좋아 보였고, 멤버들이 커피 테이블 근처에 모여 앉거나, 팔짱을 끼고 서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회의에 들어갔다.

"근데 이렇게 섞으니까 장르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우리 앨범 이름은 어떡해. 원래대로 가는 건 좀 안 어울릴 거 같은데."

그렇게 바로 회의를 하다가, 리더 서민혁이 그사이 채연재에게 밥을 얻어먹고 있는 강효준에게 말했다.

"A&R 뭐 해, 같이 회의해야지."

그러자 강효준이 입에 음식을 삼킨 후 말했다.

"너네 A&R 불러."

그러자 막내, 홍여름이 대뜸 대꾸했다.

"싫어."

"……하."

"우리 A&R팀도 좋은데, 우릴 불편해한단 말이야."

서민혁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 앨범이 너무 사업이 돼버려서, 다들 무슨 보석 핀셋으로 하나, 하나 옮기는 것처럼 작업한다니까. 근데 앨범 작업이 그렇게 조심스러워서 되겠냐. 이것저것 다 내보고, 안 되면 팬들이 이런 거 안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아가는 게 성장이잖아."

"그러기엔 클라루스 연차가 너무 차지 않았냐."

"그래도 아직 하고 싶다고, 그런 걸."

성화를 못 이긴 강효준이 결국 일어나 멤버들 쪽으로 걸어왔다. 정해원은 한 시간 반을 자고 나서 상당히 팔팔해져 박수원과 음악 시퀀서를 띄운 화면을 보고 있었다. 강효준이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1본부에서 한 시까지 컴백 일정 올려야 한다던데."

그러자 정해원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형이 힘 좀 써봐요. 그렇게 날림으로는 못 한다고."

그 말에 강효준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송다온이 말했다.

"맞아. 네가 좀 해결해. 사실 브엠 쪽은 몰라도 브삼은 방패 돼줘야지, 네가."

그러자 침대에 앉아서 X버스를 보고 있던 클라루스 다섯째, 박윤태가 말했다.

"효준이 형은 회사 분위기에 너무 관심이 없다니까. 애초에 형이 1본부에 있기만 했어도……."

"……재계약을 고려했겠지."

평소 제일 말이 없던 최효원이 차마 동생이 꺼내지 못한 말을 꺼냈다.

순간 집이 고요해지자, 집주인 채연재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아침에 김치말이 국수 할 건데 싫은 사람?"

"없지. 없지?"

리더인 서민혁이 정리하자 정해원이 물었다.

"형,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아니이, 너 요리 못할 거 같아, 해원아. 잘하는 음악이나 해."

채연재가 특유의 느긋한 목소리로 말하자 정해원이 일어났다가 '넵' 하고 대답하며 다시 앉았다. 그걸 보며 멤버들이 흐흐 웃다가, 막내 홍여름이 말했다.

"좋다. 이렇게 형들이랑 모여서 음악 얘기하고 있으니까. 얼마 만이야."

그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송다온이 말했다.

"우리 이거 내자. 꼭 내자. 지금 콘서트 코앞인 후배가 여기 와서 이 고생하고 있는데 이걸 안 내?"

"양아치지."

최효원이 한마디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원은 냉큼 피곤해서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막내와도 여덟 살이 차이가 나는 후배의 장난에 분위기는 다시 풀어졌고, 모두가 피로를 잊고 회의를 이어갔다.

* * *

이춘형이 클라루스의 컴백 일정이 올라오지 않은 것을 알고 바로 1본부 본부장에게 전화를 하자, 1본부 본부장이 대답했다.

-클라루스 데뷔일 시간이 있거든요, 2시 17분. 그때 맞춰서 컴백 준비하는 사진 올리려고요. 겨우 멤버들 다 모여서 사진 박았거든요.

거기까지 말하니까 그제야 좀 안심이 됐다.

그리고 1본부 본부장이 말한 것처럼 2시 17분이 지난 후부터, 눈에 띄게 주가가 회복세를 보였다.

잘 해결이 되고 나니 긴장이 풀리며 몸이 느긋해졌다. 대표가 되면 이런 걸로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될 텐데, 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다시 친할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해결했는데 왜 또 전화가 왔나, 싶어 표정을 구기며 전화를 받았다.

"네, 할아버지."

-그래그래. 잘 생각했다.

역시,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 사는 모양이다. 이렇게 칭찬을 하는 걸 보니.

이춘형이 만족하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브삼 쪽은 아예 효준이한테 맡기려는 모양이지?

"……네?"

-잘 생각했어. 음악 잘 아는 애한테 맡겨야지. 간만에 아주 마음에 든다, 춘형아.

그렇게 기분 좋은 목소리로 칭찬하더니 전화가 끊겼다.

미치지 않고서야 강효준에게?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브삼을 줘버리는 일이 있어도, 강효준에게 맡기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왜 그런 메시지로 전달된다는 건지?

이춘형이 황당해서 상황을 파악해보려고 수행비서에게 말해 클라루스 공식 계정을 모니터에 띄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화면에 뜬 첫 사진을 보고 이춘형의 표정이 구겨졌다.

컴백 일정이 아니었다. 아니다 못해 왜 할아버지가 강효준에게 브삼을 맡기는 거냐고 했는지가 납득이 가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클라루스와 강효준이 함께 있는 사진.

"이 새끼 뭐야?"

이춘형이 황당해하다가 곧바로 강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효준이 전화를 받았다.

-어.

"너…… 너 일부러 네 사진 올린 거냐?"

-일부러 올렸냐고?

강효준이 되물어보는데 옆에서 그렇다고 하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어디서 책사를 데려왔구나, 이춘형이 확신하고 표정이 썩어들어가는데 강효준이 대답했다.

-어, 일부러.

"야, 이 X발 새끼야."

-브삼…… 뭐?

강효준이 되묻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전달했다.

-브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형 손 떼.

"누구 맘대로 손을 떼, 브삼이 브엠 계열사인데."

-할아버지가 브삼을 사서 브엠까지 확장한 건데 너무 적반하장 아니냐. 매니지먼트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알아서 하게 놔두라고.

"……너 할아버지가 이뻐하니까 뵈는 게 없지?"

-누가 봐도 형이 뵈는 게 없어, 지금.

"너 엔터계에서 퇴출되고 싶냐?"

-어떻게 퇴출해.

대답이 들리더니 이춘형의 집무실 문이 열리고 강효준이 들어왔다. 강효준이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나랑 일한 브삼 연예인들 다, 브엠이 제재하기라도 하게? 어디 해봐. 주주들이 무슨 소리 할지."

한 대 치고 싶은데, 지금 상황 보니 고분고분 맞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 솔직히 몸싸움으로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이춘형이 시큐리티를 부르려고 문 쪽을 보는데 문 앞에 모자를 쓴 연예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기웃거리고 고개를 드는데 정해원이었다.

……아까부터 옆에서 깐족거리며 조언해 주고 있었던 게 저놈이라고?

정해원은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이춘형과 눈이 마주쳤다. 정해원은 딱히 인사를 하지는 않았고,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냥 이춘형 쪽을 보고 있었는데, 타고나길 사나운 눈빛이라 시비를 거는 기분이 들게 했다.

사실 기분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이춘형은 매번 자신이 타격을 입는 순간, 순간에 정해원이 있었다는 것을 더 이상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역시 매번, 늘, 정해원이 문제였다. 정해원이 없었다면 예전에 소년들을 복귀시켰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정해원이 입을 털지만 않았어도 VMC에서 자신의 입지에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

강효준의 말대로 VVV엔터 연예인을 VMC에서 제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서, 정해원과 일하는 연예인들을 제재할 수도 없었다. 퍼스트라이트 정도 말고는.

되갚아주고 싶은데 바로 되갚아주지 못하니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다.

저 새끼 내가 언젠가 죽여야 되는데. 아니, 저렇게 크기 전에 진작 죽여놨어야 됐는데.

이춘형은 치미는 분노를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지금은 한 보만 후퇴하기로 했다. 대표가 되면 그때야말로…….

이춘형이 생각하는데 강효준이 말했다.

"형이 주가 박살 내서 할아버지한테 처맞을 뻔한 거 살려줬잖아. 고마워하고. 그래도 웬만하면 미국은 가라. 할아버지도 바라시는데."

"야, 이…… 이 미친 새끼야."

"멀리라도 가 있어야 사고를 안 치지."

강효준은 그렇게 말하더니 피곤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 * *

이춘형이 있던 곳에서 나온 후, 나와 강효준이 멈칫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춘형이 물건을 깨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이춘형이 빡쳐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강효준이 히히 웃는 나에게 말했다.

"여기 왜 따라왔어."

"이춘형 빡친 거 보러 왔다니까."

"저 형이 모자라긴 해도 재벌이다. 진짜 미국 가는 비행기 타기 전엔 네가 나서서 시비 걸지 마. 이미 많이 걸긴 했지만……."

"영화처럼 막 납치하고 그런 건 아닐…… 재벌들 그래요?"

"설마."

그렇게 대답하고, 강효준이 약간 미심쩍어해서 괜히 섬뜩해졌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우리는 다시 보이드 엔터로 돌아왔고, 콘서트 준비를 이어갔다. 클라루스 쪽 앨범은 작곡가 박수원, 송다온과 중간중간 교류하기로 했다.

앨범 준비를 이유로 계속 모이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거고, 그러다 보면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피곤해하는 강효준에게 클라루스 앨범 준비할 때 자주 들락거리라고 등을 떠밀었다. 아니, 이런 기회가 없는데 왜 피곤해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그리고 콘서트 이틀 전, 공식 유튜브에 2026년 퍼스트라이트 콘서트 '업라이징'의 티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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