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8화
회의가 끝나고, 우리는 거의 바로 촬영 일정이 잡혔다. 돌아오자마자 팬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그사이에 우리는 연습을 이어갔다.
그리고 폴 존스와의 협업 음원은 핫백 차트에 72위로 차트인했다.
생각보다 세상이 순식간에 뒤집힌다든지,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좀 신기했던 건 나온 지 한참 된 우리 정규 2집이 빌보드 200 차트에 다시 올랐다는 것이었다.
정규 2집 말고도 다른 앨범들도 계속해서 들락거리는 걸 서치왕 안주원이 놓치지 않고 알려줬다. 물론 회사에서도 매일 주시하고 있지만, 굳이 하나하나 다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바빴으니까. 팬미팅은 이틀 일정이었다.
이번 팬미팅은 날짜가 봄이라서 멤버들이 바라던 대로 산뜻하고, 귀엽고, 깜찍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왜 불가능한 걸 자꾸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드 엔터 직원들이 ‘우리 애들이 안 귀여우면 누가 귀엽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동조한 탓도 크다.
팬미팅 VCR은 볼풀이 있는 곳에서 찍었는데, 놀다가 중간에 한효석과 민지호가 네가 세게 던졌네, 너네, 하고 싸우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뭐 싸우는 건 워낙 일상이라…….
그러는 사이에 나는 정규 앨범 작업도 하고, 우리 회사 A&R팀에게 놀러 가서 작업을 참견하기도 했다.
이번에 과거의 미래를 보고 온 이후에, 나는 채연재와 대화를 통해서 ‘클라루스가 원래 원하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채연재는 그날 심심하기도 했고, 어차피 10년 전에 무산되어 버린 일들이라고 생각해 술술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그때 들었던 것들을 전부 A&R팀에 전달했는데, A&R들도, 클라루스가 뭘 좋아하는지를 원래 잘 아는 강 대표도 나를 엄청 수상하게 봤다.
“그리고 3년 뒤에는…… 왜 그렇게 봐요?”
강효준이 나를 너무 의심스럽게 봐서 내가 물어보니까, 강효준이 말했다.
“스파이가 알려줬어?”
“아니라니까……. 스파이가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애초에 우리 할아버지가 건설회사 인수하고 싶어 하는 걸 어떻게 알아. 가족들 보여 있을 때만 하는 말인데.”
“그러니까요, 형. 형네 가족 간의 대화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당연히 우연인 거지.”
“스파이가 아니라고 쳐도. 어쨌든 클라루스 관련 기획을 저만큼 했다는 거잖아.”
같이 와 있던 양이형이 나한테 물었다.
“너 숙소 가도 안 자냐?”
“아니, 나 밤에 꼬박꼬박 자. 그렇게 안 잤으면 나 벌써 죽었지.”
“아, 말이 안 되는데.”
하,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내가 꿈을 꿨는데 거기서 채연재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그랬다간 우리 소속사는 당장 모든 일을 멈추게 하고 본가로 보낼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사랑과 신뢰보다는 의심만이 꽃피는 보이드 엔터 A&R팀에서 기획에 대해 소모하는 시간만큼,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거냐는 질문을 받는 시간이 긴 피곤한 일과를 마쳤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남은 건 회사에서, 아니, 강효준이 잘 자본을 끌어다가 클라루스를 더 이상 진행하기를 원하지 않는 멤버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보이드 엔터는 큰 회사가 될 거고 그럼 내가 가진 지분의 가치가 높아지고 그럼 나는 부자가 되겠지…….
내가 부자 될 생각에 웃고 있으니까 양이형이 내 등을 퍽 쳤다.
“왜 이렇게 신났어, 기분 나쁘게.”
“나 부자 되겠다. 히히.”
“너 어차피 돈 있어도 안 쓰잖아.”
“아냐, 부자 되면 쓸 거야.”
“너 이미 부자…… 아니다. 너 뭐 하고 싶은데.”
“부자 되면?”
나는 돈이 많으면 뭘 할까, 생각해 봤다. 사실 부자도 그냥 부자가 되면 좋다니까 사회적 인식으로 좋다고 한 거지, 그다지 나에게 대단한 가치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부자가 되면 하고 싶은 건 늘 같다.
“공연장 지을 거야.”
내 말에 A&R팀 한 직원이 말했다.
“뭐야, 해원이 내 생각보다 부자의 기준이 높았구나?”
“그래요? 공연장 비싼가……. 부족하면 대출받지 뭐.”
공연장을 짓겠다는 말에 오랜 클라루스 팬, 룩스이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자체가 클라루스인, 그래서 이번 기획안 작성에 생명력을 갈아 넣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A&R, 오아영이 말했다.
“음향 빵빵한 걸로요? 시야 좋아서 내 돌 잘 보이고?”
“네, 참고할게요.”
“너무 좋다…….”
“우리나라 공연장이 부족하잖아요.”
내가 야구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돔구장을 지어야 한다는 KBO 총재의 말은 공감한다. 뚜껑 있는 공연장…… 아니, 야구장이 있어야 공연…… 아니, 야구를 비 안 오고 따듯한 곳에서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보니까 왜 돔을 안 짓는 거야. 그저 그런 돔 말고 좋은 돔구장 좀 많이 지어서 어, 우리나라 공연문화에 이바지하면 좋잖아.
그 말에 양이형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아, 주원이가 너 야구는 관심 없고 야구장에만 관심이 있다더니. 그게 공연장 얘기네?”
“응, 어쨌든 우리가 빌려 써야 하잖아.”
“그래도 빌린다는 인식은 있냐.”
“그러엄, 난 모든 공연장을 갈 때마다 다 어, 거기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아껴서 잘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큰 공연장을 짓겠다는 꿈을 키우지.”
진심인데 사람들이 웃었다. 왜 웃지. 나 진짜 공연장 지을 건데…….
케이팝이 해외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보다 중요한 건 국내 공연의 질을 상승시키는 것 아닌가? 우리 팀도 이제 점점 인기가 늘어나는데, 그럴수록 공연장 문제도 더 커진다.
충분히 팬들을 수용하면서, 음향도 좋고, 일어서서 뛰어도 안전한 공연장이 생각보다 없다. 아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없다. 4층을 지어놓고 거기서 뛰면 위험하다니? 이게 공연장…… 물론 야구장이지만. 어? 야구팬들도 그 홈런 같은 거 치면 일어나서 뛰고 싶은 거 아니야?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부자가 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역시 공연장을 짓는 일이다. 물론 삼사천 억씩 들어가는 돔을 짓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아영 A&R의 말처럼 음향과 시야가 좋은, 공연장을 짓고 싶었다.
아무튼 그런 나의 꿈과 희망을 다들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원래 재산이 많은 강효준은 그렇구나, 하는 표정이다. 나중에 투자하라고 꼬드겨야겠다. 히히.
그렇게 A&R팀을 들락날락하고, 햄버거 중독자들인 A&R팀에서 햄버거 좀 그만 먹으라고 지겨워하면서도 같이 햄버거로 매일 저녁을 때우며 어느 정도 기획안을 만들었다.
이제 강효준이 이걸 들고 VVV엔터와 계약할 생각이 없는 클라루스 멤버들, 대표적으로 계속해서 기획안이 계류하고 있는 것에 지친 박윤태, 그리고 클라루스라는 팀이 오히려 멤버들을 지치게 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낸 리더 서민혁을 설득하면 된다.
결단.
나는 채연재에게서, 서민혁이 가장 먼저 ‘해체’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이건 어차피 기사로도 많이 나온 말이니까……. 민혁이가, 어느 날 술 엄청 마시고 오더니 우리한테 그러더라고. 여기까지만 하자고. 솔직히 다들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 밖으로 못 꺼냈어. 원래 리더들이 그렇잖아. 싫은 소리 자기가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끝도, 서민혁이 내더라고.’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욱신거렸다. 우리도 아마, 언젠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벽에 막히게 된다면 황새벽이 가장 먼저 말하게 될 거다. 우리가 서로를 싫어하게 되기 전에 퍼스트라이트를 마무리하자고.
하.
절대 안 되겠다.
황새벽이 그렇게 말하면 주먹질하고 싸워서라도 못하게 해야지.
* * *
그렇게 일이 많던 차에 여행은 오히려 타이밍이 좋았다. 나는 멤버들과 예능 촬영에 들어갔다.
VMC 예능국 작가들과 대본을 충분히 숙지하고, 우리는 팀을 나눠 차에 타기로 했고, 이제 박선재 빼고는 다 면허가 있었다. 팀은 둘로 나눴는데 나와 민지호 황새벽, 그리고 나머지가 한 차에 탔다.
문제는 체력 없는 황새벽이 초집중해서 게임을 해 운전에서 벗어나고 나니, 나와 민지호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운전자를 정하게 되었다는 거다.
“제발 내가 지고 싶다.”
“왜! 나 믿어, 형!”
“민조 면허 딴 지 얼마나 됐지.”
“거의 반년이나 됐지! 고속도로도 다 타봤어, 걱정하지 마!”
운 나쁘게 여기서 내가 가위바위보를 이기면 민지호가 가는데 운전을 하게 생겼다. 어차피 내가 조수석에 타서 계속 보고 있을 거긴 한데, 이렇게 운전 강습 선생님이 되느니 그냥 내가 운전하는 게 백배 편하다.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역시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꺄!”
민지호가 신나서 차키를 낚아채고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자리에 남은 내가 한숨 쉬니까 황새벽이 말했다.
“나는 잘 거야. 자다 죽으면 좀 낫지…….”
“……넌 무슨 그런 무서운 농담을 그렇게 나지막하게 하냐?”
“이게 농담 같냐?”
“하…… 너넨 누가 운전해?”
05 둘과 한효석, 박선재가 타게 될 차 쪽을 보며 물었더니 한효석이 손을 들었다.
“저요.”
“이야, 너네도 만만치 않구나.”
“형, 지금 저를 민지호랑 똑같이 취급하시는 거예요? 전 안전 운전 해요.”
한효석의 말에 민지호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그럼 내가 안전 운전 안 하는 거 같잖아!”
“안 하잖아?”
그렇게 또 티격태격하니까 신지운이 핀잔했다.
“난 민지호네가 낫겠는데. 답답해서 어디 타겠냐. 우리 내일 도착할 듯.”
“형, 조금 빨리 가려다가 아주 가는 수가 있어요.”
출발 전부터 극단적으로 반대 성향을 가진 빌런즈가 운전을 하게 된 건, 우리의 안전에는 위험했지만 예능적으로는 좋은 시작이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예능이 됐다. 멤버들 모두가 진짜로 쫄아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오프닝 장면을 꽤 괜찮게 찍으며 우리는 모두 차에 탔다.
애초에 민지호가 운전대를 잡는 장면 자체가 너무 신선했다.
“와, 처음 만났을 때 민조도 진짜 애기였는데. 운전을 하네, 얘가.”
내가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니까 민지호가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신기한 거 말해줄까? 심지어 이제 박곰돌도 딸 거다?”
“아, 소름 끼쳐. 기분 너무 이상해.”
그렇게 이야기하며 방송국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의외로 깔끔했다. 하지만 역시 초보운전이긴 했고, 건널목 앞에서 급정거할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미 잠든 황새벽이 순간 부러워질 뻔했다.
혹시 시스템이 주의하라는 게 민지호의 운전이었나, 하는 의심이 잠깐 들었지만, 다행히 초반에 당혹스러웠던 이후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목적지까지 잘 이동했다. 운전에 재능이 있었다.
휴게소에서 간식을 사기로 하고, 약속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우리의 우려대로 한효석이 운전하는 차가 한참 뒤에 있어, 거리를 좁힐 필요도 있었다.
내내 기절해 있던 황새벽이 벌떡 일어났다.
“민조, 휴게소 간식 먹자.”
“가자, 새부기!”
나는 둘을 따라가면서도 순간, 순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주변을 확인했다. 너무 주의하느라 피곤하겠다, 싶어질 때였다.
강효준에게 문자가 왔다.
[강 대표 : 아무래도 브엠 예능은 좀 찝찝하네]
[강 대표 : 그래서 용병 보냈다]
[웬 용병?]
그렇게 쓰는데 익숙한 VVV 회사 차량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한결 덜 주의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흐흐 웃었다. 회사 차에서 스파이, 박중운 팀장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