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69화
“어, 형.”
“해원아.”
스파이, 박중운 팀장은 차에서 내려 바로 정해원에게로 향했다.
보이드 엔터 쪽으로 용병 좀 뛰고 오라고, 강효준 본부장이 시키는 말에 박중운 팀장은 드디어 신뢰를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보내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박중운 팀장이 보기에도 이춘형이 가장 확실하게 힘을 받을 수 있는 건, 정해원이 활동 불가능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퍼스트라이트의 활동도 어려워질 거고, 보이드 엔터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자신이 잘하는 것도 있지만, 경쟁자가 낙오되는 방법도 있었다. 그리고 정해원이 낙오되는 건, 보이드 엔터의 낙오였다.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정해원이 박중운 팀장에게 말했다.
“잘 왔네. 안 그래도 좀 걱정 됐는데.”
“걱정?”
“이번에…….”
정해원이 카메라를 확인한 후, 박중운 팀장에게 말했다.
“사고 걱정되는 촬영들이 많잖아. 나 배 탈 수도 있어. 선상 낚시하러.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조금 겁나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해원은 강효준만큼 정치에 둔감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본인도 어느 정도 이춘형이 자신에게 해코지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서 그렇게 이춘형 성질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물론 속이 후련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정해원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형 오니까 되게 든든하네.”
“그래?”
“응. 마음이 놓여.”
그렇게 말하더니 어깨를 툭툭 치고 간식을 너무 많이 사고 있는 멤버들을 뜯어말리러 달려갔다. 확실히, 정해원은 자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알았다. 스파이는 그건 다행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해원이 달려간 뒤부터, 퍼스트라이트 매니저에게 전체적인 촬영 스케줄을 받아 어느 부분에서 안전을 신경 써야 할지를 미리 확인해두었다.
* * *
멤버들은 휴게소를 엄청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어느 휴게소에서 뭘 먹고 뭘 봐야 하는지 미리 계획까지 짜고 다닐 정도로.
먹는 것도 있지만, 휴게소라는 장소가 주는 느낌도 좋아하는 것 같다. 멤버들은 여행 가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잠깐 촬영 허가를 받아, 우리는 휴게소 야외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테이블 위에 이것저것 간식들을 늘어놓고, 시끌시끌 이야기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4월, 오늘 최고 기온은 23도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지금이 딱 그 시간이었다. 날씨도 좋고 하늘도 맑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멤버들이 사 온 간식을 집어 먹었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인지, 벌써 빙수를 팔았다. 팥과 연유, 젤리, 떡 같은 것들이 들어있는 전형적인 빙수였다. 혼자 먹을 때는 빙수가 녹아서 다 뒤섞이는데, 오늘은 그럴 일이 없었다. 빨리 녹을 날씨가 아니기도 하지만, 멤버들이 두 숟가락씩 퍼가면 없었다. 일곱 명도 많은데, 멤버가 더 많은 아이노 형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빙수가 맛있어서 멤버들에게 물었다.
“빙수 하나 더 할까?”
“하나 더 가자.”
황새벽이 바로 말하더니, 누가 사러 갈지 가위바위보 할 준비를 했다. 박선재가 말했다.
“우리 빙수 사러 가는 김에. 진 사람이 빙수도 사러 가고, 사장님한테 퍼스트라이트 홍보도 하고 오자.”
“좋아!”
민지호가 열정적으로 대답하더니, 차로 달려가서 매니저에게 늘 차에 박스로 챙겨 들고 다니는 우리 앨범 하나를 얻어왔다. 그리고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했다.
생긴 거랑 안 어울리게 낯을 많이 가리는 신지운이 꼴찌인 걸 알고 우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내 팔을 당겼다.
“같이 가주십쇼.”
“해원이 형님, 해봐.”
“하늘 같은 해원이 형님, 제발.”
그렇게 엎드려 절받고 나서 나는 히히 웃으며 빙수를 사는 곳에 같이 가줬다. 빙수 가게 사장님은 우리 어머니 또래 여자분이셨다. 신지운이 누가 봐도 낯 가리는 사람이 되어 빙수를 주문하고, 벌게진 얼굴로 보폭을 넓게 하고 서서, 사장님과 최대한 시선 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저…… 죄송한데 저희 팀 홍보 좀 해드려도 될까요?”
“선겸이?”
“어, 저 아시는구나!”
신지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다행히 사장님이 신지운이 출연한 드라마를 보신 모양이었다. 반가워하시는 사장님에게 신지운이 앨범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아이돌인데,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이거든요.”
“퍼스트라이트 들어봤지! 아이돌이야? 어쩐지 너무 예쁘더라.”
“그쵸? 저 예쁘죠? 그리고 좀 귀엽지 않아요, 사장님?”
“아, 귀엽지, 귀엽지. 어휴, 연기도 잘하는데 노래도 잘해?”
“저 래퍼기는 한데, 노래도 꽤 해요. 춤도 잘 추고, 잘생기기도 했죠?”
“말해 뭐해. 실물이 훨씬 잘생겼다. 어우, 심장 떨려서 똑바로 못 보겠네.”
그렇게 낯을 가리더니, 자기를 알아봐 주자마자 아이돌 모드가 돼서 잔망을 떨고 있었다. 그러더니 밝아진 얼굴로 기다리던 나에게 말했다.
“사장님이 퍼라는 모르지만 나 아신대.”
“어, 우리 더 열심히 하자.”
그러더니 앨범 소개도 해드리고, 종이를 받아서 사인도 해드렸다. 퍼라 홍보를 하려는 계획과 달리 ‘선겸이 빙수 잘 먹었습니다♥’라고 쓰기는 했지만 어쨌든 임무는 제대로 마쳤다.
신지운이 만족스럽게 돌아와서 내가 말했다.
“확실히 네 인지도가 엄청 높다.”
“어, 근데 형도 알아보시더라. 러쉬 때문에.”
역시 인지도는 예능과 드라마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주원에게 ‘삼라만상’ 배역이 들어왔던 게 생각났다. 이번엔 당연히 안 될 말이었지만, 다음에 좀 더 좋은, 안주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배역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체적으로 게임을 해서 분량을 뽑고,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간식을 마저 먹었다.
그사이 우리 팀에서 적당량, 그러니까 일반적인 1인분 식사를 하는 유일한 동료 안주원이 간식을 다 먹고 카메라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폴라로이드로 계속 사진을 찍으니까 박선재가 말했다.
“형, 우리 아빠 같다. 우리 아빠 어릴 때 가족 여행 가면, 그냥 가족들이 뭘 하든 다 찍는다니까?”
“아버님 마음 알 것 같아. 우리 멤버들의 이 순간을 다 남겨 놓고 싶어.”
“와, 진짜 아빠 마음이다.”
그러자 신지운이 말했다.
“좋겠다. 난 가족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데.”
그 말에 민지호가 말했다.
“지금 가고 있잖아! 가족 여행!”
“하긴.”
평소엔 까칠하게 대꾸할 신지운이 오늘은 기분이 상당히 좋은지, 민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행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안주원은 순식간에 폴라로이드 필름을 다 써서, 새로 가져온 필름으로 바꿔 끼워 넣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계속 여기 와봐라, 이 포즈 해봐라 다양하게 시켰다.
“효석아, 여기 좀 와봐.”
“여기요?”
이번엔 한효석이 불려갔다. 다행인 건 우리가 아이돌이라 아무도 사진 찍는 걸 번거로워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들 한 장이라도 남기려고 애를 쓴다. 나는 한효석을 찍는 안주원의 사진을 찍었다. 안주원의 사진도 누가 찍어줘야 하니까.
내가 그렇게 찍고 사진을 보고 있으니까 안주원이 팔을 툭 쳤다.
“좀 아련하게 보지 마. 왜 그래, 요즘?”
“못 해준 게 생각나서 그렇다고.”
“아, 진짜 이상하네.”
이제 그만 아련하게 봐야겠다. 안주원은 남의 기분을 파악하고, 안 좋으면 풀어주려 노력하는 착한 놈이라 내가 엄청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털어버려야지. 그건 그거고,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배도 채우고, 사진도 실컷 찍은 후에 우리는 다시 차에 탔다. 자연광이 좋아서 사진을 많이 건졌다. 빨리 햇살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만 방송이 나갈 때까지는 그럴 수 없었다.
다행히, 촬영은 잘 진행되고 있었다.
* * *
우리는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숙소로 잡은 펜션에다가 짐을 풀어놓고, 유적지부터 갔다. 유명한 역사 강사가 동행하며 우리에게 유적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나는 중졸이고, 연습생 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솔직히 공부와는 거리가 좀 멀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덕을 봤다. 영화에서 들어본 이름이 나오면 신이 나서 아는 척을 했다.
“오, 해원 씨 어떻게 알았어요?”
“저 영화에서 봤어요!”
내가 열정적으로 역사 수업에 임하니까 역사 쌤이 날 기특해했다.
“아, 해원 씨 진짜 학구적이네. 훌륭하다. 선생님들이 이런 학생을 안 좋아할 수가 없어요.”
“저 편애해주세요, 쌤.”
나는 말하며 선생님 뒤를 잘 쫓아다녔다. 다른 멤버들도 본인들이 웃기진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분량을 만들어보려고 열심히 호응하며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유적지를 다니고, 가슴 아픈 내용이 있으면 가슴 아파하고, 재미있는 걸 보면 재미있어하면서 첫날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유적지 근처에 마련된 전통문화원에서 윷놀이를 했다. 윷놀이 룰을 알고 있는 게 각자 너무 달라서 서로 합의하는데 오래 걸렸다.
“업기 있어, 업기?”
“아, 그런 룰로 가면 평생 안 끝난다, 게임?”
“형! 나 배고파!”
“식혜 먹을까? 호박 식혜가 뭐야? 호박맛이야?”
우리가 시끌시끌 떠들고 있으니까 피디가 황당해하며 말했다.
“아니, 퍼스트라이트 멤버분들 내성적이고 조용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오디오가 잠깐도 안 비는데.”
그 말에 황새벽이 말했다.
“저희 원래 저희끼리 있을 땐 시끄러워요. 근데 한 명이라도 끼면 조용해져요…….”
“멤버들이 낯을 많이 가려요…….”
똑같이 낯가리는 신지운도 말했다.
물론 그 한 명이 팬이면 낯을 안 가린다는 것도, 아까 빙수 가게 사장님 덕에 우리 스스로도 알게 됐다.
우리는 윷놀이에서 일찍 도착하는 순서대로 갯벌에 가는 것과 선상낚시 중에 가고 싶은 것을 고르고, 꼴찌가 호박 식혜를 사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졌다. 심지어 꼴찌였다. 나는 여지없이 낚시를 고른 안주원, 신지운과 선상낚시를 가기로 했고 호박 식혜도 샀다. 민지호가 말했다.
“어, 그라데이션즈다!”
“어, 그러네.”
신지운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주원이 물었다.
“너 뱃멀미 괜찮아?”
“모르겠는데. 괜찮지 않을까? 안 괜찮나? 나 사실 그렇게 출렁거리는 배는 안 타봤어.”
“멀미약 무조건 가져가야겠다.”
“내 말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선상낚시를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작가가 와서 말했다.
“그리고 내일 오후 두 시에 레일바이크 다 예약해놨어요.”
인기가 많아서 예약하기 어렵다고 했던 레일바이크였다. 안 그래도 멤버들이 엄청 타고 싶어했는데 잘 됐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경고창이 다시 떴다.
[주의하세요]
[주의하세요]
지금 말이 나온 건 두 가지였다. 선상낚시, 레일바이크.
두 개 중에 하나를 주의하라는 타이밍 같았다. 나는 바로 스파이에게 말했다.
“형, 배낚시랑 레일바이크 촬영 같이 가.”
“어, 그래.”
낚시 좋아하는 스파이가 오히려 반가워했다.
아, 뭐라고 이렇게 든든하지…… 라고 생각할 때.
깜빡거리던 경고창이 꺼졌다.
……스파이를 데리고 가면 안전해지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