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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58화 (25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58화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늘어지게 잤다.

정말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엄청 부어 있었다.

"어우, 왜 저래."

거울을 회피하고 핸드폰을 봤는데, 언제나처럼 누나에게서 콘서트 후기가 도착해있었다.

매형은 한국어로 말하는 건 어느 정도 해도, 쓰는 건 어려운지 대부분 사진으로 후기를 표현해줬다. 누나가 구시렁거리면서 찍었을 사진들이었다. 매형이 노을이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응원봉을 흔들며 콘서트 스트리밍을 보고 있는 영상도 있었다.

[누나 : 폴라리스 이벤트 할 때 따라 부르면서 울더라고 아빠 우니까 노을이도 울고 난 황당하고]

[누나 : 자꾸 자기가 저기 있어야 했대]

[누나 : 찐팬이여…….]

[누나 : 은근히 한국 가서 살자 그런다]

[누나 : 아니 덕질에 삶을 걸어?]

나는 침대에 누워서 후기를 보며 혼자 낄낄거리고 있었다.

금요일 콘서트 사진에는 노을이와 둘이 보더니, 토요일에는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본 사진이 있었다. 시차 생각하면 아침 10시부터 모여서 본 거였다. 저 초대에 응해준 걸 보니 친구들이 엄청 좋은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영상을 보니까 매형도 폴라리스 이벤트에 대해서 몰랐는지, 우리가 놀라 돌아볼 때부터 입을 틀어막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였다. 그러더니 팬들과 같이 응원봉을 흔들면서 폴라리스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영상 찡하다…….]

[누나 : 이게 찡해? 웃기지 매형이 저러는 거]

[매형이기 전에 햇살이니까]

[안 웃겨 찡해…….]

[누나 : 잠깐만 지금 전해줌]

[누나 : 토니 또 눈물 흘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 : 나 도대체 어떤 사람이랑 결혼한 거니]

[누나 : 케이팝 무섭다]

[누나 : 퍼라 무섭다…….]

[누나 : 근데 조기교육이란 게 효과가 있긴 한가 봐 노을이 울 때도 너네 뮤직비디오 틀어놓으면 가만히 본다? 만화보다 더 좋아해]

나는 누나에게 이어서 노을이 사진도 많이 받아서 마저 힐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보니까 다들 자는지 조용했다. 하품을 하면서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잠이 덜 깬 신지운이 나왔다.

"어디 가."

"작업실."

"미쳤냐. 더 자."

"너네 안 일어나니까 심심해서."

"나 일어났잖아. 선재 깨워서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운전할게."

"진짜? 어디?"

"매운탕 수제비."

"아, 이 아저씨들아."

하여튼 안주원이랑 신지운은 캠핑하거나, 낚시를 하고, 올라오는 길에 기사 식당에 가거나 매운탕 수제비 같은 걸 주로 먹는 것 같다. 둘이 죽이 잘 맞는다.

내가 안 땡겨 하니까 신지운이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밥집을 보여줬다. 좀 멀긴 하지만 넓고 예쁜 브런치 가게가 있어서 거길 가기로 했다.

나는 박선재의 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박선재의 침대에 풀썩 누웠다.

"막냉이, 신지운이랑 브런치 먹으러 갈까?"

"셋이?"

"응. 셋이."

"갈래."

박선재가 눈도 못 뜨고 바로 대답했다.

박선재는 평소 막내 포지션을 민지호에게 뺏기고 살기 때문에, 우리 숙소에 사는 세 명 조합으로 놀러 가는 걸 은근 좋아했다.

다들 직업병이 있어서, 대충 밥 먹고 오자고 해놓고 신경 써서 옷을 입었다. 꾸민 것 같진 않으면서, 신경 써서 옷을 입는 건 차라리 아주 꾸미는 것보다 어려웠다.

우리는 서울을 약간 벗어나서 브런치 카페에 도착했다. 그 사이 잠이 완전히 깬 박선재가 신이 나서 말했다.

"지우니 형, 많이 먹을 거지?"

"어, 우리 테이블 꽉 채우자."

"나 빵 이만큼 사도 다 먹을 수 있어?"

"그냥 다 먹지."

둘이서 신나게 빵 쇼핑을 하는 동안, 나는 배가 별로 안 고파서 딴짓을 하고 있었다. 그때 엄청 큰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날 보고 꼬리를 흔들고 있어서 주인에게 물었다.

"쓰다듬어도 돼요?"

"아, 만져주는 거 엄청 좋아해요."

허락을 받고 나는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따끈따끈하고 엄청 힐링이 됐다.

"너 진짜 너무 귀엽다."

내 말을 알아듣는 지는 모르겠지만 눈망울이 반짝반짝하고 뭔가 신이나 보였다. 그렇게 강아지와 놀다가 우리는 카페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꽉 찬 음식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적당히 시켰네."

"어, 형 있어서 2인분만 했어. 형 빵 쪼가리 하나 먹을 거잖아."

"나도 많이 먹을 땐 먹어."

"그럼 빵 두 개 줄게."

"그건 좀 많다."

내 말에 신지운이 흐흐 웃었다.

우리는 모여서 브런치를 먹고, 나는 카메라로 박선재와 신지운의 사진을 엄청 찍었다. 자연광에 카페도 예뻐서 사진이 엄청 잘 나왔다. 물론 멤버들도 강아지와 노는 것 포함, 내 사진을 백 장씩은 찍어줬다. 직업병이다.

신지운이 박선재의 고기를 썰어주며 말했다.

"우리 막냉이 많이 먹고 많이 커."

"형, 나 다 컸고, 형만큼은 안 클 거야. 그래도 고기는 잘라줘."

"알았어, 평생 잘라줄게."

평소 팀에서도 막내 대우 못 받고, 집에서도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고 있어서 나와 신지운은 일부러 더 둘이 박선재를 데리고 나와주는 편이었다. 신지운이 먼저 이렇게 자주 데리고 나가서 놀자고 했다. 나는 그런 신지운이 기특해서 말했다.

"다 컸다, 신지운."

"난 다 안 컸어."

"아니, 정신적으로 성장했다고."

"정신 안 성장했다고."

"아, 왜 저래."

"뭐 어쩌라고. 빵이나 다 먹어. 그것도 다 못 먹냐."

"먹을 거야, 건드리지 마."

우리는 애들처럼 티격태격하고 결국 박선재가 한숨 쉬며 우리를 말렸다.

"싸우지들 마. 지운이 형은 안 성장했고, 해원이 형은 그건 다 먹어."

박선재가 중재하고 금방 콘서트 얘기를 하면서 낄낄거리다가, 또 티격태격하고, 또 배를 잡고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콘서트 후유증에서 벗어났다.

* * *

강효준 4본부 본부장이 4본부에 들어설 때, 매니지먼트팀 팀장이자 정해원의 스파이, 박중운 매니저가 슬쩍 나타났다. 강효준이 갑자기 나타난 박중운 팀장에 흠칫 놀라며 물었다.

"박 팀장 왜? 뭐, 할 말 있어?"

"좀 이르지만, 승진 미리 축하드립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강효준이 미심쩍게 보고 있으니 박중운 팀장이 말했다.

"부사장님, VMC로 가신다고 들어서요."

"……그래, 뭐. 네가 알아서 알아냈겠지."

강효준은 적당히 이야기하고 박중운 팀장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근데 확정은 아니고, 그냥 얘기만 하는 거야."

외할아버지는 아예 강효준을 VVV엔터로 완전히 자리 잡게 할 모양이었다.

박중운 팀장이 말을 이었다.

"네, 그리고……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VMC 쪽에서 이춘형 이사가 안 쫓겨나려고 발악을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스파이와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본부장실로 도착해보니 먼저 와있는 사람이 있었다. 클라루스 송다온이 자기 집처럼 앉아 있었다.

"어, 왔어?"

"아주 4본부에서 산다, 요즘?"

"너무 안 반가워하는 거 아냐?"

송다온이 핀잔하더니 강효준의 복잡한 책상 위를 손으로 탕탕 치며 말했다.

"야, 이번에 우리 굿즈 마음에 안 들어."

"뭐, 이번에 광고 회사 콜라보 굿즈?"

"찾아보긴 하네?"

"당연하지, 우리 사이에 정이 있는데. 그거 왜."

"지난번 거랑 똑같은 굿즈 구성에 이름만 바뀐 거잖아. 포카만 새로 찍어서…… 포카가 다르니까 안 살 수도 없고. 정작 사서 만족도도 낮고. 아니, 앨범도 안 나오면서 무슨 굿즈는 두 주 간격으로 나오냐고."

"벌써 예판 시작했나?"

"아직. 근데 반응 진짜 안 좋아."

"알았어. 그래도 그건 굿즈가 계약에 있으니까, 디자인 새로 뽑으라고 할게."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아웃핏이랑 할래."

"다른 멤버들도 좋대?"

"응. 다 찬성했어. 근데 또 여기랑 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또 회의에 회의하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외국 스튜디오랑 하자고 한다니까."

"기다려봐."

강효준이 멤버들과 1본부에 전화를 몇 번 돌리더니, 바로 멤버들이 원하는 스튜디오로 전화했다.

스튜디오와 전화를 마친 강효준이 말했다.

"우리 일정 맞춰준다니까 스케줄 알아서 비워."

"……진짜? 이렇게 끝이야? 회의 안 해?"

"멤버들 다 좋다는데 무슨 회의를 해. 또 뭐."

"음원 2시 17분에 내면 안 돼?"

"그건 안 되지."

"그냥 말만 해봤어."

송다온이 말하고 일어나서, 강효준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회의 좀 해보고. 음원은 몰라도 마케팅은 2시 17분에 시작하는 걸로 해보자."

"오예."

송다온이 신나하더니 말을 이었다.

"마케팅도 네가 확인하라고. 알겠지? 넌 원래 부자라서 손이 크잖아."

"어."

강효준은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손으로는 옆에 있는 포스트잇에 적어서 자기 모니터 화면에 붙이고 있었다. 송다온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효준아. 더 많이 승진해라. 네가 힘 생기니까 너무 편하네."

"회사에 남기는 할 거냐."

"난 남지."

송다온이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민혁이 형은 확실히 다른 회사 찾을 것 같고. 애초에 우리나라 레이블이랑 일 안 할 것 같더라."

"그럼 우리가 잡아보려고."

"……어?"

"우리가 잡아본다고. 보이드 작긴 한데."

강효준이 확인하던 카일룸 스케줄들을 잠깐 내려놓고, 의자 뒤로 기대며 말을 이었다.

"보이드, 크게 키우고 싶어. 그리고 할아버지 도움받아서, VVV엔터 독립시킬 거야."

"너…… 야망 없잖아?"

"생겼어, 이제."

강효준이 송다온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난 퍼스트라이트가 진짜로 잘 될 거라고 확신하거든. 언젠가는 세상 누구나 아는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 믿어."

강효준은 소속사 아티스트에 대해 강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드도 그 녀석들이랑 같이 커질 거고, VVV엔터처럼 다른 쪽으로 눈돌리지 않을 거야. 우리는 정말로 음악만 할 거니까."

"……그치, 네가 하고 싶은 게 그거니까."

그렇게 대답하던 송다온이 이내 말을 이었다.

"근데, 원래 스타트업 회사들이 꼭, 우리는 일류 기업이 될 거라고 블러핑 하더라? 솔직히 민혁이 형이 세계 최대 레이블을 포기하고 그냥 너네 회사로는 안 갈 테니까."

그러자 강효준이 말했다.

"블러핑 아닌 거 알잖아."

"어떻게 알아?"

"우리 회사 정해원 있어."

강효준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난 걔가 성공하는데 필요한 모든 걸 다 해줄 거야. 정해원의 성공이, 보이드 엔터의 성공이 될 테니까."

그 말에 송다온이 웃음을 터트렸다.

"넌 아티스트를 너무 믿어."

"클라루스 때문에 그래. 한 번 믿음이 이뤄져 봐서."

"……."

"지금 생각해보니까, 고마워. 솔직히 과하게 행복했어. 클라루스와 일하는 거."

송다온은 한동안 말없이 강효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한 행복이, 송다온은 좀 그리웠다. 잠깐 홀렸다가 정신차린 송다온이 말했다.

"너 되게 잘 꼬신다. 순간 혹했어."

"시킬 거 다 시켰으면 좀 가라."

"어어, 알았어, 알았…… 아, 안 밀어도 간다고."

송다온의 등을 떠밀어 쫓아내고, 강효준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해원 프로듀서님 : 클라루스 형들한테 잘 해주란 말이에요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된다 딱 비전 제시하고 고맙다 사랑한다 많이 말하고]

요즘 약간 정해원이 아바타가 된 기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서로 이익이 맞으니 그냥 아바타 노릇을 해주기로 했다.

[정해원 프로듀서님 : 형 근데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그때 평소 감이 좋은 정해원이 그렇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생각하는데 때마침 본부장실로 스파이가 찾아왔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예리할 때 제일 불안한 둘이 동시에 이러니까, 강효준은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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