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272화
“이야, 볼락배에서 문어를 잡아버리네.”
피디는 낚싯배 촬영에 만족한 모양이다. 일단 문어가 잡히면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안주원은 문어로 세비체를 해준다고, 이따가 장을 보고 온다고 했다. 세비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했다.
배에서 내리고 우리 보이드 엔터 직원들이 발을 다쳤다는 소리에 한마디씩 했다.
“아니, 배에서 위험하게 카메라를 왜 들라고 그래?”
“춤추는 애 발목을 삐게 해, 어떻게?”
“제가 넘어진 거긴 한데요…….”
아무래도 보이드 엔터에서 너무 곱게 크는 것 같다. 발목 좀 다친 걸로.
일단은 매니저가 발목보호대를 사 와서 그걸 삔 왼쪽 발목에 끼웠다. 바로 병원에 가보자고 했는데 레일바이크도 타고 싶고, 솔직히 나 없이 우리 멤버들이 예능을 잘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 못 빠지겠다고 했다. 걱정이 많다, 내가.
아무튼 뭍으로 나와서 우리 셋은 서로 어획량을 비교했다. 배에 타기 전부터 셋 중에 제일 어획량이 적은 사람이 애교를 부리기로 한 내기가 있었다. 나는 한 마리가 전부라, 일단 우기기에 들어갔다.
“나 문어 있어. 난 꼴찌는 아니야.”
“아니지, 한 마린데.”
안주원이 말하는데 신지운이 냉큼 손을 들었다.
“내가 꼴찌야.”
“네가 제일 많이 잡았잖아.”
“아니, 무게로 비교해야지.”
“진짜? 그래도 돼?”
우리 팀에서 제일 애교를 못 하는 안주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봐서 내가 신지운에게 말했다.
“우기지 마. 네가 더 많이 잡았는데 어떻게 꼴찌야.”
“봐봐, 안주원이 잡은 게 훨씬 크잖아. 통이 꽉 찼다니까.”
“지운아.”
나는 진지하게 신지운에게 말했다.
“넌 꼴찌 안 해도 애교 할 거잖아.”
“응.”
“그러니까 쟤 꼴찌 시키자.”
“오, 그러자.”
신지운이 합의했다. 평소 웬만하면 다 허허 그래그래 하던 안주원이 정색했다.
“아니, 봐봐. 내가 제일 넉넉하게 잡긴 했어.”
“숫자가 적잖아.”
“그렇게 따지면 정해원이 제일 적지.”
“난 문어 잡았잖아. 희소가치로 따지면 내가 일등이야.”
“아니, 그럼 무게로…….”
“알았어, 쭈어니 말 일리가 있어.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하자, 애교.”
나는 말하고 양손 검지로 양뺨을 콕콕 찌르며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온갖 하트를 만들고 있으니까 신지운도 냉큼 와서 볼하트에 윙크를 했다.
안주원이 폭풍 같은 부담을 느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카메라 앞으로 왔다. 내가 보이드 엔터 직원들한테 호응해 달라고 하니까,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호응했다. 안주원이 날 떠밀며 말했다.
“아, 사람들 시선 집중 시키지 마…….”
“뭔 소리임? 이래야 벌칙이지. 떨리면 내가 먼저 해줄게.”
나는 바로 꽃받침을 하고 말했다.
“해원이 문어 잡았어여.”
“…….”
“빨리해, 주원이 볼락 잡았어여, 해.”
평소 안주원이 애교와 엄청 거리가 먼 걸 아는 우리 직원들은 다들 찍을 준비까지 하고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우리 멤버들은 외동인 신지운과 동생들만 있는 안주원 빼고 다 누나가 있어서인지, 애교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주원이, 하…….”
안주원이 1차 애교에 실패하니까 피디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아니, 왜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끼리 애교부리고 벌칙 하느라 고생이야.”
“저희 아이돌이잖아요.”
“맞아요, 아이돌 모먼트예요.”
나와 신지운이 번갈아 말하니까 안주원이 또 한숨을 쉬었다.
“그냥 놀리는 거잖아…….”
삼인칭 화는 도저히 못 하겠는지, 차라리 검지로 볼콕을 했지만 우리는 넘어가 주기로 했다. 애교 너무 쉬운데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샤워를 하고,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에서 갯벌에 간 멤버들과 만났다. 다행히 그쪽 촬영도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새벽과 달리 황새벽의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애들이 조개채집의 신이야.”
“넌 쉬었어?”
“아니, 심판 봤어.”
“꿀이네.”
“완전.”
알고 보니 막내즈 셋과 황새벽의 조합이 꽤 웃겼던 모양이다. 평소에 내가 있으면 위험한 짓 못 하게 잔소리를 엄청나게 하는데,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막내즈가 자유를 만끽하며 갯벌 체험을 했다고 했다. 중간에 편의점에서 내가 못 먹게 하던 초콜릿과 봉지 과자를 사서 다 때려먹고, 당분이 폭발한 상태로 셋이 경쟁심이 붙어서 조개 캐기 내기를 했는데 셋 다 동네 주민이 충격받을 정도로 많이 캐왔다.
그리고 황새벽은 널배에서 쉬며 막내즈의 경쟁 심판을 봤다고 했다. 포지션을 잘 잡았다.
다들 껴입고 메이크업도 안 하고 낚시와 조개 캐기를 했으니까 산뜻하고 예쁜 얼굴로 레일바이크를 탈 때였다. 지금이 진짜 아이돌 모먼트였다.
도착을 해서 바로 팀 나누는 게임을 했는데, 두 명씩 세 팀, 한 명이 한 팀으로 나누어서 가자고 했다. 한 명이 페달을 밟으면 엄청 힘든 코스라고 들었다.
게임은 추첨이었는데, 내가 꼴찌를 해서 혼자 레일바이크를 타게 됐다. 나는 추첨과 둘, 둘, 둘, 하나, 이렇게 네 팀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는 전 수행비서를 봤다.
다시 생각해 봐도 섬뜩했다.
낚싯배에서 작정하고 사고를 내자 치면 얼마든지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의가 해제됩니다]
[주의가 해제됩니다]
배에서도 내렸고, 발목을 다친 덕분에 레일바이크도 한 팀한테 얹혀가라고 예능팀이 제안했으니,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근데 사실 해결되지 않았다. 배에서는 아예 전 수행비서를 못 타게 해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는 했는데 이대로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뭔가를 시도하려고 여기까지 따라오긴 한 거잖아?
레일바이크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서, 배고픈 사람은 도시락을 먹고, 괜찮은 사람은 쉬었다. 나는 배에서 회와 해물라면을 얻어먹었기 때문에 느티나무 아래 평상 있는 쪽에 가서 드러누웠다. 같이 배에 탔던 스태프들도 누워서 멀미 기운을 완전히 가라앉혔다.
그렇게 누워서 정오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힐링하는데, 머릿속이 푹 쉬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그놈은 뭘 하려던 거였지.
내가 완전히 못 쉬고 생각하는데, 내가 궁금해해서인지 상태창이 떴다.
[주의 해제 전 상황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역시 우리 스템이는 내 마음을 알아준다고, 오구오구 공치사를 하는 도중에 나는 깜박 잠이 들었다. 그리고 ‘주의 해제 전 상황’이라는 게 보였다.
초점이 안 맞는 것처럼 처음에는 뿌옇던 장면이 현실처럼 또렷해졌다. 그리고 아팠다.
-어…….
낚싯배 바닥에 피가 떨어지고 있어서 아래를 봤다. 어디를 다쳤는지 모르겠다.
-나, 낚싯줄이 배에 엉킨 거 같아서 풀어주려고 한 건데…….
그리고 접이식 칼을 든 이춘형의 전 수행비서라는 위험인물이 앞에 보였다. 역시, 저놈이 맞았다.
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팔이며 몸이며 훑어봤는데 다친 곳이 없었다. 그런데 바닥에 여전히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뭐야, 어딘데. 어디를 다쳤는데…….
생각하다가, 나는 무심코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얼굴이었다.
안주원과 신지운이 내가 빌려 달라고 해도 안 빌려주던, 그렇게 아끼는 낚싯대들을 팽개치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순간 든 생각은, 내가 얼굴로 주목받는 아이돌은 아니지?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작곡과 춤추는 일에는 문제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내 얼굴을 확인했다. 코에서 뺨으로 이어지는 큰 상처가 생겨 있었다.
범인은 정말로 충격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표정만 봐서는 정말 실수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한동안 TV에 나올 수 없겠지만, 실수라고 우기면 우겨질 정도의 사고였다.
그런 사고를 노리고 온 모양이다.
* * *
나는 그 주의 해제 전 상황의 장면이 끝나자마자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선선한 날인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평상에서 내려와서, 내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내가 그러고 있으니까 외모 관리에 투철한 신지운이 말했다.
“얼굴 만지면 피부에 안 좋다니까?”
“지운아, 너 거울 있어?”
“……웬일이야?”
내가 평소에 거울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신지운이 인상을 쓰더니 자기 짐에서 거울을 꺼내줬다.
받은 거울로 내 얼굴을 봤는데 다행히 상처 없이 깨끗했다.
그렇게 확인한 뒤에, 내가 기운이 빠져서 주저앉으니까 신지운이 물었다.
“왜? 꿈꿨어?”
“어, 악몽. 누가 내 얼굴 칼로 긋는 꿈 꿨어.”
“뭐 그런 미친 꿈을 꿔.”
꿈이라면 정말 미친 꿈이었다. 그리고 현실이라면…….
내가 생각하는데, 신지운이 위험인물 쪽을 봤다. 그러더니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그랬지? 꿈에서.”
“……어.”
“악몽 꿀 만해.”
신지운이 동감하더니, 소름이 돋았는지 자기 팔을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형 평소에 감이 좋으니까, 더 무섭잖아.”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무사히 피한 사고. 그런데, 그렇다고 이번에 넘어가면?
그다음엔 또 어떻게 할 건데. 또 스파이 대동하고, 피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피해 가면서, 불안하게 지내야 돼?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미칠 것 같았다. 만약에 내가 본 장면에서처럼 얼굴을 다친다면, 그래서 한동안 퍼스트라이트 활동을…… 어쩌면 한동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활동을 쉬게 된다면 나는 정말로 힘들 것 같았다.
잡고 싶다.
현장을.
나는 신지운에게 말했다.
“나 레일바이크 혼자 타야겠다.”
“어? 뭔 소리야. 미쳤냐? 형 발목 삐었잖아.”
“저거 반은 전기로 가잖아. 아마 좀 조종해 달라고 하면 자동으로 갈걸?”
“……그래서? 자체적으로 사고를 만들겠다고?”
“혹시 위험인물이면 잡아야지. 무서워서 어떻게 이렇게 놔두냐.”
“…….”
내 말이 아주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지, 신지운이 바로 ‘안 된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얼굴을 다치는 꿈을 꿨다는 게, 아마 신지운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자기 얼굴이 제 최대 매력이라고 믿는 놈인데, 내가 받은 충격보다 더 크면 더 컸지, 적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어쨌든, 자기 낚싯대보다는 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놈이니까. 하, 다행이다. 낚싯대는 이겨서…….
신지운은 이게 맞나, 계속 고민하면서도 우선 레일바이크가 거의 자동으로 가게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왔다. 다행히 레일바이크를 회수해야 하거나, 할 일이 있어서 여기는 거의 자동으로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속도가 느려서 약간은 페달을 밟아야 할 거라고 했지만, 그 정도는 한 발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짜증이야 나겠지만 그거야 다친 내 탓이니까.
신지운은 계속 위험인물에 대해 견제 중이던 스파이와 상의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위험인물의 존재를 모르는데도 발목 때문에 다들 반대했지만, 자동으로 가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물러났다.
발목 쓰지 말라는 잔소리를 몇 번이나 듣고, 나는 레일바이크에 혼자 탔다. 스파이는 우리 매니저와 시큐리티들에게 위험인물의 존재를 알려주고, 같이 확인하기로 했다.
촬영 준비가 끝나고, 레일바이크가 출발했다.