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60화 (26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0화

상은 당연히 거절할 수 없다.

클라루스의 미래에 대하여 알려준다는데.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나는 이렇게 '과거의 미래'를 확인할 때는 옆에서 아무리 깨워도 죽은 듯이 기절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걸 보려면 좀 더 조용한 곳, 그리고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을 여유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유 시간을 찾으려고 스케줄을 확인해 보고 있을 때, 안주원이 작업실로 들어왔다. 나는 안주원과 앨범 커버 회의를 좀 더 했다. 그렇게 일하던 중에, 안주원이 나에게 말했다.

"김문재 배우님, 우리 콘서트 후기 진짜 길게 올리셨더라."

"아, 진짜? 못 봤네. 같이 사진만 찍고."

안주원이 보여줘서 봤더니, 콘서트 끝나고 대기실에서 같이 찍은 사진과 함께 진짜로 긴 후기가 올라와 있었다. 정말 배우, 그리고 연출자의 관점이었다. 무대 연출이나, 표정 연기 같은 걸 주로 적어줬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문재 혀엉……. 이따가 고맙다고 전화해야지."

"내성적이시라며. 전화 안 좋아하실걸."

"응, 그래서 하는 거야. 괴롭힐라구."

그렇게 이야기하며 댓글을 봤는데 다행히 팬들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우리 김 배우 또 아이돌 친구한테 새로운 하트 배워왔네 기특해 죽겠다ㅠㅠ]

[문재와 해원 후배님 우정 영원하길……♥]

[지금까지 인스타그램에 스케줄 외에 밖에서 찍은 사진은 해원 후배님이랑 밖에 없네요…….]

[↳헐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요]

[↳우리 문재 광합성도 시켜주고ㅠㅠ 착한 후배님ㅠㅠ]

아휴, 팬분들도 좋아하시니 얼마나 다행이야. 역시 자주 끌고 나가야겠다.

안주원은 반응 좋은 챌린지나 커버 영상들도 이것저것 보여줬다. 서치를 못 하는 나를 위해서 늘 이렇게 몰아서 보여주곤 한다. 고마운 친구다.

나는 영상을 보다가 우리 정규 2집 수록곡, 스테이를 커버한 영상 하나를 보았다.

우리 멤버들이 좋아하는 만큼, 선후배들에게도 스테이의 호응이 좋아서, 커버를 종종 올려주셨다.

커버가 올라오면 신기하고, 설렘도 있다. 이건 우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최근 확 인기가 늘어나고 있는 블랙피치의 멤버 강호정의 커버였다.

[Stay, 영원히 소년 같기를]

[Stay, 잊지 않고 사랑하기를]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데 노래가 귀에 안 들어왔다.

"와, 호정이 형 진짜 잘생겼다. 블랙피치 이번 앨범 다 들어봤는데 노래 좋더라고."

"어제 나왔는데 다 들었어? 너 진짜 타임터너 있냐."

"없어도 들어야지. 우리 업곈데."

나는 한참 영상을 보다가 안주원에게 말했다.

"그래도 네가 아주 쪼끔 더 잘생겼어. 내 눈엔."

"말이 되냐. 어떻게 내가 호정이 형보다 잘생겨."

"아, 내 눈엔 그렇다고."

나는 투덜거리며, 이어서 블랙피치의 신곡도 플레이 했다.

예전까지는 이 팀의 색깔이 없는 느낌이었다. 노래는 상큼, 발랄 그 자체인데, 멤버들의 얼굴이 그렇게까지 상큼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하지 말자. 우리 팀도 귀여움을 추구하는데 누가 누구보고 뭐라고…….

아무튼 지금은 으른섹시 쪽으로 방향을 살짝 틀었는데, 그게 진짜 잘 맞았다.

우리보다 한 달 먼저 데뷔한 팀, 블랙피치는 그래도 후배인 우리 팀의 커버를 팀으로만 세 곡, 멤버 각자 커버한 것도 또 강호정 포함 두 곡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프루티였다.

우리 팀을 엄청 좋아하나 보다. 안주원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말했다.

"블랙피치에 우리 팬이 있나."

"그치? 나도 그 생각했어."

"아니면 네 노래를 좋아하나 봐. 뭐, 네 노래 좋아하는 사람 워낙 많아서."

안주원이 지나가는 말처럼 그렇게 말했다. 하여튼 안주원은 내 자존감을 높여주려고 늘 노력하는 느낌이다. 역시, 다시 한번 고마운 친구다.

"이렇게 많이 커버해 주는데, 우리도 블랙피치 커버 한번 할까? 으른으른한 걸로?"

내가 물어보니까 안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 * *

그날 밤, 겨우 안정적인 휴식 시간을 얻은 나는 하품을 한번 하고 침대에 누웠다.

['클라루스'의 미래에 관하여]

시작하려는데 좀 많이 쫄렸다. 그냥 안 보는 게 낫나, 싶다가도 이번 이춘형 부자의 정리해고에 클라루스만큼 중요한 키가 없어 안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클라루스'의 미래에 관한 기억을 확인합니다]

[확인 중…….]

그리고 지난번처럼 숫자 세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어떤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날짜부터 확인했다. 내가 몇 살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10년 뒤. 나는 서른세 살이었다.

나는 창고 같은 곳에 있었고 내려다보니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핏도 별로고, 옷도 산 지 오래된 걸 벽장에 처박아놨다가 입은 게 분명했다.

"……."

직업이 아이돌이라, 핏 이상한 옷에 엄청 신경이 쓰였다. 어디 나가고 싶지도 않다. 어휴.

다행히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몸에 자유도가 있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머리라도 한 번 더 정리했다. 덥수룩해 보이는 머리칼을 왁스로 만져 이마를 깠더니 약간은 덜 우울해 보인다.

"머리도 안 자르고 다니니, 이 아저씨야."

나는 나한테 한 소리 하고, 창고에서 나왔다. 자그마하고, 환경이 열악한 연습실이 나왔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여자 아이돌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내가 키우겠다고 덤비던 멤버들.

신기하게도 멤버 한 명, 한 명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게 이상하게 반가워서 나는 웃음이 났다.

다만 나이로 치면 지금 나보다 누나라, 살짝 어렵다…….

다섯 명 중 제일 발랄하고 시끌시끌한 명소은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달려왔다.

"사장님, 뭐예요? 머리 만졌어요, 지금?"

"어어."

"할 줄 아는데 왜 안 하고 다녀요?"

"바쁘잖니."

나는 적당히 말하고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반지하에, 거울 하나는 깨져서 박스테이프로 붙여놨다. 데뷔했는데 잘 안돼서 바로 해체되고, 혹은 운이 나빠서 데뷔 자체를 못 한 이십 대 초중반의 멤버들을, 어떻게든 무대에 올리겠다고 무작정 회사를 차렸다. 이렇게 열악한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쾌하기 짝이 없는 멤버들을 보니 괜히 가슴이 아렸다.

그렇게 보다가 나가려는데 명소은의 소울메이트, 단짝 친구인 신비은이 말했다.

"사장님, 진짜 갈 거예요? 브엠?"

"어떻게 알았어?"

이 부분은 내 입이 저절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멤버 박유나와 같이 스트레칭을 하던, 발레 전공자 이민아가 말했다.

"유나가 전화하시는 거 들었어요. 박경석 피디님이랑."

"아."

와.

나 몰려서 박경석한테 전화했구나.

국선아 제작 PD 중 한 사람, 특히 악편의 주범이었던 박경석 피디에게 전화를 했다는 걸 보니 정말 벼랑 끝까지 몰려 있었나 보다.

그렇게 4년을 더 버티다가 과로사한 기억이 있다. 생각하니 내가 진짜 무능했다. 심지어는 그만둘 결단력도 없었다.

절대로 아이돌은 안 키워야겠다. 저 친구들을 다시 만나도 꼭, 반드시 프로듀싱만 해야지. 사업은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지…….

나는 다짐하며 구두를 내려봤다가 흐흐 웃었다.

"……정태 형이 사준 건데, 이거."

내가 갓 로드매니저가 됐을 때, 부정태가 사회 나오면 정장도 입고, 구두 신는 날도 오는 법이라면서 정장과 구두 사줬다. 그러니까 스무 살에 받은 구두를 서른세 살에도 꺼내서 신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엔터계에서 13년 동안 구두 신을 일이 그만큼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장에도 운동화를 신곤 했으니까.

이 미래에서, 부정태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장 여기 이 세계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나는 그런 마음을 누르고 연습실을 나섰다.

VMC에 도착해 보니 박경석 피디가 나를 반겨줬다.

"어, 해원이."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진작 인사 좀 드렸어야 되는데."

"지금 왔으면 됐지, 뭐."

아, 화나. 너무 열 받아.

나는 박경석 피디와 반가운 척 인사하는 게 역겨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박경석 피디가 잘린 걸 알고 있으니까 좀 낫지, 이때의 나는 그냥 그렇게, 여전히 국혐이라는 멸칭을 단 상태로 박경석 피디에게 숙이고 들어갔을 것이다. 기분이 안 좋았겠다. 정말로.

악편이 까발려지지 않은 상태의 박경석 피디는 나를 좀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나는 그걸 믿어봤던 듯하다. 박경석이 말했다.

"옛날얘기가 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퍼펙트 엔터가 너무해. 계속 키워줘야지."

네놈이 악편 해서 그렇잖아, 이 새끼야…….

나는 올라오는 욕을 다시 꾹 누르고, 두 손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아, 뭐. 전 오히려 좋아요. 무대가 저랑 안 맞아서. 소속사 운영이 훨씬 잘 맞거든요."

"그럼 다행이긴 하네. 하긴, 너랑 무대가 안 맞긴 했어. 괜히 아이돌 서바이벌 나와서 고생만 하고."

……돌겠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나는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 스퀘어 애들 진짜 뭐 절대 안 빼거든요. 카메라 저 모서리에 걸려 있는 거라도 시켜만 주시면 당장 달려오겠습니다, 피디님."

"스퀘어……에 누가 있지?"

"제가 그러실 줄 알고 또 자료를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하지만 바쁘신데 읽기 힘드시겠죠? 그래서 제가 전부 세 줄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능청만 늘었다.

나는 원수의 도움을 받으려, 우리 멤버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근데 듣고 있는 박경석의 태도가 영 시큰둥했다.

몰릴 대로 몰린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칠까 봐 일단 만나는 줬는데, 진짜로 우리 애들을 도와줄 생각은 조금도 없는 거다. 뭐,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카메라 끄트머리에 걸리는 정도 자리야 줬을지 몰라도.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는 나는 그 태도를 모른 척하고 계속해서 멤버 소개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 친구가 막내인데, 새미라고……."

"어, 연재 씨! 아이고!"

무심코 멤버 소개에 집중하던 나는 그 이름에 급하게 일어나 돌아봤다. 클라루스 채연재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10년이 지났을 텐데 그대로다. 뱀파이어 같았다.

여기서 나는 채연재와 모르는 사이니까, 그냥 꾸벅 인사를 하고 끝이었다. 박경석이 내가 있어서인지 열심히 아는 척을 했다.

"브엠에는 클라루스 공연 때문에 오신 거죠?"

어? 클라루스 공연? 그럼 해체 안 한 건가?

내가 생각하는데 채연재가 대답했다.

"네, 애들이 한번 뭉치자고 해서."

"10년 만인가요?"

"해체 전에도, 입대 이후에는 앨범이 안 나왔으니까 훨씬 더 됐죠."

아. 했구나. 결국…….

가슴이 철렁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다정다감한 성격의 채연재는 옆에 나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물었다.

"같이 계신 분은."

"작은 소속사 하나 하는데, 키우는 애들 좀 봐달라고 해서요."

야이씨, '작은' 소속사는 내가 말해야지…….

"아, 고생해요."

채연재가 말하고 가려 해서, 나는 아는 체를 하려고 급하게 말했다.

"그, 강효준 A&R님도 이번에 같이 하세요? 저 클라루스 음악 엄청 많이 들어가지고, 그 조합 좋아하거든요."

하, 내가 또 빅 블루 팬이라 클라루스에 대해 아는 게 은근 없다. 아는 형이나 팔아야지…….

근데 내 말에 채연재도 박경석도 영 표정이 안 좋았다. 박경석이 말했다.

"야, 그분은 엔터 쪽 떠난 지가 언젠데……."

……어?

황당해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A&R이 엔터계를 떠나면 어디서 일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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