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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267화 (26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7화

엘리베이터 안에서 냉기가 흘렀다.

내내 올라가는 숫자만 보던 정해원이 힐끔 이춘형 쪽을 봤다.

이 빌딩에 있는 VMC, VVV의 직원들 대부분이 편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정해원도 나름 편한 차림을 한 것 같은데도 확 튀었다.

정해원은 어두운 색감의 데님 재킷에 검은색 슬랙스, 컨버스를 신고 있었다. 귀와 손가락에는 데뷔 초부터 지속해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탈리아 주얼리 브랜드의 귀걸이와 반지를 끼고 있었다. 이춘형도 상당히 좋아하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상당히 짜증이 솟구쳤다. 어쨌든 본인보다도 먼저 저 브랜드의 새 물건이 도착하는 건 정해원일 테니까. 본인에게 돈이 있을 만큼 있는데도.

더 기분이 나빠지는 건, 처벌만 안 받는다면 절벽에서 등을 떠밀어도 죄책감 하나 안 느낄 것 같은 정해원에 대한 증오와 별개로, 왜 그 브랜드에서 선호하는지는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차갑지만 보석이 잘 어울리고, 얼굴은 완벽한 도시 남자. 그냥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미지 그 자체였다.

이춘형이 혀를 한 번 차고, 자기 말에 대답이 없는 정해원에게 말을 이었다.

“해원 씨네 대표, 나랑 싸우면 못 이겨.”

그제야 정해원이 입을 열었다.

“우리 대표님이 이길 것 같은데요. 덩치가 있잖아요.”

아, 이 새끼 딴소리하네.

“……그 얘기가 아니라.”

“아니에요?”

정해원은 연예인이라 그런지, 사회생활을 위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춘형도 많이 빡쳤지만 개인의 사회적 위신을 위해 마지못해 웃었다.

“걔는 이 회사에 가진 게 없잖아요. 나는 많고.”

“이 회사에서 가지는 걸 덜 신경 쓰는 거죠. 자기 회사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앞에도 못 알아들어서 덩치 얘기한 게 아니라 그냥 긁으려고 말한 거란 게 확실해졌다. 이춘형이 짜증이 극도로 심해지다 못해 오히려 웃으니까 정해원이 말했다.

“근데.”

그래서 이춘형도 돌아보니 정해원이 물었다.

“제가 왜 거슬리세요?”

아주 재수 없는데, 그 와중에 돌아보는 얼굴이 잘생기긴 했다고 생각했다. 더 빡치게.

“몰라서 물어요?”

“주가 때문에요?”

“그것도 있지.”

“그건 본인이 일으킨 문제 아니에요?”

“하, X발.”

어이없어 실소가 나왔다.

이제 좀 처벌받아도 절벽에서 등을 떠밀고 싶은 정도로 증오도가 올라갔다. 어차피 돈으로 덮으면 덮일 텐데.

“네가 가만히 있으면 그럴 일 없잖아.”

이춘형의 그 말에 정해원이 소리 내서 웃더니 다시 거의 다 도착한 층수를 보며 말했다.

“가만히 살기엔 제가 너무 능력이 좋아요.”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VMC 빌딩의 미팅룸을 모아둔 층에 도착했다. 정해원은 인사도 안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같이 내린 매니저와 시큐리티도 좀 웃고 있었다. 누구한테 붙어야 하는지 모르는 멍청이들이었다. 기껏해야 연예인 아닌가? 결국 연예인은 사업가를 이길 수 없다. 그것도 보통 사업가인가.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져 온 탄탄한 돈과 권력의 산물이 지금 여기 이 VMC인데.

제대로 한 번 손을 봐주는 날이 올 거라고, 이춘형은 생각했다.

* * *

분노라는 감정은 참 대단하다. 너무 빡치니까 겁도 나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려다 피부 손으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피부과 의사 말이 생각나 다시 내렸다. 화나는 것과 별개로 관리는 잘해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회의실로 가는데, 오늘 무슨 날인지 또 싫은 사람과 마주쳤다.

VVV엔터 쪽만 다닐 땐 이런 일 없었는데. 이래서 VMC를 오기 싫었다…….

“어, 해원아.”

내 첫 번째 소속사, 퍼펙트 엔터의 사장이었다.

내가 저 사장에 대해서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저렇게 뻔뻔할 수 있다는 부분.

저 새끼가 국선아 시절, 3차 순위발표식에서 안주원과 우하정의 순위를 바꿨다. 안주원은 10위에서 18위로, 우하정은 18위에서 10위로.

그래서 안주원이, 본인이 데뷔한 건 이상한 일이라고 믿게 했다. 본인은 실력이 없다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자신의 순위가 조작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의심하게 했다.

‘지운아, 주원이…… 주원이 어떻게 됐지?’

‘몰라서 물어?’

그렇게 대답하던 신지운의 표정이 생각났다. 신지운을 그놈이 열일곱, 내가 열여덟 살일 때부터 알았는데도, 걔가 그렇게 싸가지 없던 시절에도 본 적 없던 표정이었다. 두 손으로 들고 있던 세상을 바닥에 툭 떨어뜨린 표정이다.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박살 난 세상을 내려다보는 표정…….

나는 그냥 지나쳐서 회의실로 들어가려다가, 결국 되돌아갔다. 아까 이춘형을 안 만났으면 그냥 참고 갔을 텐데, 오늘은 안 되겠다.

“해, 해원아. 가자.”

뒤에서 매니저가 불렀지만 나는 그냥 퍼펙트 엔터 사장에게 말했다.

“주원이 만나면 사과하세요.”

“야, 넌 오랜만에 만나서…….”

“꼭 하세요. 순위 바꿔서 미안하다고. 사장님네 애 몇 컷 더 잡히게 해주려고, 걔 자존감 다치게 한 거 미안하다고.”

“…….”

“안 하시면 저도 방송에서 할 말 많아요.”

“……하, 할게. 하면 되잖아. 사과. 내가 주원 씨 만나면 무릎 꿇고 사과할게.”

“무릎 좀 꿇지 마요. 그거 하나도 안 미안해 보여요.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안 받아주냐고 협박하는 걸로 보이지. 그냥 정중하게 하세요. 제발요, 사장님.”

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회의실로 향했다. 매니저가 와서 말했다.

“무슨 날이냐? 너 오늘 아주 짜증나는 새끼 골고루 만나네.”

“아, 그니까. 액땜인가? 우리 정규 잘 되려고?”

“너는 뭐만 하면 액땜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생각하면 좀 낫잖아. 기분이.”

“하긴?”

그렇게 이야기하며 나는 미팅룸으로 들어갔다. 내가 너무 일찍 와서 아직 준비가 덜 된 분위기였다.

“해원 씨, 벌써 왔어요?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일찍 와서 죄송해요. 저 여기 가만히, 있는지도 모르게 있을게요.”

“아니, 안 그래도 돼요. 애초에 있는지도 모르게 있을 수 있는 존재감도 아니고.”

작가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평소 같으면 어디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고 올 텐데, 오늘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서 다시 나가기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쳤다.

미팅룸에 앉아 있으니까 VVV엔터 4본부에 있던 강효준이 잠깐 간식거리를 들고 들렀다.

“많이 피곤하시죠.”

“우와, 감사합니다.”

“간식이 왔네, 간식.”

“노래 좀 하지 마요, 우리 늙은 거 같잖아……. 잘 마시겠습니다, 본부장님.”

이미 커피와 다과는 예능팀에서 준비해놨지만, 아무래도 회사에서 준비한 다과는 딱 VMC 내부 규격이 있어서 직원들 대부분 거기 질려 있었다. 나도 VVV엔터에서 일하다 보니까 똑같은 저 다과 세트에는 더 이상 손도 대지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맛잘알 강효준이 공수해 온 디저트를 너도나도 챙겨갔다.

강효준은 멤버들을 잘 부탁한다고 소속사 대표답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 잠깐 손짓했다. 복도로 나가보니 강효준이 물었다.

“이춘형이랑 같은 엘리베이터 탔다며?”

“어떻게 벌써 알아요? 매니저 형이?”

“아니.”

“아, 스파이가. 아니, 스파이는 어떻게 알…… 아니다. 안 궁금해하기로 했지.”

내 말에 강효준이 흐흐 웃더니 물었다.

“무슨 얘기 했는데 이춘형이 저렇게 빡쳤어?”

“이춘형이 빡쳐요? 시비는 지가 걸어놓고.”

“너도 진짜 편하게 살긴 틀린 성격이다.”

솔직히 그 부분은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넌 옛날에 태어났으면 바른말하고 대들다가 벌써 왕한테 죽었어.”

“아니, 내가 왕이었을 수도 있지.”

“그럼 더 험난했겠는데.”

그렇게 말하다가 바쁜지 시계를 확인한 강효준이 말했다.

“회의같이 안 들어가도 되나 모르겠네. 우리 애들 낯 가려서.”

“형이 바쁜 것도 바쁜 건데, 대표 조카가 회의 들어오면 얼마나 번거롭겠어요.”

“뭐. 아무튼 문제 있으면 무조건 연락해.”

“네에.”

VVV엔터 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느 정도 강효준이 커버칠 수 있는데, VMC 쪽은 이미 이춘형 부자가 이래저래 손 쓰고 있어서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예능국 일은 예능국에서 알아서 하겠지, 별걱정을 다 한다.

강효준이 떠나고, 우리 멤버들이 하나씩 도착했다. 그리고 약속 시간 정시에 회의가 시작되었다.

예능은 국내 여행을 장려하기 위한 시즌제 방송으로, 앞에도 여러 연예인이나, 다른 유명인들이 나와서 국내 여기저기를 다니며 유적, 관광지도 홍보하고, 낚싯배를 타거나 과수원 일을 하거나 하면서 특산품도 소개하는 방송이었다. 내용적인 부분에서 시청자 연령대 폭이 넓은 방송이라,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아이돌이 출연하고 싶어 했다.

어쩌다가 우리처럼 예능과 거리 있기로 소문난 팀에게 출연 요청이 들어왔나 했더니…….

“주원 씨랑 지운 씨가 낚시 좋아하시죠?”

“네. 엄청 좋아합니다.”

“저희 시간만 나면 가요.”

안주원과 신지운이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돈 받고 낚시를 할 수 있다? 저 둘에게는 너무 꿈같은 이야기일 거다. 연출진이 물었다.

“새벽 씨는 과수원 일 좀 아시고요.”

“네.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알아요.”

낚시 좋아하고, 과수원 일 잘 알고, 먹는 거 좋아하는 게 이 방송과 잘 맞았던 것 같다. 하여튼 우리 멤버들은 ‘찾아가는 일꾼’처럼 말발이나 순발력이 좋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는 예능과 잘 맞는다. 예능할 땐 그렇게 순발력이 안 좋은데, 팬사인회 때 보면 아닌 부분이 신기하다.

내가 말했다.

“저희 멤버들 일 진짜 잘하고, 진짜 잘 먹어요.”

“아, 최고죠. 너무 좋네……. 혹시 갯벌도 괜찮으세요?”

“저 갯벌 가보고 싶어요! 조개 캐고 싶어요!”

민지호가 의욕적으로 말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성실한 놈들이라.

아무튼 그 후에 가고 싶은 여행지를 이야기했다. 멤버들의 기호와 연출진이 준비해준 몇 가지 여행지를 맞춰 여행지를 결정했다. 특히 내가 멤버들끼리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절대 못 하게 해서, 이번 기회에 연출진이 있는 안전한 상황에서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보기로 했다. 멤버들도 연출진도 만족할만한 답이었다.

박선재가 말했다.

“와, 우리 다 같이 여행 가면 재미있겠다.”

“형들 술 조금만 마셔요.”

한효석이 특히 05 둘에게 강조해서 말하니까 둘이 일단은 알았다고 장담했다.

연출진이 말했다.

“저희 X플릭스에 동시에 올라가잖아요. 퍼스트라이트 분들이 지금 해외 반응이 장난 아니니까. 새로 들어가는 시즌, 힘줘서 시작해보고 싶은데. 여기 이보다 잘 맞는 출연팀이 없을 것 같았어요. 화끈하게 한 번 가봅시다.”

“좋아요!”

“감사합니다.”

연출진과 멤버들의 합이 이미 좋아서 서로 분위기 좋게, 막힘 없이 회의가 이어졌다. 그런데 회의 중간쯤부터 경고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의하세요]

[주의하세요]

애초에 VMC 예능을 할 때부터, 어느 정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 경고창도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동안 예능 출연이 없어서, 우리 멤버들 개인, 개인을 알릴 기회가 적었다. 이 예능은 우리의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에 좋은 교두보 역할을 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주의하라니까 촬영 내내 조심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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