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64화 (26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4화

뮤직비디오는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의 하이틴 드라마를 떠올리게 했다.

힘도 체격도 좋은 한효석과 신지운이 아이스하키를, 나머지 멤버들은 밴드를 준비했다.

한효석과 신지운이 둘이 경기 중에 서로 싸우게 돼서, 나머지 밴드 멤버들이 서로 뜯어말리고, 밴드에 다 같이 모여 공연을 하며 화해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밴드 보컬 역은 폴 존스가 맡았다.

원래는 그냥 크로마키와 2D 이펙트를 쓰고 한국과 미국에서 각자 촬영하려 했는데, 폴 존스가 한국에 와준 덕분에 뮤직비디오를 풍성하게 찍을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를 모니터링 하던 중에, 한효석이 화면을 가리키며 옆자리 박선재에게 말했다.

“저 장면. 우린 진심으로 싸웠는데 새벽이 형이 한 손에 하나씩 잡고 떼더라? 진짜 끌려갈 뻔했어.”

그 말에 신지운이 동의했다.

“새벽이 형은 운동 신경을 떠나서 그냥 손힘이 세. 타고났어.”

그러자 황새벽이 말했다.

“안타깝다. 그 힘이 좀만 체력으로 가지. 손힘 뭐에 쓰냐…….”

남 말하듯이 말하는 황새벽을 박선재가 옆에서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줬다. 뭐에 쓰냐고는 하지만 손힘 필요하면 멤버들이 다 황새벽 먼저 찾았다. 다 쓸모가 있다.

그리고 운동 신경 좋은 둘은 아이스하키를 배웠는데,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두 사람 운동 신경에 엄청 놀라워하며 아이스하키 인재로 탐냈다. 그만큼 빨리 배웠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내가 저 시대에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닌데 없는 추억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의 뮤직비디오였다. 폴 존스가 처음에 미국 하이틴 드라마 풍을 하고 싶다고 우길 때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결과가 나온 걸 보니까 다 생각이 있었구나, 싶었다.

오후 1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우리는 한동안 숨도 못 쉬고 반응을 살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멤버들과 직원들의 표정을 확인했다. 화상 미팅으로 연결되어 있던 저쪽 회사는 우리 쪽보다도 시끌시끌하게 환호하고 있었다.

나는 팬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햇살이들도 다들 좋아했다. 분명히 좋아하는데 확실히, 온전히 우리 멤버들끼리 내는,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일 때와는 반응이 달랐다. 신나기는 하지만, 앨범이 나왔을 때의 신남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래도 반응이 좋은 건 사실이라, 우리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반응을 보는데 부대표가 와서 소리쳤다.

“자, 이제 미국 가자!”

바로 있는 스케줄을 위해서 우리는 모두 공항으로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부대표가 장비가 들어서, 특히 무거운 내 짐을 한 손으로 번쩍 들었다.

“뭐 들지를 마, 해원아, 너는. 손도 아끼고 어, 다 아껴야 돼!”

“부대표님, 부담스러워요…….”

“원래 부담감을 이기는 게 진정한 슈스다, 해원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때 내 반대쪽에 있던 민지호도 신이 나서 소리쳤다.

“해원이 형아! 미국! 가자!”

나는 내 고막을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뭐, 어쨌든 기운찬 분위기가 좋기는 하다.

나는 공항으로 향하면서, 빨리 이번 정규 앨범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수록곡은 거의 나왔는데, 딱 이게 ‘타이틀이다’싶은 게 없다는 거였다. 이렇게 곡이 잘 안 나올 때마다, 혹시 내가 만들 수 있는 곡은 다 만든 거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들곤 했다.

비행기 안에서 뭔가 번쩍하고 영감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보내야 할 연락을 보내고, 바로 곡 작업을 시작했다.

* * *

오후 8시 8분

빅 블루의 멤버 이준희는 가장 아끼는 후배인 정해원에게서 링크를 받았다.

[퍼스트라이트 해원 : 준희시입니다! 형 저희 신곡 나왔어요><]

생일시에 맞춰서 8시 8분에 연락해주는 후배이자 스키퍼의 정성에 이준희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생일시도 챙겨 주고 감동적이네]

그렇게 답을 보냈다.

영화 촬영 중 때마침 쉬는 시간이라 잠깐 의자에 앉아 링크를 눌렀다. 바로 유튜브로 연결되었다.

[폴 존스X퍼스트라이트-twenty(Official Video)]

퍼스트라이트는 무조건 잘 될 거라고, 빅 블루 멤버 모두가 예전에도 확정 짓고 이야기한 적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빠르고,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공개 7시간 만에 4백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안녕 잘 가 우리의 스무 살]

스무 살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뮤직비디오는 지금의 스무 살뿐만이 아니라, 스무 살이 한참 지난 사람들에게도 스무 살을 기다리던 고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학창 시절 내내 연습생이다가 고등학생 때 데뷔한 이준희는 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스무 살을 떠올리면 함께 연습실에서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함께하던 멤버들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멤버 중 가장 먼저 스무 살이 된 세 살 위, 최정민은 빅 블루의 막내 이준희에게 정말로 어른다운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실없는 소리 많이 하는 형이 됐지만 그때는 꽤 무서웠다.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지금 이준희는 알 수 있었다.

미국인이라 한동안 한국어가 어색해 그냥 다 알아듣는 척 싱글싱글 웃고만 있던 다니엘, 팀의 분위기메이커이자 다혈질이었던 박민하, 그리고 동갑내기이자, 이준희에게 ‘친구’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모든 것이 된 유찬희.

이준희는 한동안 연습생 시절의 멤버들을 생각하다가 단톡방을 열었다.

[(링크)]

[들어]

그렇게 평소처럼 짧게 써서 보내니까 금방 답장이 왔다.

[유찬희 : 노래 좋네! 그리고 우리 언제 봐 이주니ㅠㅠ]

[빅 블루 대장(최정민) : 나는 이미 듣고 있다ㅎㅎ]

[빅 블루 대장(최정민) : 그런데 94들아 너희끼리만 보지 마…… 우리 언제 볼까]

[빅 블루 대장(최정민) : 형이 우리 멤버들 보고 싶다ㅠㅠ 민하 일본이니]

[박민하 형 : 응 근데 다니 형이랑 준희 한국 올 때 봐야지 나는 당일에 알려줘도 가]

[다니 형(다니엘 서) : 저 다음 주에 한국 갈게요~]

[난 이번 달 말]

[빅 블루 대장(최정민) : 우리 막냉이 대배우님 이렇게라도 살아있는 거 알려줘서 고마워]

[빅 블루 대장(최정민) : 근데 가끔 다정한 인사도 덧붙여주면 안 되니 ‘들어’라니 삭막하다…….]

[다니 형(다니엘 서) : 정민아]

[다니 형(다니엘 서) : 삭막하게 한마디 해도 네가 열 마디 하는데]

[다니 형(다니엘 서) : 무서워서 다정한 인사를 하겠니?]

[박민하 형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민하 형 : 다니 형 이래서 내가 사랑함]

[다니 형(다니엘 서) : 나도♥]

[유찬희 : 그럼 내가 날짜, 장소 잡아서 알려줄게><]

[유찬희 : 못 오는 사람 빼고 만나~]

[빅 블루 대장(최정민) : 우리 팀은 동생들이 무서워…….]

이준희는 단톡방을 보며 다시 한번 웃었다.

멤버 대부분이 서른중반인 지금도, 이상하게 빅 블루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이야기할 때는 고등학생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준희는 멤버들의 반응들을 보다가 자주 들을 것 같아서 플레이리스트에 트웬티를 추가했다. 멤버들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라, 더 좋았다.

그리고 다시 촬영을 위해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 * *

[성적충의]

[심장이 뛴다]

[트웬티 1일차 뮤직비디오 681만으로 종료 퍼스트라이트에게도 폴 존스에게도 커하]

[↳성적충아 매번 고마워]

[↳퍼라 이제 진짜 이견없이 슈스네]

[↳퍼라보면 첫 앨범, 둘째 앨범 잘 안 돼서 다음 앨범 안 나오겠다고 토론하던 거 생각나ㅋㅋㅋㅋㅋㅋ]

[↳↳퍼라 두 번째 앨범 초동 3만 나왔을 땐 진짜 더 안 낼 줄ㅋㅋㅋㅋㅋ]

[↳↳↳근데 신인이 3만 괜찮지 않아?]

[↳↳↳↳그냥 신인이 아니잖아…….]

[↳↳↳↳요즘 여돌만 초동 백만 장 넘게 파는 팀이 몇 팀인데 서바이벌도 잘 된 서바이벌 데뷔조 모여서 3만이면 사실 아찔하지]

[다음 이야기 뮤직비디오에서도 지운이랑 효석이 대립하더니 이번에도 연결되네]

[↳오]

[↳오]

[트웬티 노래 개 좋다ㅠㅠㅠ 눈물나와…….]

[주원이가 X버스에 해원이가 멤버들에게 전해주는 가사 같았다고 하더니 진짜ㅠㅠㅠ]

[↳진짜? 이거 들으니까 더 눈물나는데ㅠㅠㅠ]

[정해원 팬은 아닌데 진짜 대단하다 히키코모리가 폴 존스랑 콜라보 곡 만들려면…….]

[↳인간 승리지]

[↳인간대인간으로 인정함]

[트웬티 스포티파이 글로벌 48위 미국 76위 진입 올라가자]

[2일차 글로벌 42위 미국 70위]

[↳아니 성적충 매일 빠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오르네ㄷㄷㄷ]

[↳폴 존스 인지도로 올리는 거라고 해도 진짜 잘 오른다ㄷㄷㄷ]

[↳↳폴 존스여도 곡 안 좋으면 차트아웃 돼 곡이 좋음ㅎㅎ]

[↳↳↳SJC가 그렇다면 그런 거임]

[↳↳↳↳SJC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퍼라랑 폴 존스 음방 하나?]

[↳안 그래도 폴 존스 한국 왔을 때 사녹 해놨다더라 오늘 나온대]

[↳↳근데 한국 왜 왔대?]

[↳↳↳녹음하러]

[↳↳↳↳아 진짜? X나 호감이네]

[한국 음방에 폴 존스 왜 이렇게 낯서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퍼라랑 또래라 같이 무대에서 까부는 거 귀엽다ㅋㅋㅋㅋ]

[노래 X나 좋네ㄷㄷ]

* * *

우리는 미국에 도착해 생방송 준비를 했다. 폴 존스와 함께하는 스케줄이 한국에서 사녹 하나, 미국에서 생방송 하나가 있었다.

나도 멤버들도 현실감이 없어서 얼떨떨한 상태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폴 존스가 와서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며 긴장을 풀어줬지만, 문제는 본인도 신인이라 약간 얼어 있다는 거였다.

결국 안주원이 폴 존스에게 말했다.

“우리 영어 할 수 있는 멤버 둘 있으니까, 긴장하지 말아요. 굳이 우리 이끌어주거나,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요? 이제 좀 긴장이 풀리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 나는 미국 예능을 보면 다들 낯 안 가리고 활발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대기실에서 긴장하고, 생방 전에 얼어 있는 건 다들 비슷한 모양이었다.

아침 방송 무대가 시작되고, 우리 여덟 명이 무대로 올라갔다. 인터뷰는 폴 존스와 영어 잘하는 두 명 위주로 진행되었다. 영어 하는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되게 멋있다. 근데 그 짧은 사이에 프로듀서라고 셋이서 나에게 관심을 가져줬다.

“우리 프로듀서가 한국과 미국 중간에서 열심히 조율을 했거든요.”

그리고 폴 존스가 말했다.

“생일에 서울에서 뉴욕에 왔었죠.”

관심……. 받고 싶었는데 부담스럽다……. 어쩌란 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마이크를 잡고 엄청 긴장한 상태로, 준비한 영어로 대답했다.

“폴 덕분에 갑자기 뉴욕에 왔는데, 시차 덕분에 생일을 두 번 맞았거든요. 로맨틱했어요.”

내 말에 왠지 다들 웃는다. 그러더니 폴 존스와 안주원이 그날 일을 설명했다. 폴은 내가 의견을 조율해서 거기 있던 피아노로 작곡을 한 걸 엄청 대천재처럼 묘사했다. 이렇게 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해원이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모든 게 결정됐어요. 그때 음악의 신이 왔다가 간 기분이었어요.”

폴 존스는 마케팅을 해도 잘했을 것 같았다. 약간 과장 광고 같기도 한데.

아무튼 내가 민망해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안주원 뒤로 숨었는데 안주원은 또 그날 클럽에서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그걸 되게 환상적인 경험처럼 말해서 그때 상황을 아는 나도 그렇게 느낄 지경이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폴 존스와의 공연을 위해 생방송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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