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2화
새벽에 갑자기 사색이 된 정해원이 숙소를 건너왔다. 안 그래도 허연 얼굴이 종이처럼 창백해져서 뜬금없이 안주원에게 물었다.
“주원아. 너 행복해?”
“……어?”
안주원은 황당해서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네 시였다. 안주원은 협탁을 더듬거려 안경을도 찾아서 꼈다. 시력이 약간 나쁜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조명 때문에 좀 더 시력이 떨어져 숙소에서는 안경을 끼고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정해원에게 되물었다.
“행복하냐고?”
“어.”
“새벽 네 시에? 남의 방에 와서?”
“아니, 야. 이게 어려워? 행복하냐고.”
그래 놓고 지가 성질을 냈다. 안주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특유의 다정한 심성을 발휘해 진지하게 대답했다.
“사람이 늘 행복할 수는 없지. 그래도 평균적인 상태를 말하자면, 꽤?”
“음.”
정해원은 안주원의 대답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그런 진지한 반응에 대답을 더 열성적으로 했어야 했나, 안주원은 잠깐 고민했다.
한동안 생각하던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다행이네. 혹시 고민 있으면 말해.”
“고민?”
“응. 뭐 있어?”
안주원은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지만, 정해원이 우울해 보여서 일단 대화를 더 나누어주기로 했다.
평소 진솔한 이야기는 주로 신지운과 나눴고, 웬만하면 술과 대화를 병행하다 보니, 술 없이 진솔한 이야기를 하려니 괜히 낯간지러웠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반드시 맨정신에 해야 한다고, 그래야 놓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말을 갓 스무 살이 되어 아버지와 처음 술을 마실 때 배웠다.
“고민이 있기야 하지.”
“무슨 고민?”
“우리 팀, 오래, 오래 가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안주원의 말에 정해원이 흐흐 웃었다.
“나도 맨날 하는 고민인데.”
“우리 멤버들 중에 그 고민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
“사실, 네가 안 지치는 게 중요하잖아. 솔직히 이미 우리 팀 메인 프로듀서라 여유 가질 수 없는 거 아는데…… 그래도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말해줘.”
“알았어.”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너도.”
“나야 힘들게 없지.”
“그렇게 말하지 말고. 어떻게 힘들게 없어. 그리고 사실 너 요새 노래 잘해.”
“그럼 칭찬을 더 해.”
“하. 야. 내가 너 잘생겼다고 칭찬을 그렇게 하는데.”
“얼굴 말고 노래 좀 칭찬하라고.”
“원래 그래. 범재들은 재능을 칭찬받고 싶어 하고, 천재들은 노력을 칭찬받고 싶어 하더라고.”
“어, 알아들었어. 나 노래 재능은 평범하고 얼굴은 천재라고.”
안주원의 말에 정해원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낄낄거리며 웃었다.
“야, 사실이긴 한데 네 입으로 들으니까 웃기다.”
그렇게 말하고 둘이서 실없이 웃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문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눈을 반도 못 뜬 황새벽이 들어왔다. 안주원이 물었다.
“문 소리 때문에 깼어?”
“어어어…….”
“와, 진짜 신기하다. 넌 매니저 형들 들락거릴 땐 전혀 모르고 자는데, 어떻게 멤버들 다닐 땐 바로 아냐.”
“몰라…… 약간 쎄해…….”
황새벽이 말하더니 안주원의 침대에 쓰러져 드러누웠다. 정해원이 말했다.
“감동이다, 그래도. 걱정돼서 저 방에서 이 방 씩이나 왔어? 새부기가?”
“어…….”
“아냐, 말 안 걸게. 그냥 자.”
“안 그래도 그럴 거야…….”
그러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남은 두 사람은 한동안 낄낄거리다가, 안주원이 말했다.
“근데 우리 맏형 셋이 이러고 있는 거 오랜만이다.”
“네가 맨날 신지운이랑만 놀아서 그렇잖아.”
“내가 언제.”
“뭐, 지난주에도 신지운이랑 낚시 갔지, 콘서트 전에 캠핑도 둘이 갔지.”
“너 미끼 끼우는 거 징그러워서 낚시 안가잖아.”
“물어도 안 봤잖아. 물어는 보라고.”
“알았어, 알았어, 다음부터 물어볼게.”
나름으로 소곤소곤 대화했는데도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는지, 곧 민지호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바닥에 앉은 정해원의 다리를 베고 누워서 말했다.
“왜 형들끼리 놀아.”
“민조 왜 이 시간에 일어났어?”
“형들이 나 빼고 놀아서!”
민지호가 말하더니 거기서 또 졸기 시작했다. 안주원은 동생이 바닥에서 자는 게 신경 쓰이는지 민지호를 흔들었다.
“지호야, 침대에서 자.”
“웅.”
민지호가 안주원의 팔에 이끌려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 누워 황새벽에게 들러붙었다.
“새부기 형아아, 히히.”
“어어어…….”
그렇게 둘에게 침대를 내주고 안주원은 의자로 가서 앉았다. 잠깐 조용하다가, 안주원이 말했다.
“해원아, 너는?”
“응?”
“행복하냐.”
그 말에 정해원이 고개를 돌려 안주원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솔직하게.”
“행복하고 불안하지.”
“…….”
“솔직히 그래. 근데 사람이, 약간의 불안은 있어야 열심히 살게 되잖아.”
정해원은 그렇게 말하고, 더는 잠이 안 오는지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안주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했다. 그러다 아침 일찍 작업실로 출발했다.
* * *
다른 멤버였으면 미쳤냐고 무시하고 잤을 텐데, 안주원은 착한 놈이라 내 걱정이 됐는지 엄청 피곤해하면서도 내가 진상 떠는 걸 다 들어줬다. 덕분에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건 꿈이다. 현실은 이곳이고.
다만 어쩌면 흐름이라는 것에는 관성이 있어서, 원래 흘러가야 했던 방향으로 돌아가려 할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그 생각에서 벗어났다. 만약 그렇다면 돌아가지 않게 붙잡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만약에 이게 꿈이면 안 깨면 되는 거고.
나는 생각하며 빈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스파이에게 전화했다. 스파이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응, 해원아.
“형, 있잖아. 형이 이춘형 측근으로 접근하긴 좀 어렵지?”
-어? 갑자기 왜?
“아무래도 그 자식이, 클라루스 형들 해체하면, 그거 효준이 형한테 덮어씌울 것 같거든.”
-어어?
어어? 하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누가 들으면 소풍 전날 유치원생 같을 정도로 들떠있었다. 왜……? 왜 들뜨는데……?
-맞아, 나도 그 부분 걱정되는데, 강 본부장님도 알겠다고만 하시고, 폴 존스 콜라보 끝나고 얘기하자고 하시더라고. 급한 건 아는데…….
이 아저씨가 지 목 날아가게 생겼는데 일단 미뤄놓고 있었어?
아니, 이러니까 자리 없어져서 건설사 어쩌고 하고 있지. 물론 A&R일 때는 거의 일에 담갔다가 뺀 것처럼 반폐인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만 보다가, 건설 쪽에서 사업가 노릇하는 쪽이 훨씬 말끔해 보이긴 했다. 평소엔 운전 험하게 하는 것 빼고는 재벌이라는 걸 잊어버릴 정도였는데…….
엄청 성공해 보였던 게, 좀 신경 쓰이긴 한다. 물론 강효준이 음악에 목숨을 건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누가 봐도 성공한 재벌의 인생이 더 즐거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강효준이 나중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이춘형이 클라루스 해체의 책임을 다른 쪽으로 미루려 하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그거야말로 내 개인의 원한이다.
우선 나는 클라루스 형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니까, 클라루스 멤버 박윤태의 아이디어가 회사에서 어떻게, 어디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파이에게 말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형. 1본부에 아마 클라루스 윤태 형이 낸 기획, 어딘 가에서 계류 중일 거야.”
-아, 어.
“그것 좀…… 모르게 가져다 줄 수 있어? 기획서?”
-응, 그래.
……누가 봐도 불법적인 부탁인데 고민 좀 해주라, 부탁하는 내가 당황스러우니까.
스파이가 누가 봐도 신이 나 있다가, 갑자기 살짝 풀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이런 기획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응? 그냥. 건너, 건너.”
-나 말고 다른 사람 있니.
“……다른 사람 있냐니. 형, 남들이 들으면 오해해.”
-말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줘.
“아니…… 형, 오해야.”
아니, 내 대답 때문에 더 오해하겠는데? 이거 맞아?
-1본부, 특히 앨범 기획 관련된 건 보완이 얼마나 철저한지 알잖아. 직원들도 몇 명 모르는데. 클라루스 멤버가 올린 기획을 어떻게 건너, 건너 아냐고.
역시, 프로 스파이라서 그런지 어느 일이 어렵고, 쉬운지 그냥 딱 들으면 딱 안다. 아무리 계류 중이어도 1본부 기획이 뭐가 있는지 알아내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그 기획서를 쿨하게 가져다 준다는 스파이의 말에 그래서 더 당황한 거고.
아무튼 나는 급하게 박중운 팀장을 달랬다.
“형, 나 못 믿어?”
-하…….
“아, 왜 한숨이야. 왜 나 나쁜 사람 만들어?”
-진짜 다른 사람 없어?
“없다고, 나한텐 형밖에 없어.”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그제야 스파이가 만족했다. 미치겠네. 뭐야, 이 바람피운 기분은…….
내가 그렇게 달래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혹시.”
돌아보니 내가 정신없는 사이에 들어온 양이형이 있었다. 뭐가 혹시야, 이 사람아.
하…… 오늘따라 피곤하다…….
나는 그렇게 오해를 샀지만, 양이형은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나와 작업을 하다가, 담배를 피우고 온다고 잠깐 나갔다.
그 사이에 나는 VVV엔터 4본부 소속 아이돌, 카일룸의 차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우석이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형이 웬일로 먼저 전화했어요? 형 저 이거 녹음해도 돼요? 형…….
“야, 좀 대답을 들으면서 얘기해.”
-알았어요. 근데 진짜 웬일이에요?
“어…….”
너 이 새끼, 사고 칠 것 같으니까 미리 경고하려고……는 좀 이상한데.
차우석이 스타트로 사고를 친 게, 강효준이 VVV엔터에서 입지가 좁아진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걸 막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부터 하고 나니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뭐, 이 녀석은 자신만만하다 못해 자만한 녀석이니까. 칭찬을 좀 해줘봐야겠다.
“너.”
-네.
“요즘 노래 잘하더라.”
-……네?
“생각해보니까, 넌 아이돌이 천직이야. 프로 아이돌이야.”
-형. 왜 그래요? 안 좋은 생각 하는 거 아니죠? 제가 지금 갈까요?
……내가 얘를 그렇게 그렇게 갈궜나. 칭찬 좀 했더니 내가 무슨 삶을 정리라도 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내가 말했다.
“아니, 그냥. 네 직캠 보는데, 늘었구나, 싶어서. 열심히 한 건 칭찬해줘야지.”
-형, 저 지금 갈게요.
“아, 나 안 죽어.”
-그게 아니라 칭찬 더 들으려고요!
“안 해줘, 인마. 해도 이제 내후년에 할 거야.”
-진짜요? 내후년에 칭찬해주실 거예요? 저 기다려요? 일기에 써놔요?
“웃기고 있네, 일기 쓰지도 않으면서.”
-일기는 안 쓰는데 지금 형한테 칭찬 받은 거 X버스…….
아, 시끄러워서 안 되겠다.
이 놈이 엇나가든지 말든지, 나는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귀가 얼얼하다.
* * *
폴 존스와의 음원 공개 한 달 전부터 프로모션이 시작되었다.
그사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짬을 내서 STAY의 커버를 올려준 강호정이 있는 그룹, 블랙피치의 커버를 준비했다. 평소 퍼스트라이트가 잘 하지는 않는 컨셉이라, 햇살이들도 신선하게 느낄 거라고 다들 동의했다.
착장을 갈아입은 신지운이 안주원에게 말했다.
“우리 회사 무슨 프로모션을 대기업처럼 하냐.”
“그니까.”
“다시 한번 감사하다, 탈TRV.”
“내가 제일 감사하지.”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신지운이 정해원을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근데 며칠 전부터 저 형 좀 이상해. 나만 보면 배우 하지 말래.”
“넌 좀 낫지. 나한텐 요새 자꾸 행복하냐고 물어봐.”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