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5화
무대가 시작되고, 우리는 놀랐다. 관객들이 우리 노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이 우리 노래를 알고, 뜨겁게 반응해 주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이 노래의 마지막 활동이라는 게 아쉬웠다.
무대가 끝나고 폴 존스가 나에게 말했다.
“왜 팀으로 활동하는지 알겠어요. 엄청 든든하네요.”
“에이, 우리 맨날 싸워요.”
“그래도 재미있어 보여요. 아, 이게 끝이라니. 우리 또 같이 작업해요. 꼭.”
폴 존스는 엄청 아쉬워하며 다음 스케줄을 위해 떠났다.
이제 남은 건 보다 많은 사람이 음원을 들어주길 기다리는 일이었다.
* * *
클라루스 멤버, 박윤태는 모처럼 여유가 생겨 회사에 보냈던 기획안을 꺼내 보았다.
[룩스를 위한 클라루스]
야심 차게 준비한 기획안이었다.
제대하면 제대로 한 번 보여주겠다고 칼을 갈다가 사회에 나와서 제일 먼저 준비한 게 이 기획안이었다.
그런데 VVV엔터 1본부에서는 이 기획안에 대해서 다시 거론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두 번을 더 수정해서 보내봤는데, 여전히 무소식이었다.
기획안이 별로였나보다,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너무 애정을 쏟아가며 만든 기획이라 포기가 쉽지 않았다.
박윤태는 의자 뒤로 완전히 늘어져 누워서 투덜거렸다.
“보내주자, 보내줘.”
붙잡고 있은들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다행인 건 그래도 이번 5월에 컴백할 타이틀이 꽤 좋다는 거였다. 이번엔 진짜로 컴백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점점 타협하게 된다.
계속 컴백이 밀리니까, 이제는 컴백만 하게 해줘도 감사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 몇 달만 더 있으면 VVV엔터와 안녕이었다.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건 하나. 팬들이었다. 잠깐 X버스를 켰더니 팬들이 남긴 글들이 보였다. 다들 어느 정도 클라루스의 끝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X버스 쪽에서는 멤버들이 확인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한 내용을 적지 않고 있었지만, 다른 SNS는 아니었다.
[재계약 시즌이 원래 이렇게 불안한 거였나..... 요즘 매일 울어]
팬들이 적은 글에 박윤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제일 속상하지 않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슬퍼하니까, 마음이 아팠다.
* * *
서울, 보이드 엔터에 남은 강효준 대표는 모처럼 조용한 회사에 들어섰다.
협업 음원이라고 해도, 그 힘으로 X포티파이 글로벌 차트에 올랐다. 오늘 생방송은 기념비적이었다. 반응도 아주 좋았다.
하지만 강효준 대표는 지금 상태를 ‘순항’이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 때나 순항이라고 말했지…….
[양이형 프로듀서님 : 대표님 해원이가 곡이 안 나온다는데요]
물론 정해원이 만들어 둔 수록곡은 다 좋았다. 그중에서 타이틀을 정하자면 얼마든지 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선은 아니었다.
정해원 본인도 만족하지 못하고 엄청난 압박감에 짓눌려 있는 것이다. 본인은 대수롭지 않은 척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초조했다.
예술이라는 게 원래 좀, 방탕하게도 살아보고, 세상과 연을 끊고 잠적도 하고…… 그렇게 해줘야 할 것만 같은 선입견 비슷한 게 강효준에게는 있었다. 거기에 반해 정해원은 일하고, 쪽잠 자고, 일하고, 쪽잠 자다 비타민 몇 개 주워 먹은 걸로 건강 다 챙긴 줄 알고 또 일했다.
이제 카일룸 쪽도 마음 맞는 프로듀서와 작업을 하게 되어 거기는 손을 뗐고, 외부에서 정해원에게 수시로 쏟아지는 작곡 의뢰도 못 받게 했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퍼스트라이트의 곡 작업만으로도 많은 데다가, 회사에서 일을 잡아주지 않아도 지가 어디서 일을 주워 왔다. 그것도 회사로서 거절하기 어려운 대형 건수로…….
저걸 어떻게 일을 못 하게 손을 묶어놓을 수도 없고…… 물론 묶어놔도 머릿속으로 차곡차곡 곡 작업해놨다가 풀어주자마자 시퀀서에 옮겨 놓을 놈이었다.
강효준 대표는 모처럼 4본부 A&R팀 임수환 팀장과 식사를 했다. 일단 시작으로 삼겹살 5인분과 된장술밥 하나를 시켰다. 그리고 고기를 불판에 올리며 대화를 시작했다.
임수환 팀장이 말했다.
“아직도 가끔 섬뜩해요, 해원 씨가 카일룸 멤버들 기강 잡아주지 않았으면, 어휴…… 우석이 데뷔곡에 노래 못 넣을 뻔하고 식겁해서. 솔직히 해원 씨 정도 아니면 누가 그렇게 강수를 쓰겠어요.”
“하여튼 남의 일은 잘 참견하는데, 지 스스로는 옆에서 챙겨줘도 못 받아먹어요. 맨날 붙어 있는 양이형 작가도 똑같은 놈이고.”
“본부장님도 강수 한번 놓으세요.”
“무슨 강수요?”
“외부 곡 한번 받아요.”
“…….”
고기를 올리던 강효준의 집게가 잠깐 멈췄다. 고기 앞에서 이렇게 멈칫하는 일이 흔치 않았다.
“안 돼요, 그랬다가 진짜 멘탈 깨져.”
“아니, 그걸로 겁주라는 게 아니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란 거죠, 회사 차원에서.”
보통의 경우는 몰라도, 정해원은 보통의 경우가 아니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놨다가는 본인이 능력이 없어서 밀려난 거라고 굳게 믿을, 주제 파악을 전혀 못 하는 케이스였다.
강효준은 생각만 해도 후환이 두려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임수환 팀장에게 본론을 물었다.
“요즘 4본부 직원들 분위기 어때요.”
“좋진 않죠. 지금 고문님 라인 하나씩 날리고 있다는 거 다 아는데, 결국 본부장님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다들.”
“해원이는 클라루스 해체 뒤집어씌울 거라고 하던데.”
“예에?”
그 말에 임수환 팀장이 질색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라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겠네. 생각해 보니까. 어떻게 알았대요?”
“뭐, 이미 한 번 국선아로 이춘형한테 세게 당해봤으니까.”
“아, 그래서.”
임수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알았으면 준비해 놓으세요. 안 뒤집어쓰게.”
안 그래도, 스파이, 박중운 팀장은 이춘형이 1본부에 클라루스 컴백 관련 티저든 뭐든 띄우라고 개소리를 하던 날의 사내 CCTV를 챙겨놓으라고 했다.
기껏해야 유출 문제가 생기면 이유를 색출할 수 있게 통로들에나 설치된 것들이라 뭐에 쓰나 싶었지만 일단은 챙겨다 줘서 받아놨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다시 평온 그 자체인 보이드 엔터로 돌아와 우선 박윤태의 기획안을 확인했다.
그 기획안을 빌드업할 방향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놓고, 이어서 퍼스트라이트의 다음 앨범, 정규 3집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때 미국에 있는 정해원에게서 문자가 왔다.
[정해원 프로듀서님 : 형 곡이 안 나와요]
[정해원 프로듀서님 : 죄송해요 좀 더 집중해 볼게요]
“…….”
임수환 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외부 작곡가.
강효준은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수록곡으로 들고 온 거 다 좋아 무리하지 마]
[네가 곡 쓰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너 아이돌이잖아]
[정해원 프로듀서님 : 그건 그렇죠?]
[정해원 프로듀서님 : 근데 형]
[정해원 프로듀서님 : 제가 곡 못 쓰면 외부에서 곡 받을 거죠?]
그리고 그 외부 작곡가를 먼저 거론한 건, 정해원 쪽이었다.
하기야, 본인이 모를 리가 없다. 압박을 제일 크게 느끼는 건 곡이 안 나오는 상태의 본인일 테니까.
곡 만들라는 압박을 주기는 미안하지만, 외부 곡을 준비해 놓는 것만큼 정해원의 멘탈을 깨뜨리는 경로도 없었다.
애초에 퀄리티도 정해원이 만드는 게 단연 낫다고 강효준은 생각했다.
“아, 이 피곤한 놈…….”
강효준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 * *
결국 귀국이 가까워진 시간까지 나는 전혀 작업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적당한 곡은 있는데, 이거다, 싶은 곡이 없었다.
다음 앨범은 중요하다. 지금까지도 매번 이번이 중요하다, 이번이 중요하다 말했지만 처음으로 X포티파이 차트에 ‘퍼스트라이트’라는 이름을 알린 직후의 앨범이었다.
이건, 정말로 중요했다.
그것도 2026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 나올 앨범이었다. 어지간히 좋지 않으면, 월드컵 후유증이 남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못하리란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천재들도 이렇게 곡이 안 나올 때가 있을까? 없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나는 산책이라도 하고 오려고 숙소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가는 길에 강효준에게 전화가 왔다.
“어, 형.”
-타이틀, 외부곡 안 받아.
“네?”
-네가 멘탈이 나가든, 과로로 길바닥에 쓰러지든. 뒤지기 전까진 안 받는다고, 외부곡. 너한테 곡이 안 나오면, 퍼스트라이트 앨범도 안 나오는 거야.
나는 그 말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사춘기 청소년처럼 툴툴거렸다.
“무슨 말을 그렇게 부담되게 해요?”
-그게 회사 방침이니까 알고 있어.
“노동착취로 신고할 거예요.”
-되겠니, 형 재벌인데.
농담에 나는 흐흐 웃었다.
내가 곡을 안 만들면 외부 작곡가 곡 받아올 거고, 한 번 그렇게 외부 작곡가 곡을 받기 시작하면 내 곡은 영영 안 써줄지도 모르는데, 라고. 불안해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회사 입장에서 빡칠 만도 한데, 우리 회사는 강경했다. 아니, 대표가 강경했다. 아무래도 날 너무 잘 알게 된 것 같다.
회사의 신뢰 덕에 불안도가 확 내려갔다.
“내년에도 안 나오면요?”
-후년에 앨범 내야지.
“후년에도 안 나오면.”
-후년에 생각하자, 이 진상아.
“미리미리 계획 좀 세워놔요.”
그렇게 강 대표를 귀찮게 굴고 있는데, 공원으로 가는 길 전광판에서 클라루스의 팬들이 걸어 놓은 광고가 보였다.
[영원히 빛나자 클라루스]
폴 존스가 떠난 후에 우리는 스케줄을 하나 더 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모르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는데, 클라루스 덕을 봤다.
내가 클라루스 송다온의 솔로 프로듀싱을 한 것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하고 나니 훨씬 분위기가 여유로워진 느낌이었다. 내가 누군지를 증명하는 데 클라루스가 큰 도움을 준 셈이다. 사람들은 클라루스의 재계약에 대해서도 궁금해했었다.
클라루스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밝은, 빛나는의 뜻을 지닌 clārus에서 왔다. 그 이름을 이용해서, ‘영원히 빛나자’라는 말은 클라루스가 자주 사용하는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였다. 흔한 말처럼 보여도, 클라루스 팬들에겐 울림이 있는 문장이다.
박윤태가 가져온 기획안 속 클라루스도 그랬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빛.
그게 클라루스 데뷔 초부터 이어진 컨셉이었고, 박윤태가 컨셉으로 하고 싶어 하는 클라루스의 데뷔 초 활동곡 Everlasting의 컨셉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클라루스는 꺼져가는 불빛이 되고 있었다. 그걸 팬들도 알아서, ‘영원’이라는 말을 넣어 광고를 했을 것이다.
영원.
영원…….
햇살이들, 그리고 퍼스트라이트가 영원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다 보니 왜 늘, 우리는 끝을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돌인데. 현실적일 이유가 아주 조금도 없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영원함’을 믿어야 할 의무가 있다.
영원에 대한 노래를 하고 싶어졌다.
나는 호텔 방향으로 돌아섰다.
“형 끊어요!”
-어.
강효준은 대충 내가 갑자기 곡 작업을 하러 가는 걸 알았는지 아무런 질문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나갈 때와 달리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호텔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