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3화
우리가 이번에 커버하게 된 노래는 블랙피치의 지난 타이틀곡이었던 ‘UPFRONT’였다. 블랙피치가 음악이며 메이크업까지 모든 스타일을 싹 바꿔서 작정하고 들고나온 곡이었다.
UPFRONT는 ‘우리 둘 다 누가 봐도 잘 났고, 너도 내가 좋고, 나도 네가 좋으니 우리 솔직해지자’는 내용의 곡이었다. 우리 팀에서는 절대 안 나올 것 같은 가사와 컨셉이었다.
아마 그래서 블랙피치도 종종 우리 곡 커버 영상을 올리는 것 같다. 서로 정반대의 스타일링을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같은 곡을 블랙피치가 부르면 좀 더 섹시한 느낌이 들었다.
커버 영상 촬영은 즐거웠다. 그렇게 커버를 찍다가 나는 중간에 잠깐 블랙피치 멤버 강호정과 영상통화를 했다.
-어, 해원아. 커버 잘 촬영하고 있어?
“형, 큰일 났는데? 우리 너무 잘하는데?”
-잘하면 좋지. 홍보 고마워.
아, 역시 잘생긴 애들은 뭔가 이런 알 수 없는 여유가 있다.
-나 지호가 진짜 궁금하다. 어때?
“영상 올라오면 내가 바로 알려줄게, 봐봐.”
-알았어, 보내줘. 그리고 밥 한 번 먹자, 해원아.
“말만 하고 안 먹을 거잖아.”
-아니야, 이번엔 진짜 먹자. 그리고 내가 안 먹냐? 네가 바쁜 거잖아.
“형이 맨날 술 먹자 그러잖아. 나 술 안 먹는다고.”
-술 안 먹으면 무슨 재미냐고.
“우리 05들이랑 놀아.”
-응, 안 그래도 우리 술 좋아하는 애들이랑 너네 05 애들이랑 보려고.
“아, 그럼 나 불러어.”
-하, 진상이야…….
나는 그렇게 강호정과 이야기하다가 술 자리하면 내가 술을 안 마셔도 무조건 불러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여튼 꼭 이렇게 술이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드물게 술 안 마시는 친구들의 존재가 소중해진다.
그렇게 영통 팬싸하는 기분으로 강호정과 전화를 하고 나서 커버 영상 촬영을 마무리했다.
촬영이 끝날 때쯤에 강효준 대표가 두 손 든든하게 간식을 들고 촬영장에 도착했다. 민지호가 곧바로 간식으로 달려가려다가 구석에 패딩 속에 파묻혀 죽어 있는 황새벽을 일으켰다.
“형! 간식!”
“간식?”
“핫도그 있어!”
“어, 식기 전에 먹어야지.”
먹을 거 얘기에는 바로바로 일어나는 황새벽이 일어나서 간식 테이블로 왔다. 나는 그렇게까지 배가 고프진 않아서 간식보다 강효준에게 먼저 가서 말했다.
“형.”
“어.”
“형은 건설업 하지 마요.”
“웬 건설업?”
“성공할까 봐 걱정돼서.”
“……응?”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황당해하는 강효준을 듣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이동했다. 그리고 강효준에게 말했다.
“형, 클라루스 재계약이요. 형한테 책임 전가되지 않게 잘해요.”
“내가…….”
“내가 1본부 사람도 아닌데 그게 왜 내 책임이 되나, 그런 안일한 생각하지 말고.”
내가 말한 그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멋쩍게 헛기침한다. 강효준 대표가 무슨 생각하고 있을지 뻔하다, 뻔해.
이미 1본부는 남의 일이고, 담당하고 있는 카일룸과 퍼스트라이트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차고 넘친다. 사실 클라루스까지 신경을 쓰라는 게 얼마나 빡센 일인지 나도 알고는 있다.
솔직히 나도 내 작업실에서 20%의 체력이 덜 소모되는 상태로 프로듀싱 하는데도 툭하면 코피가 쏟아지는데, 강효준은 그냥 쌩으로 체력을 갈아 넣고 있는 걸 테니까.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갈아 넣어가며 넘겨야 하는 시기인 거니까.
“형 안일하게 있다가, 지금 여기서 밀리면 건설업 해야 할 수도 있다니까요?”
“그니까 아까부터 무슨 건설업 타령이야.”
“인간이 10년 뒤에는 뭘 하고 있을지 몰라요. 형네 할아버지가 막 건설회사 인수해서 거기 사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니까?”
“……어떻게 알았어?”
강효준이 내 말에 뒤늦게 멈칫하더니 물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중얼거렸다.
“스파이가 우리 할아버지네 회사까지…….”
“아니, 형. 그럴 리가 있어요? 스파이 능력을 어디까지 높게 사는 거예요. 그 정도는 아니야.”
“근데 할아버지가 건설사 인수하고 싶어 하는 거 어떻게 알아.”
“그냥…… 드라마에서 본 거 아무 말이나 하는 건데.”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강효준은 스파이의 능력을 너무 크게 보는 것 같다. 그 정도는 아닌데…….
라고 생각할 때. 강효준의 오해를 견고하게 할 연락이 왔다.
[스파이 : 기획서 메일로 보냈어]
[스파이 :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구했어 1본부 보안이 좀 약해진 듯…… 걱정되네]
……지가 자료 빼돌리고 보안을 걱정해?
나는 황당했지만 일단은 메일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클라루스 박윤태가 작성한 기획서는 사실, 거의 1본부에서 손을 댄 게 없다, 싶을 정도로 그대로였다.
훑어보니까 아이돌인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정말 팬들 생각해서 내놓은 기획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룩스를 위한 클라루스]
클라루스 팬클럽, 룩스를 위한 기획안. 나는 왠지 힘이 빠져서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팬들을 위한 기획안을 내놓았는데, 그게 회사에서 계류 중일 때. 박윤태가 느꼈을 감정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강효준은 바로 핸드폰을 받아서 기획안을 확인했다.
“스파이?”
“당연하죠.”
기획안을 훑은 강효준이 말했다.
“어쩐지, 4본부에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닌데 나한테 자꾸 배신자라고 하더라.”
“당연하죠. 이거 형이 1본부에 있었으면 이렇게 오래 끌 기획도 아니었는데…… 아닌가?”
생각해 보니까 아닐 수도 있겠다. 어쨌든 강효준도 VMC 사람이니까.
내가 생각하는데 강효준이 말했다.
“나도 보이드로 나오기 전이었으면, 이 기획안 받고도 그냥 질질 시간 끌었을 것 같다.”
“지금은 아니고?”
“어. 네가 좀 고집불통이냐. 너랑 일해보니까, 그냥 멤버들이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주는 게 대표 업무구나 싶더라.”
크, 잘 컸다, 강 대표.
나는 생각하며 흐흐 웃고 기획안을 강효준에게 톡으로 보낸 후 말했다.
“대외비니까 우린 절대 모르는 거예요.”
“어. 내가 알아서 할게.”
“윤태 형한테 연락해봐요, 빨리.”
“알아서 할게, 잔소리 좀 그만해.”
“알아서 안 하니까 잔소리를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간식 테이블로 돌아갔다. 원래 전혀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애들이 너무 신나게 먹고 있으니까 나도 좀 땡겼다. 커피 하나랑 핫도그 하나를 들고 와서 간식을 먹고 우리는 커버 영상을 마무리했다.
* * *
커버 영상은 편집하자마자 업로드되었다.
다행히 햇살이들이 엄청 좋아해 줬다. 다행이다.
폴 존스와의 음원이 공개되고 나면, 우리는 길게 간격을 두지 않고 바로 정규 앨범 프로모션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폴 존스와의 음원에서 받은 푸시를 정규까지 끌고 가겠다는 게 보이드 엔터의 계획이었다.
일 년 반 만에 나오는 정규 3집.
아무래도 정규 앨범이 나올 때가 되면, 우리는 좀 다른 마음가짐이 된다. 더 많은 것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폴 존스는 진짜로 한국에 왔다.
오자마자 녹음을 하고, 믹싱하는 사이에 이것저것 예능이며 스케줄을 하며 바쁘게 지내다가, 내 작업실을 구경하러 왔다.
우리는 워낙 많이 싸워서 좀 서먹해져 있었지만, 작업실에 같이 왔을 때쯤에는 슬슬 벽이 무너져 있었다.
통역과 함께 온 폴 존스가 창밖을 보며 작업실이 좋다고 이야기하더니 슬쩍 나한테 물었다.
“뭐, 들려줄 거 없어요?”
“에이, 우리 정규도 바쁜데 들려줄 게 어디 있어요.”
“아니, 뭐. 앨범에 넣을 거여도 나랑 잘 어울리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온전히 폴 존스를 위해서 만든 음악도 차고 넘치는데 무슨 소리에요.”
이 사람 참 빈말 잘 하네. 진짜 들려준다고 쓰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이야기도 좀 하고, 먹는 것에 진심인 강효준이 서울 맛집 곳곳을 돌며 공수해 온 걸로 식사도 했다. 역시 강효준의 맛집 리스트는 장난이 아니었다. 다 맛있었고, 폴 존스도 감동했다.
“밥 먹으러 보이드 와야겠어요. 보이드 밥이 너무 맛있는데?”
“맛있지. 우리 대표님이 먹는 거에 진심이거든요. 아예 와요, 우리 회사.”
내 말을 농담인 줄 알고 폴 존스가 웃었다. 진짠데……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그렇게 작업실 구경을 하고, 우리는 회의실로 와서 처음으로 믹싱까지 완성된 음원을 다 같이 들어보았다.
[실패의 고통이 영원하진 않겠지만]
[너의 두려움은 당연해 사회는 험악하잖아]
[안녕 잘 가 우리의 스무 살]
[안녕 잘 가 우리의 스무 살]
[아픔을 참고 달릴 필요는 없어 고작 스무 살을 벗어났잖아]
[돌아봐 동시대에 태어난 내가 있을게]
[네 친구인 내가 있을게]
[세상이 너를 가족처럼 사랑하지도 않겠지만]
[세상은 너를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을 거라고 말해줄 거야]
[내가 멈췄을 때 네가 곁에 있어 줬듯이]
[이번에는 내가 너를 위해 같은 자리에 머물게]
우리 팀 영어 담당인 05들과 폴 존스가 상의해서 내가 쓴 가사를 번역했다.
이번 곡의 컨셉은 힐링이었기 때문에, 나는 곡을 들으면서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뮤직비디오는 폴 존스가 레트로 풍을 원해서, 나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미국식 레트로를 음악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는 면이 오히려 좋았다. 나에게는 신선하고, 폴 존스에게는 부모님 세대의 감성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폴 존스가 진짜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르간 소리 너무 좋은데.”
그러자 같이 듣고 있던 우리 멤버들과 직원들도 말했다.
“아, 진짜 좋아요.”
“해원이 형 오르간 열심히 배운 보람이 있어요.”
안 그래도 나는 더라이징에서 아이노 멤버들과 합동 무대를 할 때, 그리고 마태오로 이어지는 기간에 오르간 소리의 활용이 정말로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꾸준히 오르간을 공부했다. 오르간만이 줄 수 있는 풍성한 감정들이, 음악의 폭을 넓혀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이었다. 이번에 ‘마음의 깊은 상처까지 치유하는 음악’이 되어야 한다는 폴 존스의 요구가 피곤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폴 존스에게 말했다.
“폴이 날 힘들게 한 보람이 있어요.”
“그럴 줄 알고 힘들게 한 거예요.”
“진짜 다신 안 볼 뻔했는데.”
“그래서 내가 한국으로 왔잖아요.”
우리는 이야기하며 낄낄 웃었다. 동갑이라서 그런지 서로 공유하는 게 많았고, 그래서 정말로 많이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폴 존스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좀 섭섭할 것 같다.
그나저나…….
“부대표님 운다!”
민지호가 부대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짜로 부대표가 훌쩍거리고 있었다. 솥뚜껑만 한 손으로 아내분이 챙겨주셨다는 참 예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이걸 듣고 안 우는 사람들이 매정한 거 아냐? 어떻게 안 울지? 메마른 사람들…….”
그걸 보면서 직원들도 멤버들도 흐흐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음원을 공개할 준비를 마쳤다.
* * *
싱글 공개 당일. 나는 온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긴장한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다시 회사에 모였다.
그리고 음원 공개 직전.
뉴욕에 있는 보이드 엔터의 직원이 영상통화로 몇 시간 전에 뜬, 한 거대 음반 제작사의 전광판의 광고를 보여줬다. 우리 싱글 앨범 프로모션이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오후 1시.
퍼스트라이트와 폴 존스가 협업한 음원이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