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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66화 (26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6화

정해원은 호텔에서 주로 밤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이동 시에는 독방을 주거나 근처 불만 꺼주면 잘 자는 멤버들과 방을 쓰거나 했다.

대표적으로 머리만 대면 자는 멤버들이 황새벽과 민지호였다. 오늘 룸메이트는 황새벽이었다.

박선재와 함께 근처 맛집 탐방을 하고 돌아온 황새벽이 작업 중인 정해원에게 말했다.

“밥 안 먹었지? 햄버거 사 왔는데.”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못 듣는 것 같았다. 헤드셋을 쓰고, 휴대용 건반으로 작업을 하는 게 바빠 보였다.

정해원은 일하는 도중에 참견해도 전혀 신경을 안 쓰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뭘 작업하는지 확인하러 가 노트북을 확인했다.

황새벽을 포함한 모든 멤버들이 어느 정도 작곡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작곡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멤버들이 자작곡을 들고 오면 편곡을 해주는 양이형은 ‘난해한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난해해도 별로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황새벽에게는 칭찬이었다. 그게 락 스피릿이니까…….

감자 칩 하나를 사 와서 정해원 뒤 창가에 붙여 놓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칩을 먹으면서 작업하는 걸 구경했다.

정해원은 집중하느라 약간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그게 오래 봐서 익숙해진 황새벽의 눈에도 싸늘해 보였다. 본인은 인상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지만, 확실히 포토제닉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팀에 옷 잘 입는 멤버들이 많다 보니, 저절로 정해원도 관심이 많아져 대충 사복을 입을 때도 스타일을 신경 써 본인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했다. 같은 멤버가 봐도 참 잘난 놈이었다.

슬슬 태양이 이동해 노트북 화면이 안 보일 때가 되어서야 커튼을 치려고 돌아봤던 정해원이 흠칫 놀랐다.

“어오 씨, 언제 왔어.”

“한 시간 전?”

“전혀 몰랐네.”

정해원이 어이없어 흐흐 웃더니 손을 뻗어 과자 한 개를 가져갔다. 하나를 먹어보더니 맛있는지 두 손을 내밀어서 거기 가득 감자 칩을 쏟아줬다. 정해원이 감자 칩을 먹으며 말했다.

“타이틀 만들고 있어.”

“아, 그러냐.”

최근 정해원이 타이틀이 안 나와서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황새벽은 그렇게만 반응하고 끝이었다.

드디어 뚫렸냐고 호들갑을 떠는 건 그럴 체력도 없거니와, 정해원에게도 맞지 않았다. 정해원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감자 칩을 한 움큼 더 가져가며 말했다.

“어……. 야, 우리 갈 때 이거 더 사자.”

“한국에도 있어. 지금 숙소로 시켜줄까?”

“그래? 근데 배달하면 또 묶음으로 시켜야 되잖아. 그럼 애들 너무 많이 먹어.”

“좀 먹게 놔둬.”

“내가 뭐 맨날 뭐라고 해? 너무 많이 먹잖아.”

“아직 애들이잖아.”

“너도 좀 가끔 뭐라고 해. 나만 맨날 싫은 소리 해.”

“나는 연약해서 안 돼.”

“너는 연약이라는 단어를 잘못 쓰고 있어. 한효석이랑 신지운을 한 손으로 끌 수 있는 놈이 뭐가 연약해.”

“내 팔을 봐라. 툭 치면 부러져, 이거 봐…….”

황새벽이 팔을 흔들어 나부끼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정해원의 연약 기준에 맞지 않는 듯했다. 어쨌든 자기가 잘 못하는 싫은 소리를 정해원이 대신 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것도 고마운 게 많지만, 그것도 고마웠다. 황새벽이 보기에는 그런데, 정해원은 저렇게 잔소리하다가도 최고의 리더가 있어서 팀이 굴러가는 거라고 칭찬을 해주곤 했다.

황새벽이 햄버거 봉투를 던져주며 말했다.

“밥 먹어.”

“밥 아니고 햄버건데?”

“야, 헛소리할 거면 다시 줘.”

“아, 죄송해여. 얌전히 먹을게.”

보나 마나 여느 때처럼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일에 집중했을 정해원은 햄버거 냄새에 배가 고파졌는지, 햄버거를 바로 꺼냈다. 황새벽이 물었다.

“햇살이들이랑 먹을까?”

“오, 좋아.”

그 말을 듣자마자 정해원은 바로 핸드폰을 조절했다.

그사이 황새벽은 밖이 보이지 않게 커튼을 쳤다. 보이드 엔터가 아무리 강경해도 여전히 사생들이 같은 비행기, 같은 호텔에 있을 때가 있었다. 이번 미국행도 그랬다. 다른 멤버들도 다 사생들을 힘들어하지만, 크게 다친 적이 있던 정해원이 특히 예민했다.

정해원은 라이브방송을 켜자마자 저절로 웃었다.

“아, 햇살이들 들어왔다. 안녕.”

[소부기즈!!!]

소와 거북이라고 04즈를 소부기라고 부르는 햇살이들이 생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늘 한 일을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날씨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황새벽이 최근 에피소드를 풀었다.

“아, 우리 얼마 전에 다 같이 안주원네 갔잖아.”

“와, 밥 진짜 너무 맛있었어.”

“그날 진짜 웃겼던 게, 주원이 어머님이 얘만 식판을 주시는 거야.”

그 말에 정해원이 옆에서 흐흐 웃었다.

“아니, 어머님이 우리 잘 먹나 오셔서 보는데 우리 멤버들이 다 잘 먹잖아요. 그래 가지고 내려놓으면 음식이 없어지는데 내가 진짜 못 먹고 있더래. 난 나름 잘 챙겨 먹고 있었는데.”

“그때 주원이 어머님이……. 안주원네 부모님이 딱 그렇잖아. 이런 부모님이 키우시면 안주원이 되는구나, 싶은.”

“맞아, 진짜 다정다감하셔, 두 분 다.”

“근데 어머님이 보니까 얘가 막 그 동물들 새끼 여러 마리 태어나면 밥 못 얻어먹는 제일 약체 있잖아. 얘를 그렇게 보신 거야. 너무 안쓰러워 가지고 식판을.”

그렇게 말하며 둘이 웃음이 터져서 한참 웃다가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주원이 아버님이 나 놀러 오면 잘 못 먹는다고 사놓으셨대요. 급식 먹는 은색 식판이 아니고, 되게 애기들 거 같은 식판?”

“나 사진 있어.”

황새벽이 자기 핸드폰으로 식판 사진을 한 번 보여주고, 정해원이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이 식판은 웃기려고 산 거지.”

“네가 먼저 주원이 아버지 맨날 놀렸잖아. 조각이 걸어 다닌다고.”

“놀리는 거 아니고 진짜 조각이 걸어 다녀서 놀랐고, 아무튼 저 사진처럼, 어머님이 거기다가 음식들 이렇게 따로 담아 주시더라고요.”

“우리 다 웃느라고 정신없는데 주원이 가족은 진짜 진지하게 얘를 먹여야겠는 거야. 제일 일 많은 애가 든든하게 먹어야 된다고.”

“그니까. 그땐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찡하네……. 그리고 진짜로 편하고 맛있게 먹었어요.”

[귀엽고 웃기고 훈훈하다ㅠㅠㅠㅠ]

[아니 근데 해원이 친화력 무슨 일이야 친구 아버지를 놀리냐구ㅋㅋㅋㅋㅋㅋㅋㅋ]

[주원이가 아버님이랑 찍은 사진 봤는데 진짜 말도 안 되게 미남이시더라]

[쭈어니 가족 분위기 너무 궁금해ㅠㅠ브이로그 한 번 찍어주면 좋겠다]

황새벽이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또……. 아, 다른 가족. 근데 대체로 부모님 오시면 멤버들이랑 똑같아. 그냥 막 섞어놔도 누가 누구 부모님인지 다 맞힐걸?”

그 말에 정해원이 동의했다.

“민조네가 진짜 그냥 민조, 민조, 민조잖아.”

“아, 그치. 햇살이들 보면 깜짝 놀라.”

“온 가족이 다 러블리하고, 끼가 진짜 많아요.”

“그치, 다 끼가 있어. 해원이네 가족은 다 정해원 특유의 매력이 있어.”

“우리 집? 그게 뭐야?”

“너희 부모님도 그렇고 수연이 누나도 얼굴 다 작고, 다 하얗고…….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많이 먹는데, 체력이 없어. 연비가 너무 안 좋아.”

“안 좋긴 뭐가 안 좋아, 오히려 제일 좋아. 시간 투자 대비 다 성과가 좋다니까. 일단 머리가 좋아.”

“그건 그치. 난 우리 누나 저렇게 누워 있으면 커서 당연히 백수 될 줄 알았는데 회계사가 되더라.”

“너 그렇게 얘기하다가 누나한테 혼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리 누나가 날 혼낼 체력이 어디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벽이 남매 체력 무슨 일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조네 민조민조민조인 거 너무 귀엽다ㅠㅠㅠㅠㅠ]

[멤버들 가족 얘기 은근 재밌네]

[근데 퍼라 새삼 누나들 진짜 많다 05즈 빼고 다 누나 있네]

[새우껍질논쟁]

“아, 새우 껍질. 해원아, 너 이거 알아? 깻잎이랑 똑같은데, 좀 더 업그레이드된 거. 그니까, 햇살이가 다른 아이돌분 새우 껍질을 까줬어.”

“아. 안 돼.”

“그치, 얘는 질투 심해서 새우 안 돼.”

[해원이 단호해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아이돌이 준희 선배님이면???]

정해원이 채팅창을 확인하고 말했다.

“준희 형…… 도 안 돼요. 아니, 애초에 나랑 밥 먹고 있는 상황 아니에요? 왜 햇살이들이 다른 사람 새우 껍질을 까줘, 햇살이들 것도 내가 해야지.”

“야, 그건 당연하지. 햇살이들이랑 먹으면 내가 하지. 근데 논점이 그게 아니잖아.”

[우리는 당연히 까주는구나ㅠㅠㅠ]

[밤에 갑자기 설레게 하면 안 돼 얘들아]

[리더 지호 VS 리더 지운]

“와, 리더 민조, 리더 신지운.”

정해원이 읽으며 감탄하자 황새벽이 피곤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최악이다. 진짜. 안 고르면 안 되냐.”

“꼭 골라야 돼. 나는 그래도 아자몽.”

“지호가 낫지.”

“근데 신지운이 틱틱거려도 은근 섬세하게 멤버들 챙겨주잖아. 민조가 리더면 너 연습실에 못 누울걸?”

“그건 심각한 문젠데. 지운이가 리더는 진짜 아니지.”

“그것도 그래. 그럼 이거는 그냥 새부기가 평생 우리 리더를 하는 걸로 해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빌런즈와 운동하고 난 안주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황새벽이 앉은 의자에 걸터앉아 카메라 쪽으로 인사를 한 후 말했다.

“식판 얘기했다며.”

“어, 봤어?”

“응, 부모님이 햇살이들 웃겨줬다고 좋아하시더라.”

그렇게 말하더니 자기 쪽을 보는 정해원에게 말했다.

“근데 넌 왜 요즘 그렇게 나를 슬프게 봐?”

“내가?”

그 말에 황새벽이 동의했다.

“진짜로, 요새 너 안주원 되게 애틋하게 보더라.”

“하, 지금까지 못 해준 게 많이 생각나서.”

“나한테도 못하잖아.”

“너도 안 잘해주잖아.”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 멤버들이 하나씩 더 끼어들며, 라이브방송은 두 시간 가까이 하고서야 끝났다.

* * *

햇살이들과 이야기하고 났더니 머리가 확 잘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과거의 미래를 보고 와서 안주원을 좀 슬프게 봤나 보다.

다시 과거의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어도 안 볼 생각이었다. 정확히 알고 싶지 않았다. 알게 되면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양이형에게 들려줬더니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바로 A&R쪽으로도 넘겨놨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VMC의 한 채널의 예능 촬영 회의가 있었다. 그쪽에서 웬일로 퍼스트라이트에게 예능 출연을 제안했다.

회사 작업실에 있던 내가 멤버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회의실로 향하는 길에 나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춘형이었다.

매니저가 먼저 알아보고 다른 엘리베이터를 잡으려고 했는데, 이춘형이 나한테 손짓했다.

“바쁠 텐데 같이 타시죠?”

하…….

나는 정말로 안 타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보는 눈이 많아, 할 수 없이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에는 우리 매니저와 시큐리티, 이춘형의 수행비서로 보이는 두 사람까지 여섯 명이 탔다. 큼지막한 엘리베이터인데 엄청 비좁게 느껴졌다.

내가 층수 바뀌는 쪽만 보고 있는데 이춘형이 말을 걸었다.

“해원 씨.”

“예.”

“신기하게, 내가 거슬린다 싶으면 항상 거기 해원 씨가 있네.”

어? 이 새끼.

내가 할 말을 왜 자기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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