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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61화 (26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1화

내가 황당해하는데 떠드는 걸 좋아하는 박경석이 말했다.

"그 4본부 가서 갑자기 떠맡은 아이돌이…… 카일룸인가? 그 팀. 처음에 잘 안되다가 겨우 띄워놨더니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사고를 쳐서."

"사고요? 누가요?"

"뭐, 워낙 많이 쳤지……. 차우석이 스타트하고."

……이 새끼가?

물론 이제는 그 정신 빠진 놈이 아니라서 좀 낫겠지만, 엇나가지 않게 잘 살피긴 해야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효준은 클라루스 해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회사를 나갔다는 모양이었다. 클라루스의 해체를 막지 못한 이춘형이 강효준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듯했다.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

지금 이춘형이 하는 짓을 보면 다음 목표는 어차피 강효준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강효준에게 클라루스 해체의 책임을 전가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번에는 더더욱. 돌아가자마자 강효준에게 언론 쪽 신경 쓰라고 말해야겠다.

그나저나 박경석은 채연재가 어려우면서 약간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나에게 말했다.

"아, 일정이 생겼네. 다 먹고 천천히 가."

"네? 아, 네."

이렇게 가네. 설명은 들었겠지?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설마 우리 애들 카메라에 걸리게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채연재가 잠깐 날 보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더니 한참 고민하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뭐 해? 어…… 아, 우리 뭉치는 거 들었어? 근데 연락 한번 안 하네…… 아, 한번 오라구."

아마 말 나온 김에 강효준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어. 근데 잠깐만 이러고 지금 상황을 막 바꿔도 되나? 어차피 꿈이니까 괜찮겠지? 나 막 이 꿈에서 안 깨고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게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사이에 채연재가 전화를 이어갔다.

"아, 내가 바쁠 때 전화했구나, 미안해."

그러더니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 죽일 궁금증을 못 참고 물었다.

"뭐 하느라 바쁘대요?"

엇, 아는 형이라 너무 편하게 물어봤나. 이 형 스타 중에서도 대스타인데…….

근데 다행히 채연재도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는지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 사업 물려받는다고…… 완전 회사원 됐어요. 뭐 건설사를 인수한다고……."

예전에 강효준의 아버지가 의류 벤더 업계 1위인 회사의 대표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스파이에게. 스파이가 어떻게 한번 검색해 볼 생각을 안 했냐고 엄청 충격받았었지……. 아니, 남의 아버지 뭐 하시는지 내가 알아서 뭐하게…….

아무튼 강효준과 건설사. 진짜 안 어울린다. 최악의 조합이다, 최악.

내가 너무 질색했더니 채연재가 좀 웃었다.

"근데 엄청 잘나가던데. A&R보다 그쪽이 적성인가 봐요."

그 형이? 사업과 정치질에 있어서는 세상에서 제일 먼 사람인데?

"……그럴 리가요?"

내 대답에 채연재가 이번엔 소리내서 웃더니 물었다.

"우리 팬이에요? A&R을 알 정도면."

"아, 그럼요. 대한민국에 클라루스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우리 팬 아니네?"

라고 말하는데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아, 무섭다…….

나는 한숨을 쉬며 실토했다.

"사실 저는 스키퍼……."

"뭐야, 라이벌이었어."

"에이, 친하시면서."

"친한 거랑은 별개지. 예전에나 서로 신경 안 쓰는 척했지. 사실 엄청 신경 썼거든, 서로."

오, 그랬군.

멤버 하나, 하나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인, 국민 그룹으로 불리는 빅 블루와 세계 아이돌 클라루스는 서로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그룹이라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친한 것과 업무적인 견제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다행히 채연재는 여전히 사교적이었고, 나에게 되게 친절했다. 그리고 나는 금방 그 이유를 알았다.

"거기 나왔었죠? 옛날에. 국선아."

"……어떻게 아세요?"

15년 전인데?

내 말에 채연재가 말했다.

"그때 엄청 안타까웠거든요. 나도 신인 때 박경석 피디한테 그런 편집 받은 적이 있었어."

그랬어?

전혀 몰랐다. 박경석 이 새끼, 역시 하나만 하지 않는군. 그래서 이렇게 채연재를 불편해하며 급하게 떠나버린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채연재가 나에게 호의적이기는 한데, 그래도 너무 대스타라 어려워서 내 자리로 갈까, 하는데 채연재가 말했다.

"브엠 너무 오랜만이라, 여기서 커피 한잔하면서 옛날 생각 하려고 온 건데. 같이 얘기할래요?"

"……그래도 돼요?"

"응, 심심한데 뭐."

아, 이 형 진짜 10년 뒤에도 성격 좋다.

나는 커피를 들고 채연재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 말 그대로 채연재의 추억 여행에 동참했다.

나는 팬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이제 클라루스에 대하여 너무 잘 알았다. 멤버들의 성격, 말투, 좋아하는 음악까지.

VMC의 카페테리아 창가 자리에 앉아서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클라루스에 대하여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채연재는 나와 음악 이야기가 잘 맞아서인지, 이번 콘서트 컨셉이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컨셉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10년 전 해체 즈음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윤태가 가져온 컨셉이 회의에서 올라가고, 올라가다가 어디 멈춰서 진행이 없는 거야. 그때 윤태가 진짜 회사에 실망한 거 같더라."

클라루스의 막내즈. 박윤태는 제대 직후에 열정적으로 클라루스의 앨범 컨셉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 박윤태의 의견을 아예 거절해 버리기에는 너무 거물이라, VMC에서 딱 잘라 안 된다고도 안 하고, 그렇다고 진행도 안 되는 상태로 걸려 있으니 박윤태는 진이 빠졌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리더인 서민혁이 총대를 메고 나섰고, 회사와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고 했다.

그리고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회사의 답을 들었다.

"위험하대. 아니, 뭐가 그렇게 위험해."

클라루스의 앨범으로 내기에는 위험하다. 이미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이런 실험적인 컨셉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예상할 수 있는 답이었다. 내 눈에도 안전한 컨셉은 아니었다.

박윤태가 가져온 것은 클라루스 극 초기 앨범, 두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 'Everlasting'에서 이어지는 컨셉이었다.

신인이던 클라루스를 스타로 만들어준 곡. 치기 어린 첫사랑을 강렬한 힙합 사운드로 표현한 이때의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사실 그건 실험적이었고, 소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이 곡의 가장 큰 표현력이기도 했다.

"제 생각에도 위험하네요."

"사실 내 생각에도."

"근데 멤버분들 생각은 어땠어요?"

"응?"

"그래도, 멤버분들이 하고 싶으면 해야죠."

내 말에 채연재가 좀 생각하더니, VMC의 유리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그 얘기를 안 했었네, 서로. 지금 생각해 보니까."

채연재는 내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쓴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지지를 안 해줬네, 그때."

"……."

"나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내가 본 이후 처음으로 욕을 뱉었다. 내가 가진 채연재의 이미지는 겨울의 포근한 이불 같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채연재는 아무래도, 해체의 이유 중에 멤버들이 박윤태를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도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듯했다. 어쩌면, 그게 아주 크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빨리 가서 채연재가 VMC 카페테리아에서 주로 마시는 연유 커피를 주문해 받아왔다. 채연재가 좋아하는 메뉴이다 보니 10년이 지난 뒤에도 팔고 있었다. 내가 연유 커피를 가져다주니까 채연재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너 스키퍼 맞아?"

"원래, 라이벌에 대해서 더 찾아보게 되고 그렇잖아요."

"하긴."

채연재가 흐흐 웃으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커피 고맙고, 슬슬 가야겠다."

"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말하며 채연재에게 인사하는데, 문 쪽에서 웬 회사 중역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강효준이었다. 채연재가 누가 봐도 올 줄 알았던 표정으로 말했다.

"바쁘다더니?"

"오라며."

강효준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채연재는 뱀파이어 같을 정도로 그대로인데, 강효준은 완전히 다른 사림이었다. 누가 봐도 사업가에 재수 없어 보이고, 얼굴에 재벌 3세라고 쓰여 있다. 저 형이 음악을 안 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근데 의외로 저게 더 성공한 거 아니야? 음악을 포기하니까 찐 사업가 같아 보이는데?

내가 생각하는 사이, 강효준은 채연재와 멤버들을 만나러 떠났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혹시, 우리 멤버들에게 온 연락이 있나,

마지막 연락이 6년 전이었다.

6년. 그래도 민지호가 꽤 마지막까지 나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었다. 다른 멤버들은 진작 끊겼고, 안주원은 가장 먼저 끊겼다.

핸드폰을 보며 나는 초조해졌다. 이제 확인할 건 다 했으니까, 빨리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빨리 돌아가서 우리 멤버들이 있는 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초조해서 일단 카페테리아를 나왔다. 이놈의 회사는 카드가 없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다. 나에게 출입증이 없고, 같이 들어온 박경석도 없으니 잠깐 들어가 정신을 차릴 곳이 없었다. 계단이라도 나가려고 문을 열어봤는데, 여기도 카드가 있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미치겠네."

남의 회사에서 쓰러지면 진짜 기사 나올 수도 있겠는데. 그럼 우리 스퀘어 애들 한번 기사에 이름…… 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서른세 살의 나와 스물세 살의 나의 생각이 섞여 있는 모양이다.

문을 두드리고 열어보려 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해."

돌아보니 신지운이 있었다. 나는 말이 안 나와서 문 좀 열어달라고 손으로 두들기기만 했다. 신지운이 바로 카드로 문을 열어줘서 나는 계단참으로 나와 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여기 안 와야지. 진짜 끔찍하다.

같이 나온 서른두 살의 신지운은 진짜로 엄청 어른이었다. 잘 나가 보여서 좋긴 한데, 이거 이렇게 과거의 미래, 막 바뀌어도 괜찮나? 어차피 돌아갈 거니까…… 돌아갈 수 있겠지? 여기 너무 싫은데.

어쩌면 이게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피하기 어려웠다. 멤버들과 함께 살고, 꿈꾸는 그 세상은 내 환상이고, 지금이 현실.

클라루스는 해체하고, 강효준은 건설사를 인수하고, 신지운은 배우가 된 그런 미래.

신지운이 내 등을 두들겨 주며 말했다.

"15년 만에 만나서 이러고 있냐."

"지운아, 주원이…… 주원이 어떻게 됐지?"

지난번에 제일 걱정된 건 안주원이어서, 그렇게 물어봤더니 신지운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몰라서 물어?"

모르겠는데, 계속 모르고 싶다. 알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다행히 잠에서 깼다.

다행히, 그건 꿈이었고, 나는 숙소에 있었다. 나는 깨자마자 방에서 나와 우리 숙소를 나가, 맞은 편의 안주원네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주원의 방으로 들어가, 녀석을 흔들어 깨워 말했다.

"야, 일어나 봐."

"왜……."

안주원이 잠결에 흔드는 내 팔을 뿌리치며 돌아누웠다가, 바로 몸을 일으켰다.

"어디 안 좋아?"

안주원의 멀쩡한 얼굴을 보니 겨우 현실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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